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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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쿠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앙!
『리퍼의 레이븐. 엠파이어의 일리아 모두 제거 완료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사령관님.』
이한은 그제야 긴장한 기색을 지우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뭐 운이 좋았다. 저 새끼들이 멍청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
워가 없었다면 애초에 마이노르라고 속이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워의 역할이 지대했지만, 결국 모든 일을 지시한 자는 이한이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적의 심리를 이용한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생체병기라는 미끼를 던지고 강한 압박을 통해 적의 판단력까지 흐리게 만들었으니 전술 교본에 심리전의 실전 사례로 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저들의 입장에서는 마이노르가 양측 모두를 배신할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못했을 테니 마이노르, 곧 이한에게 완전히 허를 찔린 셈이다.
마이노르의 생체실험, 뉴트럴 소속의 스테이션과 스테이션의 특수성, 이한의 기만책 등이 절묘하게 얽혀서 일궈낸 쾌거였다.
“감정도 담기지 않은 공치사 따위는 그쯤하고. 앞으로 당면한 과제부터 보고해봐.”
이한의 얼굴에는 승전에 대한 기쁨은커녕 피곤에 쩌든 표정만이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전에······. 레이븐과 일리아 주변을 정밀검색하도록.”
영화 같은 데서 보면 꼭 이럴 때 악당이 살아나서 주인공 뒤통수를 후려친단 말이지.
아주 훌륭한 문구도 있잖아.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는.
기껏 산불을 진화했는데 밑에 남아 있던 잔불이 강한 바람에 다시 살아나 다시 산불이 되는 기막힌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거든.
그러니까 불이 정말 꺼졌는지 확인하는 일은 불을 끄는 것만큼 중요하다 이 말이야. 치료보다 예방이 낫다. 이런 말도 있고.
게다가 가만히 살펴보면 지독한 새끼들은 참 지독하리만치 안 죽어. 제 생명줄 끊기면 타는 지옥불에 들어갈 걸 본능적으로 느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생명줄이 참 질겨. 바퀴벌레마냥.
『정밀 검색 실시합니다.』
『주변에 흩어진 탈출포트 여러 개를 발견했습니다.』
장담하는데 저 탈출포트 중 하나엔 아이작이 타고 있을 거다. 에이탄 그 양반은 우직하게 함선 지킨다고 아마 함선과 같이 산화했을 테고. 함장씩이나 되는 양반이 부하 승무원도 대피시키지 않고 꽁지빠지게 도망치면 모냥빠지잖아.
자리라는 게 원래 그래. 뭐 그래서 제대로 훈련된 정규군이 무서운 거고. 해적들은 해적일 뿐이지. 안봐도 비디오다. 아이작 이 새끼는 가장 먼저 튀었을 걸?
남의 목숨은 벌레보다 못하게 여기는 새끼들이 제 목숨은 또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제 몸에 작은 상처라도 하나 생기면 온갖 쌩지랄은 다 떨어요. 팍 그냥!
아이작 이 새끼도 보라고. 해적으로 악명을 날릴 정도라면 생목숨을 대체 얼마나 많이 끊었겠냐고? 그런데 얼굴에 칼자국 나고 팔 잘린 원한을 갚겠다고 지랄 떠는 것 좀 봐봐.
이런 새끼들의 종특이 뭐냐면 지가 잘못해서 대가를 치른다고는 생각하지를 않아. 맨날 뭐가 억울해. 야! 저 새끼도 그러고 이 새끼도 그런데 왜 나만 가지고 지랄이야! 저주받을 세상 같으니라고 팍 망해버려라! 그 저주 너나 많이 처드시고 제발 혼자 망하세요.
탈출포트에서 꺼내주면 또 얼마나 빽빽거릴까. 그러니까 서로 피곤하게 얼굴 붉힐 것 없이 깔끔하게 가자. 착한 아이 신드롬 같은 건 내게 없으니까.
“깔끔하게 쓸어버려.”
『탈출포트를 격추하는 건 교전수칙에 어긋납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도의적으로 인양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탈출포트에 탄 새끼들이 라이플이라도 들고 있다가 구출되는 순간 난사하면 그땐 어쩔 건데? 그때도 교전수칙에 어긋나는 행위느니 마느니 그딴 소리 할 거냐?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쓸어버려.”
