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62
59. 기원 (2) >
59.
“뉴트럴은 물론이거니와 유니온 역시 아군 함대를 공격할 이유가 없습니다. 설혹 유니온이 공격했다손 치더라도 아군 함대가 통신조차 내보내지 못할 정도로 전력 차가 극심하지 않았습니다.”
“지휘관이 머저리 같은 놈일 수도 있는 노릇이지.”
“타카스 행성 함대의 지휘를 맡은 자는 이반 함장이었습니다. 탁월할 정도로 뛰어난 함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패배를 당할 정도로 어리석은 자도 아닙니다.”
“그래서?”
“돌발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니온의 신임사령관 한 이드라실이 명명한 ‘크락투’라는 괴물의 역습으로 함대가 궤멸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군의 함대뿐만 아니라 유니온과 뉴트럴의 함대까지 모두 사라졌습니다. 모든 정황이 저들 역시 함대를 잃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두 세력이 저들의 함대까지 궤멸시키면서 아군 함대를 궤멸시킨 사실을 감출 이유가 없습니다.”
특수한 상황도 아니고 당연히 득보다 실이 큰 행위다.
“한 이드라실 이자는 어떤 인물이지?”
“타카스의 행성 명칭이 정해지기 전에 행성을 탐사했던 유니온 소속의 장교였습니다. 전임사령관이 그에게 사령관 위를 인계하면서 초인공지능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그간 세운 공적을 확인해보니 야전 지휘관의 역량은 탁월한 편입니다만 어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로 얼떨결에 마스터가 되었으니 사령관으로서의 역량은 부족할 것으로 판단, 지금 당장 예의주시할 인물은 아니라 분류했습니다.”
“그건 자네 판단인가?”
“그렇습니다.”
“내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루퍼스가 그를 만나봤다더군.”
“루퍼스라면?”
에메스토는 눈을 좁히며 가스퍼를 바라봤다.
“유니온에 내가 거론할 만한 루퍼스가 또 있던가?”
그 루퍼스가 애송이 사령관을 주목이라도 한다는 뜻인가? 대체 왜? 초인공지능 마스터가 희귀하긴 하지만 유니온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루퍼스가 그런 신임사령관과 만남을 가지고 그에게 힘을 실어줄 이유가 뭐가 있지?
루퍼스 정도 되는 위치면 그가 별도의 특혜를 베풀지 않아도 그와 만남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명성과 신뢰를 쌓이게 하는 법이다. 자신이 알아본 한 이드라실은 제법 유능하긴 했으나 뒷배경이랄 것도 전혀 없는 그저 일개 장교였을 뿐이다.
“음.”
“타카스로 향한 유니온 소속의 사령관에 포함되기도 했고. 뭐 이건 넘어가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알아들었겠지?”
가스퍼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에메스토에게 대답했다.
“더 깊게 조사해보겠습니다.”
“그래서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아직까진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유니온과 뉴트럴 모두 이 사태의 원인을 타카스 행성으로 여기기 때문에 곧 타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건 발생 후 만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협상 중이란 말인가? 뉴트럴과 유니온이야 그렇다 치지만 일곱 행성의 지배자라는 말이 부끄러울 지경이군. 보아하니 이리저리 확인하느라 정찰함조차 늦게 보낸 모양이야. 이번 임무에 투입된 사령관만 여덟 명으로 알고 있다. 다른 피해는 차치한다고 해도 8기의 초인공지능이 허공으로 날아갔겠어. 쯔쯔. 무슨 일을 이따위로!”
엠파이어는 항성 트라피스트-1의 7개 행성에 항성에 가까운 순서대로 칸, 프로템, 네메시스, 세라크, 하이모스, 벨투, 엘란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테라포밍이 가장 잘 이뤄진 곳은 네 번째, 다섯 번째 행성인 세라크와 하이모스였지만 나머지 다섯 행성 역시 행성의 환경에 따라 적절한 수준으로 차근히 테라포밍되었다.
따라서 현재는 일곱 행성 모두 거주 가능했다.
“송구합니다.”
에메스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가스퍼 자작을 바라봤다.
