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53
50. 악전고투 (2) >
50.
나노슈트를 걸친 군인들이 바삐 뭔가를 설치하고 있었다. 나노슈트는 스펙터 교육을 이수해야만 안전하게 착용할 수 있는 방어구다. 따라서 저들은 모두 스펙터였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스펙터 한 명이 망원경을 들어 저 멀리 기지를 바라봤다.
위이잉! 띠딕!
적 기지 곳곳이 처참하게 부서진 것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바이저와 연동된 망원경을 통해 세심하게 기지를 살피던 지휘관은 수하의 보고에 고개를 돌렸다.
“설치 완료했습니다.”
빌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른 여섯 지점 모두 설치되면 그때 일제히 가동한다.”
섣불리 가동하면 적이 순차적으로 대응하게 될 테니 최대한 한꺼번에 가동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알겠습니다.”
빌리는 다시 망원경을 들어 아군이었던 적 기지를 다시 살펴봤다. 이곳은 사령관 브레이든의 기지였다. 브레이든 역시 예상대로 클론 생산에 박차를 가했던 모양이다. 외부의 공격으로 인해 기지가 파괴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폭발이 일어난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크락투의 공격으로 기지가 무너졌다면 기지의 모습은 지금보다도 훨씬 처참한 지경이었을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방어 시설을 비롯한 건물 곳곳에 탄환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마린들이 단체로 미친 게 아니라면 기지를 향해 총을 난사하지는 않았을 터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증거가 되기에 충분했다. 크락투가 라이플을 들고 사격하지는 않았을 테니 당연히 그 주체는 클론 군단일 수밖에 없었다.
빌리는 망원경의 배율을 확대하여 컨트롤 센터를 주도면밀하게 살펴봤다. 당연히 컨트롤 센터 주변에도 전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빌리가 살펴보려는 것은 전투 흔적 따위가 아니었다. 그가 살펴보고자 한 것은 컨트롤 센터의 가동 여부였다. 이는 컨트롤 센터가 활성화되어 있다면 여러 가지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음. 센터가 활성화되어 있군.”
확인을 마친 빌리는 침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센터가 말입니까? 대위님. 그건 브레이든 사령관이 생존해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고 브레이든 사령관이 초인공지능을 인계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정황을 보니 그건 아닐 거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해킹 모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브레이든은 본진 제외, 총 일곱 곳의 확장기지를 건설했다. 그러니까 컨트롤 센터 하나에 컨트롤 타워가 일곱 개라는 소리였다. 나머지 여섯 곳의 기지 상황도 아마 이곳과 비슷할 것이다.
이한의 명령을 받은 빌리는 400명의 스펙터를 일곱 곳으로 분산하여 해킹 모듈 설치를 수행하도록 했다.
브레이든 기지 주변에 도착한 빌리는 다시 56명 정도의 스펙터들을 타워의 숫자대로 일곱 곳으로 분산하여 타워 5km 주변 지역에 해킹 모듈을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빌리와 함께한 일곱 명의 스펙터가 설치한 해킹 모듈 역시 5km 반경을 기점으로 설치했기에 빌리 등은 현재 적 본부로부터 5km가량 떨어진 곳에 은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클론 군단은 이미 기갑병기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초인공지능에 대한 권한은 넘기지 않았을지라도 인공지능에 대한 권한은 클론 군단에게 넘긴 것이 분명할 테니 그런 상황이라면 아군의 해킹에 간섭하기 어려울 겁니다.”
빌리가 미미하게 고개를 흔들며 미간을 좁혔다.
“사령관들을 너무 믿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초인공지능의 권한을 인계하도록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위협해 단순히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든 것이라면?”
“서… 설마? 저들은 유니온의 사령관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자 빌리가 굳은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초인공지능 휘하에 놓이지 않은 인공지능이라면 해킹 등을 통해 얼마든지 탈취할 수 있다는 건 마린들도 아는 사실이다. 사령관이 인공지능을 인계했다손 치더라도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다는 걸 클론 군단이라고 모를 리가 없어. 본래 그럴 의도가 없었더라도 한 사령관님의 거부로 이들 역시 방법을 달리해 협박과 회유를 통해 협조하게 만든 것이라면?”
