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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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한 사령관이 힘을 숨김.
드르르륵. 드륵!
수송선이 진동하는 대로 몸을 흔들던 이한은 지친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후우우.”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현 상황이 주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유니온 이 씨부럴 것들은 대체 뭐하길래 엠파이어의 정찰함이 도착한 지 한참 뒤에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란 말인가?
‘그래. 일단 살았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이한은 마음을 비우고 당시 크락투가 밀려오던 순간을 상기했다.
*
이리저리 급조한 방책 뒤편에 숨은 마린들이 고함을 지르며 연신 라이플을 갈겼다.
두두두두! 두두!
“전방을 막아!”
“이 새끼들이 왜 갑자기 조직적으로 변하는 거야?”
“막아! 측면에도 막고!”
“후방에서도 밀려온다!”
“젠자아앙!”
두두두두!
철컥 팅팅!
“제길! 총알이 떨어졌습니다!”
“그런 거 일일이 보고하지 마! 새끼야! 초진동검이나 네 X 잡듯이 단단히 움켜쥐고 휘두를 준비나 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 가운데 이한은 마린들의 중앙에서 서서 초진동검을 허공에 날리고 있었다.
‘이게 바로 이기어검이다. 씨발 놈들아아! 이기어검이나 처먹어라!’
무려 10자루나 되는 초진동검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위험한 지경에 몰린 마린들의 목숨을 구해냈다. 다만 그 이상은 이한도 무리였다.
촤아아악!
키에엑!
아가리를 벌린 채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크락투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마린은 고맙다는 인사도 할 새도 없이 다시 총을 갈겼다.
두두두두! 팅팅!
“젠자아앙!”
라이플을 바닥에 집어 던진 마린은 급히 품에서 초진동검을 꺼내 짓쳐 드는 크락투의 머리를 갈랐다.
촤아아악!
달려들던 크락투가 잠시나마 멈칫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 역시 한 사령관의 능력이라는 걸 알았지만 감탄이든 감사든 표현할 여유는 지금도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이한은 코에서 피가 마구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크락투의 몸을 잡아채는 건 초진동검을 날리는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이한은 저 멀리 개떼처럼 몰려오는 크락투들을 바라봤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새끼들은 각개전투를 즐기며 동족의 살점을 뜯어먹는 개떼와 다른 개체라는 것을. 지휘관급 크락투가 다시 주변의 크락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었다. 죽음의 사신이 그 낫을 더욱 날카롭게 갈았다는 뜻이기도 했고.
‘이대로 끝인가?’
이한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계였다. 아니 이미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였다. 당장에라도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릴 것 같았다.
자신이 쓰러지면 마린들도 도륙당하고 결국 정신을 잃은 자신도 살점과 내장이 찢겨나겠지. 한가지 다행스러운 건 그때 자신은 이미 정신을 잃었다는 점이겠지만 끔찍한 고통에 정신을 한 번쯤은 차릴 테니 그건 다행이라 말할 수 없다.
위기가 계속 반복되다 보니 이젠 위기가 일상처럼 평온하다. 아니면 그걸 일상처럼 느낄 정도로 이미 미쳐버린 것일 테지.
그때 하늘 위에서 요란한 굉음과 함께 총성이 크게 울려 퍼졌다.
둥둥둥둥둥! 둥둥둥둥!
그리곤 고폭철갑탄이 하늘 위에서 빗발치듯이 쏟아져 내렸다. 이한 등을 짓쳐 들던 크락투들의 살점이 분수처럼 터져나갔음은 더 설명할 것도 없었다.
하늘 위의 수송선을 슬쩍 바라본 이한은 살았다라는 생각과 함께 바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
깨어보니 이곳 수송선 안이었다. 그리고 이 수송선은 지랄 맞게도 엠파이어의 것이었다. 지랄 맞은 일이지. 겨우 살아남았더니 적군의 포로 신세라. 왜 하필이면 엠파이어란 말인가? 뉴트럴 정도만 되었어도 이렇게까지 황당하진 않았을 것 같다.
다시 한숨을 푸욱 내쉬는데 옆에 앉아있던 빌리가 이한에게 말을 꺼냈다. 아마도 빌리가 정신을 잃은 자신을 부축해 수송선 안에 태웠겠지.
“괜찮으십니까? 사령관님. 제가 누군지는 알아보겠습니까?”
“아니 누군지 모르겠어. 그리고 전혀 안 괜찮아.”