그는 황제파의 떠오르는 샛별이다. 자신을 견제하던 칼란두를 황제가 전권을 위임한 것은 자신 곁에 붙인 가스퍼 자작을 믿기 때문이며 결국 이 모든 건 가스퍼 자작을 키우기 위한 큰그림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리저리 떠보니 신중하고 영민한 자다. 황제파라고 중용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치열한 전장에서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마음을 정한 에메스토는 가스퍼에게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벨투 함대와 엘란도 함대에게 명령을 하달하라. 목표는 타카스 행성. 내가 저들과 합류하는 즉시 타카스 행성으로 이동한다.”
수도 엔두카에 도착한지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작전 회의나 상세한 정황, 세력 관계나 협약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는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예?”
“필요한 정보는 이동하면서 듣겠다.”
“하지만 전하. 6함대와 7함대를 모두 움직이면 유니온 역시 정규 함대를 움직일 겁니다. 타카스 행성은 뒷전이고 전면전이 발발할 수 있습니다.”
“머저리들에 묻혀있다보니 자작도 머저리가 된 건가? 아니면 원래부터 머저리였던 건가? 어차피 전쟁은 일어날 일이다.”
“음.”
“명령한 대로 수행해라!”
“알겠······.”
콰아아앙!
그때 엄청난 굉음이 울려퍼지며 거대한 도시 전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에메스토는 급히 몸의 균형을 잡으며 가스퍼를 바라봤다.
“이게 무슨 일이지?”
“즉시 확인해보겠습니다!”
*
올리펀트가 벼락을 토해내는 것처럼 끊임없이 포격을 가했다.
쾅쾅쾅!
기지를 향해 쇄도하던 클론 군단은 거대한 생명체가 된 것처럼 포탄을 피해내며 엄청난 속도로 기지를 향해 쇄도했다. 그 숫자는 대략 2만 정도로 보였지만 방어벽도 없었고 올리펀트로 저항한다고는 하나 머잖아 기지가 함락될 것으로 보였다.
잭 스나이더는 벌벌 떨면서 고함을 질렀다.
“레일건! 레일건을 사용해! 어서!”
『레일건을 충전합니다. 마지막 충전입니다. 이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에 잭 스나이더는 버럭 분노를 터트렸다. 마지막 사용이고 나발이고 간에 당장 발사하지 않으면 어차피 사용할 일도 없었다.
“발사해! 발사!”
위이이잉 투우우웅!
레일건의 탄환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며 주변에 닿는 모든 것을 초토화시켰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레일건이 충전되었을 때 이미 병력을 분산시켰기에 큰 피해를 입지도 않았다. 클론 군단은 이한이 상대했을 때보다도 훨씬 기민하고 조직적으로 변해있었다.
『방어벽이 무너졌습니다. 기지로 클론 군단이 침투했습니다.』
“막아! 어떻게든 막으란 말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유니온의 정찰함이 도착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막아!”
위이잉! 드르르릉!
후방에 위치해 있던 올리펀트들이 부서진 방벽으로 다가가 어떻게 균열을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클론 마린은 울리펀트의 두꺼운 장갑을 손으로 짓이기고 뜯어내며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더욱 강화한 개체로 보였다.
잭 스나이더가 있는 센터까지 진입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센터의 방어체계가 맹렬하게 가동했지만 그 역시 잠깐에 불과했다. 센터를 갈가리 찢어버리며 진입한 클론 마린은 이윽고 잭 스나이더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놔라! 이것 놔라! 이 버러지같은 것들이!”
잭 스나이더는 클론 마린에 잡혀 끌려나오며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계속해서 고함을 질렀다.
그때 한 클론 마린이 그의 살점을 날카로운 손으로 잡아뜯었다. 뜯겨나간 살점은 엉덩이 쪽 살점이었다.
쫘아악!
엉덩이 부분의 감각이 덜하다고 해도 어찌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으랴?
“크아아악! 아아악!”
잭 스나이더는 클론 마린에 붙잡혀 사지가 결박된 채로 괴성을 지르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자 다시 다른 엉덩이쪽 살점을 잡아뜯었다.
“아아아아악! 아악! 사… 살려줘! 뭐든! 뭐든 하겠다. 살려줘! 크아아아악!”
그러자 클론 마린의 입이 일제히 열렸다. 각기 다른 목소리는 한데 모여 거대한 울림이 되었다.
“한 이드라실. 한 이드라실은 어디 있나?”
“한 이드라실. 한 이드라실은 어디 있나?”
“몰라! 크아아아악!”
그러자 이번엔 옆구리의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한 이드라실. 한 이드라실은 어디 있나?”
