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65
62. 한 사령관이 힘을 숨김 (2) >
62.
쏴아아아!
뜨거운 물줄기가 쏟아지고 땀과 엉겨 붙은 피 등을 깔끔하게 씻어내렸다.
“크으.”
이한은 흠뻑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이 순간이 주는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수많은 위기와 고난도 지나고 나니 어렴풋한 그림자처럼 희미하다. 고압의 뜨거운 물줄기가 머리와 어깨를 부드럽게 마사지하는 것만 뚜렷하게 남아있을 뿐 나머지는 연기처럼 흩어졌다.
“후우!”
잠시 세찬 물줄기를 등으로 받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한은 버튼을 눌러 물을 잠그고 거울을 바라봤다.
무슨 예술 조각품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탄탄한 가슴, 조각을 한 것처럼 배에 새겨진 선명한 왕자 근육, 두꺼우면서도 오밀조밀 세밀하게 들어선 허벅지의 근육과 길쭉한 다리까지, 화룡점정은 얼굴이다.
“이 새끼 진짜. 다 가진 새끼네. 그렇게 다 가져야 속이 시원했냐?”
과거 쭈글쭈글한 자신과 너무 비교되는 거 아닌가? 하긴 캐릭터 생성시 기본 제공되는 프리셋 자체도 탁월했을뿐더러 자신이 혼신의 욕망을 담아 새겨넣은 작품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주인공이라 할 수 있지. 암.
이곳이 단순히 게임 속은 아닌 건 분명해졌지만 영문은 알 수 없어도 어쨌든 그 설정이 고스란히 적용된 인물이 한 이드라실 아닌가?
다시 한번 거울을 감상하는 이한의 머릿속에는 한 문장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절세미인이라 할 수 있는 시에라가 예전부터 한 이드라실에게 빠져있던 걸 이해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 아름다운 시에라조차 한 이드라실에 비하면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들 지경이었으니까.
“캬.”
전에도 느꼈지만, 남자의 상징까지도 대물이다.
체력이면 체력, 지능이면 지능, 권력이면 권력, 능력이면 능력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완벽한 인물이 아닌가? 이런 먼치킨스러운 놈을 봤나.
이한은 거울을 바라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다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게 뭐? 그게 뭐 어때서? 내가 한 이드라실인데? 크크크크.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한의 낯빛이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참 부질없다.’
스페이스 워로 치면 이제 미션 시작한 셈이다. 크락투 역시 한 종족의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강력했고 클론 군단은 더 무시무시했지만 일단 스페이스 워에서 나오는 여러 외계 종족은 아직 출몰하지도 않았다.
지금이야 엠파이어가 적이지만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함께 뒹구는 전우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샤워는커녕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휘몰아칠 미래가 아주 짱짱한데 한 이드라실의 배경과 능력이 아무리 걸출하면 무얼하나?
‘돌려줘. 쭈글쭈글한 내가 더 좋았······.’
아! 이건 아닌가?
‘한 이드라실의 육체와 능력을 지닌 채로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해줘!’
그래. 이거지! 이게 맞는 거다. 그럼 옥에 티 하나 없이 완벽해진다.
“후우. 그게 될 리가 없지.”
바로 현실로 돌아온 이한은 한숨을 내쉰 뒤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대충 닦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빳빳한 유니온의 제복이 놓여있었다. 흰 바탕에 푸른 문양으로 장식된 제복 말이다. 나노슈트는 엠파이어에게 압수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나노슈트도 제거하지 않고 함교로 자신을 부른 상황이 예외였던 것이지 적대 세력의 포로에게 방어구이자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나노슈트나 스틸아머를 제거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나노슈트를 압수당하기 전 함교를 장악할 수 있는지 파악했지만, 전에 판단했다시피 그건 불가능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함장 클레디에게서 극심한 적의를 느끼진 못했으니까. 그건 함장뿐만 아니라 엠파이어 군인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의아한 일이었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고 싶지 않았기에 대충 넘겼다. 적의가 없다면 그것으로 충분했고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이한은 유니온의 제복을 걸친 뒤 다시 밖으로 나섰다. 방문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병사가 절도있게 몸을 돌려 이한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뭐가 되든 일단 배나 채우고 볼 일이다. 이한은 말없이 그들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이동했다.
