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6
6.
『입구 쪽에 파악된 ‘크락투’의 개체만 40마리입니다.』
확대된 홀로그램에 비친 크락투의 모습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무슨 몰골이 저따위란 말인가? 이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살한 숫자는?”
『30마리 정도 됩니다.』
“방벽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
『최대한 보강했고 지금도 수리하고 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크락투의 지능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본능이 탁월한 개체라 방벽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도 능선을 넘어 기지로 진입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방벽을 제외한 지역의 배리어는 건재합니다만 크락투의 숫자가 지금보다 늘어나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시에라는?”
『통신이 끊어진 후로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탐사를 떠날 당시 시에라 중위가 자율 모듈을 챙겨간 것으로 파악되었기에 부서지지 않은 기갑병을 발견했다면 개별가동시켜서 합류할 수 있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그건 손에 잡히지 않는 가능성일 뿐이야. 지금 당장 가용한 방법이 없고?”
등골이 싸한 것이 느낌이 매우 좋지 않았다.
『이미 대처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용해 방어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의 방법을 원하시는 거라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이미 유니온 측에 기지의 상황을 알렸습니다. 저들의 수송선이 오면 행성을 서둘러 떠나는 것을 추천합니다.』
“병사들은?”
『기지 내에서 사령관님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대로 버티다가 때가 되면 ‘워’ 너를 분리한 장치를 들고 나만 도망쳐라?”
『현실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겁니다. 지금 당장 수송선이 오더라도 아군 모두 퇴각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남아서 크락투를 막아줘야 합니다. 상황이 더 악화하면 수송선이 도착해도 사령관님 역시 탈출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튜토리얼에는 살아남은 시에라가 그 역할을 감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역할을 감당해줄 시에라는 자신의 명령으로 행방불명인 상황이고.
“하. 씨발. 스틸아머. 스틸아머라도 줘봐!”
『추천하지 않습니다. 사령관님께서 가세한다고 전황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시끄럽고 가져와!”
『스틸아머 착용을 위해 지정된 위치에 자리해 주십시오.』
스페이스 마린과 같이 일선에서 싸우기 위해 스틸아머를 착용하려는 게 아니다.
어쨌든 총기류이니 라이플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어려울 게 없겠지만 이곳의 군사훈련도 받지 않았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전투를 치를까?
이건 보험이다. 일종의 보험.
스틸아머는 크락투와의 근접전투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병기다.
‘사용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게임의 설정보다 탁월한 성능을 자랑할 거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게임처럼 변수가 제한된 세계가 아니니까.
‘지금까지는 튜토리얼대로 일이 진행됐다. 하지만 모두 죽고 나만 살아남는 결과가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미 여러 변수가 발생했다.
첫째 자신은 이한이지 한 이드라실이 아니다.
둘째 기지에 남아있어야 할 시에라와 그녀의 소대는 자원탐사를 떠났다가 연락이 끊긴 상황이다.
이 두 사실만 헤아려도 파생될 변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튜토리얼에서 주인공은 죽지 않았으니까 어찌 되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크락투가 기지 내부로 진입한다면······.’
그야말로 극심한 난전이 발생한다.
스페이스 마린도 어지간하면 최우선으로 사령관을 보호하겠지만 과연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순간에도 그럴까? 그런 사람은 결단코 많지 않다.
‘내 목숨은 내가 지켜야 한다.’
컨트롤 센터는 기지 어떤 곳보다 안전하지만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하나 있다. 바로 기갑 병기생산 말이다.
기갑병이 없다고 해도 기본 방어시설이 있으니 컨트롤 센터가 단번에 뚫리지는 않겠지만 크락투가 한 마리라도 센터 내부로 침입한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이때를 대비한 최소한의 수단이 스틸아머였다.
이한이 잠시 머뭇거리자 워가 다시 안내했다.
『스틸아머 착용을 위해 지정된 위치에 자리해 주십시오.』
이한은 다소 떨떠름한 표정으로 홀로그램이 가리키는 장소 위에 섰다.
그러자 주변의 벽이 열리며 부위별로 나눠진 스틸아머와 기계들이 이한 주위를 둘러쌌다.
‘이거 뭔가 오싹한데?’
이한이 긴장한 표정으로 기계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워의 안내가 다시 이어졌다.
『착용이 완료되기 전까지 움직이지 마십시오.』
철컥! 철컥!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리 모양의 구속구가 이한의 사지를 결박했다.
‘무슨 헐크가 아닌 이상에야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은데?’
위이이잉!
차르르륵! 철컥!
이한의 생각이 이어지기 무섭게 스틸아머가 기계음과 함께 빠른 속도로 이한의 몸에 착용 되기 시작했다.
피싯 피슈우우.
『사용자 : 한 이드라실 동기화 중』
『동기화 완료. 완료되었습니다.』
철컥!
쿵! 쿵!
‘오!’
