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42
39. 이거 좋지 않다 (3) >
39.
테라. 유니온의 모행성이자 드넓은 우주에서조차 이러한 행성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절묘한 조건을 갖춘 행성이다.
생명체가 거주 가능한 우주 공간의 범위를 골디락스 존이라고 부르는데 테라는 온도나 크기를 비롯한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테라의 질량이 1.25배만 커졌어도 활발한 지질 활동 등으로 대지가 가라앉아 바다 행성이 되었을 것이고 목성만큼 커졌다면 목성처럼 가스형 행성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 질량이 작아진다면 중력이 약해져 지구상의 대기가 줄어 생명체 살 수 있는 대기를 형성하기 어려워진다.
자기장 또한 절묘할 정도로 적절하다. 자기장은 태양풍에서 비롯한 엄청나게 해로운 고에너지 하전입자들이 지구에 유입되는 것을 막아주는데 이것이 없다면 바다조차 증발해서 아무것도 살 수 없는 행성이 되었을 것이다.
태양과 같은 항성 또한 드물다. 이러한 항성은 수시로 플레어와 같은 대폭발을 일으켜 주변 행성에 끔찍한 악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 적절한 밝기와 질량을 가지고 아주 안정적으로 타오르는 항성이다.
목성의 크기가 더 컸다면 항성으로 변화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태양계 전체의 궤도가 틀어져 지금의 테라 또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이 목성은 질량으로 인한 막강한 중력으로 외부 소행성을 끌어들여 테라를 보호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테라만큼 완벽한 거주 환경을 지닌 행성은 우주시대를 연 지금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초자원의 발견과 그것을 이용한 테라포밍으로 부족한 조건을 채워 비슷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지만 대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했다.
유니온의 테라에는 대략 300억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고 있었다. 테라 주변 외부에서 활동하는 인구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욱 많아진다.
당연히 유니온에게 있어 테라보다 중요한 행성은 없고 인류의 발원지이기에 유니온의 모든 방어시설은 테라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한은 하얀색 바탕에 푸른 문양의 제복을 입은 백발의 사내와 함께 첨단시설로 이뤄진 회랑으로 보이는 곳을 거닐고 있었다. 이곳은 태평양 한 가운데 건설된 테라네스라는 테라의 주요시설 중 하나이자 아주 거대한 시설이었다.
“한 사령관. 키아텍 스테이션의 일은 아주 감명깊게 살펴봤어. 전투는 물론이거니와 사후처리까지 적절하게 처리했더군. 실로 유니온의 사령관다운 일처리였다.”
이한은 루퍼스 사령관에게 입을 열었다.
“뒤를 봐주신 덕분입니다.”
이 백발 노사령관이 알고보니 테라에서 상당한 권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유니온의 사령관으로서 세운 공적이 어마어마했다. 유니온의 전쟁영웅이나 다름없는, 아니 전쟁영웅이었다.
그러니까 한 이드라실은 루퍼스 이 노사령관 앞에 젖내 풀풀나는 애송이나 다름없었다. 이한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미친놈의 기질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는 이성 정도도 더불어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고분고분하게 말을 받았다.
“테라는 놀라운 행성이야. 오랜 시간 동안 드넓은 우주를 돌아다녔지만, 아직까지 테라만큼 완벽한 행성은 찾아본 적이 없어.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고 정확한 비율을 가진 실로 놀라운 행성이지. 아는가? 이 테라의 조화에서도 우리는 배워야할 점이 많다는 사실을.”
대답을 듣기 위해 질문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기에 이한은 별 대답없이 경청하기만 했다.
“한 사령관.”
“예. 말씀하십시오.”
“세인들을 나를 무슨 극우주의자로 보고 있지만 나는 중용의 도를 참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세. 사령관에게 있어 지도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균형점을 찾는 일이야. 먼저 스스로에게 나아가 자신의 가정에게 그리고 국가의 일에서도 균형을 잡고 기준점을 잡아주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 그게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다.”