사령관이 자발적으로 협조한다면 아군의 해킹이나 초인공지능을 방비할 여러 수단을 갖추는 것과 다름없다. 놈들이 아군과 전투를 상정했다면, 더욱이 집단지성을 지닌 놈들이라면 가용한 모든 정보와 수단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증거가 확연했다.
“설마 대위님은 브레이든 사령관이 유니온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보시는 겁니까?”
“마린들은 다 죽었고 한 사령관 휘하의 우리도 모두 죽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테니 그 사실을 누가 알까? 나도 믿고 싶지 않지만 직접 확인해봐.”
빌리는 바이저를 쓸었고 그러자 빌리가 확인한 정보가 부하에게 전달되었다.
“이… 이럴 수가?”
확장기지 전부가 브레이든의 초인공지능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건 둘 중 하나다. 브레이든이 초인공지능을 클론 군단에게 넘겼거나 그들에게 협조 중이거나. 전자는 후자보다도 확률이 훨씬 낮으니 브레이든의 배반은 확실해진 셈이다.
“이거 정말 미친 새끼 아닙니까?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개판이 벌어졌는데! 설마 다른 여섯 기지도?”
“알 수 없다.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새 임무부터 하달한다.”
“말씀하십시오.”
“현실적으로 컨트롤 타워에 해킹 모듈을 직접 설치할 수는 없다. 외부의 공격, 아마도 크락투의 습격을 대비해 확장기지에 병력이 집중된 상황이니 우리 숫자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임무다. 대신 중앙에 위치한 본진은 상대적으로 병력의 숫자가 허술하다.”
“그러니까 대위님 말씀은?”
빌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각 위치에 설치된 해킹 모듈을 작동할 인원 한 명씩 총 일곱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 인원은 전부 본진으로 잠입. 사령관을 사살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임무에 성공해야 한다. 다시 말한다. 사령관 구출 호위 작전이 아니다. 그럴 만한 여력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사살이다. 알겠나?”
나머지 여섯 기지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는 모른다. 자신이 맞닥뜨린 것처럼 배반한 사령관이 있을 수도 있고 원래 예상대로 사령관이 사망해 클론 군단이 인공지능을 조작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해킹 모듈을 설치하고 작동하는 일은 필히 수행되어야만 한다.
적의 인공지능을 무용지물로 만들어야 향후 이어질 핵 공격 역시 수월하게 이어질 테니까.
“알겠습니다.”
*
이한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을 주시함과 동시에 유니온의 기지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한의 기지를 중심으로 두고 일곱 기지가 원을 그리듯이 포진하고 있었는데 각 기지의 거리는 평균 300km정도는 되었다. 시속 80km로 달릴 경우 서너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뜻이다.
위치는 얼추 이한의 기지에서 12시 방향 잭 스나이더 기지를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2시 브레이든, 4시 카일, 6시 저스틴, 8시 조수아, 10시 앤드류, 11시 제프리 순이었다.
현재 이한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중앙에 위치해 있어 주변 어디로도 파병하기엔 좋았지만 역으로 어디서든 공격받기 수월하다는 소리였기에 적의 물량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 올리펀트 200기가 아군 기지로 향하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머잖아 적 기갑부대 포격 범위 안에 놓이게 됩니다. 아쉬운 대로 작전을 시행하셔야 합니다.』
이한은 굳은 표정으로 브레이든 기지 방면에서 연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머지 여섯 기지에서는 스펙터들이 성공적으로 해킹 모듈을 설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빌리가 향한 브레이든 기지에서는 여전히 연락이 오지 않고 있었다.
『사령관님. 머잖아 아군의 전선이 무너집니다. 그전에 적의 기갑병기를 무력화시켜야 합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그러나 이한은 대답없이 브레이든의 기지만 바라봤다.
『사령관님.』
워가 다시 재촉하려는 그때 기다리던 빌리의 연락이 드디어 도착했다. 전투 소음이 가득한 가운데 빌리의 다급한 음성이 전해졌다.
“뭐?”
이한이 반문했지만 이미 통신은 끊어졌다.
『사령관님! 브레이든 기지 방면의 모든 해킹 모듈이 실행되었습니다. 다른 지점에 대기 중인 스펙터에게 해킹 모듈 실행을 지시합니다.』
이윽고 나머지 여섯 기지에 설치된 해킹 모듈 역시 실행되었다.
