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5
5.
쿵쿵!
25명 정도는 되었을까? 육중한 스틸아머를 걸친 스페이스 마린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누런 안개를 헤치며 이동하고 있었다.
“중위님. 기지에 필요한 자원이 존재할 거라 보십니까?”
시에라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병사에게 대답했다.
“이 행성에 기지를 건설한 지 석 달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탐사해봐야 알겠지.”
“하지만 그 석 달 동안 프로젤과 세라메틱이 함유된 광물을 찾기는커녕 쓸모없는 돌무더기를 찾은 게 전부 아니었습니까?”
그러자 다른 병사가 입을 열었다.
“그것도 기이한 일입니다. 상부에서는 이곳에 대량의 프로젤과 세라메틱이 존재할 거라 추측했고 기지의 초인공지능 역시 이 행성에 상당량 존재할 것이라 결론 내렸는데 찾은 것이라곤 쓸모없는 광물들뿐이니······.”
“조용. 여기까지가 기존에 파악된 지역이다. 아군이 줄곧 사라진 위험지역이니 경계를 철저히 해라.”
묘하게도 이 지역에선 기갑병과 초인공지능의 연결이 끊어졌기에 기지가 좀 더 안정될 때까지 탐사를 미루고 있던 지역이었다. 기갑병이 본부와 연결이 끊어졌다는 것은 두 가지 정도를 시사한다.
첫째, 기갑병이 모든 기능을 잃어버린 경우.
그러나 초인공지능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기갑병이 파괴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가능성이 희박했다.
둘째, 기묘한 현상으로 연결만 끊어진 경우.
초인공지능과의 연결을 끊어버릴 강력한 현상을 일으키는 물질 역시 희귀하다. 이를테면 프로젤과 세라메틱 같은.
따라서 당시 지휘부에서는 두 번째 경우라 판단했고 기지가 안정되면 기갑병이 아닌 마린을 보내 탐사할 계획을 품고 있었다.
강력한 기갑병이 사라진 지역이니 위험지역인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시에라는 미간을 좁히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에서 기갑병의 연결이 끊어졌다면 기갑병이, 파괴되었다면 기갑병의 잔해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찾을 수 없었다.
흔적이 없지는 않다. 기갑병이 더 안쪽으로 이동한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몸을 굽혀 기갑병의 흔적을 확인하던 시에라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병사들에게 말했다.
“진입하기 전 다시 브리핑한다. 탐사목표는 세 가지다. 첫째 프로젤과 세라메틱. 둘째 기갑병의 위치. 셋째 기갑병이 파괴되었다면 적의 존재를 확인. 세 목표 중 가장 달성하기 쉬운 것이 기갑병의 위치다. 그러니 일단 기갑병의 상태를 확인한 연후 다시 임무를 내리겠다.”
시에라는 주변을 경계하는 병사들에게 다시 말했다.
“1분대부터 진입한다. 진.. 음?”
진입 명령을 내리려던 그녀의 바이저에 맵 기능이 활성화되고 사령관 이한의 얼굴이 작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컨트롤 센터가 완공되고 메인 시스템이 활성화된 모양이다. 초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주변 정황을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니 위험부담을 확실히 덜었다.
시에라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한에게 보고했다.
*
“그래······. 실시해.”
이들은 모르겠지만 이한은 안다. 이 행성이 크락투의 요람이나 다름없는 곳이라는 걸. 마치 죽을 자리에 보내는 것 같은 느낌에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별수 없다. 이대로 있으면 어차피 다 죽는다. 뭐라도 해봐야지.’
미확인 지역으로 진입하는 시에라를 바라보던 이한은 초인공지능에게 명령을 내리려다가 멈칫하며 질문을 던졌다.
“내가 널 뭐라고 불러야 하지?”
『사령관님께서 정해주시면 됩니다.』
음. 지겹도록 전쟁을 치러야 할 테니까. 그냥 간단하게.
“그래? 그럼······. ‘워’라고 하자. 워.”
『워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좋아. 워. 지금 시점에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자원 부족으로 병력을 생산하거나 새로운 방어시설물을 짓는 건 불가능합니다.』
‘역시 그런가?’
이한이 미간을 좁힐 때 워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파괴된 기지의 잔해를 이용해 지금보다 효과적인 방어시설을 짓는 건 가능합니다.』
뭐? 그런 게 가능했어? 하긴 정해진 건축물만 지을 수 있는 ‘스페이스 워’가 아니니까. 이한은 반색하며 외쳤다.
“그래? 당장 시행해!”
『알겠습니다. 다만 사령관님께서 원하시는 방어시설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여쭙고자 합니다. 스페이스 마린에게 근접무기를 준비하라 명했던 것을 바탕으로 방어시설을 건설하면 되겠습니까?』
“어? 그래. 바로 그거다. 정확하게는 흉포한 괴물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시설. 폭발물이 있다면 더 좋고.”