루퍼스 사령관은 유니온 제복을 걸친 병사나 장교들의 인사를 가볍게 받아넘기며 다시 말을 이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불균형에서 발생한 그 분란이 결국 피를 부르게 될 테고 그 피는 다시 거대한 전쟁을 낳게 될 것이다. 첨단 기술을 가진 인류가 서로를 향해 제대로 총을 겨누게 된다면 그땐 공멸 외에는 남는 게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나? 지도자는 요동치는 정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아니라 중심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는 소리야.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표면에서 일렁이는 파도밖에 볼 줄 모르지. 정작 중요한 게 뭔지를 몰라.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네. 파도는 둘째치고 거센 해일이 몰아친다면 해일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현실 아닌가? 그래서 이 사실을 계속 상기하곤 하네.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루퍼스는 걸음을 멈추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이한을 바라봤다. 그는 두 손가락을 들고 허공에 몇 번 가리키면서 유쾌하게 입을 열었다.
“키아텍 스테이션에서 사령관이 어떤 일들을 감당했는지 아주 유의깊게 살펴봤네. 유니온의 관점이 아니라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아주 훌륭하더군. 훌륭해. 사령관은 뭐가 우선인지 정확하게 파악했어. 나는 그 점을 칭찬하고 싶군.”
“과찬이십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나는 그 운이라는 것도 실력이라고 생각한다네. 수많은 전투를 치르고 이태껏 살아남았지만 온전히 내 실력만으로 그 모든 역경을 헤쳐왔을 거라 생각하는가? 천만에! 아는가? 나보다 실력이 특출한 장교들은 사관학교에서도 수두룩했어. 한 사령관. 눈치 빠른 사내이니 눈치챘겠지만 나는 자네가 마음에 들어. 왠줄 아는가? 자네 말대로 자네는 운이 좋은 사내이기 때문이야.”
“예?”
“잔인한 시험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내가 막았더라도 자네는 그리 행했을 테니 그 일을 가지고 나를 탓하지는 않겠지. 키아텍 스테이션에서 자네의 목숨은 풍전등화나 다름없었어. 민간 스테이션으로 전함 두 척을 상대한다? 승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나 희박하다는 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런데 자네는 어떤 사상자도 발생시키지 않고 두 척의 함선을 재로 만들어버렸지. 키아텍 스테이션에 발생한 사상자는 전부 마이노르라는 미치광이에 의한 것이 전부야. 놀랍지 않나? 그 모든 것이 운이라고 해도 놀라운 건 마찬가지라네.”
루퍼스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어갔다. 당연히 이한은 그의 말을 경청하며 같이 걸음을 옮겼다.
“자네의 기록을 차근히 살펴봤네. 예전의 행적은 물론이고 미확인 행성에서 이곳 테라까지 이르는 여정을 세심하게 살펴봤지. 수없이 불리한 상황이 한 사령관 자네를 덮쳤지만 무슨 오뚝이처럼 살아남았더군. 머리가 반쯤 날아가고도 살아남았다고 했나? 기억을 잃었다고? 머리가 반이나 날아가고 살아남은 사실에 비하면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지.”
그쯤 말을 끊은 루퍼스는 이한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줄은 알고 있나?”
“초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루퍼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그래. 모를 수가 없겠지. 테라에서 초인공지능의 마스터는 ESP 능력자로 분류하지 않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ESP 능력자나 다름없어. 어떤 인간도 따라올 수 없는 분석력과 지식. 테라의 무엇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한 초인공지능이 항상 사령관을 돕는데 사령관의 역량이 일반인을 훌쩍 넘어서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럴 여유가 없었던지라······. 하지만 말씀을 듣고 보니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워가 아니었다면 저 미확인 행성에서 일찌감치 뼈를 묻었을 것이다. 아니 뼛가루까지 크락투의 뱃속에 들어가 있었겠지.
“사령관 대 사령관의 전투는 압도적인 기술력과 자원의 차이가 아니라면 대개는 고급 인적자원을 얼마나 잘 양성했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초인공지능의 등급이 올라 가봐야 서로 큰 차이가 발생하지도 않으니까. 초인공지능의 격차로 변수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변수는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야.”
유용한 조언이었지만 이한은 루퍼스가 이런 말을 꺼내는 저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일단 경청했다.
“어떤 사령관도 유능하지 않을 수 없지만 모든 사령관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음을 얻는 자가 곧 천하를 얻는 거다. 첨단기술로 인해 전술이나 전략은 수도 없이 바뀌었지만 이것이야말로 고금불변의 진리다. 사람은 변수를 만들어내고 그 변수는 다시 운이라는 필연을 만들어낸다. 흔히 착각하는 것이 초인공지능을 지닌 사령관이라고 독불장군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야. 암. 멍청한 짓이지.”