몇 걸음을 옮겨본 이한은 다급한 상황도 잠시 잊어버리고 뭔가 들뜬 마음에 휩싸였다.
‘이거 흡사 아이언맨이 된 기분인데?’
“혹시 가슴에서 광선이 나가는 뭐 그런 아머는 없나?”
『그 광선이 파괴력을 가진 에너지 무기를 뜻하는 거라면 극도로 위험합니다. 강력한 에너지는 그만큼 불안정합니다.』
“불가능하다?”
『가능합니다. 다만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광선이 얼마나 강력한가에 따라 보유하는 에너지양이 결정될 텐데 개인장비라는 점을 고려하면 제한될 수밖에 없으니 그럴 바에는 중화기를 쓰는 편이 더 효율적이고 안전합니다. 중화기의 위력을 넘어서는 에너지양을 아머에 축적한다는 건 강력한 폭탄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긴 보호장비는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 충실한 것이 효율적이겠지. 위험한 물질을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에 위치시킬 이유도 없고. 뭐 토니 스타크는 특별한 경우였으니까······.’
이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때 워의 안내가 이어졌다.
『무기는 라이플이 전부입니다.』
그가 눈을 들어 한쪽을 바라보자 SF스러운 총기가 놓여있었다. 죄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총기들이었다.
‘그래봐야 총이 총이겠지.’
성큼 다가선 그는 적당한 크기의 라이플을 집어 올렸다.
헬멧의 바이저에 문구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한은 아무 생각 없이 글자를 확인하다가 특이점을 발견했다.
‘얼래? 이건 한글도, 영어도 아닌데 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보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하긴 이 상황에 뭔들······.’
아이언맨이든 글자든 간에 애초에 이런 것에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었다.
위이잉 차르륵!
금속으로 이뤄진 라이플의 부품들이 정교하게 맞물리며 사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했다. 다시 버튼을 누르자 휴대하기 편하게끔 축소됐다.
다만 두 경우 모두 사격은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방벽의 내구도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사령관께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라이플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이한은 홀로그램 상황판을 바라봤다.
“그게 뭔데?”
『첫째는 이대로 대기하시다가 상황이 급박해지면 센터와 저를 분리하고 구조를 기다리는 방법입니다.』
이한은 반발심이 올라왔다. 사람보다 인공지능을 우선하라고?
“왜 너를 꼭 분리해야 하는데?”
『유니온이 병력을 급파할 이유가 초인공지능의 보존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초인공지능체는 테라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초인공지능체인 저를 보존하느냐 못하느냐는 사령관님의 생사와 여러모로 밀접하게 연관된 부분입니다.』
대개 센터와 역할이 비슷하나 하위격인 컨트롤 타워의 인공지능을 통해 전투를 수행한다. 튜토리얼에서도 괜히 주인공이 초인공지능을 분리해 탈출한 게 아니다.
‘센터나 타워나 게임에서는 별 차이 없었는데 실제로는 아니라는 소리겠지. 설정 그대로······.’
게임에서 두 시설물은 사실상 디자인의 차이가 전부다.
따라서 주인공의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한 배경설정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미간을 좁히던 이한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두 번째 선택지는?”
『시에라 중위의 귀환을 기다리는 방법입니다.』
이한이 반색하며 되물었다.
“시에라 중위? 생사가 확인됐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연락 두절 전후 상황을 파악하니 적습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생존했을 확률이 높고 시에라 중위가 돌아온다면 기갑병 내지 필요한 자원을 소량이라도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한은 워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두 선택지 모두 내가 살아있어야만 선택 가능한 일이군. 상황이 결정될 때까지 컨트롤 센터를 떠나지 말라는 소리겠지?”
『그렇습니다. 사령관께서 사망하시면 그나마 남아있던 배리어와 방어시설이 먹통이 되는 것은 물론 생존 가능성이 아예 제로가 됩니다.』
‘전선에 나서고 싶은 생각은 나도 없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폭발물 설치는?”
『남아있던 소수의 폭발물은 방벽과 기지 내부에 이미 설치 완료했습니다.』
“놈들은 괴물이다. 주요시설물이나 컨트롤 센터를 우선으로 파괴하는 부류가 아니야. 놈들이 노리는 건 오직 하나, 배를 채울 먹잇감이다. 나 역시 놈들의 먹잇감이고. 그러니 명령을 하달한다.”
미끼로, 그러니까 놈들의 본능을 이용해 놈들을 제어한다.
이한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방벽이 부서지기 전까지 기다리지 말고 적이 최대한 방벽에 몰렸을 때 외부에 깔아놓은 지뢰를 폭발시켜라!”
『너무 위험합니다. 단기적으로 큰 피해는 입힐 수 있겠지만 사령관님의 말씀대로라면 이 행성은 크락투가 끊이지 않고 나타나는 지역입니다. 수송선이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아군의 피해가 있더라도 최대한 전투를 지연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7. 이해할 수 없는 명령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