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4
4.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위이이잉!
치이익!
스틸아머를 걸친 스페이스 마린들이 건설용 레이저 등을 들고 방벽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젠장! 이걸 왜 해야 하는 거야?”
“사령관님 지시라잖아.”
“니미. 그러니까 이런 지시를 왜 내렸냐고?”
“낸들 아냐? 정 불만이면 고속승진 좀 해보겠다고 이런 곳에 자원한 네놈 운명이려니 생각하던가.”
“시끄럽다. 사령관님의 명령이니 토 달지 말고 수행해라!”
“예예. 알겠습니다. 빌리 소위님.”
거대한 체구에 검은 피부를 지닌 빌리는 빈정거리는 병사를 눈매를 좁히며 바라봤지만, 따로 나무라지는 않았다. 자신도 이해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왜 마린들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냐고?
가용한 건설 로봇들은 죄다 컨트롤 센터를 건설하기 위해 운용 중이라 유일한 전투 병력인 마린들을 공사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전략게임 ‘스페이스 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해진 역할 이상의 것을 지시할 수도, 수행할 수도 없으니까.
물론 이곳에서도 마린들에게 컨트롤 센터를 지으라고 한다면 지을 수 없다.
하지만 잔해를 이용해 벽을 세우는 일에 무슨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겠는가?
더욱이 스틸아머는 뛰어난 방어력은 물론 착용자에게 괴력을 선사했기에 중장비가 없어도 어지간한 물체는 양손으로 번쩍번쩍 들어 옮기곤 했다.
세밀하게 구성된 외골격이 무거운 중량을 효과적으로 분산했기에 착용자는 별 탈 없이 무거운 물체도 번쩍번쩍 들 수 있었다. 다만 한계가 있기에 정말 육중한 물체는 지금처럼 중장비를 사용해 진행해야 했다.
지이이잉!
“조금 더 옆으로!”
“그래! 거기! 위치 잡고 용접해!”
치이이이익!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방벽이 올라가고 있었다.
‘뭐 이런 지시를 내려봤어야 알지.’
게임에서는 물론이고 이곳에서도 방벽을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은 없었을 거다. 그만큼 불필요한 명령이었고 스틸아머 역시 무한한 동력원을 가진 장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훨씬 멋있는데?’
스틸아머를 착용한 스페이스 마린의 모습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멋있어 보였다. 속된 말로 뽀대가 난다고 해야 하나?
이한은 다시 컨트롤 센터가 지어지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린들도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방벽을 건설하고 있었지만, 건설 로봇 쪽은 흰 도화지에 아무렇게나 낙서를 하는 것처럼 지휘본부를 건설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방벽 작업처럼 대충 막 짓는 것도 아니고 뭐가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매우 복잡하고 세밀한 건축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수많은 건설 로봇이 함께 건설한다지만 그 일을 수행하는 주체는 바로 초인공지능이었다. 다시 말해 건설 로봇은 초인공지능의 손과 발에 지나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다중 작업을 하고 있음에도 당연히 실수나 시행착오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이한은 혀를 내두르며 초인공지능을 의존적으로, 그러니까 초인공지능에게 명령을 내려야만 가동하는 비효율적인 체계로 구성한 이유를 절감(切感)했다.
‘터미네이터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아 이미 있었나?’
테라, 곧 인류에게서 발원한 이들은 아니나 기계류에 속하는 외계 종족이 버젓이 존재하는 세계였으니까. 테라 역시 초인공지능에게 자율성만 부여된다면 실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건 그렇고 크락투. 이놈들을 어떻게 상대하지?’
자원만 풍부하다면 그러니까 프로젤과 세라메틱만 풍부하다면 크락투라고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방어막 강화는 컨트롤 센터를 업그레이드해야 가능한 일이니 차치하더라도 초인공지능의 지시를 받는 기갑 병기를 생산하면 될 일이니까.
