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57
54. 목숨을 걸다 (3) >
54.
“이동한다! 각 지점을 향해 최대속도로 이동한다!”
스틸아머의 이동속도를 계산하면 빠르면 2~3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거의 시속 40km에 육박하는 속도로 이동하는 셈이니 2~3시간을 계속해서 달린다면 아머의 도움이 있어도 기진맥진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체력을 재분배하거나 아낄 때가 아니다. 이한 등의 임무는 적 기지를 확인하는 것에 있지 적을 쳐부수는 것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을 쳐부수는 것은 워를 비롯한 지원병력이 할 것이다.
따라서 마린들과 이한은 정신없이 목표지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100km 내에서도 예상지점이 4곳은 되었기에 네 지점을 향해 병력이 다시 100명씩 갈라졌다.
15m에 달하는 헤라클레스 2기가 짓쳐 드는 크락투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원거리의 적은 중화기와 포탄을 이용해 크락투의 온몸을 찢어발겼고 근접한 적은 거대한 발로 짓밟고 손에 들린 초진동톱으로 무참하게 썰어버렸다.
쿵쿵!
위이이잉!
키에엑!
육중한 몸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헤라클레스 움직이는 곳곳마다 크락투의 피와 살점이 흩뿌려졌다. 그렇게 헤라클레스의 공격 한 번에 수십 마리 그 이상씩 죽어 나갔지만, 놈들은 계속해서 몰려왔기에 헤라클레스의 방어선이 금세 뚫리고 말았다. 강력하긴 했으나 그 숫자는 고작 2기뿐이었으니까.
자이언트도 EMP탄으로 보이는 에너지탄에 멈춰버린 상황이니 무의미한 가정이긴 하나 헤라클레스 2기가 아니라 올리펀트 100대였다면 더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신처럼 싸우는 수문장 헤라클레스를 통과한 크락투가 개떼처럼 달려들자 스페이스 마린들 역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나갔다. 그야말로 임무에 목숨을 걸었다.
이한은 스페이스 마린들에게 통신을 전했다.
“인류를 위해!는 X까라 그러고 우리 동료들을 죽인 저 새끼들에게 죽기 전에 빅엿이라도 좀 먹여보자!”
“씨벌! 내 목숨 지키기도 버거워! 알아서들 살아남아! 죽더라도 임무는 반드시 성공시키고!”
“뭐 씨벌? 이 임무 끝나면 넌 바로 영창이다!”
스페이스 마린은 직업의 특성상 거친 사내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터져 나오는 말들도 상당히 거칠었다. 그렇게 저마다 한 마디씩 남기던 마린들은 이내 곧 한 이드라실의 ‘한’을 구호처럼 외치더니 사지가 분명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달려나갔다.
저들이 내뱉는 ‘한’이라는 이름에는 원망과 기대, 절망과 희망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맞다. 그런 자리다. 본디 지휘관이라는 것은.
마린들과 실없는 대화로 잠시 피식거리던 이한은 웃음기를 지우고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질주했다. 그래 오늘 우리는 죽는다. 어쩌면 모두다.
하지만 네놈들도 결코 무사하진 못할 거다.
인류를 위한 고귀한 임무이니 뭐 비장하냐고? 전혀! 아주 엿같은 기분이다. 이런 기분으로 대체 영웅짓은 어떻게 하나 몰라. 정말 씨벌 한이다. 씨벌 한 이드라실 같으니라고.
*
두두두두!
두두두!
마린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라이플을 난사하고 있었다.
이한은 일언반구도 없이 다시 달렸다. 그러면서 이한은 나노슈트를 이용해 몸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단지 광학적인 부분만 변경된 것이라 인간에 비할 수 없이 예민한 감각을 가진 크락투를 속이긴 어려울 것이다. 물론 체온이나 여러 부분 역시 은폐할 수 있도록 나노입자가 도와주긴 하지만 근접한 거리에선 인간도 이물감을 느낄 수 있는데 크락투가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어쨌든 적나라하게 눈에 보이는 것보다야 몸을 숨기기 수월할 것이다. 이한은 투명화 상태로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크아악!”
콰직! 콰지직!
“크악!”
이한을 보내고 남은 마린들의 뼈와 살점이 으스러지는 소음이 처참하게 울려 퍼졌다.
이한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렇게 마린들의 희생을 뒤로 하고 한참 달리던 이한은 7km 남은 지점에서 구덩이를 발견했다. 바이저로 확인해보니 실로 거대한 구덩이었다. 바이저로 계산해보니 지름이 500m는 되는 것 같았다.
