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68
65. 질긴 인연 (2) >
65.
『아닙니다. 현재 크락투의 움직임이 조직적인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초거대 크락투의 지배력을 넘어서는 능력을 클론 군단이 보유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함선에 크락투를 침입시킨 것은 클론 군단의 짓일 확률이 높습니다. 함대를 전멸시킬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 탄을 쏘아낼 수 있는 크락투가 종족 번식을 위해 외부로 생체조직을 발사하지 못할 까닭이 없으니 아마도 크락투를 조종해 대공 포격이 이뤄져 부서진 함선을 향해 발사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나마 다행···. 잠깐만! 생체조직을 우주 공간으로 발사해?”
이것도 끔찍한 소리가 아닌가? 우주 공간에 크락투 꽃동산이 만발하겠구나. 아주 환상적이다.
『무엇을 염려하시는지는 이해합니다만 아무리 크락투라고 해도 포자 형태가 아니라면 오랫동안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크게 염려하진 않아도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어떻게 염려를 안 하겠냐? 이한이 부글거리는 심정을 억누를 때 나노슈트 등을 가지러 갔던 병사가 이한에게 그것들을 건네줬다.
“여기 있습니다.”
이한은 말없이 그것들을 착용했다.
피슛! 차아아악!
나노슈트가 압착하는 느낌이 피부를 눌렀지만 갑갑함보다는 든든한 느낌이 더 컸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초진동검 좀 더 가져와. 한 아홉 자루 정도.”
탄약을 더 가져오라는 것도 아니고 초진동검이 아홉 자루나 왜 필요하단 말인가? 이상하게 쳐다보는 군인에게 이한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빨리 가서 가져오라는 손짓을 한 뒤 다시 워에게 말했다.
“그럼 놈들이 코어로 향하는 이유는 대체 뭐야?”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반응을 볼 때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두려워한다고?’
워가 언급한 것이니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긴 클론 군단이 놈들을 우주로 방출시켰다면 함선에 침투한 크락투는 코어 주포에 찢어 발겨진 초거대 크락투의 영향권 아래 있던 크락투일 테니 코어에 적개심과 공포를 느끼는 걸 이해 못 할 것도 없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함선에 침투한 놈들이 전부라면 모조리 쳐죽이면 된다.
“어떻게든 워프할 수 있게끔 만들고! 당신들은 이곳을 벗어나서 식당 구역이나 나머지 구역 청소해. 아마 무기가 없어서 쩔쩔매고 있을 테니까.”
“한 사령관. 현 상황에서 중요한 곳은!”
“알아 나도. 주동력실은 내가 간다.”
“혼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소리인가?”
“거참 아까부터 말 길게 늘어놓게 만드는데 까라면 좀 까! 명령대로 하신다며?”
“음.”
“클레디 함장! 댁이 책임지고 나머지 구역 청소하고 크락투 새끼들 박멸시켜.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한은 귀찮다는 듯 그렇게 말한 뒤 주동력실을 향해 이동했다. 이한은 병사에게 초진동검을 받아서 대충 몸에 착용한 뒤 워에게 작게 말했다.
“불필요한 기록은 삭제하고.”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
주동력실로 향하던 이한은 코너에서 튀어나온 크락투의 머리를 세로로 갈라버렸다.
촤아악!
나와 내 부하들이 죽게 될 거라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한은 초진동검을 다시 휘둘러 세로로 갈라진 크락투의 머리를 다시 횡으로 베어서 머리를 완전히 분리시켰다.
그리곤 다시 통로를 달렸다.
탁탁탁!
두두두! 두두두!
“막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두두두두!
저 멀리 방어선을 쌓아두고 처절하게 전투를 치르는 마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으로는 크락투가 징그러울 정도로 바글거리며 방어선을 뚫으려고 하고 있었다.
피이잉!
이한은 자신 옆으로 스치고 가는 총알 소리에 급히 몸을 뒤틀며 속으로 욕을 뱉었다.
멍청한 새끼들! 크락투를 쏴야지 어딜 쏘고 있는 거냐? 이대로 달려가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자! 이기어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이한은 챙겨온 초진동검 10자루를 허공으로 띄운 뒤 바글거리는 크락투에게 날려 놈들의 육체를 무참하게 썰어버렸다. 몇 번 하다보니 이것도 익숙해진다.
