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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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서바이벌.
코어 주포를 사용한 후 핵미사일이 발사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우주상에 위험한 개체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크락투의 대공포가 앞서 여러 함대들과 마찬가지로 컨트롤 센터를 갈가리 찢어버릴 테니까. 그러니 한꺼번에 모든 일을 끝마치는 것이 안전하고 효율적이었다.
그러니 코어 주포를 발사하기 전에 핵미사일이 준비되었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통신도 연결되지 않는 상황에 무슨 수로 확인한단 말인가? 아니 핵미사일이 모두 준비되지 않았다고 해도 무조건 주포의 포격을 요청해야 할 상황이다.
이미 10시간이나 넘는 시간이 지났고 이 거대한 애벌레 새끼는 지금 안 잡으면 어디론가 쏙하고 숨어버릴 테니까!
“날려! 이 새끼야! 어서어어어!!”
통신도 연결되지 않은 상황이니 고함을 지금보다 백배나 큰소리로 외친다고 한들 워가 들을 수나 있을까?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그렇지가 않다. 더욱이 절체절명의 죽을 위기에 몰린 상황에 이성적으로 생각할 사람이 뭐 얼마나 되겠는가?
이한은 정신없이 초진동검을 휘둘러 자신의 다리나 어깨 등을 베어 물려는 크락투를 베어냈다.
가상현실에서 얻은 뭐더라 진천마신공?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효율적으로 검을 휘두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욕설을 지껄일 것도 없이 억체분시되어 크락투 뱃속에 들어갔을 것이고.
“워! 이 씨······.”
이한은 또다시 쇄도해 오는 크락투를 베어버리고 다시 욕설을 내뱉으려다가 뒤편 하늘 높은 곳에서 번쩍이는 빛을 발견했다.
번개같이 고개를 앞으로 돌린 이한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있는 힘껏 몸을 공중에 띄웠다.
번쩍!
콰과과과광!
엄청난 섬광이 이한의 뒤편에서 터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600m에 이르던 애벌레인지 굼벵이인지 알 수 없는 놈의 단단한 몸 전체가 수많은 실금과 함께 쩍쩍 갈라졌다.
실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지더니 이내 곧 거대한 폭발로 화해 모든 것을 휩쓸어버렸다.
당연히 이한은 그것을 지켜볼 정신이 없었다. 코어 주포의 거대한 빛줄기가 땅에 떨어졌을 때의 충격파로 이미 저만치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효 반경이 1km였으니 2km 떨어진 지역이라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하면 큰일 난다. 그 유효 반경에 후폭풍과 같은 여러 간접피해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한은 주포의 빛줄기를 확인하자마자 몸을 공중에 띄운 것이다. 충격파로부터 대비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일단 양손에 들고 있던 초진동검은 몸을 띄우기 전에 달려들던 크락투들의 머리통에 던져서 아주 예쁘게 꽂아주었다.
폭발의 여파에 이리저리 구르다가 들고 있던 초진동검에 몸이 썰리는 아주 엿같은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키에에엑!
키에엑!
코어 주포는 초거대 크락투는 물론이거니와 그 주변의 모든 크락투를 일거에 쓸어버렸다.
이한은 정신이 없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미친놈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모조리 뒈져라! 이 씨벌 놈들아! 크하하하하! 다 뒈져버려!”
콰아아아앙!
하지만 초거대 크락투가 일으킨 2차 폭발 구름이 자신을 향해 빠르게 덮쳐오는 것을 발견하자 이한은 웃음을 멈추고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 젠장!”
날아가는 속도에 비해 폭발 구름이 다가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휩싸이지 않으려면 다시 추진력을 얻어야 한다. 이한은 빙글빙글 도는 와중에도 지면을 확인하고 발끝을 내밀었다. 그 찰나를 포착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에 가깝지만 진천마신공은 지금도 활용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발끝이 닿지 않았다.
‘제길! 제길!’
그런 이한의 눈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크락투가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스. 네 희생은 내가 잊지 않으마. 너는 좋은 크락투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상태야 어떻든 간에 이한은 즉시 놈의 머리통을 발로 밟고 몸을 앞으로 튕겼다.
몸을 튕길 때 나노슈트까지 활용했기 때문에 상당한 속도로 앞으로 튕겨 나갔다. 당연히 지지대가 된 크락투는 괴성과 함께 뒤편으로 날아가 폭발 구름에 휩싸여버렸다.
하지만 폭발 구름은 그런 이한보다도 빠를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한은 욕설을 뱉으며 급히 몸을 웅크렸다.
