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33
33.
이한과 엘린은 시에라와 빌리가 있는 건물로 돌아왔다. 물론 돌아오는 중에도 몇몇 괴물을 만나긴 했지만, 이한의 능숙한 사격에 별 탈 없이 복귀할 수 있었고 따라서 현재 그들은 시에라의 의료캡슐이 있는 의료실에 있었다.
의료실에 도착한 엘린은 당연히 가장 먼저 시에라의 상태부터 확인하고 조치했다.
“아마 마이노르는 시에라 양에게 특별한 실험을 할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생체물질과 관련된 별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안정제와 필요한 약품을 투여했으니 곧 정신을 차릴 거예요. 다만 한 당신과는 다르게 시에라 그녀에게서 의심되는 정황을 포착했기에 보다 정밀한 검사가 필요해요.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물질이 있을까 싶어 저항물질도 함께 투약했는데 이건 경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구요. 일단 한 당신도 투약하는 게 좋겠어요.”
피슛.
엘린은 이한의 팔에 약을 투약한 뒤 이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마이노르는 생체물질을 스테이션 전체에 살포한 것으로 보여요. 저항물질을 어서 살포해야 해요. 초기 단계는 별다른 백신 없이 기존의 약품만 이용해도.”
이한은 엘린의 말을 끊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는 시에라의 의료캡슐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제가 마신 가스가 생체물질인 겁니까?”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당신과 시에라 양의 반응이 다른 것을 고려할 때 가스는 생체물질을 투입하기 전 단계로 보여요. 일종의 가사 상태로 만들어서······.”
이한은 미간을 좁히다가 엘린에게 말했다.
“혹 이 건물에 초인공지능을 구현할 수 있는 장치가 있습니까? 이를테면 건설 로봇이라도 말입니다.”
“초인공지능 장치요? 설마 한 당신?”
“예. 맞습니다. 저는 유니온의 사령관입니다. 있습니까?”
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한에게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 스테이션의 서브시스템이 이 건물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통제실에 있을 거예요.”
이한은 패널에서 확인했던 통제실을 기억했다.
“빌리!”
“예. 사령관님.”
“이곳을 지켜.”
“알겠습니다.”
빌리는 굳은 표정으로 이한에게 대답했다.
그와 눈을 마주한 이한은 엘린에게도 말을 꺼냈다.
“엘린 당신은 저랑 함께 갑시다.”
엘린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한에게 반문했다.
“통제실 말인가요? 대체 뭘 어쩌려고 하는 건가요?”
“해킹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데 아닙니까?”
“어느 정도는요. 하지만 인공지능을 해킹할 수준은 결코 아니예요.”
“그럼 됐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이동합시다.”
이한이 밖으로 나서자 엘린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든의 라이플을 쥐고 그를 따라나섰다.
이한은 바삐 걸음을 옮기면서 엘린에게 말했다.
“스테이션을 운용하는 주체가 사람은 아닐 것 아닙니까?”
고도의 계산을 수시로 반복해야 하는 스테이션의 운용을 사람이 모두 감당하기엔 벅찬 부분이 있었다.
“예. 물론입니다. 인공지능이 스테이션을 전체적으로 운용하고 사람은 총괄하는 형태로… 아! 설마?”
말을 꺼내던 엘린은 이한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이곳 서브시스템에 초인공지능을 연결할 수 있다면 많은 제약이 있다고 해도 인공지능에게 스테이션 권한을 획득해오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마이노르의 수작을 막는 것은 물론 놈의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겠죠.”
“초인공지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엘린은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한 뒤 걸음을 더욱 빠르게 재촉했다.
*
크르르륵!
“으아악!”
“괴.. 괴물이!”
스테이션의 곳곳에서 마이노르의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테이션의 거주민들은 혼비백산하며 고함을 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쳤다.
“으아아악!”
“아악!”
육체가 처참하게 찢어지는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패닉상태에 접어든 사람들은 괴물을 피해 무작정 도망쳤다.
그러나 괴물들은 몰이 사냥을 하듯 사람들을 한곳으로 밀어 넣었다.
“도… 도망칠 곳이 없어!”
“이…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이야?”
“우린. 우린 모두 다 죽게 될 거야.”
마이노르의 홀로그램에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당신은 마이노르?”
“총책임자님! 우리를 도와주세요.”
“괴물들이! 괴물들이!!”