10자루의 초진동검은 바닥을 쓸어가듯 날아가며 먼저 크락투들의 다리를 모조리 베어버렸다.
키에엑!
키에에엑!
이에 크락투들은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을 발견한 군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사격을 가하는 걸 멈추진 않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 괴물새끼들한테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놈들이 쓰러지건 말건 알게 뭔가? 어떻게든 총알 한 방이라도 놈들의 면상에 처박는 것만이 죽는 그 순간까지도 수행해야 할 최대과제나 다름없었다.
두두두두.
두두.
“죽어라! 죽어!!”
크락투를 대하는 병사들의 심정은 누구나 비슷한 모양이었다.
퍼퍼퍼퍽! 퍼퍽!
총알이 두꺼운 크락투의 거죽을 두들기다가 이내 곧 거죽을 뚫고 들어가 근육과 뼈를 박살 내고 끈질긴 생명을 끊어놓았다.
그때 아직 살아남은 놈이 다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튕겨서 군인에게 짓쳐 드는 것이 아닌가? 사격을 가하던 군인들은 서둘러 다시 방아쇠를 당겼지만 과도한 흥분으로 인해 모든 총알을 소모한 모양인지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철컥! 팅팅!
그때 섬뜩한 빛이 스쳐가면서 놈의 아가리를 아예 반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촤아아악!
“으허허헉!”
반으로 갈라진 크락투의 질펀한 육체가 병사들을 덮치면서 그 충격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그 일로 죽은 병사는 없었다.
*
일단 목숨이 다급한 병사들의 목숨을 구한 이한이 쓰러진 크락투의 머리를 수집이라도 하듯 모조리 베어내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촤아악!
키에에엑!
크르르!
사람과 전투를 치른다면 라이플로 전투를 치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초진동검으로 베어내나 라이플로 사격하나 어차피 죽기는 매한가지니까.
하지만 크락투와 같은 괴물은 초진동검이 더 효율적이었다. 중화기쯤 된다면 모르겠는데 라이플로 얻어맞아도 요놈들은 잘 죽지도 않는다.
하지만 초진동검은 베어내는 족족 뒤진다. 놈들의 가죽이 얼마나 대단하든 간에 초진동검의 절삭력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엠파이어의 초진동검은 자신이 개조한 것에 비해 위력도 약했고 내구성도 약했다. 금세 부러지거나 망가져서 못 쓰게 되었다.
물론 못 쓰게 된 이유가 크락투의 육체를 너무 썰어댔기 때문이니 큰 문제는 없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통로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던 크락투들이 잘게 다져진 고기 조각으로 변해버렸으니까.
“사격 중지! 멈춰! 멈춰! 탄을 아껴!”
“사격 중지!”
그제야 방어선을 지휘하고 있던 지휘관이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적당한 곳에서 엄폐하며 크락투를 학살한 이한은 그제야 몸을 드러내며 저들에게 다가갔다.
“누구냐?”
“사람인 거 보면 모르냐? 쓸데없는 질문은 집어치우고 안으로 침투한 크락투가 있나?”
나노슈트를 걸친 것을 보고 상관이라 착각한 중사가 급히 대답했다.
“예. 안으로도 여러 마리 침입했습니다. 최대한 막으려고 했지만.”
현재 이한은 엠파이어의 나노슈트를 걸치고 있었을뿐더러 헬멧을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동력실을 확인해볼 테니 방어선을 계속 지키도록!”
“알겠습니다. 다만 스펙터 님께서 하신 일입니까?”
처음 한두 번이야 뭐지? 했지만 무려 10자루의 초진동검이 날아다니며 크락투를 베어 제끼는데 그걸 못 알아볼 리가 있겠는가? 바로 그점을 물은 것이었다.
하지만 능력을 드러낼 이유가 없던 이한은 싸늘한 어조로 반문했다.
“뭐? 무슨 일이 있었나?”
중사는 자신이 기밀내용을 질문했나 싶어 긴장한 어조로 즉시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경계 똑바로 하도록! 잘 주지시키고.”
“아… 알겠습니다.”
*
아아악!