『적절하지 않은 가정입니다. 모든 작업은 드론을 통해 수행될 것이니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합니다. 무엇보다 사령관님의 앞날을 위해서 현명하지 않은 선택입니다. 그래도 원하신다면 명령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뭐라 대답하려던 이한은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그곳엔 엘린이 서 있었다.
엘린은 이한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에게 어떤 말도 뱉지 않았다. 이한과 워의 대화를 들은 것으로 보이는데도 말이다. 그간 그녀의 행동을 생각하면 의외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엘린의 모습이 떠오른 이한은 짧게 혀를 차며 워에게 말했다.
“쓸어버려.”
짧게 말을 끊은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격리조치 된 생체병기는 하나도 남김없이. 그것을 가지고 누가 또 실험을 행하거나 활용할 수 없게끔. 모조리.”
『알겠습니다.』
그런 뒤 이한은 조금 전과 다소 상반된 명령을 내렸다.
“저들은 무장해제시키되 저항하는 자는 즉결처분해. 아이작은 그 새끼는 내 앞으로 데리고 오도록 하고.”
『즉각 실행하겠습니다.』
“씁. 이왕 건드렸으면 잔뿌리까지 뽑아치워야 한다는 주의인데. 이 새끼들이 구해줬다고 내게 고마워할 리도 없고.”
“그건 한 사령관님의 판단에 달린 거겠죠.”
이한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엘린에게 반문했다.
“저를 말리지 않을 겁니까?”
“자세한 것은 저도 모르겠지만 한 사령관님의 목적이 살인에 있지 않고 보호에 있다는 것쯤은 알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 큰 위기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판단과 전공을 세운 한 당신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할 주제가 되지 못하네요. 저는.”
이한은 가볍게 침음을 뱉었다.
“음.”
엘린은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이번 사태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해당했어요. 확인해보니 거주민 3만 5천 명 중 2만 5천도 되지 않아요. 한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 2만 5천 명도 실험체로 사용되었거나 살해당했겠죠. 인권을 유린했고 유린할 자들의 인권을 지켜줄 필요가 있을지 사실 저도 의문이예요. 그게 무도한 자들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법을 준수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한이라는 걸 알지만 솔직히 저는······.”
이한은 굳은 표정으로 엘린을 바라보며 뭐라 말을 꺼내려다가 그만두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다 죽여야 한다고? 아니면 모두 용서해야 한다고? 둘 다 적절한 발언 같지는 않았다. 더욱이 조금 전까지 모두 죽이려고 했던 사람으로서는 더더욱.
묘한 심정에 휩싸인 이한은 그런 엘린을 내버려 두고 워에게 말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 제안해봐.”
『일단 테라로 향할 것인지, 마이노르를 추격할 것인지에 따라 계획이 달라집니다만 두 사안을 결정하기에 앞서 키아텍 스테이션 거주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거주민의 의사?”
『예. 마이노르가 독단적으로 운용을 하긴 했지만 키아텍 스테이션은 광물을 비롯한 자원을 채취하고자 뉴트럴의 초거대 복합형 스테이션 중 하나에서 떨어져나온 시설입니다. 대다수 거주민은 뉴트럴 소속의 초거대 복합형 스테이션으로 돌아가길 원할 겁니다.』
이곳이 게임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게임이라면 스테이션을 점령한 순간 거주민도 자원으로 분류되어 예속되었을 텐데 말이다. 당연히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무슨 독재국가도 아니고 거주민은 자신의 거취를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정할 권한이 있었다. 가장 강한 규제와 규율을 가진 엠파이어조차 그건 마찬가지였다.
『사령관님께서 스테이션을 사용하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문제도 이것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선결되어야 할 문제?”
『보고드렸다시피 스테이션은 뉴트럴의 자원입니다. 사령관께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스테이션을 점거한 것은 사실이나 후에 뉴트럴과 적대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스테이션 전체에 대한 비용을 뉴트럴 측에 제공하거나 스테이션을 돌려주는 것이 수순입니다.』
매우 타당한 지적이었다.
『아울러 뉴트럴과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 있습니다. 스테이션을 모함형 기지로 변화하기 위해선 여전히 막대한 양의 초자원이 필요할뿐더러 그 변화과정에 필요한 비용을 유니온 측에 지급해야만 합니다. 사령관께서는 그 같은 비용을 지급할 금액이나 자원이 없습니다. 현재의 자원으로는 기지를 유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현실적으로 키아텍 스테이션을 테라행이나 마이노르를 추격하는 데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아울러 사령관님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무작정 마이노르를 추격하는 일보다는 테라로 향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로 판단됩니다.』
이한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강하게 말했다.