“한 이드라실. 한 이드라실은 어디 있나?”
“모… 몰라! 모른다고 이 새끼들아! 크아아아악!”
*
이한은 10km 지점에서 그 모습을 인상을 찌푸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 새끼들 그새 더 강해졌네. 쯔쯔. 잘가라. 지금 생각하니 내 손으로 안 죽이길 잘했다. 여러모로 말이다.”
잭 스나이더야 어떻게 죽든 별감흥이 없다. 죽어도 싼 놈이다. 다만 내 손으로 죽였다면 기분만 더 더러워졌겠지. 그러니 놈이 죽는 모습이야 무덤덤했다. 그럼에도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건 저 새끼들에 잡히면 내가 저꼴이 될 거란 점 때문이었다.
“한 이드라실!”
“한 이드라실!”
“한 이드라실!”
자신의 이름을 뱉을 때마다 잭 스나이더의 몸이 작살을 맞은 것처럼 펄쩍거렸다. 이미 의식은 저만치 날아간 것으로 보였다. 가여워보일 지경이었다. 쯔쯔. 그러게 이 새끼야 마음 좀 곱게 쓰고 살지.
흠. 그나저나 이거 아무래도 지독한 스토커를 만들어낸 것 같다. 그것도 이 행성에서 살아남고난 다음에 걱정할 문제지만.
물론 이곳에서도 자신을 잭 스나이더처럼 처참하게 죽이거나 자신의 죽음이 확인되지 않는 한 2만의 클론 군단은 미저리처럼 달라붙을 것이다.
하지만 크락투는 몰라도 클론 군단은 자신의 흔적을 뒤쫓아 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일이다.
“어디 네놈들이 이 엿까지 처먹고도 나를 쫓을 수 있는 여력이 있는지 보자고. 그렇다면 내가 인정한다. 근성 하나는.”
이한은 여전히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잭 스나이더를 바이저로 확인했다.
클론 군단이 처참하게 고문을 가하되 죽이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디서 이 모습을 자신이 보고 있다면 지독한 두려움과 공포에 젖어들도록.
역시나 이놈들은 크락투보다도 위험한 놈들이다. 크락투의 포악함에 인간의 잔혹함까지 더해졌다. 이건 가히 괴물 중의 괴물이다.
“그나저나 불쌍해서 못 봐주겠네. 그러니 일말의 자비다. 복수해줬다고 눈물 질질짜지 말고.”
레일건까지 이미 박살난 마당이니 잭 스나이더의 생사야 엿을 날리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딸깍!
이한은 들고 있던 발사장치의 버튼을 살포시 눌러줬다.
슈우우우웅!
그러자 저 멀리 하늘에서 아름다운 폭탄이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름답군. 환상적인 폭발의 미학이야. 네로황제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네놈들의 도시를 불태울 네로황제다. 씨벌 놈들아아아아!!”
“한 이드라시이이이일!!!”
“한 이드라시이이이일!!!”
“한 이드라시이이이일!!!”
“한 이드라시이이이일!!!”
그 아름다운 자태를 이한만 봤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름다운 폭탄의 자태에 클론 군단들도 일제히 합창을 하며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에게 폭발의 미학을 선사한 한 이드라실의 이름을 가사로 삼아서 말이다.
“뭐 이 씨벌놈들아!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 크크크큭!”
계속해서 헛소리를 지껄이며 광소를 터트리던 이한은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급히 몸을 뒤로 피했다.
“아차차!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폭발의 미학도 안전한 곳에서 살펴봐야 아름다운 법이지.”
이윽고 거대한 폭발이 현 잭 스나이더의 기지, 과거 자신의 기지 위에 작렬했다.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버섯구름이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이한은 마련해놓은 은신처로 급히 기어들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와! 내가 이걸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주 다이나믹하네. 아주 판타스틱하고 다이나믹한 일상이야.”
이한은 핵미사일이 터지는 순간 속이 뻥하니 뚫리는 것 같았다.
“이거 잘하면 습관 되겠는데? 큭큭큭! 다 뒈져라! 이 새끼들아 다 뒈져버려! 크하하하하하!”
그런 이한 주변으로 수많은 잔해들이 거센 열풍과 함께 휘몰아치고 있었다. 두려워해야 정상인데 오히려 이한은 미친 듯이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다만 그 광소에는 정말 여러 감정이 함축되어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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