“우리를 도와줘!”
“이 미친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를…”
마이노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엄청난 양의 가스가 살포되었다.
취이이익!
털썩!
털썩!
가스를 마신 사람들은 결국 전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졌다. 엘린의 말대로 가사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마이노르의 명령과 함께 괴물들이 천천히 사람들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
미간을 좁히며 화면에 떠오른 광경을 바라보던 이한은 엘린을 힐끗 바라봤다. 그녀는 정신없이 손을 놀리며 서브시스템을 해킹하고 있었다. 일종의 권한 획득을 위한 것으로 초인공지능을 서브시스템에 연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작업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로 이한이 초인공지능을 스테이션에 연결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당장 그럴 여유도 없었거니와 제반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타닥! 타다닥!
마이노르를 막고자 하는 엘린은 누구보다 빨리 해킹하고 싶을 것이다. 따라서 이한은 도처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을 확인하고도 엘린을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하며 스테이션의 곳곳을 살폈다. 여러 곳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스테이션에 존재하는 세 개의 서브시스템 중 하나를 보유한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정거장 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확인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리퍼였다. 이 시점에 해적들이라니 공교롭지 않은가? 더 볼 것도 없이 아이작의 수하들이다. 생각보다 그 무리가 상당했다. 못해도 50명은 되는 것 같았다.
저들을 확인하는 순간 이한의 머릿속으로 아주 좋은 생각이 스쳐 갔다.
‘적의 적은 친구라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공멸이나 해라.’
엘린처럼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기본 조작 정도는 할 줄 알았기에 이한은 이것저것을 조작해 마이노르의 생체병기가 포진한 곳을 확인했다.
엘린의 해킹으로 권한이 어느 정도 이양된 상황이라 이한은 쉽게 정거장 쪽에 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다.
“저희 키아텍 스테이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안내에 따라 이동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한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문은 닫고 마이노르의 생체병기가 있는 방향의 통로는 내버려 두었다.
‘친구들 환영한다. 저승행 티켓은 내가 친히 예약해 뒀으니 잘 타고 잘 가라.’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이작의 수하들을 이렇게 수월하게 처리하게 될 줄이야.
아울러 마이노르 역시 갑자기 나타난 전투병력으로 인해 이곳의 일은 신경 쓰지 못할 터, 꿩 먹고 알 먹고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다. 해적들에 대한 동정심? 머리에 총을 맞아도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이윽고 해적들과 생체병기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해적들이 격렬하게 저항하긴 했지만, 결국 모두 살해당할 것이다. 마이노르의 생체병기는 스틸아머도 걸치지 않은 자들이 상대할 정도로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니까.
이한은 얼마간 화면을 주시하다가 다른 곳으로 넘겨버렸다. 원한이 있는 해적이라고 할지라도 괴물에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다른 곳을 확인하던 이한의 표정은 더욱 딱딱하게 굳어갔다.
마이노르 이 작자는 정말로 스테이션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생체병기로 만들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때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들기던 엘린이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소리쳤다.
“돼… 됐어요!”
그와 동시에 중성적이지만 익숙한 음성이 이한의 귀에 울려 퍼졌다.
『정보를 확인 중입니다. 권한을 획득 중입니다.』
『키아텍 스테이션의 권한을 획득합니다. 반갑습니다. 사령관님.』
‘뭐 벌써?’
인공지능도 대단한 산물이다. 고작 서브시스템에 접속할 권한을 얻기 위해 엘린이 혼신의 힘을 다해 조작하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초인공지능이 왜 초인공지능인지 왜 그토록 초인공지능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인지 이 일로 이한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거의 뭐 1초 컷인데?’
물론 그 짧은 순간에도 엄청난 연산과 조작이 행해졌겠지. 암튼 그건 인간이 다가설 수 없는 초인공지능만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그 초인공지능의 마스터가 바로 이한 자신이었다.
“그래.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
『경고 : 이상 현상에 대해 파악합니다.』
괴물들이 즐비한데 그건 알려주지 않아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어진 워의 보고에 이한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령관님. 크락투라 명명된 존재의 물질을 확인했습니다.』
“지금 뭐라 그랬냐? 크락투? 설마 그 신물질이라는 게?”
크락투의 최초형태는 포자형이다. 정확하게는 포자형 기생충. 마이노르 이놈은 정말 미친놈이다. 크락투를 지배하려고 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그간 대체 얼마나 많은 생체실험을 행했기에······.