『해킹 모듈 범위에 있는 모든 인공지능에 대한 해킹을 실시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워가 해킹에 들어가는 순간에 맞춰 아군의 방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클론 마린이 무너진 방벽을 뚫고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극심한 병력 차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버틴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기지가 이대로 무너지는가 싶은 절체절명의 순간 워의 힘찬 보고가 이어졌다.
『적 기갑병기 200기에 대한 권한을 획득합니다. 아군의 기갑병기 250기와 함께 일제포격을 가해 클론 군단을 말소하겠습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강력한 포격이 앞뒤로 퍼부어지자 강력한 클론 마린도 버티지 못하고 모조리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지 주변의 클론 마린을 말소시키고 있을 때 워의 보고가 다시 이어졌다.
『헤라클레스 생산을 완료합니다.』
공장에서 15m에 달하는 거대 기갑병기 두 기가 일제히 출하되더니 엄청난 속도로 기지에 침투한 클론 마린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퉁퉁퉁퉁!
자이언트도 강한 병기였지만 헤라클레스는 그런 자이언트를 업그레이드하고 거기에 올리펀트의 포격 능력까지 더한 병기였다. 방어력이나 이동 속도 및 작전 능력까지 모든 부분에서 탁월했다.
헤라클레스는 기지를 종횡무진하며 마린들과 함께 클론 마린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클론 군단은 기갑병을 잃어버렸기 때문인지 역으로 모조리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한은 그제야 다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워에게 급히 말했다.
“핵미사일은?”
『지금 막 생산 완료되었습니다. 각 미사일의 폭발 반경은 10km로 축소시켰습니다만 유니온의 일곱 기지를 쓸어버리기엔 충분한 위력입니다. 클론 군단은 아군의 핵미사일을 막을 군사 시설이 전무합니다.』
일곱기지에 각 다섯 개의 타워만 있어도 35개의 인공지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깔끔하게 포기해야 한다.
아주 잠깐 아군이 우위를 차지했을 뿐이다. 적의 생산기지가 남아있는 한 이 우위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더욱이 클론 군단은 유니온 기지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뉴트럴과 엠파이어의 상황은 유니온보다 더 심각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한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명령을 내렸다.
“유니온의 일곱 기지를 향해 핵미사일 발사.”
『정말 승인하시겠습니까?』
“승인한다!”
『유니온의 일곱 기지를 향해 핵미사일 발사합니다.』
이윽고 제법 거대한 미사일 일곱 발이 이한의 기지에서 발출되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이한은 긴장한 표정으로 화면을 주시했다. 발사했다고 끝이 아니다. 발사한 저 미사일이 정확하게 목표지점을 타격해야만 끝나는 거다.
이한의 마음을 느꼈던 걸까? 오매불망 기다렸던 핵미사일은 쏜살같이 날아가 유니온의 기지 일곱 곳을 순식간에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커다란 버섯구름이 주변에서 일제히 치솟는 광경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파괴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까? 뭐 어쨌든 내가 폭사한 건 아니니까.
이한은 무심한 표정과 안도하는 마음으로 핵미사일의 위력을 지켜봤다.
해킹 모듈을 작동한 후에는 즉시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였기에 스펙터 대다수가 이미 몸을 피신했을 것이다.
『일곱 기지 모두 말살되었습니다. 아울러 클론 군단이 빠르게 후퇴합니다.』
『사령관님. 축하드립니다. 승전하셨습니다.』
이한은 피곤한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개판이 된 기지를 바라봤다. 승전에 대한 기쁨을 누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크락투라도 쳐들어오면 끝장이로군.”
이한은 지친 음성으로 워에게 말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피해 상황 보고하고 기지부터 즉시 안정화시켜!”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이한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눈을 잠시 감았다.
“후우우.”
고개를 들고 한숨을 내쉴 때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사령관님. 클론 군단으로부터 통신입니다.』
이한은 천천히 눈을 뜨고 고개만 까닥였다.
화면에 마린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한은 마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뭐? 이제 좀 쫄리냐? 이참에 나도 제안 하나 하지. 각 잡고 엎드려서 빌면 살려는 줄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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