빌리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다가 속삭이듯이 다시 말을 꺼냈다.
“스펙터 2명에 스페이스 마린 93명 전원 생존했습니다. ESP 능력자는 없다고 하더군요.”
이한은 아무 생각 없이 빌리의 말을 듣고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ESP 능력자가 없다는 말에 빌리를 바라봤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 눈이 썩은 것도 아니고 내가 이기어검 날려서 크락투 모가지를 댕강댕강 잘라낸 걸 몰라서 지금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ESP 능력자는 없지만, 다행히 전원 무사합니다.”
빌리의 말에 이한은 입을 벌리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군.”
빌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자신은 ESP 능력자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그러니 감지하지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지금보다 미약한 능력이긴 했지만 어쨌든 ESP 능력자의 요람이라 불리는 그 테라네스에서도 자신이 초능력을 지녔다는 걸 전혀 모르지 않았던가?
빌리의 말은 자신에게 능력을 숨길 것을 주지시켜줌과 동시에 다른 마린들에게도 이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말 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ESP 능력자가 없다는 엠파이어 장교의 보고를 기이하게 들은 건 빌리뿐만 아니라 이한의 능력을 목격한 마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빌리가 구태여 이 일을 이한에게 꺼내는 이유 또한 충분히 짐작했을 것이다.
저들에게 구출받기는 했지만 이곳 역시 적진이니까. 크락투에게서 목숨을 구하게 만든 이한의 능력이라면 최선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베테랑 오브 베테랑인 마린들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 어쨌든 살았습니다.”
빌리의 말에 이한이 이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큭큭큭. 그건 더 두고봐야지.”
“계속 두고보면 어차피 다 죽습니다. 안 죽는 사람도 있답니까?”
“흠.”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랬다.
“그러니 수고하셨습니다.”
빌리의 말에 살아남은 마린들 모두가 가슴에 주먹을 올려 이한에게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그러자 수송선이 흔들리는 소음을 제외하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스틸아머를 주먹으로 치는 소음이 절도있게 울려 퍼졌다.
척!
이한은 가슴에 주먹을 올린 채 자신을 바라보는 마린들을 잠시 둘러본 뒤 이한은 미소를 지우고 굳은 표정으로 왼쪽 가슴에 주먹을 올렸다.
척!
이에 라이플을 들고 이한 등을 경계하던 엠파이어의 병사들은 자연히 이한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살아남은 유니온의 마린들이 진심으로 군례를 표했음을 이들 역시 절절히 느꼈기 때문이다.
*
이한은 초췌한 몰골 그대로 함교에 들어섰다.
먼저 라이플을 든 병사 두 명이 앞장 섰고 뒤에도 두 명이 뒤따랐다.
이한은 저들을 따라 이동하면서도 이들을 쓰러뜨릴 수 있는지 몸상태부터 확인했다. 불가능하지 않았다. 단순히 이 네 명뿐이라면.
이한은 함교에 들어서자마자 은밀하면서도 신속하게 주변을 훑었다.
‘이건······. 불가능하다.’
많은 병사는 아니지만 적절한 위치에 병사가 배치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자동화기가 작동하기 전에 모든 이들을 제압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그전에 터렛 등으로 온몸이 갈가리 찢어지겠지.
이한을 유심히 바라보던 클레디는 그런 이한에게 말을 건넸다.
“자동화기는 대략 10기 정도 되고 경계를 서고 있는 군인은 모두 한 사령관과 마찬가지로 스펙터입니다. 짧은 순간 모든 정보를 파악하는 사령관을 보니 매우 유능한 군인이라는 것 정도는 잘 알겠습니다.”
“음.”
이한은 침음을 뱉으며 함장처럼 보이는 사내를 바라봤다.
“정찰함 트라키의 함장 클레디 라고 합니다.”
“유니온의 사령관 한 이드라실입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키아텍 스테이션에서 활약한 일도 말입니다.”
“명성? 뭐 일단 구원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군요.”
“협약에 따라 엠파이어군을 구출하신 일이 없었다면 저희 또한 구출할 일이 없었겠지요.”
이한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클레디에게 말했다.
“만약 우리의 구조신호를 무시하고 엠파이어 기지 방면으로 향했다면 가루가 되었을 겁니다.”
“그게 무슨?”
이한은 클레디의 반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황판 등을 확인했다.
“아직 위성 궤도로군.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겠습니다.”
