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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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질긴 인연.
클레디는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보고!”
“현재 파악된 개체는 200마리 정도! 전 승무원의 숫자를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클레디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위치는?”
“전방위에서 나타났기에 특정할 수가 없습니다.”
“전방위라고?”
미간을 좁히며 반문하던 클레디는 다시 말했다. 크락투가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나중에 확인할 문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놈들의 목적이다.
“놈들의 목표는?”
“이동 경로를 확인했을 때 저들은 함교나 주동력원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핵융합로를 노린다고 보기는 어렵고 아마도 코어를 노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판단근거는?”
“한 사령관의 자료에도 나와있듯이 크락투 역시 초자원을 활용할 줄 압니다.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코어 역시 초자원을 이용한 것이니!”
클레디는 미간을 좁히며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놈들이 코어를 목적으로 하든 아니든 코어는 함선의 심장이나 다름없다. 심장이 멈추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함선 역시 마찬가지.
“주동력실 쪽으로 병력을 보강해라! 아울러 크락투에게 침식된 구역은 아예 격벽을 내려서 차단하도록!”
“알겠습니다.”
키에에엑!
그때 함교 위에서 크락투 네다섯 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몸집이 작은 것으로 봐선 환기구같은 곳을 타고 침투한 것으로 보였다. 놈들은 떨어져 내리면서도 공중에서 몸을 뒤틀어 아래 있던 승무원들의 머리를 후려쳐 몸에서 분리시켜 버렸다.
몸집이 작기는 해도 과연 크락투는 크락투였다. 무엇보다 덩치가 큰 놈보다 재빨랐다.
“까아아악!”
“으허헉!”
전투요원들이 급히 라이플을 들이밀었지만, 승무원들과 겹쳐있어서 차마 사격하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이한을 포위했던 스펙터들이라면 빠르게 움직이면서 놈들을 제거할 수도 있었겠지만 스펙터를 비롯한 전문 전투요원은 이미 외부의 크락투를 상대하기 위해 밖에서 치열하게 교전하고 있었다.
물론 남아서 함교를 지키는 이들 역시 전투에 미숙한 이들은 아니라 위치를 바꾸며 사격 기회를 노렸지만 크락투의 생존본능이 더 탁월했다. 마치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승무원과 승무원 사이를 헤집으며 살육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크허헉!”
“아아아악!”
크락투 입장에서 너희가 멈칫거리며 기다려줬으니 나도 기다려줄게. 이럴 리가 없지 않은가? 당연히 크락투는 함교를 종회무진으로 휘저으며 승무원들을 살육했다. 이에 상황판과 계기판을 조작하던 승무원들은 기겁하며 놈들을 피해 물러섰다. 당연히 함선의 모든 업무가 잠시나마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클레디가 그 모습에 고함을 질렀다.
“사격해!”
“하지만!”
“사격하란 말이다!”
함장의 명령이다. 무엇보다 냉정하긴 하지만 현시점에서 클레디의 판단이 적절하다고 여긴 전투요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승무원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이대로 사격하면 당연히 승무원이 죽겠지만, 그 뒤편으로 크락투가 쇄도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철컥!
하지만 전투요원들은 사격할 수 없었다. 아니 사격할 필요가 없었다.
타다다당! 타당!
키에에엑! 키에엑!
사격하려는 그때 사격대상인 크락투 다섯 마리가 라이플을 얻어맞고 바닥에 나뒹굴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단 한 명의 승무원도 총알에 맞지 않았다. 가히 신묘한 사격술이었다.
자연스럽게 모두가 함교에 들어선 사내를 바라봤다. 사격소리는 바로 그곳에서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뭐 여기까지 쫓아와서 지랄이야. 지랄이.”
이한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닥에 꿈틀거리는 크락투들을 향해 아무렇게나 사격을 가했다. 총구 주변으로 있던 승무원들이 기겁하며 움찔거렸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탕! 타탕!
“꿈틀거리지 말고. 죽어! 씨벌놈아. 좀! 죽으라고!”
타다당! 타당!
