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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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이거 좋지 않다.
“으아아악! 한!! 한!!! 이 비겁한 새끼! 죽여버릴 거다! 죽여버릴 거야!”
이한은 아이작의 외침에 뒤통수를 다시 후려치려던 손을 거두며 황당한 표정으로 아이작을 바라봤다.
“누가 누구보고 비겁하다는 건지 모르겠네. 왜? 거기 묶여있어서 답답해? 풀려나기만 하면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그거 아주 심각한 착각이야.”
“으드득. 한 이드라실. 네놈이 정녕 사내라면 나와 일대일 대결을 벌이자!”
“얼씨구? 남자 타령 나왔네. 네놈 새끼는 아주 대단한 남자라서 부하들 다 내버려 두고 혼자 빤스만 겨우 챙겨입고 토끼셨어요? 우쭈쭈. 응 그러셨어요? 지랄하고 있네.”
“이 새.. 커헉!”
퍼억!
결국 이한은 아이작의 뒤통수를 다시 후려쳤다. 얼마나 강하게 후려쳤던지 소리를 지르려던 아이작은 정말 눈알이 빠질 것 같은 충격에 억하는 비명밖에 지를 수 없었다.
“뒤통수 후려쳐서 눈알 뽑아버린다는 거 빈말 아니다. 맞아봐서 알겠지만 그렇게 계속 처맞으면 아마 튀어나올걸? 사실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아까운 산소와 시간 낭비하지 말고 신속하게 가자. 쓸데없이 고함을 지르고 그러면 눈알부터 뽑고 시작하자는 의미로 알고 아주 즐겁게 후드려 패줄게.”
고개를 앞으로 숙인 채 이한의 말을 듣고 있던 아이작이 다소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이한을 바라봤다.
“······. 너… 누구냐?”
아이작의 반문에 이한은 속으로 감탄했다.
대화 몇 번 나눴다고 대번에 내가 한 이드라실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는 이 비상한 새끼를 보라.
악인이라고 무시하면 정말 큰코다친다. 기본능력이 평균보다 특출한 새끼들이니까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게 활보할 수 있는 거다.
우리 순진한 주인공들이 나는 옳은 일을 할 테니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줄 거야 라는 근거 없는 믿음만으로 들이대다가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며 시청자들의 목구멍에 고구마를 밀어 처넣는데 능력도 없이 악당을 무슨 수로 이겨? 그래도 주인공이라 죽지 않은 거지. 원래대로 그러니까 현실이면 백중백이면 다 뒈졌을 거다.
결국엔 때려잡으니 우주의 기운이 도와줬다!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단 악랄한 새끼들한테 주인공 버프로 죽지 않고 열나게 조 터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능력이 업그레이드 된 거라 봐야지. 끼워 맞추면 말은 되겠다만.
어쨌든 능력과 인성은 별개다.
탁월한 능력과 탁월한 배경을 지니면 어지간해서는 그냥 망나니 되는 거야. 그게 인간이라고. 대다수는 악당의 특권을 누리고 싶어하지 영웅의 희생을 달가워하지 않아. 그 욕망을 아주 예쁘고 능청스럽게 포장할 따름이지. 아닐 것 같아? 일단 나는 맞아.
아무튼 간에 아이작 이 새끼도 정신이 나간 놈이라 그렇지 기본능력은 비상해. 봐봐. 바로 눈치까잖아. 내가 한 이드라실이 아니라는 걸 말이야. 물론 그걸 고스란히 인정할 내가 아니지만.
“머리통이 반쯤 날아갔다가 재생되면 너도 나처럼 바뀔걸? 혹시 알아? 우리 아이작께서 개과천선해서 세상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실지. 그러니 우리 한 번 해볼까? 일단 네 머리통을 반만 날리는 거야. 그리고 다시 재생시키고. 안 바뀌면 다시 날리고 재생하고. 안 바뀌면 다시 날리고 재생시키고. 그러면 너도 갱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이거 흥미로운데?”
“······.”
아이작은 묘한 눈빛으로 이한을 바라봤다.
“맞아. 네가 아는 한 이드라실은 미확인 행성에서 이미 죽고 없어. 너한테 내가 한 행동? 역시 기억에 없다. 내 기억에 있는 건 네놈 새끼가 내 목숨을 위협했다는 사실밖에 없어. 그러니까 묻는 대로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이한은 서늘한 눈빛으로 아이작을 바라봤다.
아이작은 예전의 한이 죽었다는 말에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계처럼 냉철한 놈이긴 했지만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는 병정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 눈에 비친 한 이드라실에게선 전에 없던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기질이 완전히 변했다. 눈앞의 한은 자신이 알던 그 한이 아니다.
“초계함 볼터는 어떻게 됐지?”