『흉포한 괴물 말입니까? 혹 사령관님께서 아군의 시체를 특정 지역에 흩뿌리라 명한 것과 연결되는 내용입니까?』
“맞아. 비인도적이긴 하지만 놈들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야. 그나마 방어된 지역으로 진입하게끔 적을 유인하는 미끼. 놈들이 기지 내로 난입하면 현재로선 어떻게 막을 수도 없으니까.”
『기지의 방어가 미흡한 것은 사실이나 데이터에 존재하는 내용 가운데 현재 방어시설을 위협할 수 있는 생명체나 괴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일반 생명체라면 스페이스 마린 한 명만 있어도 다 때려잡을 수 있다. 일단 스페이스 마린의 장갑도 뚫기 어려울 테니까.
“존재하지 않겠지. 맞닥뜨린 적이 없으니까.”
『미확인 생명체가 이 행성에 존재한다는 말씀입니까?』
이한은 골이 지끈거린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내가 지독한 꿈을 꾼 건지 아니면 지금 꾸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존재해.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미확인 생명체에 대한 특징을 좀 더 자세하게 알려주신다면 좀 더 효과적인 방어시설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그게… 음. 모습을 특정할 수가 없어.”
『설명이 필요합니다.』
“크락투는 태생이 기생충이야. 숙주의 몸을 흡수하고 변태하는데 제각각 모습이 달라. 성충이 된 몇몇 개체는 가공할만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이런 개체가 쳐들어온다면 무슨 대비를 했던지 죽었다고 봐야······.”
말을 하던 이한은 머릿속을 스쳐 가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튜토리얼에서 본 크락투의 형상이었다.
“사족보행······. 사족보행의 거대한 갯과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일단 기지를 침입하는 놈들은 그럴 거다.”
『크락투. 사족보행의 갯과. 확인했습니다. 변경한 설계도에 따라 방어준비를 시작합니다.』
“방금 설계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혹 변경하실 내용이 있으십니까?』
‘허.. 초인공지능은 초인공지능이군.’
이한은 대답하지 않고 건설 로봇들이 기지 내부에 건설하는 방어시설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싸워야지.’
“건설 로봇에게 근접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무기라도 장착시켜!”
건설 로봇이라고 해도 자신보다는 잘 싸울 테니까.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
위이이잉! 위이잉! 위이이잉!
기지에 경고음이 울려 퍼질 때 벙커에 있던 스페이스 마린들은 기겁한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 저게 대체 뭐야?”
“개?”
“어딜 봐서 개냐? 저게?”
아드득. 우걱우걱 아드드득!
어찌나 게걸스럽게 뜯어먹는지 아군의 시신을 씹어먹는 소리가 이곳까지 울려 퍼졌다.
거대한 체구의 흑인 사내, 빌리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괴생명체를 바라봤다.
저걸 예상하고 아군의 시체를 토막 내어 흩뿌린 것이란 말인가? 빌리는 라이플을 들어 올리며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사격 범위 안에 들어오면 지체하지 않고 사격한다. 사령관께서 준비하라 명한 근접무기는 아마도 우리의 최후 생명줄이 되겠군.”
놈들은 시체와 함께 흩뿌려진 스틸아머의 잔해 역시 아무렇지 않게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스틸아머의 잔해는 아마도 자신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사령관의 안배였을 거다.
자신 역시 그것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으니까.
“무시무시한 놈들이지만······. 기지 방어막을 뚫지는 못할 겁니다.”
한 병사의 말에 빌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빌리의 시선은 방벽과 지금도 건설 중인 건설 로봇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랬다면 사령관께서 이러한 방어시설을 건축하라 명하시지도 않았겠지. 모두 정신 바짝 차려라.”
*
두두두두
라이플의 총열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연사한 에리오가 소리쳤다.
“놈들이 방벽을 넘어서지 못하게 막아!”
사방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통신 장비로 인해 소대원들에게 정확하게 명령이 하달되었다.
이 괴생명체들은 총탄 수십 발을 얻어맞고도 죽지 않는 엄청난 생명력을 보유했다. 시체로 괴생명체를 이곳으로 유인하지 않았다면? 놈들이 능선을 넘어 기지로 진입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해할 수 없던 명령인 방벽 역시 아주 유효한 방어시설물이 되고 있었다. 놈들이 본능에 충실한 괴물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위이이이잉!
카드드드득!
“키에에엑!”
“키에엑!”
건설 로봇들이 방벽 주변에 설치한 날카로운 칼날들이 놈들의 살갗을 사정없이 갈랐다.
초진동 칼날이었기에 어지간한 것들은 닿기만 해도 분쇄되었을 텐데 몸이 어찌나 단단한지 오히려 칼날이 버티지 못하고 망가지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칼날로 갈라진 상처 사이에 총알을 박아넣어!”
“젠장! 고폭철갑탄이 떨어졌어!”
“뭐든 때려 박아!”
두두두두.
아직까진 효과적으로 크락투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뒤편에서 몰려오는 놈들의 숫자를 바라본 에리오는 표정이 잔뜩 굳을 수밖에 없었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상부에서 행성을 조사했을 때 생명체 반응이 거의 없었던 행성 아니었던가?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6. 이해할 수 없는 명령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