‘문제는 그 자원도 뭘 생산할 시간도 없다. 방어막도 찢어발기는 놈들이니 약해졌다고 해도 방벽은 얼마 버티지도 못할 텐데 보다 강력한 수단을 생각해내야만 한다. 대체 이 시점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자원도, 생산할 시간도 없고 병력도 적은데 적이 쳐들어온다? 전략게임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게임오버 밖에 더 있겠는가? 현실이라고 뭐가 다를까?
‘하! 젠장! 그야말로 똥줄이 타는······. 음?’
그때 뭔가 번뜩이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일단 1차 공격부터 어떻게 막아보자. 내가 이렇게 죽을까 보냐!’
이한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방벽을 바라봤다.
*
기지의 두 벙커는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두 벙커 사이 움푹 들어간 길목에 조잡하지만 제법 튼튼해 보이는 방벽이 완성되었다.
“탁 트인 개활지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네. 썩을.”
기지가 형성된 지형이 분지가 아니라 평야였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X 잡고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이 새끼들이 언덕을 넘어서 오면 어떻게 하지?’
주변을 둘러싼 고지대가 가파른 산맥도 아니고 산맥이라고 해도 크락투 놈들이 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게임에서는 못 넘어오는 설정이었지만 누차 언급했다시피 여긴 게임이 아니다.
따라서 이한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제길. 믿을 건 놈들의 본능밖에 없다.’
방벽 건설이 얼추 완성되었을 때 즈음 재차 내린 명령에 마린들이 바라보던 눈초리가 떠올랐다.
‘별 미친놈 바라보는 눈빛이었지. 그간 한 이드라실이 쌓은 신뢰가 아니었다면 사령관의 명령이라고 해도 따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 새끼들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한은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에 속으로 툴툴거렸다.
『사령관님. 컨트롤 센터가 완공되었습니다. 메인 시스템 활성화를 승인하시면 제한된 기능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승인을 원하시면 컨트롤 센터로 와주십시오.』
컨트롤 센터가 완공된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다. 완공되든 안 되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크락투가 나타났을 테니까.
이한은 컨트롤 센터를 향해 급히 이동했다.
*
자신의 라이플을 손질하던 빌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께서 정상적으로 회복하신 게 확실하나?”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남자의 입에 물린 담배가 붉은빛을 내며 빠르게 타올랐다. 그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뿌연 연기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후우우. 정상인지 아닌지 그걸 어떻게 알겠나? 치명상을 입었던 사람이야. 살아난 게 기적이지. 다만 기억에 문제가 생긴 건 확실하다. 나를 기억조차 못하더군.”
구불구불한 갈색 머리칼을 가진 사내는 바로 에리오였다.
“그렇다면 상부에 보고해서 조치를······.”
“뭐라고 보고할 건데? 큭큭큭.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부작용이라고 보고할 텐가?”
“음.”
해병에겐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 이력이다. 이미 자신의 소대만 해도 여러 명이나 있었으니까. 그런 빌리에게 에리오가 다시 말했다.
“죽을 사람이 살아났으니 부작용을 앓는 거야 특이할 것도 없는 일이고 무엇보다 상부가 그걸 몰랐을까. 그런데 한 대위님에게 사령관 직위를 승인했어. 이게 뭘 뜻하는 건지 생각해 봤나?”
에리오의 말에 빌리가 눈매를 좁혔다.
“컨트롤 센터를 재건할 수 있게끔 했으니 자력으로 생존하라?”
다시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에리오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넨 언제나 그렇듯 긍정적이군. 글쎄. 그보다는 초인공지능의 소멸 기간을 늘리고자 한 거지. 안 되면 별수 없는 거고. 어쨌든 우리 목숨은 안중에도 없다는 소리다.”
“흠.”
정당한 절차로 권한 승계가 이뤄져도 기간이 정해져 있고 그 기간 안에 승계가 이뤄지지 않으면 초인공지능은 스스로 사멸한다.
“대위님이 사령관이 된 것도 마찬가지. 아주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고 한들 그들이 신경이나 쓸까? 게다가 대위님은 더 이상 대위가 아니라 사령관이다. 너도 알겠지만 기지 사령관은 특수한 신분이야. 권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강제할 수는 없는 신분이지. 상부가 사령관을 강제하고자 한다면 죽이는 수밖에 없어.”