이한은 먼저 최근에 일어난 일부터 질문했다. 가장 대답하기 수월한 질문이기도 했다. 이한이나 워도 그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는 대질문이니까.
“네 예상대로.”
“내 예상이 네가 뭔지 어떻게 알고? 정확하게 대답해.”
아이작은 인상을 팍 구기며 입을 열었다.
“······. 엠파이어와 연합 공격에 파괴되었다.”
“그래?”
이한은 비릿한 웃음과 함께 반문한 뒤 아이작에게 되물었다.
“폭발 원인은?”
“레일건으로 인한 주요 동력원 파괴.”
“함선이 폭발할 때까지 시간이 제법 있었겠군.”
아이작은 사나운 눈빛으로 이한을 노려봤다.
“대체 뭘 묻고 싶은 거지?”
“탈출포트가 발출할 정도의 시간이 있었으니 당연히 파괴된 함선 주위로는 탈출포트가 제법 많았을 거야. 유니온의 탈출포트는 어떻게 했나?”
아이작은 그제야 이한의 의도를 파악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건······. 대답하지 않겠다.”
이한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이작이 아닌 허공에다가 말을 뱉었다. 바로 워를 향한 발언이었다.
“들었지? 공교롭게도 나는 유니온 소속이다. 유니온의 군인이 당한 비인도적인 행동을 갚아줄 명분이 있다는 소리지. 탈출포트에서 구명한 모든 인원을 우주 밖으로 방출시켜도 저들은 내게 비난할 근거가 없어. 그렇지 않나?”
『제가 드릴 대답은 동일합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추천하지 않을 뿐, 명령을 내리면 지체하지 않고 그 즉시 실행할 것이다. 초인공지능에게 사령관의 명령은 절대적이니까.
“추천하지 않는 근거는?”
『여러 방면에서 이 같은 선택으로 얻을 이익과 손해를 계산했을 때 사령관께서 잃을 것이 훨씬 많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책임자에 책임을 묻는 것 정도는 전혀 문제 되지 않겠지. 그 책임자가 나의 포로가 되었다고 해도 말이야. 엠파이어의 에이탄 중령은 자신의 함선과 장렬하게 산화했으니 엠파이어에 대한 책임은 유니온 측에 넘기도록 하고. 남은 건 리퍼뿐이군.”
『사령관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이한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묶여있는 아이작을 바라봤다.
“이게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이야. 당연히 그 끝은 네 죽음이지만 일단 너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뱉을 때까지 죽을 수 없어. 아까 말한 머리통 날리기부터 시작해볼까? 아니면 눈알 뽑기? 어떤 걸 원해? 자비롭게 네게 선택권을 줄게.”
“으드득.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네놈이 원하는 질문은 뭐든 대답해줄 테니 대신 너도 내게 약조해라.”
“네가 나한테 뭘 요구할 위치라고 생각하냐? 됐고. 엠파이어가 나를 쫓는 목적!”
“자세한 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실험체 확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실험체 확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엠파이어는 유니온과의 함대전에서 승전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측 최고위 전략 자원 중 하나인 초인공지능과 마스터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인데 실험체로 쓰든 어쨌든 포획하려 하지 않을 이유가 뭐겠냐?”
“고작 그런 이유라고?”
“고작? 이번에 네가 얻은 위치에 대한 자각이 더 필요하겠군. 엠파이어의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다면 폭사한 에이탄 중령이라도 재생시켜서 심문하던지.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다.”
이한은 미간을 좁히며 침음을 뱉을 때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이제 내 조건을 말하지. 내 조건은 간단하다. 책임자로서 내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면 최소한의 명예를 내게 보장해라.”
“허… 그 책임을 아는 새끼가 홀로 튀었냐?”
“큭큭큭. 너도 그랬을 거잖아. 아닌가? 내가 잘못 본 건가?”
이한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이작에게 말했다.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군.”
“나는 너를 사로잡으면 정확하게 네 두 팔을 자르고 얼굴에 검상을 남긴 뒤 엠파이어에게 보내려고 했다. 그 전에 잃어버린 나의 명예를 찾고!”
“갈수록 황당한 소리만 지껄이네. 명예? 해적에게 무슨 명예가 있는데?”
이한의 비아냥에도 아이작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네놈이 명예를 아는 사내라면 나를 풀고 대결을 벌이자. 죽더라도 나의 명예는 되찾고 죽어야겠다!”
이한은 묘한 눈빛으로 아이작을 바라보다가 워에게 말했다.
“워 초진동검. 한 자루 준비시켜. 이놈이 그토록 울부짖는 대결 한 번 해야겠다. 대신 준비하고 있다가 내가 위험할 것 같으면 사살해버려.”
『추천하지 않습니다.』
“동의한 적은 없지만, 저 새끼는 내가 들어줄 것을 확신하고 있단 말이지. 산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 데 죽은 놈 소원 정도야 들어줘도 나쁘지 않겠지. 겸사겸사 확인도 할 것도 있고.”