*
클레디와 엠파이어의 장교들은 워가 남겨놓은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허. 클론 군단이라니······.”
“당장 전멸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입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철한 판단이었습니다. 게다가 클론 군단에게 습격을 당하지 않은 이유 역시······.”
“게다가 그 열세 속에서 이런 전공을 세웠다고? 실로 무서운 사람입니다.”
적대 세력의 사령관임에도 불구하고 엠파이어의 장교들은 이한에 대해 호평을 늘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세운 전공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탁월했고 무엇보다 그 결과로 인류는 한차례 큰 위기를 넘긴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신임사령관이라고 들었지만 한 이드라실은 신임사령관 따위가 아니다. 자신만의 기준이 확고하게 섰을뿐더러 그 능력 또한 여타 사령관들을 넘어선다.
타카스 행성에서 세운 그리고 그전에 세운 전공까지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이 나온다. 그런 자를 어찌 단순히 신임사령관이라고 가벼히 여길 수 있을까?
클레디는 후회할 짓하지 말고 포격범위에나 서둘러 벗어나라고 말했던 이한을 떠올렸다.
아마 그 어떤 사령관이라도 이런 열세 속에서 이런 전공을 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엠파이어의 에메스토? 유니온의 루퍼스? 회의적이다. 아니 한 이드라실이 다시 같은 전장에 선다고 해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계획이 하나라도 틀어지면 모든 게 어그러지는 그런 전장이었다.
그런데 한 이드라실은 그 모든 계획을 성공시켰다. 물론 한 사령관 홀로 한 것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한 불굴의 군인들이 한 사령관의 뒤를 받쳐줬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정보를 확인하는 모든 군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 정도로 절절했다.
하지만 모두가 절망하고 포기하는 그때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목숨을 걸 정도로 가치 있게 만든 사람이 누구던가?
바로 한 이드라실이다.
실로 무서운 사내다. 적에게 비하면 한 줌도 되지 않는 병력을 가지고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한 이드라실이 아니었다면 타카스 행성에서 죽음을 맞이한 병력의 수백 배에 달하는 병력을 퍼부어도 지금과 같은 우위를 선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이드라실은 해냈다. 클레디조차 몸을 타고 오르는 전율에 말을 잇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자가 엠파이어의 사령관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유니온의 사령관이다. 한 이드라실의 활약은 여기서 묻혀야 한다. 인류를 위해 엄청난 공헌을 한 셈이지만 엠파이어를 위해서 한 이드라실의 전공은 제거되어야만 한다.
클레디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명령을 내렸다.
“클론 군단과 크락투에 대한 정보만 추려서 유니온과 뉴트럴에게 전송하고 나머지는 모두 삭제하라.”
“예?”
반문하는 장교를 바라보던 클레디는 눈을 한번 질끈 감은 뒤 입을 열었다.
“엠파이어를 위해 그는 죽어야 한다. 그의 모든 것이.”
“하지만 크락투나 클론 군단의 정보를 알린다면 한 이드라실 사령관의 공적 또한 드러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유하는 건 어떻습니까?”
적대 세력의 사령관이 회유되는 경우가 거의 전무하다는 걸 모를 이들이 아님에도 회유라니? 클레디는 회유라는 한 단어만으로 한 이드라실의 존재감은 유니온에 반감을 가진 장교들의 마음까지 흔들 정도라는 걸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강력한 인물이 유니온으로 돌아간다면? 우후죽순 분산된 유니온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그땐 어떤 일이 발생할까?
엠파이어의 전력이 유니온보다 강력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건 유니온의 힘이 이리저리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역량 자체는 당연히 유니온이 우위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 힘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걸출한 영웅이 탄생한다면? 더욱이 그 영웅은 능력있고 희생적이며 외모까지 탁월하다. 적대 세력인 엠파이어 장교들의 마음까지 흔들리게 할 지경이니 중립 세력인 뉴트럴은 어떻게 반응할까?
“한 이드라실의 존재감은 단순히 뛰어난 사령관으로 끝날 계제가 아니다. 또한 목숨 걸고 그의 명령을 수행한 모든 병사가 유니온의 병사들이었다. 자네는 그런 충성을 받은 한 사령관이 유니온을 배신할 수 있을 거라 보는 건가?”