크아아아악!
두두두!
“막.. 막아야 해!”
“지… 지원이 필요합니. 커헉!”
와그작 와그작!
크아악!
저 멀리 전투소리에 이한이 급히 달려갔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한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크락투가 득실거렸기 때문이다. 이한은 두 자루의 초진동검을 손에 쥐고 달려가면서 놈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훙! 후훙!
촤아아악!
키에엑!
오른손에 들린 초진동검이 위턱과 아래턱을 분리시키고 이윽고 놈의 목적도 베어냈다.
허공에 떠 있던 다섯 자루의 검은 이한의 등 뒤로 짓쳐 들던 크락투의 등뼈를 발골하듯이 갈라냈고 아예 토막을 쳐버렸다.
촤아아악!
부우우웅!
키에엑!
이한의 다소 거친 숨소리와 크락투의 괴성만이 좁은 통로 안에 폭풍처럼 몰아쳤다.
저벅 저벅.
“별것도 아닌 새끼들이. 앞을 막긴 막아. 뒈질려고. 아 이미 뒈졌나?”
갈가리 찢어진 크락투의 살점을 밟으며 주동력실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미 너무 늦었다. 주동력실의 최후 저지선을 지키던 병력은 이미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외부를 지키던 병사들이 살아있었음에도 이곳에 크락투가 즐비했으니 아마도 다른 통로를 통해 이곳에 침입한 것으로 보였다. 뭐 어쨌든 다 죽었다. 크락투도 이곳을 지키던 병사들도.
“워. 워. 들리나?”
『예. 사령관님.』
“주동력실 확보했다. 다른 곳은 어때?”
『순조롭게 처리 중입니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아.”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너무 쉽다는 소리다. 뭔가 더 거창한 게 있을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위기란 말인가? 너무 쉽다. 너무 쉬우니까 이젠 불안할 지경이다. 뭔가 클론 군단이 더 끔찍한 무언가를 준비했을 것 같은 불안감 말이다.
『말씀드릴 기회가 없어서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그건 사령관님의 특수능력이 더 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레벨업이라든지 가상현실에서 얻은 능력 모두 말입니다. 앞으로는 간단히 특수능력이라고 통칭하···. 사령관님! 그곳에서 어서 물러나십시오!』
이한은 흠칫거린 뒤 급히 뒤로 물러서면서 워에게 소리쳤다.
“내가 그랬지? 뭔가 더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뭔데? 다 나와! 다 나오라고! 뭐든 베어버릴 테니까.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니야. 어!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말과 다르게 모양새가 참 보기 좋지 않았다. 연신 뒤로 물러나면서 주변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이 누가 봐도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습이었다.
“뭐야? 왜 아무것도 안 나와? 워 이 새끼!”
『코어가 폭주하려고 합니다.』
“아 그래. 코어가 폭주하려고 한다고? 난 또 뭐라. 뭐라고? 폭주? 코어가? 이 새끼 장난치지 마라.”
『코어가 폭주할 것처럼 불안정합니다. 즉시 그곳을 벗어나십시오.』
뒤로 빠르게 물러서던 이한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버럭 고함을 질렀다.
“빌어먹을! 코어가 폭발하면 이곳을 벗어나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인데? 코어 폭탄처럼 뻥하고 터진다는 소리 아냐?”
코어가 터지면 그 반경에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아무것도.
『크락투들이 코어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장치를 파괴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서둘러 사람을 보냈습니다만 그 전까지 코어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곧 터진다는 소리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럼 잡쓰레기 같은 소리 말고 해결책을 내놔! 이 새끼야!”
『지금 즉시 이동해서 탈출포트에 탑승해도 코어 폭발 반경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해결책은 코어를 안정화시키는 일밖에 없습니다.』
이한은 황당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수리하기 전에 이게 이미 폭발할 거라며?”
『그렇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코어의 근원 역시 초자원입니다. 사령관님의 특수능력이라면 당분간 코어를 안정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아 그럼 여기서 폭사해서 죽으라고?”
『사령관님의 선택입니다.』
“하아. 이 상황에 선택? 선태에엑? 이걸 지금 선택이라고! 말을 말자. 너한테 화내봐야 나만 병신 되는 거지.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모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