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31
31.
구불구불한 갈색 머리칼에 여리여리한 몸을 가진 여인이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죠? 폭파해요! 어서!”
“퇴로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지금 그럴 시간이 없어요. 마이노르 그자의 병력이 이미 이곳으로 향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는 소리입니다!”
“지금 폭파하지 않으면 이 물질이 스테이션 전체로 퍼질 거예요!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이미 말했을 텐데요? 폭파하세요! 어서!”
누가 봐도 여린 그녀이건만 그 여린 몸에서 엄청난 박력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사나운 기세에 함께 한 저항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지시를 내렸다.
“폭파해!”
기묘한 음성과 연구소 전체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푸른 빛의 잔상이 허공에 집결하더니 이내 곧 홀로그램을 형성했다. 홀로그램은 말총머리에 깡마른 중년 사내를 그려내고 있었다.
엘린이 급히 저항군을 바라보며 소리치자 폭파버튼을 누른 병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소리쳤다.
“어서!”
“폭파가 되지 않습니다!”
“마이노르…”
엘린은 암사자가 으르렁거리듯 중년 사내의 이름을 부른 뒤 표독스럽게 외쳤다.
“당신은 천벌을 받을 거야!”
홀로그램에 뜬 마이노르는 그녀를 비웃으며 말을 꺼냈다.
엘린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일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심지어 키아텍 스테이션의 사람들은 당신이 겪은 일과 조금도 연관이 없는 자들이에요. 이들 역시 당신이 겪었던 고통을 동일하게!”
“스테이션에는 아이도 있어요! 당신은 지금 그들 전부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라구요!”
“마이노르!!”
그와 동시에 전투 소음이 저편에서 발생했다.
두두둥!
“크아아악!”
“아악!”
총소리와 저항군들이 비명이 처절하게 울려 퍼지자 엘린을 호위하던 병사들이 경계태세를 취했다.
“무슨 일이야? 대답해!”
“괴… 괴물이! 아아악!”
“커허헉! 내 다리! 그르륵.”
“엘린 박사님. 어서 피하셔야 합… 저… 저게 대체 뭐야?”
크르르륵.
보랏빛의 녹아내린 피부를 가진 인간형의 기괴한 괴물들이 온몸에 피를 묻힌 채 모습을 드러냈다.
“사격! 사격해!”
두두두두! 두두!
퍼버벅! 퍼버버버벅!
총알이 박히며 녹색의 체액이 아무렇게나 튀었지만 놀랍게도 그 상처는 순식간에 수복되었다.
엘린은 녹색의 체액을 보는 순간 제르카 회사의 의약품을 바로 떠올렸다.
“설마? HF-7? HF-7으로 온몸을 채우고 있다고?”
강력한 세포재생력을 부여하지만 소량만 사용해도 끔찍한 고통에 쇼크사 할 수 있는 의약품이 HF-7이다. 그래서 민간용으로 판매하지 않는 것이고. 그런 약물을 온몸에 지니고도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멀쩡하다는 표현은 정정할 필요가 있었다. 누가 봐도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괴한 괴물이었으니까. 피부가 녹아내리고 시뻘건 아니 보랏빛 근육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괴물.
“라이플이 소용없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말고 사격해!”
상처를 입지 않는 건 아니니 최소한 놈들이 돌진하지 못하도록 저지력은 부여할 것이다.
두두두두! 두두두!
스테이션의 거주민이 모두 이런 괴물로 변모한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상상이었다. 그제야 저항군은 엘린이 왜 그토록 절박하게 이 일을 막으려고 했는지 절감했다.
하지만 저항군의 절감이 대체 이 상황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저항군 리더로 보이는 사내가 엘린에게 급히 말했다.
“박사님! 피신하셔야 합니다! 이… 이쪽으로! 어서 움직이셔야 합니다!”
그러나 엘린은 저항군 리더가 아닌 다른 패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너무… 내가 너무 늦었어. 내가 너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엘린을 리더가 잡아채며 다시 소리쳤다.
“박사님! 정신 차리십시오.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현재 이것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박사님 외에 없고 백신이라도 만들어내려면 박사님의 지식과 연구가 필수적입니다. 지금은 목숨을 구하는 것에만 집중하십시오.”
엘린은 저항군 리더의 조언에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대답했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죠?”
“저를 따라오십시오.”
두두두두!
“아아악!”
“총알이 먹히질 않아!”
“피를 흘리고 있어! 멈추지 말고 사격. 커허헉!”
“아아아악!”
엘린 등이 후퇴하는 저편으로 저항군들의 끔찍한 비명이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
스테이션 병사들의 시체가 통로 곳곳에 즐비했다. 저항군이 이쪽으로 지나간 것이 확실했다. 그들이 아니라면 지금 키아텍 스테이션 병사들을 살해할 세력은 없으니까.
이한은 병사들의 시체를 일별하며 빠르게 통로를 달렸다.
탁탁탁!
그때 섬뜩한 괴성이 곳곳에서 울려 퍼짐과 함께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지?”
