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69
66. 질긴 인연 (3) >
66.
사람이 극한에 몰린다거나 정말 황당한 일을 겪으면 욕설조차 나오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분노를 표출할 여력조차 없다는 것도 참 슬픈 거다.
그러니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욕설이 입 밖으로 나오는 걸 내 귀로 들을 수 있으면 그것도 감사한 거다. 적어도 억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죽지는 않았다는 말이니까.
이한은 너무 황당한 나머지 말문이 턱 막혔다. 몰라? 모른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사령관님의 특수능력은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정해진 바가 없다기보다는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령관님의 특수능력 역시 초자원을 기반으로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기존의 ESP 능력자보다 상위 계열에 속한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다만 이어진 워의 설명 같은 설명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되물었다.
“그래서?”
『코어가 불안정한 이유는 초자원, 곧 프로젤과 세라메틱 때문입니다. 세밀하게 들어가면 단순히 두 물질이 아니지만 어쨌든 이 두 물질은 따로 존재할 때도 강력한 물질이지만 서로 섞이면 정말 가공할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문제는 그만큼 두 물질 간의 반발력도 엄청납니다. 이 두 물질의 반발력을 중화시키지 못하면 거대한 폭발로 이어집니다. 바로 중화 장치가 이런 폭발을 막아내는데 공교롭게도 모든 중화 장치가 파괴되었습니다. 마치 알고 노린 것처럼 말입니다.』
중화 장치는 한두 개가 아니다. 중화 장치가 파괴되어서 코어가 폭발할 일은 핵융합로가 폭발할 가능성보다 낮다. 정말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것이 아니라면 워의 발언처럼 함선에 침투한 크락투가 이것을 노렸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추측이었다.
“흠. 그건 나중에 확인할 문제니 넘어가고 그럼 중화 장치의 원리는 뭔데?”
『반발로 일어난 에너지를 외부로 빠르게 배출시키고 두 물질을 에너지장 등을 이용해 이격시켜 반발력을 적당하게 유지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최소 인공지능은 되어야 가능합니다. 코어의 수많은 입자체 가운데 프로젤과 세라메텍을 특정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며 그것을 다시 적절하게 관리하는 건 일반적으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제길! 그럼 네가 하면 되겠네!”
『단 하나의 중화 장치라도 남아 있다면 가능합니다. 사령관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모두 파괴되고 없습니다. 현재 중화 장치를 서둘러 복구 중이긴 하나 그때까지 코어가 버틸 수 있을지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사람이 제어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그래서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강력한 ESP 능력자라고 할지라도 어떤 도움도 없이 코어를 제어하려고 한다면 정신이 분열되어 죽거나 폭주해서 죽거나 코어 폭발을 일으켜서 죽거나 어쨌든 죽게 될 겁니다. 다만 현 상황에선 뭐라도 시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로 판단됩니다. 사령관님께서 시도하신다면 실패하든 성공하든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거라 판단됩니다.』
뭘 하든 죽는다는 소리 아닌가? 그러니까 앞서 말한 그 선택이라는 게 아무것도 안 하고 다 같이 죽든지 뭐라도 시도해보고 혼자 죽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였나? 지금의 대화는 사형수에게 주어지는 최후의 만찬 같은 거였고?
“젠장!”
『코어는 초자원을 근원으로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초인공지능 역시 초자원을 근원으로 이뤄졌습니다. 사령관님의 능력 또한 초자원을 근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령관님은 기존의 통념을 깨고 초인공지능의 마스터이면서도 ESP 능력자처럼 이능을 사용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물론 인공지능이나 초인공지능과 같은 방법으로 코어를 제어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사실을 고려하면 사령관님께서는 더 근원적인 방법으로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이한은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추측된다고?”
『무엇이라도 하시려거든 더 지체하지 않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코어의 상태가 다시 변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미친 짓거리를 시도하나 시도하지 않으나 결국 죽음으로 귀결된다면 어차피 선택은 정해진 것 아닌가?
“······.”
이한은 말없이 초자원의 기운을 끌어올려 조심스럽게 저편에서 일렁이는 코어를 향해 뻗었다.
자신의 기운이 코어에 맞닿는 순간 이한은 섬광이 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느꼈다.
“큭!”
*
삐이이이.
기이한 이명이 머릿속을 울렸다.
이한은 눈을 깜박깜박거리다가 신음과 함께 상체를 일으켰다.
“끄으응.”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코어가 눈앞에 상당히 안정적으로 일렁이고 있는 것을 봐선 다행히 죽지는 않은 모양인데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도 기분이 참으로 엿 같다.
“워. 워. 이 씨발 놈아!”
『사령관님의 정신건강을 위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말은 나가기 전에 본인의 귀에 가장 먼저 들리는 법입니다. 사령관님께서 욕설을 뱉는 건 사령관님의 자유지만 그 욕설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사령관님 본인임을 자각하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감정이 없는 초인공지능에 욕설을 뱉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또한 감정이 있는 사람에게 욕설을 뱉어서 좋을 것이 무엇인지도 한 번쯤 고려해봐야 할 시점 같습니다.』
“이 새끼가 이젠 훈계질까지 하네.”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반박할 거리가 없었던 이한은 잠시 투덜거린 뒤 워에게 다시 말했다.
“그래서 얼마나 지난 거야?”
『사령관님께서 코어를 제어하고자 손을 뻗은 지 1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1분도 지나지 않았다고?”
대략 수백 시간은 지난 느낌인데?
『정확히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저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초인공지능의 인지범위마저 벗어난 영역입니다. 다만 강력한 에너지와 반발력이 순식간에 사라짐에 따라 코어가 상당히 안정되었기에 폭발이 일어날 확률은 급격하게 낮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살았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건 좀 듣기 좋은 소리네.”