“진심이냐?”
“네가 뭔가 심한 착각을 하는 것 같아서 죽기 전에 생각 좀 고쳐주려고. 안 그러면 마치 나는 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는 식으로 자기 위안하면서 뒈질 거잖아. 내가 그 꼴은 못 보겠어. 포로 놈들에게도 네 죽음을 본보기로 삼을 수 있을 테고.”
“큭큭큭. 크하하하하!”
눈앞의 이자는 한이 아니다.
하지만 상관없다. 원한을 갚고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그게 뒤틀린 것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
삼엄한 경계 속에 두 사내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아이작은 오른팔과 왼팔을 기계로 이뤄진 손으로 번갈아 가며 두어 번 두들겼다.
쿵쿵! 쿵!
“스틸아머 정도는 입는 게 좋을 거다.”
“고양이 쥐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네가 죽는 날을 기다렸다고? 거참. 참신한 놈일세.”
“한 이드라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의 두 팔은 반드시 뜯어버릴 거다!”
“넌 그냥 죽게 될 거다. 그러니 괜한 기대는 품지 마. 죽는 것도 서글픈데 더 서글퍼지잖아.”
“하아아아안!”
아이작은 맹수가 울부짖는 것처럼 고함을 치며 그대로 이한에게 짓쳐 들었다. 아이작의 양팔은 스틸아머의 갑옷을 으깨버릴 정도로 강력한 기계팔이었다.
반면 이한은 몸에 착 달라붙는 단출한 훈련복에 초진동검을 든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 주변으로 아이작의 움직임을 수시로 계산하며 움직이는 자동화기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한이 위험에 처한다면 그 즉시 맹렬하게 불을 뿜어 아이작의 육체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이한은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오는 아이작을 가만히 노려봤다. 크락투나 전에 마주한 마이노르의 생체병기보다도 느린 움직임이었다. 물론 두 팔이 가진 힘만큼은 강력한 것으로 보였지만 그것도 맞아야만 효력이 있는 것 아닌가?
이한은 몸에 새겨진 전투기억을 따라 가볍게 몸을 흔들어 아이작의 두 팔 공격을 피해냈다.
훙! 후훙!
공격대상을 놓친 아이작의 팔은 애꿎은 바닥을 후려쳤다.
콰아앙!
강력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던 아이작은 고개를 휙 돌려 초진동검을 늘어뜨린 채 서 있는 이한을 확인하고는 다시 이한에게 짓쳐 들었다.
이한은 전투를 길게 끌고 갈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들고 있던 초진동검을 작동시키기 무섭게 신속하게 아이작의 두 팔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차아아앙!
갈가리 베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튕겨나가는 초진동검의 모습에 이한은 살짝 놀란 눈으로 아이작의 팔을 바라봤다.
“내가 스틸아머 정도는 착용하는 게 좋을 거라 그랬지!”
하긴 매드솔져까지 만들어내는 놈의 기계팔이 허접할 리가 없었다. 놈의 육체 역시 평범하지는 않았다. 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아이작의 몸이 급격하게 부풀더니 이윽고 배는 더 빨라진 속도로 이한을 향해 쇄도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한의 귓가로 워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사살합니다.』
“아니 잠깐 있어 봐.”
짧게 대답한 이한은 초진동검을 재빠르게 휘두르며 뒤로 물러났다.
“한 이드라실!!”
그것을 기회로 여긴 아이작은 더욱 맹렬하게 이한을 향해 쇄도했다. 당장에라도 이한을 짓이겨버릴 기세였다.
이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작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벼락같이 검을 내질렀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이윽고 스테이션 바닥에 초진동검이 나뒹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챙그랑!
“아무래도 이건 좀 보완할 필요가 있겠다.”
이한은 왼팔로 오른팔을 주무르며 석상처럼 굳어버린 아이작을 바라봤다.
그런 아이작의 목에는 미세한 혈선이 새겨져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핏발이 잔뜩 선 눈으로 이한을 바라보던 아이작은 대기 중이던 병사에게 피스톨을 건네받는 것을 확인했다.
이한은 피스톨을 아이작의 이마에 겨누며 입을 열었다.
“반드시 네 이마에 총알을 박아줄 거라 말했거든. 그간 고함 지르느라 수고 많았다. 잘가라.”
타아앙!
푸아아악!
이한이 쏜 총알은 아이작의 이마를 뚫고 그의 뒤통수를 완전히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아이작의 시체는 그제야 그 충격으로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쿠우웅!
허망한 표정의 아이작을 바라보던 이한은 자신 안에 뭔가가 바뀌었다는 걸 확연하게 깨달았다.
“······. 흠. 이거 좋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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