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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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나대지 마라.
“사령관 한 이드라실이다.”
이한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강한 눈빛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아군의 함대는 물론, 엠파이어와 뉴트럴 함대 모두 적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추정컨대 크락투의 짓으로 보인다. 함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퇴로도 봉쇄되었다. 현 상황에서 남은 전략은 타카스 행성에 기지를 건설한 모든 인류와 연합하여 이 상황을 타개하는 수밖에 없다. 자세한 사항은 각 지휘관에게 전달받도록. 이상.”
짧게 방송을 마친 이한은 홀로그램에 반짝거리는 점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그러자 그 지점이 확대되며 주변 지형도를 상세하게 나타냈다. 이한은 인상을 팍 쓰며 워에게 말했다.
“굴이 있군. 그것도 상당한 숫자의.”
『다른 지점 역시 이러한 굴이 형성된 곳이 많습니다. 추정컨대 이 지점 부근 지하에 크락투들이 숨어있을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이 지점에 크락투가 숨어있다고 해도 저곳을 밀고 들어가는 건 미련한 짓이다. 개미굴보다 훨씬 복잡할 테고 무엇보다 제 안방이나 다름없는 곳에 병력을 밀어 넣었다가는······.”
물론 기지에 웅크려 방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무슨 행동이라도 취해야 할 시점이다. 통신도 두절 된 상황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군에게 불리해질 텐데 어떻게든 다른 기지들과 연합 전선을 구축하여 크락투의 공격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주어졌다면 확장한 기지들의 영역이 맞물려 적절한 연합전선을 형성했겠지만 공교롭게도 그 정도로 확장하기 전에 크락투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이대로라면 각개격파 당하고 말 것이다. 심지어 적의 병력이 훨씬 더 많은 상황에서 각개격파라니. 실로 끔찍한 소리였다.
다행히도 놈들이 바로 습격을 하지 않는 것은 아마 그럴만한 여력이 없기 때문이리라. 이것이 현재 아군에게 주어진 거의 유일한 우위였다. 그러니 이 우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적을 타격해서 적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개미굴에 병력을 밀어 넣을 수는 없다. 기갑병단 역시 마찬가지. 지난 사례를 고려하면 이곳 타카스에서는 지상에서도 초인공지능과의 연결이 끊어질 위험이 있는데 지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기껏 생산한 기갑병기를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고철 더미로 만들려는 게 아니라면 기갑병기는 되도록 워의 영향권 안에서 기지를 방어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스페이스 마린? 크락투와 어두운 굴에서 맞닥뜨리면 짧은 비명과 함께 오체분시 될 그 마린? 어떤 병력이든 저 굴속으로 밀어 넣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나 역시 저 굴속으로는 발도 디디고 싶지 않다.”
패배할 것이 뻔한 전장에 ‘나는 할 수 있다’는 어떤 근거 없는 자신감만으로 씩씩하게 나아간다면 그건 오지게 오만한 어떤 멍청한 놈의 자살행위나 다를 바가 없다.
혹 그런 이유만으로 명령을 내리는 사령관이 있다면 그 새끼는 어떻게든 미리 죽이는 게 좋다. 승산이 없는 전투에 병력을 갈아 넣어서 어떻게든 공적을 올리려는 싸이코 새끼거나 대가리에 똥만 들어찬 상병신이라는 뜻이니까.
“포격으로 처리할 수는 없겠지?”
『저 지점에 예상대로 크락투가 존재한다면 함대포격을 견뎠다는 뜻이니 그보다 약한 포격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굴을 무너뜨린다고 해도 굴을 만든 주체가 크락투가 맞다면 다른 지점에 출구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이한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놈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이상 어떻게 적을 타격할 방법도 없다는 소리다. 이래서야 선제타격을 통한 우위를 가져오려야 가져올 수가 없었다.
오히려 기지의 안전을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기지 지하는 안전한 건가?”
『섹터를 나눠 드론 및 소형 지뢰를 매설 했기에 허망하게 뚫릴 일은 없습니다. 또한 지하가 뚫리더라도 그 지역에 포격을 실시 할 수 있도록 건물을 배치했으니 지하 침투로 기지방어가 무너질 수준이라면 어느 방면으로 적이 몰려왔어도 뚫리긴 매한가지일 겁니다.』
이한의 기지는 유니온의 다른 일곱 기지에 비해 확장이 훨씬 더뎠다. 이는 지금처럼 하나하나 세밀하게 크락투의 공격을 대비하여 기지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크락투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다른 사령관들에게도 전해졌기에 지하 방비를 전혀 안 하진 않았을 테지만 함대의 지원을 믿고 확장과 초자원 획득 위주로 기지를 건설했다.