“마이노르 그놈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 테라행보다 놈을 추격하는 일이 시급한 일이다!”
『사령관님의 의도가 어떠하든지 간에 유니온과도 적대관계를 형성한다면 사령관께서는 주요 삼대 세력 모두와 적대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미 적대관계를 형성한 뉴트럴이나 엠파이어와 협상을 하기 위해서라도 유니온의 영향력이 필요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즉시 전 지역에 사령관님의 수배령이 떨어지게 될 겁니다. 결국 유니온의 가호를 얻기 위해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게 될 테니 이 시점에서 유니온과의 결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습니다.』
“음.”
이한은 미간을 좁히며 워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래서 추천방안은?”
『뉴트럴측에 키아텍 스테이션을 반납하고 비치된 리퍼의 함선을 개조해 테라로 향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곳 키아텍 스테이션 전체를 컨트롤 센터화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초자원의 한계 등으로 인해 아주 기초적인 건설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후일을 대비하여 분리형으로 건설했기에 설치한 장비는 함선으로 옮겨 재설치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마이노르가 확보한 고농축의 초자원으로 인해 모함형 기지로 승격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한 이상 키아텍 스테이션의 유무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단 이 또한 월권행위에 속하기에 유니온과 이 사안을 원활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쨌든 키아텍 스테이션을 뉴트럴에 넘겨도 내가 손해볼 건 없다?”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그것으로 뉴트럴과의 불화는 종결될 확률이 높습니다.』
“마이노르의 생체실험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세인들의 눈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겠지. 애초에 물어뜯을 건더기를 주지 말라 이 뜻이군.”
『그렇습니다. 확보한 포로 중 아이작을 발견했습니다. 사령관께 이송하겠습니다.』
역시 살아있었군. 너무 고마워하지는 마. 내가 네놈 새끼는 책임지고 이마에 총알을 박아줄 테니까.
이한은 서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엘린을 바라봤다.
“엘린.”
“예.”
“거주민들의 의사를 확인하는 일을 맡아줄 수 있겠습니까? 아마 워의 예상대로겠지만 말입니다.”
이 시점에서 엘린보다 그 일에 적합한 적임자는 찾을 수 없었다. 마이노르를 막아서려던 장본인이 엘린이었고 수많은 거주민을 저항군들과 함께 구한 사람도 엘린이니까.
간단하게 이 시점에서 생존자들의 총대표는 엘린이다. 그녀를 제외하면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엘린은 차분한 표정으로 이한에게 대답했다.
그러나 눈을 마주한 이한은 그녀의 두 눈 깊숙이 자리한 이글거리는 분노를 느꼈다.
“마이노르 추격에 자원할 사람들을 찾는 것이라면······. 예. 그렇게 할게요.”
유니온은 무턱대고 아무나 받아들이는 세력이 아니기에 테라행은 거주민들에겐 애당초 선택사항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대다수 거주민의 선택은 귀환하는 것을 택할 것이다.
그러니 어차피 키아텍 스테이션과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거주민들을 우주 밖으로 모조리 방출할 것도 아니고 별도로 수송할 수단도 없다. 무엇보다 스테이션은 원래 저들의 것이다.
이한은 복잡한 눈빛으로 엘린을 바라봤다.
“저 역시 그러고 싶지만 마이노르를 추격한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함께할 사람은 있겠죠.”
담담하게 대답한 엘린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이한을 떠나갔다. 그런 그녀의 주변을 밖에서 대기하던 저항군들이 즉시 호위했다.
얼마간 말없이 생각에 잠겼던 이한 앞에 무쇠 팔에 얼굴에 긴 검상을 지닌 한 사내가 포박된 채로 끌려왔다. 강철이 미라의 붕대처럼 그의 온몸을 둘둘 감싸고 있었다. 바로 아이작이었다. 아이작은 이한을 발견하자마자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한! 한 이드라실!!”
어찌나 힘껏 고함을 지르는지 그의 눈알에 시뻘건 핏줄이 잔뜩 곤두설 정도였다.
이한은 아이작이 고함을 지르거나 말거나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에게 다가간 뒤 냅다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퍼어억!
“그렇게 소리를 질러 가지고 그 눈깔이 빠지겠냐? 자! 다시 질러봐 내가 도와줄께.”
“으아아악! 한!! 한!!! 이 비겁한 새끼! 죽여버릴 거다! 죽여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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