*
폭파가 일어나기 불과 1분 전 기지에서 잭 스나이더는 다급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올리펀트는? 올리펀트 몇 기나 남았어?”
『200기가 전부입니다.』
“대크락투용 가스는?”
『가스를 탑재한 올리펀트는 전방배치한 250기의 올리펀트가 전부였습니다. 모든 가스를 소진했음은 물론 전방배치한 올리펀트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한 이드라실. 정말 유능한 사령관이다. 올리펀트에게 신경가스까지 탑재해두었을 줄이야. 그가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방어가 뚫렸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야 별 의미없는 소리지만.
잭 스나이더는 굳은 표정으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앞으로 길어야 30분입니다.』
터엉!
“제길!”
잭 스나이더는 상황판을 내려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뭐 이런 거지같은 행성이 다 있단 말인가?
『사령관님! 다량의 핵미사일 발사가 감지되었습니다. 위성 궤도의 한 사령관의 센터에서 발사된 미사일입니다.』
“핵미사일이라고? 위치! 위치 확인해!”
『확인합니다.』
*
슈우우웅!
콰아앙!
거대한 버섯구름이 타카스 행성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그 숫자가 무려 25곳이었다.
이한의 스펙터들이 기어코 뉴트럴과 엠파이어 기지 위치를 전송한 것이다. 저들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모두 죽었을 것이다. 이로써 유니온에 이어 뉴트럴과 엠파이어의 모든 기지가 파괴되었다. 클론 군단은 당연히 이 사실에 분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한 이드라실!”
“한 이드라실!”
모든 기지가 핵 공격으로 박살나는 순간 클론 군단 전체에서 한 이드라실이 울려 퍼졌다. 당연히 그 소리에는 분노와 원한, 지독한 살의가 담겨있었다.
*
『25곳의 거의 모든 기지가 파괴되었습니다. 아울러 코어 주포 역시 발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크락투의 대공포 한 곳을 파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군 기지를 공격하던 크락투들이 빠르게 후퇴하고 있습니다. 이를 미루어 짐작할 때 한 이드라실 사령관이 세운 모든 작전이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친!”
잭 스나이더는 멍한 표정으로 초인공지능의 보고를 들었다.
불가능한 임무였다. 적 병력에 비하면 한줌도 되지 않는 병력과 전력을 가지고 그 모든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단 말인가? 이게 신임 사령관의 공적이라고?
파격적인 승진이라고 생각했고 운 좋게 사령관에 오른 애송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한 이드라실은 자신이 만난 어떤 사령관보다도 노련했다.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타카스 행성의 위험을 더 알리기 위해 더 강력하게 어필했다면 윗사람들의 반감을 사서 제대로 된 지원도 얻지 못하고 타카스 행성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을 것이다.
한 이드라실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꿔먹을 인사들이 아니었으니까. 당장 자신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가? 그러니 적절하고 효율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본인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런 미친 행성인 것을 알고도 냉정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다른 자들이 모두 헛짓거리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면서도?
아니었다. 신임 사령관을 무시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백번 양보해 자신이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다손 치더라도 자신이 신임 사령관일 때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건 너무나 명확했다.
그때 초인공지능의 보고가 다시 이어졌다.
『사령관님! 두 개의 강력한 에너지가 한 사령관의 센터를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크락투의 대공포로 보입니다.』
잭 스나이더는 말없이 이어질 보고를 기다렸다.
『한 사령관 센터의 신호가 사라졌습니다. 파괴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혹시 유니온 측에 통신하는 것에 성공했던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무엇보다 지원요청을 하지 않았더라도 머잖아 유니온의 정찰함이 도착할 겁니다.』
“다행이군.”
잭 스나이더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안타깝군. 유니온의 뛰어난 군인과 사령관이 안타깝게 비명에 갔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군.”
말과 다르게 잭 스나이더의 얼굴엔 비릿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기회다. 이건 더 없는 기회다. 한 이드라실의 공적을 모두 삼키는 건 불가능하지만 죽은 그의 공적을 나눠 갖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든 전투를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무엇보다 그것을 증명할 기록은 초인공지능의 기록이 전부이니 깔끔하게 조작하면 된다. 대조할 기록이 없으니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정찰함이 도착하면 한 사령관의 사망 소식과 함께 아군의 공적에 대해 자세히 알리도록.”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이미 죽었을 확률이 높지만, 살아있어도 상관없다. 초인공지능과 모든 병력을 잃은 사령관 따위 죽이면 될 일 아닌가? 그렇게만 되면 그가 세운 공적은 곧 자신의 길을 탄탄하게 깔아주는 화려한 공적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좋군. 더할 나위 없이 좋아. 하하하. 자네가 세운 공적은 내가 잘 사용하도록 하지. 인류를 위해! 유니온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자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네. 하하하! 으하하하하!”