느낌이 매우 좋지 않았다. 마치 그 개새끼들. 그러니까 크락투를 맞이했을 때처럼.
이한은 불길한 느낌을 뒤로 하고 더욱 빠르게 엘린이 있을 지역으로 향했다. 전보다 체력이 좋아지긴 했지만, 숨이 점점 가파르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한의 몸이었다면 벌써 바닥에 퍼질러져서 헥헥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사람의 것으로 여겨지는 처절한 비명이 괴기스럽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냥 일반 총상을 입어서는 저런 비명이 울려 퍼질 수 없다. 저 비명은 마치 크락투에게 팔다리가 찢겨나간 마린들이 지르는 비명과 비슷했다.
총기는 제법 젠틀한 무기다. 원거리 무기고 사람을 눈앞에서 처참하게 살육하지는 않으니 칼로 사람을 찌르고 망치로 머리를 부수는 근접전에 비해 깔끔하고 살육에 대한 부담감도 덜하다.
그랬기에 이한이 많은 병사를 살해했음에도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 크락투에게 끔찍하게 살해된 마린들을 본 영향도 컸지만.
어쨌든 비명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스테이션 병사와 저항군이 전투를 치르는 게 아니라 뭔가 알 수 없는 그러니까 크락투와 비슷한 괴물과 전투를 치르는 중이라는 걸.
따라서 이한은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지에 대해 짧게나마 고민했다.
스틸아머를 입은 스페이스 마린들조차 크락투에게 갈가리 찢겨나갔다. 저 앞의 괴물들이 크락투와 같은 괴물들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것이 현명한 태도가 맞다.
하지만 이한은 달리던 속도 그대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도망칠 때 도망치더라도 엘린 그 여자는 구해야 한다.’
시에라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호흡이 끊어졌던 시에라이니 몸 상태가 당연히 정상은 아니겠지만 의료캡슐에 뜬 그녀의 상태는 그것을 고려해도 심상치 않았다.
무엇보다 생체실험. 만에 하나 어떤 생체실험의 결과물에 감염된 것이라면 그것을 연구했던 엘린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두렵지만, 이한으로 하여금 도망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물론 그 이유 저편에는 전처럼 허망하게 당하지 않을 자신감도 일부분 있었다.
‘제길. 크락투만. 크락투만 아니면 된다.’
전보다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크락투를 정면으로 대항할 정도는 아니다. 전장에서 자신감과 자만심도 구분하지 못하면 남는 건 죽음밖에 없다.
스틸아머라도 입는다면 조금 달라지겠지만 없는 걸 거론해서 뭐하겠는가?
“읏?”
이한은 저편에서 뭔가 날아오는 것을 느끼고 급히 몸을 뒤틀었다. 향상된 동체 시력은 그게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건 찢겨나간 사람의 팔이었다.
‘제길. 왜 슬픈 생각은 틀리지를 않나?’
이한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급히 사격 자세를 취했다.
척!
크르르륵!
어둠 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뭔가가 나타났다. 그게 사람이든 아니든 이한은 즉시 사격을 가했다.
철컥!
두두두두!
퍼버버벅!
이한이 갈긴 총알은 정확하게 뭔가의 머리에 적중했다.
하지만 이한은 둔탁한 소음을 들었을 뿐, 뭔가 터져나가거나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괴물은 총알에 얻어맞으면서도 상당한 속도로 앞으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쿵쿵쿵!
“내가 씨발! 크락투 그 개새끼들 틈에서도 살아난 사람이야.”
이한은 냉정함을 유지하며 일점사격으로 다시 서너 발을 연달아 사격했다.
두두두두!
퍼썩!
쿠구구궁!
이한을 향해 달려오는 뭔가의 머리통이 부서지는 질척하고 둔탁한 소음과 함께 놈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한은 그것이 나뒹굴기 전에 어두운 피부를 가진 기괴한 괴물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이한은 조심스럽게 사격 자세를 취한 채로 괴물에게 다가갔다. 라이플에 달린 라이트로 그것을 비춘 순간 이한은 욕설이 절로 나왔다.
“씨발. 이건 또 뭐야?”
정말 끔찍한 몰골의 괴물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머리통 중앙이 뻥 뚫려 있었는데 아마도 총알이 지나간 흔적으로 보였다. 총알이 머리통을 뚫고 지나갔음에도 남은 부위가 멀쩡했다.
그건 놈의 방어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점사로 동일한 부위를 네다섯 번 타격했어. 그런 뒤에야 총알이 머리통을 뚫고 지나갔고.’
그야말로 이한이니까 가능한 묘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제야 머리통이 박살 난 놈의 방어력이었다.
“크아아악!”
그때 저 멀리 또다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한은 놈을 더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제길!”
이한은 긴장한 표정으로 더욱 빠르게 앞으로 달려갔다. 만에 하나라도 시에라가 이런 괴물이 된다면······. 아마 평생 이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엘린 그 여자를 서둘러 구해야 한다.
32. 적의 적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