주변의 땅이 용암이 끓은 것처럼 녹아있는 흔적이라든지 크락투들이 어떻게든 막으려고 애쓰는 정황을 고려하면 저곳이 놈들의 대공포대가 확실한 것 같았다.
더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여유는 없었다.
마린들이 향한 다른 세 예상지점에 비슷한 구덩이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여기까지다. 이곳을 폭격하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이다.
‘어디 빅엿 좀 먹어봐라!’
무엇보다 다른 예상지점에서 신호장치가 활성화되었다면 이한 역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호장치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건 모두 전멸했거나 신호장치가 말썽이거나 예상지점이 아니라는 뜻일 터. 현재로선 아무래도 상관없다. 자신이 이곳에서 신호장치를 활성화시킬 생각이니까.
설혹 신호장치가 여러 번 활성화되더라도 어차피 코어 주포는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
이한은 부디 워가 코어 주포를 완성했기를 기원하면서 구덩이에 신호장치를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공중으로 발사해도 되겠지만 적절한 신호를 발생시키기 전에 격추될 수 있으니 지금보다 더 가까운 거리까지 이동할 필요가 있었다.
이 일로 크락투에게 다시 발각되겠지만 상관없다. 지금 이 목숨은 내 목숨이 아니라 모두의 목숨이다.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죽어간 마린들의 목숨이다.
다시 이동하려는 순간 이한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것을 발견했다.
‘저… 저게 뭐야?’
크아아아아악!
지름이 500m인 그곳에서 엄청난 덩치의 애벌레 같은 게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 외형은 너무나 끔찍하고 징그러웠기에 비교한 애벌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지경이었다.
놈은 기괴한 괴성을 지르며 수많은 발을 이용해 꿈틀거리며 한참이나 기어 올라왔는데 그 길이가 600m는 되는 것 같았다. 괴성을 지르는 입에는 기묘한 에너지가 넘실거렸는데 아무래도 놈이 함대를 가루로 만들어버린 원흉 같았다.
거대한 구덩이에서 올라온 놈은 꿈틀거리며 이한이 위치한 방향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주변의 땅이 물이 끓는 것처럼 들끓더니 엄청난 숫자의 크락투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키에에엑!
키에엑!
심지어 그 숫자는 점점 더 많아졌다.
정황을 보아하니 피신하는 것이 분명했다. 지하로도 이동할 수 있는 놈들이 왜 굳이 지상으로 이동하는지 모르겠지만 지상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었겠지. 놈들의 자세한 사정까진 알 필요가 없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활용할 건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이한은 급히 놈을 따라 이동하면서 바이저로 놈의 정보에 대해 수집했다.
어지간한 공격은 놈에게 통용되지도 않을 것이다. 놈의 입에서 넘실거리는 기묘한 에너지가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초자원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초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놈이라면 핵미사일은 놈의 몸에 닿지 못하고 공중에서 터져버릴 것이다. 놈이 요격해버릴 테니까.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어쩌면 핵 공격조차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일단 이렇게 거대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였다.
‘이것보다도 거대한 놈이 존재하는 건 아니겠지?’
더 거대한 놈이 존재하든 아니든 그건 나중 문제였다.
‘코어 주포만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다. 단 주포의 반경은 1km로 상대적으로 협소해. 아무리 워라고 해도 그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주포를 건설하지는 못했을 거다. 1km도 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게다가 놈은 움직이고 있고.’
기회는 한 번뿐이다.
이한은 즉시 놈을 향해 내달렸다. 지속된 나노슈트 사용으로 몸 곳곳이 괴사하는 기분이었지만 이한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한 이드라실에 대해 연신 속으로 욕설을 뱉을 뿐이었다.
‘더 가까운 곳에서 신호장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가능하다면 놈의 이동방향에 맞춰서!’
바이저를 통해 놈의 이동경로를 계산한 이한은 그곳에 먼저 다다르고자 빠르게 달렸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투명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드드득!
하지만 가까운 곳에 위치한 크락투의 감각까지는 속일 수 없었다. 이한은 양손에 초진동검을 들고 짓쳐 드는 크락투들의 머리통을 깔끔하게 날려버렸다.
촤아아악!
촤악!
털썩! 털썩!
놈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라이플을 쓰지 않는 이유는 총성 때문도 있지만 총알을 모두 소모한지 오래였기 때문에 아예 들고 있지도 않았다.
*
두두두두!
두두!
“씨발! 새끼들아 좀 죽어라!”
스펙터들은 사방에 짓쳐 드는 클론 마린을 향해 정신없이 사격을 가했다.
“전송은?”
“방해전파 구역을 벗어나야 해!”
