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32
32. 적의 적.
팽팽하게 당겨진 보랏빛 근육이 머리를 노리고 빠르게 쇄도했다. 이한은 급히 몸을 굴렸다.
크르르르.
기분 나쁜 소리를 흘리며 생체실험으로 결과물로 보이는 괴물이 미끄러지듯 바닥에 착지했다.
끼이익!
금속 재질로 된 바닥이었는데 놈이 바닥에 착지하자 마치 금속과 금속이 쓸릴 때 일어나는 소름 끼치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놈의 피부, 아니 근육이 강철에 가까울 정도로 단단하다는 방증이었다.
이한은 흰자위가 전혀 없는 놈의 검은 눈을 바라보며 말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퍽! 퍼버버벅! 퍼석!
이한의 총알은 어김없이 괴물의 머리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가격했고 이윽고 머리에 구멍이 뚫린 괴물은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바닥에 미끄러져 나뒹굴었다.
이한이 보기에 이 괴물들의 전투능력은 이미 스페이스 마린의 전투능력을 상회했다. 강철에 비견되는 방어력, 상당한 반사신경과 더불어 사람의 사지를 찢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
그러나 기갑병에 비할 수준은 아니다. 스펙터보다 대단한 병력이라 볼 수도 없고.
무엇보다 과연 이게 전부일까? 고작 이 정도 병력을 양산하기 위해서 기존의 체계를 거스르는 위험을 감수했다고?
‘이놈들은 프로토타입이라 봐야겠네.’
지금도 무시무시한 이것들이 만약 스틸아머를 걸치거나 라이플 등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총알도 뚫지 못하는 방어력과 기갑병까지 찢어발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면? 그런 괴물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라면 지상전에서 이 괴물들을 당해낼 병력이 과연 있을까?
아니 함대전이라 할지라도 이놈들로 이뤄진 무수히 많은 강습부대를 구성해서 함선에 침투시킨다면? 무슨 수로 막을까? 함선을 건조하고 운용하는 것보다 생체병기를 생산하는 비용이 훨씬 값싸게 먹힐 테니 가성비에서 이미 상대가 되지 않을 거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이 생체병기로 화하게 만드는 물질만 퍼트릴 수 있다면······.
이한은 굳은 표정으로 다시 라이플을 사격했다.
두두두. 두두두두두.
크르르륵! 퍼석!
좌우에서 달려오던 괴물 두 마리가 어김없이 머리가 박살 나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한은 주변을 살피며 바닥에 떨어진 저항군의 라이플의 탄창을 빼서 탄약을 신속하게 보충했다.
철컥! 척!
한쪽 무릎을 꿇고 탄약을 장전하던 이한은 이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의 주재료가 사람이라는 점이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생명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프로토타입으로 보이는 이 생체병기는 사람을 재료로 만들어졌다.
미간을 좁히며 생각을 정리하던 이한은 하늘로 급히 라이플의 총구를 향하고 사격을 가했다.
두두두두! 두두두!
키에에엑! 키엑!
냉정하게 사격을 가하던 이한은 왼쪽으로 신속하게 몸을 날렸다.
콰직!
그가 몸을 날리기 무섭게 강철보다 단단한 괴물의 발톱이 바닥을 으스러뜨렸다.
크르르르.
쾅!
천장에서 떨어진 네 마리 중 두 마리의 머리통은 날려 보냈지만, 나머지 두 마리는 잡을 여유가 없었다. 놈들의 머리통을 터트리고자 그 자리에서 더 사격했더라면 자신의 육체가 저 으스러진 바닥처럼 으깨졌을 테니까.
지금도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한이 몸을 날리는 것을 공중에서 확인한 괴물 한 마리가 공중에서 몸을 뒤틀어 이한이 있는 방향으로 그대로 쇄도했기 때문이다.
이한은 자세를 제대로 잡지도 못한 채 즉시 사격을 가했다. 저 괴물과 근접전을 치르는 건 최대한 지양하는 것이 현명했다.
두두두!