빌리는 말없이 탁자에 놓인 술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은 다음 에리오에게 말했다.
“그런 걸 묻는 게 아니다. 사령관이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너도 듣고 보지 않았나?”
“봤지. 직접 수행하기도 했고. 그게 뭐?”
“······.”
빌리가 침묵을 지키고 자신을 바라보자 에리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군인은 명령에 따를 뿐이야.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그들은 우리의 전우다!”
“살아있었을 때는.”
빌리가 싸늘한 표정으로 에리오를 바라봤다.
“지금은 아니라는 소리인가?”
그 눈빛을 가만히 마주하던 에리오는 바닥에 떨어뜨린 담배를 발로 짓이겼다.
“전우가 죽었으니 우리도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
“그런 말이 아니라는 건!”
에리오는 빌리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말했다.
“나도 사령관님의 명령을 이해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령관이 감정적으로 명령을 내린 것 같지는 않더군. 근접무기를 준비하고 경계를 철저히 하라는 말도 상당히 신경 쓰이고.”
“······. 네 말은 사령관이 뭔가에 대비 중이라는 건가?”
“그거야 알 수 없지. 모두의 짐작대로 미친 걸지도 모르고.”
에리오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사령관은 사령관이다. 설혹 그 사령관이 미쳤다고 해도 현재 우리에게 대안은 사령관밖에 없는 상황이고. 더 말이 필요하나?”
빌리는 미간을 좁히며 밖으로 나서는 에리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라이플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
이한의 눈앞에 홀로그램이 반짝였다.
『메인 시스템 활성화가 승인되었습니다. 우선적으로 주변 지형과 아군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다만 전과 다르게 중성적인 음성이 함께 울려 퍼졌다.
뚜뚜뚜.
『맵 기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사령관님께서는 맵을 통해 아군의 위치를 파악하실 수 있고 필요하다면 실시간으로 아군의 상황을 파악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한의 눈앞에 지형도가 펼쳐지고 그 위에 아군 기지와 병력 현황이 찍히기 시작했다.
“명령을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건 사령관님께서 편하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이를테면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시거나 위치를 맵에 찍고 문서로 지시하셔도 됩니다.』
“어디서나 가능한 건가?”
『컨트롤 센터의 역장 안에서라면 어디서든 가능합니다. 역장 밖이라면 신호기를 설치한 경우 제한적으로 명령을 내리실 수 있습니다. 다만 컨트롤 센터 내부에서 지휘하시길 강권(强勸)합니다. 일례로 명령권자가 사망하면 기갑 병기를 비롯한 대다수 자동화 병기가 그 즉시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러니 반드시 안전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이는 ‘스페이스 워’에서도 주인공을 비롯한 대다수 사령관이 컨트롤 센터 외부에서 활약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다. 중무장 된 기지를 박살 내는 것보다 사람 한 명을 죽이는 것이 훨씬 간단한 일 아닌가?
따라서 사령관 납치나 암살이 서브미션으로 주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전략게임인지라 당연히 비중이 크지 않았고 이곳에서도 극히 특수한 경우에 불과했다.
다만 N슈트나 BN슈트를 사용하는 특수병력은 바로 이러한 요인 암살을 위해 양성된 병과였다.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이한은 자신의 감상은 제쳐두고 급히 말했다.
“혹 지하도 탐색이 가능해?”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컨트롤 센터를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적의 출몰 여부는?”
『아군의 영역 안이라면 가능합니다. 다만 인지 주체에 따라 인지 범위가 달라집니다.』
병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병사가 파악할 수 있는 것만큼, 레이더를 기준으로 한다면 레이더가 파악할 수 있는 것만큼이라는 소리였다. 이 부분은 ‘스페이스 워’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띠딕!
이윽고 그 주변이 확대되었는데 확대가 된 홀로그램에 그려지는 이들은 바로 자원 탐사를 위해 나선 시에라 중위가 이끄는 소대였다.
5. 이해할 수 없는 명령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