이한과 달리 다른 사령관들이 멍청해서 방심한 게 아니다. 함대 지원이 있는 상황에서 저들의 판단이 훨씬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었으니까. 적이 나타나면 그때 대비해도 늦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언제든 태세를 전환하게끔 준비도 해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함대 전체가 한순간에 먼지가 되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타카스 행성이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 알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던 이한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한의 기지와 달리 나머지 일곱 기지는 규모는 크지만, 내실은 부족한 형태로 발전되었을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한은 욕설을 나지막이 뱉었다.
“미친! 이 새끼들! 지상으로 안전하게 나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 거였어!”
다행히 습격을 하지 않았다고? 여력이 없어서 습격하지 않았을 거라고? 아니다. 첫 가정 자체가 틀려 먹었다.
습격은 벌써 전에 준비되었다. 그리고 이제 곧 파도처럼 몰아닥칠 것이다. 초인공지능 등의 탐지에 걸리지 않는 매우 깊숙한 지하에서부터.
다시 말해 테라의 전 함대를 쓸어버린 건 지하의 숨은 병력이 안전하게 지상으로 나오게 하려는 크락투의 안배였던 거다.
‘크락투가 이토록 지능적인 놈들이었다고? 스페이스 워에서는······.’
스페이스 워가 뭐 어쨌단 말인가? 지금 잡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모든 병력 고지대로 위치시키고 지하의 활동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 지하에서 곧 모습을 드러낼 거다. 외부로 향한 모든 방어 역시 뭐 하나라도 지하에서 발견되면 즉시 재배치시켜! 아니 일단 재배치부터 시켜!”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이윽고 200여 대의 올리펀트가 기지 방벽 주위에 뾰족한 형태의 네 발로 성큼성큼 흩어져서 기지를 향해 포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위이이잉. 철컥!
1500명의 마린 역시 새로이 건설된 벙커 주변으로 엄폐했고. 100명의 마린은 자이언트 50기에 탑승하여 전투 상황에 대비했다.
그리고 400명의 마린은 나노슈트를 걸친 스펙터로 변모해 빌리 대위의 인솔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상황판을 통해 기지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이한은 미간을 좁혔다. 이렇게 되면 성공적으로 막아내도 기지의 피해가 극심해진다. 실로 영리한 놈들이 아닌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놈들과 싸울 수 있는 병력이다.”
기지야 전투 중에라도 다시 만들거나 수리하면 된다.
굳은 표정으로 상황판을 확인하던 이한은 불현듯 다른 일곱 곳의 기지가 염려되었다.
자신은 내실을 다져서 기지를 건설했기에 비교적 빈틈없는 방비가 가능하지만, 규모를 잔뜩 키우고 내실이 부족한 다른 기지들은 어쩌면 이번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될 수도 있었다.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크락투로 득실거리는 행성에서는 유니온이 아니라 엠파이어, 뉴트럴이라고 해도 모두 아군이니까.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우선 내 앞가림부터 하고 볼 일이다.
『사령관님. 지하에서 미약한 움직임을 발견했습니다.』
“위치는?”
『예상해본 결과 그 위치는 아군 기지의 중앙 부근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준비해!”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
“투입해!”
『생화학 액체 투입합니다.』
치이이이익!
땅속에 박힌 기다란 호스를 통해 대 크락투 용 생화학 액체가 땅 속으로 투입되었다.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그와 동시에 기지 전체가 진동할 정도로 큰 요동이 땅 속에서 일어났다. 땅속으로 진격해오던 크락투들이 죄다 발광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이한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워에게 말했다.
“상황을 보면서 지속적으로 투입해.”
『알겠습니다. 생화학 병기가 생각보다 훨씬 효율적이라 큰 피해 없이 놈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놈들이 지나온 통로를 역추적하고 있겠지?”
『나노 드론을 활용해 역추적하고 있습니다.』
“위치 파악되는 대로 타격대 보내서 놈들의 둥지를 박살낸다.”
『사령관님! 위치 확인 되었습니다. 올리펀트 포격 실시합니까?』
“실시해!”
『일제 포격 실시합니다.』
쾅쾅쾅콰아앙!
외부로 포신을 돌린 100여 대의 올리펀트가 선포격하자 뒤이어 기지를 향하고 있던 100여 대의 올리펀트 역시 이어서 포격했다.
쾅쾅쾅쾅!
『2백발의 포격이 정확하게 목표지점을 타격했습니다. 파악된 크락투의 전초기지 섬멸 완료했습니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 화면이 살짝 잡혔다가 다시 기지 중앙으로 돌아왔다.
화면에는 몸이 녹아내린 크락투가 비척거리며 올라오다가 초진동칼날에 무참하게 썰려나가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었다.