잠깐! 이 소리는 그럼 시에라의 몸속에 크락투가 투입되었을 확률이 높다는 뜻 아냐?
“크락투? 크락투라니요? 그게 뭐죠?”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엘린이 질문을 던졌지만, 이한은 대답하지 않고 워에게 말했다.
“마이노르의 위치를 파악하고 생체병기로 확인된 놈들은 모조리 격리시켜!”
『알겠습니다.』
“아울러 시에라에 대한 정밀검사가 필요해.”
『즉시 실시합니다.』
우주를 부유하는 스테이션은 어디 한 곳이 파괴될 것을 대비해 모든 구역에 수많은 격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부서진 지점 주변을 격벽으로 격리하여 2차 3차의 사고로 이어지지 않게끔 말이다. 필수안전시설이라 특별할 것도 없었다.
워는 이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격벽을 내렸다.
『생체병기로 확인된 개체들 전부 격리조치 했습니다. 하지만 키아텍 스테이션의 책임자인 마이노르의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니 마이노르 그자는 이미 키아텍 스테이션을 떠났습니다.』
“뭐?”
워의 보고가 다시 이어졌다.
『외부에서 온 통신입니다. 발신자는 마이노르입니다.』
이한은 굳은 표정으로 워에게 말했다.
“연결해.”
그와 동시에 마이노르의 홀로그램이 허공에 형성되었다.
“마이노르.”
“이 미친 새끼가.”
“마이노르 당신!”
이한에 이어 엘린 역시 분노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이 끊어졌다.
이한은 분노한 표정으로 냉정하게 외쳤다.
“워! 마이노르의 위치는 파악했겠지? 모든 대포를 놈에게 집중해서 저 새끼 당장 죽여버려!”
『불가능합니다.』
“어째서!”
『기능할 수 있는 대포나 무기가 없습니다. 이미 모두 부서졌습니다. 마이노르의 안배로 보입니다.』
“제길!”
『사령관님. 리퍼와 엠파이어 함선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아울러 마이노르의 생체병기가 격벽을 빠르게 부수고 있습니다.』
워의 보고에 엘린이 빠르게 말했다.
“격리조치 된 구역을 스테이션과 분리해야 해요!”
이한은 지체하지 않고 워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분리해!”
『격리구역! 분리합니다.』
쿵쿵쿵쿵!
격리구역이 스테이션에서 아예 떨어져 나가는 것이 화면에 비추어졌다. 이한은 끓어오는 감정을 억누르고 워에게 말했다.
“유니온의 지원은? 아니 그보다 우리가 탈출할 수 있는 여유가 있나? 마이노르 그놈이 함선인들 내버려 뒀을 리가 없으니 함선은 리퍼의 것을 쓰면 될 것 같은데. 혹시 다른 방안이 있나?”
모두 뒈졌을 테니 어차피 주인 없는 함선이다.
『이미 필요한 연료를 보충하고 있습니다. 당장 출발하시면 테라까지 무사히 도착하실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른 방안으로 스테이션 전체를 컨트롤 센터화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키아텍 스테이션 전체를 컨트롤 센터화한다고? 그게 가능해?”
『컨트롤 센터의 최종형태가 모함형 기지입니다. 가능합니다.』
“그것도 자원이 있어야!”
『스테이션 내에서 상당량의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발견했습니다. 미흡하게나마 스테이션을 컨트롤 센터화하여 부서진 무기체계를 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단 유니온의 허가가 필요한 내용이며 향후 기지를 운용하기 위한 상당량의 초자원이 반드시 확보되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전자가 사령관께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안입니다.』
엘린은 이한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한이 스테이션을 버리면 남은 사람들은 결국 모두 죽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처참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허가는 개뿔! 지원도 오지 않는 새끼들이! 게다가 격리조치 한 생체병기를 방출하긴 했지만, 그것들이 리퍼나 엠파이어의 손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컨트롤 센터화를 실시해!”
『절차를 무시하면 반란으로 규정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건 나중 문제다. 실시해! 지금 즉시!”
『알겠습니다. 명령권자 한 이드라실께 모함형 기지로의 승격을 인가받았습니다. 즉각 실시합니다.』
승격? 뭔가 상당히 많은 분란을 일으킬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이한은 가볍게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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