날아오던 괴물의 기다란 손톱이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가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머리통이 뚫린 놈의 손톱 따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뒤이어 다른 한 놈 역시 짓쳐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쿵쿵! 쿠웅!
인간형이지만 사족류처럼 양손까지 이용해 바닥을 달려오던 괴물은 이한의 지척 거리에 다다르는 순간 바닥을 강하게 박차고 이한에게 쇄도했다.
‘무력화할 수 없다.’
지금껏 상대해본 결과 놈들의 약점은 머리다. 다른 부위는 아무리 사격해봤자 엄청난 재생력으로 금세 상처를 치료해버렸기 때문에 효율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라이플의 총구는 머리가 아니라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머리로 재조준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머리로 총구를 향하고 사격을 가한다면 놈의 머리를 터트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대가로 이한 역시 가슴이 무참하게 헤집어진 채로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이미 놈의 공격반경 안에 들어선 이상, 마냥 피할 수도 없다. 반사신경이 상승했다고는 하나 생체병기의 반사신경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속절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이한은 일단 방아쇠부터 당겼다.
두두두두!
퍼버버벅!
이한의 총알은 놈의 가슴팍에 사정없이 틀어박혔다.
키에엑!
괴물의 녹색 체액이 튀어 오르고 놈의 괴성 역시 귀를 어지럽혔다. 그리고 놈의 두 팔은 이한을 당장에라도 찢어버릴 것처럼 휘둘러지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한은 라이플을 세워 놈의 손톱을 막았다. 부질없는 짓이다. 라이플은 근접전투를 위해 생산된 것도 아니니 내구성이 그리 강하지도 않았다.
파삭!
당연히 괴물의 손톱을 막은 라이플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라이플을 가른 괴물의 손톱은 이윽고 이한의 가슴도 무참하게 헤집겠다는 듯 매섭게 쇄도했다.
그때 이한은 몸을 뒤로 완전히 젖히며 오른발로 괴물이 앞으로 내딛고 있는 왼 다리의 허벅지를 강하게 박차 바닥과 거의 수평을 이루듯 그곳을 신속하게 벗어났다.
후우웅!
괴물의 손톱은 맥없이 허공을 갈랐다. 하늘을 보며 뒤로 날아가던 이한은 몸을 더 젖혀서 양팔로 땅을 짚었다. 이한은 두 팔을 지지대 삼아 몸을 튕기듯 바로 세웠다.
허망하게 공격이 실패하긴 했지만, 괴물은 즉시 이한에게 다시 짓쳐 들었다.
강철만큼 단단한 데다가 엄청난 재생력까지 겸비한 놈의 육체를 파괴하려면 라이플은 필수였다. 어디 바닥에 떨어진 막대기 따위로 상대할 수준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따라서 급히 무기를 찾던 이한은 다행히 라이플 한정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제는 그 라이플이 짓쳐 들고 있는 괴물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한은 지형지물과 놈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무섭게 옆으로 달렸다.
하지만 그 방향에는 철판으로 이뤄진 벽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크에에엑!
괴물은 자신이 예상했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이한이 움직였기 때문인지 아주 미세하게나마 멈칫거렸다. 그리고 이한은 그 찰나를 자신의 기회로 사용했다.
괴물보다 먼저 벽에 다다른 이한은 자신이 벽으로 향하기 무섭게 즉시 방향을 틀어 뒤따라온 괴물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느꼈다. 무슨 추격전을 펼쳤다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펼쳐진 상황이 그렇다는 소리였다.
예민한 감각으로 괴물의 움직임을 느끼기 무섭게 이한은 벽을 타고 오르더니 그대로 벽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예술처럼 유려한 몸놀림이었다.
쿠우우웅!
이윽고 괴물의 양손이 이한이 서 있던 방향의 벽을 움푹 들어갈 정도로 강하게 후려쳤다. 유유히 허공을 부유하던 이한은 그런 괴물의 뒤편에 내려섬과 동시에 저편에 있는 라이플을 향해 빠르게 몸을 날렸다.
철컥!