『현재까지 이천 마리의 크락투를 사살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천 마리라고? 별로 체감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땅속에서 녹아내리거나 폭탄을 장착한 드론이 땅속에서 죄다 폭사시키고 있었으니 눈에 들어오는 건 지금처럼 온몸이 녹아내린 크락투가 초진동칼날에 썰리는 모습이 전부였던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순조롭게 전투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만큼 이한이 철저하게 대비를 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이한은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때 워의 보고가 다시 이어졌다.
『사령관님. 특이사항을 발견했습니다.』
이한은 자연히 사나운 표정으로 반문했다.
“뭔데?”
『몇몇 크락투의 체내에서 미세한 초자원 결정을 발견했습니다.』
“미세한 초자원 결정? 설마?”
『시에라 소령에게 발견된 것과는 형태가 다릅니다. 순수한 초자원 결정입니다.』
고농축 초자원 결정이라면 일단 채집하고 볼 일이다.
“채집해!”
『이미 채집 드론을 이용해 빠르게 수거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승리에 필요한 거의 모든 행동을 자율적으로 수행하게끔 명령을 내린 상황이기에 중요한 의사결정이 아니고서는 워가 알아서 처리하는 편이었다. 그 편이 이한에게도 효율적이었다.
『사령관님! 2시 방향! 거대 크락투 20마리가 포착되었습니다. 기지의 방벽을 향해 곧장 내달리고 있습니다. 체고가 10m에서 20m 정도로 보입니다.』
10m만 해도 엄청난데 20m는 2m 신장을 가진 사람의 열 배라는 소리다. 체고만 그러하니 전체 크기는 얼마나 거대할까?
그렇게 거대한 놈이 20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소리였다. 제아무리 방벽이 튼튼하다고 해도 놈들의 몸통 박치기 한 번이면 모조리 찢겨나갈 것이다.
이한은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얼씨구? 이 새끼들이 나를 완전히 물로 봤다 이거지?”
저번에 당한 전적이 있는데 내가 네놈 새끼들인들 대비를 안했겠냐? 기지 배리어도 포기하고 설치한 대 크락투 병기 맛 좀 봐라!
기지 배리어야 어차피 크락투전에는 별 쓸모도 없으니 깔끔하게 버렸다. 그것까지 건설하면 에너지가 남아나질 않을 테니 말이다.
“레일건 준비해!”
『이미 충전 완료되었습니다. 상세조정 중입니다.』
포신 역할을 하는 나란한 두 개의 전도성 레일에 강한 전압을 걸고 레일 사이에 전도성 탄자를 넣으면 탄자를 통해 전류가 흐르며 회로가 형성된다.
이때 레일에 흐르는 전류가 형성한 자기장은 전류가 흐르는 탄자에 로렌츠 힘을 가하고, 이 힘이 곧 탄자를 빠른 속도로 발사시킨다.
전류가 강하면 강할수록 레일이 길면 길수록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기지의 주동력원은 함선과 마찬가지로 초자원을 활용하는 코어며 보조동력원은 핵융합로다. 여러 시설을 한꺼번에 운용하기에 전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긴 하나 그렇다고 레일건을 운용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초반에 운용하기엔 비효율적이라 운용하지 않을 뿐이다.
이한은 에너지 발전소와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구성하여 레일건 다섯 대를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당연히 기지 발전의 가장 큰 저해요소 중 하나였다. 레일건을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면 기지를 더욱 빠르게 확장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한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레일건보다 강력한 무기가 없는 건 아니나 레일건만큼 확실하고 안정적인 무기도 없었으니까. 함대 지원만 믿고 있기엔 불안했으니 거대 크락투나 혹 무엇이라도 상대할 비장의 무기가 필요했다.
참고로 초자원을 활용하면 극도로 위험하고 매우 불완전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반물질도 무기화가 가능했다. 코어는 반물질을 에너지원으로 삼으려고 연구하는 가운데 탄생한 중간 결과물에 가까웠다. 루퍼스 사령관이 괜히 인류의 종말을 운운한 게 아니었다.
『완료되었습니다. 다섯 대의 레일건. 일제히 발포합니다.』
쿠우우우웅!!
웅혼한 포성과 함께 육중한 체구를 자랑하며 달려오던 거대 크락투 대다수가 갈가리 찢어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푸아아악!
포탄이 지나간 자리에 살점이 회오리치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짓이겨진 크락투들은 허망하게 그 몸을 땅에 누였다.
쿵! 쿠우웅!
살아남은 몇몇 거대 크락투가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고자 땅을 짚었지만 뒤이어 날아온 올리펀트의 무참한 포격에 땅속에 깊이 처박힌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한은 화면을 향해 주먹 감자를 날리며 소리쳤다.
“응! 새끼야! 어디서 나대고 있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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