“흠.”
“으음.”
“불편한 일이다. 우리 손으로 인류의 영웅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나 우리는 엠파이어의 군인이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클레디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한 이드라실과 살아남은 유니온의 모든 군인의 흔적을 말소시켜라.”
무덤같은 적막이 다시 흐르는 가운데 클레디를 부르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함장님!”
“항명은 허용하지 않겠다!”
클레디는 서슬 퍼런 어조로 자신을 부른 자를 돌아봤다.
“그… 그게 아니라 함장님! 저. 저희가 확인한 정보가 이미 모두 사방으로 송출되었습니다.”
“뭐···. 라? 지금 뭐라고?”
잠시 멍한 표정으로 반문하던 클레디가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윽박질렀다.
“감히! 누가? 누가 명령도 없이 그딴 짓을 했단 말이냐?”
“저희가 한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구성되기를 정보를 확인하면 그 즉시 정보를 외부로 송출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사실도 확인하지 못 하!”
다시 소리를 지르려던 클레디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 이드라실은 사령관이다. 그럼 이것을 프로그래밍한 존재가 누구겠는가? 바로 초인공지능이다. 같은 초인공지능이 아니고서야 이것을 알아차릴 존재가 뭐 얼마나 되겠는가?
더욱이 함선에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함선의 통신장비를 통해 확인 중인 정보를 송출하는 정도이니 눈을 부릅뜨고 확인했다 하더라도 탐지망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군의 기밀정보가 누출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건 기밀정보에 가까운 어쩌면 그보다 더한 파급력을 지닌 내용이다.
실제로 워는 절묘하게 이한이 부각되는 식으로 장면을 편집하여 정보를 남겼다. 그 가운데 이한이 특별한 능력을 사용한 장면은 없었다.
워가 그런 내용은 모두 삭제하고 편집한 까닭도 있지만 워가 상공에 존재할 즈음엔 이한이 별다른 이능을 사용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이한이 이능을 마구 사용할 때는 워는 이미 폭파된 시점이었으니까.
“······.”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클레디는 함교의 지지대를 양손으로 붙잡으며 숨을 골랐다.
정보는 알아서 확인해보고 자신은 식사하고 휴식이나 취하겠다던 이한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역시 제아무리 뛰어난 자도 자신의 마지막은 알지 못하는 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이 일까지 대비된 자로서의 여유였단 말인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사내가 아닌가? 클레디는 깊게 한숨을 뱉으며 부하에게 물었다.
“후우. 한······. 한 사령관은 지금 어디에 있지?”
“식당 구역에 있습니다.”
“그래. 그렇군.”
“함장님. 어떻게 합니까?”
장교 한 명이 조심스럽게 클레디에게 질문하자 클레디는 답답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그를 죽여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불멸의 영웅을 유니온에게 선사하는 셈이지. 엠파이어를 무너뜨릴 아주 강력한 동기까지도.”
말을 멈춘 클레디는 다시 말을 이었다.
“노파심에 다시 부연하는데 이젠 그의 몸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이 엠파이어를 위하는 일이다. 황당할 노릇이지.”
“으흠.”
“함선은 얼마나 수리되었지? 언제쯤 다시 재가동할 수 있는 건가?”
“70%가량 복구되었습니다.”
“워프가 가능한 정도로만 복구되면 즉시 복귀한다.”
“알겠습니다.”
“한 사령관이 식당구역에 있다고 했나?”
“예. 함장님.”
“그를 만나보고 오겠다.”
*
쓱쓱!
칼로 두꺼운 고기를 썰자 그 안에서 먹음직스럽게 육즙이 새어 나왔다. 이한은 포크로 고기를 푹 찍어 입에 집어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으흠.”
좋구나! 스테이크 맛이 제법이었다.
이한은 구운 파인애플 역시 잘라서 입에 넣고 씹었다. 달콤한 맛이 육즙과 함께 어우러지자 그것 또한 일품이었다.
“흠. 행복이 별거냐?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한은 다시 입에 고기를 집어넣으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클레디에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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