루퍼스 사령관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진정한 마음을 얻는 법은 누구나 알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들을, 당연히 지켜야 하지만 지키지 않는 것들을 지키는 당당함에서.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지키는 희생이 그 기본이 된다. 쉬운 일은 아니지.”
탁 트인 창가에 다다른 루퍼스는 걸음을 멈춰 세우고 창밖을 바라봤다. 녹음이 우거진 숲과 저 멀리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던 루퍼스는 다시 말을 이었다.
“꼰대질한다고 속으로 욕하지는 말게. 그렇게 비난하던 젊은이들도 나이가 들면 꼰대질하는 이유가 다 있기 마련이라네. 클클클. 다만 뭐든 과하면 문제가 되는 것이지.”
클클 웃음을 터트리던 루퍼스는 돌연 서늘한 눈빛으로 이한을 바라봤다.
“사령관 한 이드라실.”
이한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루퍼스를 바라봤다.
“예. 말씀하십시오.”
“자네는 유니온에 빚을 지고 있어. 자네도 잘 알고 있을 테니 그게 무슨 빚인지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겠네. 월권행위를 비롯한 모든 행위도 넘어갈 것이야. 하나 유니온이 무슨 자선단체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루퍼스 사령관님.”
“이 모든 일을 무마하는 대가로 자네는 힘겹게 떠나온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미확인 행성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거다.”
“미확인 행성이라면?”
“자네가 크락투라고 명명한 그 괴생명체들이 출몰하는 곳. 그곳 말이다.”
이한은 속으로 욕설을 뱉었다. 그 씨발 것들을 다시 대면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광경을 다시 봐야 한다고? 그것도 내 명령에 의해서? 욕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곳은!”
“미확인 행성. 그곳은 그 어떤 곳보다 테라포밍하기 적절한 행성이다. 대기를 형성하고 물을 만들고 기온을 높이고 식물을 심고 식민지를 건설하면 그게 테라포밍이다. 절차는 간단해 보이지만 대기가 없는 행성에 대기를 형성하는 일이 쉬울 것 같은가? 대기를 형성하더라도 대기가 형성될 수 없는 구조적인 위치에 놓여있다면 유지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인지 이해했겠지.”
“음.”
이한은 루퍼스가 무엇을 언급하는지 어렴풋이나마 눈치챘다. 미확인 행성 그곳은 대기도 물도 기온도 이미 모두 적절한 행성이었다. 단지 크락투라는 괴생명체가 있을 뿐이다.
“크락투라는 괴물을 말살하고 식민지 건설 임무에 가담한다면 유니온은 지난 과거를 모두 잊는 것은 물론 상당한 지원을 약속할 거다. 사령관 자네뿐만 아니라 공적을 원하는 수많은 군인들이 그곳으로 향하게 될 것이야. 단순히 우리뿐만 아니라 엠파이어도 마찬가지겠지. 뉴트럴도 곧 가세할 것이다.”
테라포밍을 위해선 가히 천문학적인 자원이 필요하다. 초자원이라는 기적의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일단 테라포밍되면 그로 인해 산출되는 이득 효과야 더 말해 뭐하겠는가?
심지어 이 미확인 행성에는 초자원. 곧 프로젤과 세라메틱이 도처에 널려있다. 주요 삼대 세력이 이런 곳을 내버려 둔다면 그것이야 말로 아이러니지.
“다량의 초자원까지 함유된 그 행성은 작금의 뜨거운 감자나 다름없다. 독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따라서 모두의 예상대로 행성 내에서 균형이 잡힐 때까지는 끊임없는 혼란과 전쟁이 발생할 거다.”
거기까지 말한 루퍼스는 엄중한 표정으로 이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 절차상 자네의 의사를 확인하도록 하지. 사령관 한 이드라실. 이 임무를 받아들이겠는가?”
절차상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건 거부할 수 없다는 뜻이 내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자신에게 호의적인 루퍼스 사령관을 그것도 유니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그의 심기를 거스른다고? 확실히 현명한 태도는 아니었다.
다시 말해 어떻게 피할 수도 없는 제안이자 임무였다.
“수락하겠습니다.”
좋지 않다. 이거 정말 좋지 않다. 하지만 별수 있나? 울며 겨자 먹기로 승낙하는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