“가! 가서 전송해! 임무라도 달성하고 죽어야 덜 억울하지! 젠장!”
“어서 가!”
“제길!”
한 스펙터가 근육을 강화해 그곳을 빠르게 벗어났다. 클론 마린들이 그를 추격하고자 했지만, 초진동검을 뽑아 든 스펙터가 뒤따르려는 클론 마린의 허리를 베어내며 소리쳤다.
“어딜!”
그러자 허리가 잘린 클론이나 그렇지 않은 클론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너희는 모두 죽게 될 것이다.”
“너희는 모두 죽게 될 것이다.”
클론 마린들이 일제히 말하는 광경은 매우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스펙터들은 악에 받친 소리로 외쳤다.
“나도 알아! 이 새끼들아!”
고함을 지르며 라이플을 사격하려고 했지만 총알이 바닥났는지 요란한 총성대신 허무한 빈총 소리만 울려 퍼졌다.
철컥! 철컥!
“젠장! 총알! 오냐! 덤벼라!”
위이이잉!
스펙터는 라이플을 버리고 초진동검을 뽑아들었다. 총알이 떨어진 스펙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초진동검을 뽑아들고 클론 마린을 향해 내달렸다.
“하지만 너희도 뒈질 거다!”
“커허헉!”
“으아아악!”
얼마간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던 스펙터들은 날카롭게 변형된 클론 마린의 손에 머리통이 박살나거나 심장이 뽑히는 등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
허벅지 근육이 터질 것만 같다. 아니 이미 수차례 터졌다. 나노입자가 그것을 치유하고 지금껏 버티게 했을 뿐이다.
이한은 옆에서 달려드는 크락투를 다시금 초진동검으로 갈라버리고 바람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놈의 이동경로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놈과의 거리는 대략 2km 정도. 이한은 즉시 바닥에 신호장치를 박아넣었다.
푸슛!
콰직!
파스스스.
그리고 투명화를 해제했다. 은폐에 활용되는 나노 입자 역시 전투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이 시점에서 은폐하는 게 의미없는 일이기도 했고.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끔찍한 괴성을 질러대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크락투들이 자신을 향해 덮쳐오고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 심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뭐 이 새끼들아! 덤벼봐!”
그렇다고 놈들을 멍하니 보고 있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이한은 두려움을 잊고자 고함을 지르며 즉시 몸을 돌려 도망쳤다.
크르르르르!
매우 낮은 저음이 온 지면을 강타하자 다시 땅이 들끓었다. 전에는 초거대 크락투 주변으로 들끓었다면 이번에는 이한 주변으로 땅이 들끓고 있었다. 이게 무슨 현상인지 이한이 모를 리가 없었다.
“제길!”
이한은 자신을 향해 튀어 오른 크락투를 보지도 않고 초진동검으로 베어내며 달리고 또 달렸다. 초진동검에 반으로 갈라진 크락투는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다른 크락투에게 갈가리 찢어졌다. 순식간에 모조리 뜯어 먹은 것이다.
콰드득! 콰득!
뒤편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음에 이한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젠장! 무슨 아귀군단도 아니고.’
저 모습을 보면 아마 아귀도 도망칠 것이다.
‘그나저나 신호장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할 텐데!’
크락투로 이뤄진 거대한 해일이 이한을 덮쳐오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그때 이한 주변으로 에너지탄이 터졌다. 간신히 몸을 피한 이한은 에너지탄에 휩쓸린 크락투들이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것을 떠올리고 냅다 고함을 질렀다.
“이 새끼야! 작작 좀 해라! 나는 혼자다! 포격까진 너무한 거. 아니. 큭!”
알아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고함이라도 지르지 않으면 이 지독한 상황에 마음부터 함몰될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소리를 지르는 경향이 컸다.
이한은 다시 옆에서 짓쳐 든 크락투의 아가리를 다시 초진동검으로 절단했다.
크르르르르.
그런 웬걸? 이한은 저 거대한 놈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대한 애벌레 새끼 주제에. 네놈들은 오늘 모두 나한테 뒈질 거다! 이 벌레 새끼들아!”
크르릉!
역시나 알아듣는 기색이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크락투의 공격이 더욱 사나워진 기분이다. 지금은 어떻게 버티고 있지만, 저 크락투의 파도에 따라잡히면 오체분시가 아니라 억체분시가 되고도 남을 거다.
이한은 바이저에 뜬 시간이 줄어들기만을 바라며 달리고 또 달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숫자들이 바이저 위에 주르륵 늘어섰다.
0으로 이뤄진 글자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이한은 미친 듯이 초진동검을 휘두르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씨발! 워! 이 새끼야! 날려버려! 날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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