클레디가 눈매를 좁히고 이한을 바라보자 이한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냉정한 어조로 다시 경고했다. 소리를 친다고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권고하는데 테라의 모든 함대처럼 우리도 가루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타카스 행성에 대한 정보를 얻도록 전폭적인 협조를 약속한다면!”
“이 엿같은 행성에 대해 알려달라고? 약속하지 못할 것도 없지. 게다가 수거한 잔해를 살펴보면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한 자료 등을 얻었을 텐데?”
클레디가 부관을 바라보자 빠르게 조작해보던 병사가 급히 소리쳤다.
“예. 의심되는 잔해가 있습니다.”
이한의 두눈을 바라본 클레디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전속력으로 타카스를 이탈한다.”
쿠우우우웅!
함선의 엔진이 가동되며 정찰함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함장님! 타카스 행성 두 곳에서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이 포착되었습니다.”
“뭐? 어느 방면이야?”
“뉴트럴과 아군의 기지가 있던 방면입니다. 거대한 에너지가 아군의 함선을 향해 빠르게 날아옵니다. 대공포로 보입니다!”
클레디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에너지의 궤적과 이동속도를 계산해!”
“피할 수 없… 피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급가속을 해야 합니다!”
“실시해!”
“알겠습니다.”
그 즉시 정찰함 전체가 요동치며 더욱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급한 상황임에도 이한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함교의 지지대 한 곳을 붙잡았다.
“크으윽!”
“으윽!”
갑작스러운 가속으로 인한 충격에 승무원들은 저마다 비명을 질렀다.
콰과광! 콰과과광!
쿠르르르! 파지지직! 파지직!
그때 함선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반전하더니 곳곳이 박살 나며 온갖 스파크가 사방에서 튀어 올랐다.
콰아아앙!
콰앙!
함선 작은 폭발이 일어나기라도 한 모양인지 폭발음과 함께 함내 곳곳에서 비명소리 역시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잠시 완전히 암전된 함교에 붉은 불빛이 들어오자 쓰러졌던 클레디는 피가 흐르는 머리를 왼손으로 누르며 소리쳤다.
“보고!”
“30%, 최악의 경우 50% 이상까지 함선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난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군의 함선이 정찰함이 아니었더라면 폭사를 면치 못했을 겁니다.”
함선이 작은 만큼 가속하는데 걸린 시간도 적게 걸린 셈이니까.
클레디는 이 사태를 예견한 이한을 바라봤다. 이한은 심드렁한 표정과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모습 어디에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클레디는 그 모습에 묘한 기분에 휩싸여 이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당신 말을 듣지 않았으면 어쩌려고 했습니까?”
“뭘 어쩌긴 어째. 그냥 다 죽는 거지. 하지만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크락투가 이렇게 신속하게 포격을 가할 줄은 나 역시 예상하지 못한 일이니까.”
“크락투가? 이 포격을 크락투가 날렸다는 소리입니까?”
“후우. 자료도 넘긴 마당에 모든 걸 일일이 설명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런 건 알아서 분석해보시고 괜찮으면 일단 식사부터 합시다.”
클레디는 다소 황당한 표정으로 이한에게 반문했다.
“지금 이 상황에 말이오?”
“이 상황이 뭐 어때서? 개떼 같은 크락투가 달려들기를 해? 아니면 미저리같은 클론 군단이 쫓아오기를 해? 아주 편안합니다. 엠파이어가 아니라 유니온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니까 넘어가고. 어쨌든 내가 댁들 목숨 살린 장본인이니까 식사 정도는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댁들은 어쩐지 모르겠는데 나는 배가 너무 고프고 졸려서 뒈질 지경이라고.”
이한과 눈을 마주하던 클레디는 피가 흐르는 머리에서 왼손을 떼어내며 스펙터 한 명을 가리켰다.
“원하는 대로 해드리도록.”
“알겠습니다.”
이한이 그를 따라 몸을 돌려세우자 그의 등에 대고 클레디가 말했다.
“아군기지를 부순 게 당신이라면 후회하게 될 것이오.”
그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춰 세운 이한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이죽거리며 말했다.
“후회? 어처구니가 없군. 헛소리 그만하고 정말 후회할 일 만들고 싶지 않으면 포격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나 하십시오. 함장 나리.”
이한의 말에 다른 군인들이 발끈하며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클레디가 손을 들어 저들을 저지한 뒤 떠나가는 이한의 등을 가만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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