그렇게 다섯 마리의 크락투를 확인사살까지 마친 이한이 오랜 변비를 해결한 사람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뭐? 그나저나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을 여유가 있는지 모르겠네.”
이에 클레디가 바로 소리쳤다.
“서둘러 상황 파악하고! 지시했던 격벽부터 내려!”
승무원들은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계기판 등을 조작했다. 동료 승무원이 처참하게 살해당했지만,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라 상황판에 엎드려진 시체를 밀쳐내는 등 임무부터 수행했다.
“함… 함장님. 이미 늦었습니다.”
“젠장! 상황은?”
“아직 뚫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지점은 어떻지?”
클레디가 그렇게 승무원들과 현 상황에 대해 파악할 때 이한은 가까이 있던 전투요원에게 다가가 그를 툭 치며 말했다.
“어이 형씨. 총알 좀 줘봐.”
“예. 예?”
“총알 몰라? 총알 좀 달라고.”
“아… 알겠습니다.”
전투요원은 주섬주섬 품에서 탄창을 꺼내 이한에게 건넸다. 이한은 탄창을 받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도 소구경이잖아? 대구경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일반규격의 탄환 없어?”
“그… 그게.”
“아. 됐고. 없으니 이런 걸 들고 있겠지.”
이한은 탄창을 라이플에 결합하며 클레디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게 무슨 난장판인지 모르겠는데 일단 집어치우고 내 부하들 어디 있습니까?”
클레디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한을 무시하려다가 그가 이보다 더한 아수라장을 헤쳐나온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의 부하들 역시 마찬가지.
“식당 구역에 있을 겁니다.”
이한은 그 말을 듣자마자 한 승무원을 라이플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이! 거기 식당 구역 좀 확인해줘봐!”
승무원이 클레디를 바라보자 클레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승무원은 이한의 지시대로 식당 구역을 확인하고자 이것저것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이한은 함교에 뜬 상황판을 유심히 확인하다가 클레디에게 말했다.
“개판이로군. 함장 나리. 현상황 제어가 가능하겠어? 승무원들 살릴 자신이 있냐고 묻는 겁니다.”
클레디는 미간을 좁히며 이한을 바라봤다.
“무슨 뜻입니까?”
“급박한 상황이니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휘권 넘기시죠.”
“무슨?”
클레디가 황당한 표정으로 이한에게 반문하자 이한은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니면 다 죽던가. 이 상황 해결한 다음엔 고스란히 넘겨드릴 테니 걱정마시고.”
그때 함교에 치직거리며 홀로그램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이한과 클레디 역시 마찬가지였다.
홀로그램은 사람 형상을 그려냈는데 그 주변으로는 황량한 평야가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이한은 그것을 보는 순간 욕설을 뱉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미저리같은 새끼들이 진짜.”
이 통신은 타카스 행성에서 클론 군단이 보내온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통신이 끊어졌다. 보아하니 함선에 공격을 자행한 이들은 크락투가 아니라 클론 군단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함선에 침투한 새끼들은 크락투잖아?’
공격 주체가 누구든 간에 위급한 상황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이한으로서는 당연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이한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독기어린 표정을 지으며 클레디의 목에 라이플을 가져가며 소리쳤다.
척! 처척!
그러자 함교의 모든 전투요원이 이한을 향해 총을 겨눴다. 당연한 태도였다.
하지만 이한은 그러거나 말거나 클레디에게 말했다.
“겨우 살아남았는데 이딴 곳에서 이렇게 죽지 않아. 내놔! 지휘권!”
클레디는 목에 차가운 라이플이 닿았음에도 여전히 냉정한 표정으로 이한에게 반문했다.
“한 사령관. 당신에게는 방법이 있고?”
“사령관님! 주동력실의 방어선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이한은 라이플을 치우며 클레디에게 말했다.
“초인공지능 백업장치 함선에 장착시켜. 지금부터 내가 지휘한다.”
클레디는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함장 자리에 위치한 계기판을 조작했다.
띠딕 띡!
그러자 신비롭게 빛나는 물체가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백업 장치였다.
클레디는 차분한 어조로 부하 장교에게 말했다.
“함교의 인공지능과 연결해라.”
“아… 알겠습니다.”