*
바스락!
흙더미를 뚫고 튀어나온 손이 있었다. 손가락이 꿈틀거림과 동시에 주변의 흙을 긁어모으는가 싶더니 이윽고 머리와 다른 손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파스스슥!
곳곳이 파손되긴 했지만 나노슈트를 입은 걸 보니 스펙터였다. 몸을 흙더미 속에서 끄집어낸 스펙터는 이리저리 움직여 몸 전체를 잔해 속에서 힘겹게 끄집어냈다.
“끄으응! 그래도 사지는 멀쩡하군.”
벌러덩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던 이한은 숨을 들이쉬며 살아있음을 만끽했다.
“후우. 진짜 뒈질 뻔했다.”
물론 위기의 연속이었던지라 이제 와 별로 새로울 것도 없지만 폭발 구름에 휩싸였을 때 폭발의 여파로 날아오는 날카로운 잔해들은 흉악한 흉기나 다름없었다. 정말 그걸 어떻게 막고 피해냈는지 스스로도 불가사의할 지경이다.
무공도 사용하고 마법도 사용하고 초능력도 일정 부분 사용한 것 같다. 암튼 젖먹던 힘까지 다해 생존을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결국 살아남았다. 진이 다 빠져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은 상황이지만 생존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워. 워 이 새끼야. 워! 큭큭 역시 폭발했나?”
폭발 구름에 휩싸였을 때 워와 통신이 잠깐 이어졌었다. 모든 기지를 폭파한다고 했던가? 성공했다고 했던가? 어쨌든 뭐 그런 내용이었다. 예상대로 크락투의 대공포에 개작살이 난 모양이지만.
어차피 센터에 있는 것은 일종의 백업 장치이자 초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위한 장치일 뿐 본체는 자신과 연결되어 있어서 센터가 박살 났다고 워가 사라지진 않는다. 자신이 살아있는 한 백업 장치를 만들고 다시 센터를 건설하면 워를 활용할 수 있다.
“큭큭큭. 빅엿 맛이 어떠냐? 이 씨벌 놈들아! 크크크큭!”
웃음을 터트리고 있지만, 이한의 입매는 비틀려 있었다. 그 빅엿을 먹이려고 다 죽었다. 아마 다 죽었을 거다. 몇몇은 살아있을 수 있겠지만 글쎄 기지까지 귀환하려면 장갑차를 이용해도 10시간은 넘게 걸리는데 무슨 수로?
클론 군단이나 크락투가 와! 대단한 영웅이시네요. 우리가 감탄했으니 길을 비켜 드릴게요. 금의환향하도록 하세요. 이 지랄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당장 머리부터 발끝까지 씹어먹으려고 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아니 씹어먹겠지. 잘근잘근.
“크응!”
이한은 땅을 짚고 상체를 간신히 일으켰다. 온몸이 망치로 두들겨 맞은 기분이다. 아니 실제로 망치보다 더한 것들로 두들겨 맞았다.
단말기를 확인한 이한은 썩은 표정을 지었다.
“나노 입자도 바닥이네. 제길.”
어지간한 상처는 나노 입자가 치료했을 것이다. 물론 자신도 마법을 이용해 몸을 치료했다. 그게 아니라면 벌써 뒈졌을 것이다.
그대로 누워서 자고 싶지만 그랬다간 영원히 자게 될 것이다. 크락투 뱃속 탐험은 패키지로 하게 될 테고.
변과 뱃속을 오가는 크락투 뱃속 대탐험! 비용은 걱정마세요. 호갱님 목숨만 내놓으시면 됩니다아~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계속 헛소리가 튀어나오는 걸 보니. 가볍게 머리를 흔들던 이한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무는 대성공이다. 아주 커다란 엿을 쌍으로 먹여줬다. 클론 군단과 크락투 모두에게.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엿같다. 어디를 둘러봐도 생존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러냐 진짜! 임무 성공했으면 끝을 내줘야지 끝을!”
게임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불평을 터트리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불평마저도 소리지를 힘이 없어서 작게 중얼거리는 수준으로 그쳤다.
“제길.”
일단 움직이자. 크락투가 득실거렸던 곳이고 더 몰려올 수도 있으니까. 자신이 살아남은 이상 외곽에 있던 크락투들 역시 살아남았을 것이다.
“내가. 씨버얼! 이렇게. 간단히 죽지 않아! 젠장맞을!”
적과 아군이 모두 놀랄 정도로 탁월한 전공을 세웠음에도 이한의 고난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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