괴물 역시 곧바로 몸을 돌려 이한을 추격하고자 했지만, 그때는 이미 이한의 손에 라이플이 들어간 상황이었다.
두두두두두!
퍼석! 쿠당탕탕!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머리를 잃은 괴물이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쉰 이한은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손으로 훔쳐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괴물이 짓쳐 들었을 때 가슴을 사격해 놈의 대흉근을 비롯한 근육을 끊지 않았다면 놈이 팔을 휘둘렀을 때 라이플로 막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상체가 두동강나고 말았을 것이다.
실로 무시무시한 놈들이다. 냉정한 눈빛으로 쓰러진 괴물을 일별한 이한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
두두두두!
“어서! 어서 피하십시오!”
“어서!”
두두두두!
“아아악!”
“크헉!”
이제 남은 건 엘린과 저항군 리더로 보이는 사내뿐이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가진 리더가 말했다.
“이 길로 계속 달리십시오. 제가 뒤를 막겠… 커허헉!”
그러나 리더는 마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가슴에 괴물의 기다란 손톱이 박혔기 때문이다.
“대체 언제?”
리더는 괴물을 바라보다가 엘린에게 새된 소리로 외쳤다.
“어서.. 도… 도망. 도망.”
그는 결국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떨궜다. 사망한 것이다. 당찬 여인이지만 엘린은 이런 전투상황을 대비한 별도의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엘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저항군 리더가 죽는 모습과 괴물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무엇보다 똑똑한 그녀가 더 이상 도망쳐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아마 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엘린은 덜덜 떨리는 작은 손을 움켜쥐고 저항군 리더, 고든의 가슴에서 손톱을 뽑는 괴물을 바라봤다.
마이노르 이자는 자신만큼이나 끔찍한 괴물을 만들어냈다. 아니 이게 끝이 아닐 것이다. 마이노르의 최종 목표는 매드솔져과 슈퍼솔져까지 넘어서는 최강의 군대를 얻는 것일 테니까.
엘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괴물의 끔찍한 몰골을, 마이노르의 희생자였을 누군가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크르르르.
괴물의 끔찍한 괴성이 지척에서 울려 퍼지자 그녀는 두려움이 온몸을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예정된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까?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두두두두!
털썩!
“후우… 드디어 찾았군.”
엘린은 어딘가 모를 익숙한 말소리에 급히 눈을 떴다. 그곳에는 한 이드라실이 서 있었다. 엘린은 살아났다는 안도감과 고든의 죽음에 울컥거리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한은 주저앉아 있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혼란스럽겠지만 일단 대답부터. 이 괴물들을 막을 방법, 그러니까 백신 같은 게 있습니까?”
이한의 냉정한 태도에 엘린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변이가 완료되었다면······. 돌이킬 방법은 없어요. 단 변이가 완료되기 전이라면 가능해요. 물론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이한은 엘린의 대답에 다소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이 지랄 맞은 곳을 서둘러 벗어나야겠습니다. 마이노르 그 개새끼를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현재로선 그게 가능할 것 같진 않군요. 아무튼 이쪽으로.”
엘린은 마이노르의 이름에 크게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한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방향에는······.”
“이곳까지 오는 길에 습격하는 괴물 새끼들은 모조리 죽였으니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예? 대체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자 일단 이것부터 받으시고.”
이한은 고든의 손에 쥐어진 라이플을 빼서 엘린에게 건넸다.
고든의 시체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엘린이 이한에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이걸 사용할 줄······.”
“사용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들고 따라와요. 당신보다 내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예?”
이한은 왔던 길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엘린에게 말했다.
“이럴 시간 없고. 놈들이 더 밀려오기 전에 일단 갑시다. 어서!”
어쩌면 무례하고 어쩌면 무모한 이한의 모습에 아이러니하게도 엘린은 안도감을 느꼈다. 저 사내가 이 상황을 통제해 줄 것 같은 묘한 기대감이라고 해야 할까? 뭐든 간에 두려움에 떨며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당찬 표정을 지은 엘린은 고든의 라이플을 꼭 쥔 채로 앞서 이동하고 있는 이한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
33. 적의 적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