“나는 엠파이어의 함장이다. 유니온의 사령관에게 지휘권을 인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신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겠다. 이 상황이 종결될 때까지만.”
“그 말이나 내 말이나. 뭐 자세한 건 됐고 그래서 식당구역은?”
이한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다가 아까 지시했던 승무원에게 말했다.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크락투가 전선을 비롯한 장비들을 모조리 씹어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뭐 알아서 살아남았겠지. 기껏해서 수백 마리인데.”
직접 겪어본 크락투는 끔찍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놈들이었다.
그런데 고작 수백 마리라니? 대수롭지 않은 이한의 말에 승무원들은 이한이 헤쳐나온 아수라장이 얼마나 끔찍한 곳이었는지를 그제야 체감할 수 있었다.
이윽고 워의 음성이 함교에 울려 퍼졌다.
『사령관님. 반갑습니다.』
“그래. 나도 오지게 반갑다만 인사는 집어치우고 함선 상황부터 파악해봐.”
『알겠습니다.』
그런 뒤 이한은 한 전투요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쪽은 가서 나노슈트와 초진동검 좀 챙겨와!”
이에 전투요원은 즉시 이한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워! 함선 복구가 가능하냐?”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다만 주동력실을 잃으면 그마저도 불가능합니다.』
이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워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체 이놈들은 뭐지? 이건 마치 크락투가 클론 군단의 군대가 된 느낌인···. 설마?”
『코어 주포의 포격으로 초거대 크락투가 사살된 것은 확인했지만 워낙 거대하고 단단했던 개체라 생체조직 등이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수거해 클론 군단이 초거대 크락투의 능력을 흡수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뭐? 그럼 구출당하기 전에 크락투가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것도?”
참고로 워의 본체는 이한과 연결되어 있기에 그간 센터 등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아도 이한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백업 장치는 그 연결점을 강화해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개별적인 속성을 지닌 크락투가 지휘관으로 인해 통합되기는 했지만 종의 특성은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나 일단 크락투 무리는 크게 세 무리로 분화하여 저들끼리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초거대 크락투의 영향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저들이 죽은 지휘관의 영역을 장악했다면 사령관님은 생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사령관님도 느꼈다시피 당시 크락투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긴 했으나 그 수는 상당히 적은 무리였고 움직임 역시 기존 무리처럼 유기적이지 않았습니다.』
“클론 군단이 이제는 크락투 조종 능력까지 얻었다?”
『초거대 크락투만큼의 능력은 아닐 겁니다. 무엇보다 크락투가 사납고 흉포하긴 하지만 사령관님 등을 이토록 집요하게 추격할 이유가 없습니다. 클론 군단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한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워에게 다시 말했다.
“대체 어떻게 추격한 거야? 놈들에게 갑자기 날개라도 달린 거냐?”
이건 정말 끔찍한 소리였다. 도망칠 수도 없다는 소리였으니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지금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 확인 중입니다만 대공포격으로 함선이 박살 나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기묘한 생체 조직들이 발사되어 함선에 부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기묘한 생체조직은 크락투의 알과 영양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크락투는 우주 공간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생명체다. 기본이 포자형이니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나저나 알이라고? 이놈들은 기생체라고 반문하려던 이한은 클론 군단의 존재를 떠올리고 그만 두었다. 기존의 상식을 크락투 등에게 가져가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
“그걸 여태까지 확인하지 못한 것이고?”
이한은 클레디를 바라보며 워에게 말했다. 클레디는 굳은 표정으로 이한을 바라볼 뿐 어떤 말도 뱉지 않았다. 무슨 핑계를 대든 자신의 실책이 맞으니까.
『모든 것은 추측입니다. 크락투의 포격으로 함선이 극심하게 파괴되었기에 당시는 물론 지금 역시 상세하게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클레디가 입을 열었다.
“외부 수리 역시 행했지만 그런 조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한은 미간을 좁히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때 이미 함선으로 침투한 후였을 지도 모르지. 어떻게 침투했는지는 넘어가고 그래서 워 네 말은 함선에 침투한 크락투가 클론 군단의 지시를 받고 있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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