상체만 일으킨 채 자리에 앉아있던 이한은 완전히 몸을 일으키며 워에게 말했다.
“함교의 상황은 어떻지? 유혈사태를 일으키지 않고 원만하게 협상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지휘권을 다시 넘겨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공공의 적이 사라졌으니 엠파이어 군인은 응당 엠파이어 지휘관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다만 그렇게만 될 경우,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은 별수 없이 엠파이어의 포로로 끌려가야만 한다. 당연히 이건 착한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더욱이 자신의 도움으로 죽을뻔한 위험을 두 번 아니 세 번은 넘겼으면 합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하는 것이 순리 아니겠나?
이한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워에게 다시 말했다.
“클레디 함장에게 세 가지 사실만 전하라고. 타카스 행성에서 크락투와 각 세력이 싸질러 놓은 똥 같은 클론 군단을 누가 처리했는지. 둘째 함교에서 누가 크락투를 처리했는지. 마지막으로 코어를 누가 지켜냈는지 말이야. 세 가지 사실을 듣고도 곧은 목을 하고 있으면 그때는 깔끔하게 분질러줘야지. 내가 무슨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말이야.”
이한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많은 건 바라지도 않고 각자 임무를 달성했으니 깔끔하게 헤어지자고 해. 그전에 말한 소꿉장난 할 때가 아니라는 점도 좀 상기시켜주고.”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클레디 함장에게 언급하신 내용을 전달하겠습니다.』
이제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괜한 불안감도 해소되었고 전장이 아닌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한은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클레디 함장이 모든 제안을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희박했고 그땐 뭐 죽이는 수밖에. 클레디 함장 잘되라고 이 상황에 포로가 되어줄 생각 따위는 없으니까.
화평을 제안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쟁인 거다. 그 전쟁은 클레디 함장이 일으킨 거고. 꺼릴 이유가 없다.
그때 워의 음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그 음성에 이한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사령관님!』
하. 왜 또 희박한 확률을 택하고 그러세요. 왜 또!!
“후회할 짓 하지 말라니까. 거참 그 새끼.”
『즉시 함교로 오시길 바랍니다.』
“안 그래도 갈 거다.”
『엠파이어에서 온 통신입니다. 엠파이어의 다섯 번째 행성이자 모행성 하이모스의 수도 엔두카가 습격당했다고 합니다.』
“꼭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는 머저리 같은. 뭐?”
워가 뭐라 말하든지 간에 성난 어조로 투덜거리던 이한은 자신의 예상과 전혀 다른 보고에 또다시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라고? 뭐라 그랬냐?”
『하이모스의 수도 엔두카가 습격당했습니다. 일단 서둘러 함교로 오시길 바랍니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한은 표정을 굳히며 워에게 대답했다.
“그래 알았다.”
*
이한이 함교에 들어서자 승무원들에게 뭐라 명령을 내리던 클레디 함장이 바로 그에게 말했다.
“지금 즉시 엠파이어로 가야겠습니다.”
“우리는 어쩌고? 인간적으로 유니온 경계 지역에는 떨궈놓고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엔두카가 습격당했습니다. 적이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엔두카를 습격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세력은 오직 유니온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니온 경계지역으로 가달라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말하는 건 말이 되고? 내가 아니었으면 댁들 다 죽었어. 모르겠어? 또한 함선을 주도적으로 수리하고 있는 것도 댁들이 아니라 내 초인공지능이고. 생색을 내려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잖아. 사람이면 그걸 잊어버리면 곤란하지.”
“그래서 평화적으로 함선에서 내려달라고 요청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이한으로서는 기도 차지 않는 이야기였다. 병력의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니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겠지. 먼저 이 친구에게 현실을 일깨워 줄 필요를 느꼈다.
“후우.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인데 초인공지능을 함선에 장착하기 전이라면 또 모를까 가고 안 가고는 내가 정하는 것이지 댁들이 정하는 게 아니라고.”
이한은 다시 클레디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보쇼. 함장 나리. 부서진 정찰함 한 대가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정말 교전이 이뤄지고 있다면 단체 자살하러 가는 거랑 뭐가 다른데? 냉정하게 생각합시다. 냉정하게. 유니온이 단체로 미치지 않은 이상에야 엔두카를 뭐하러 뚜까 부수냐고? 아니 댁들이라면 테라를 부수겠어? 그럴 이유가 없잖아. 그럴 이유가! 타카스 행성처럼 초자원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골드락스 존에 절묘하게 위치한 행성이라고 해도 초자원에 비하면 별메리트가 없다. 무엇보다 전쟁도 이득이 있어야 벌이는 거다. 전쟁상인이 뭐 괜히 있겠는가? 간혹 너 죽고 나 죽자는 미친 놈이 있을 순 있지만 설마 단체로 또라이짓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모행성을 부순다고 적대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극심한 원한과 함께 엄청난 손해만 입을 게 뻔한데 뭐 한다고 모행성을 공격하겠는가?
“심지어 초자원이 넘쳐나는 타카스 행성에서도 전면전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서 협정까지 맺은 사이인데 대체 뭐하러? 가슴이 아픈 건 이해하겠는데 냉정하게 생각하자고. 냉정하게.”
“흠.”
“그리고 자꾸 잊어버리는 모양인데 나는 물론이고 살아남은 내 병사들을 얕잡아보진 말라고. 댁들을 쓸어버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저 징글징글한 크락투와 클론 군단에 비하면 이 정도 열세는 열세도 아니라고. 그 미친 행성에서 탈출할 수 있게끔 도와줬으니 도의적으로다가, 나중에 문제 생길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함선을 돌려주려는 거지 그게 아니면 벌써 꿀꺽했어.”
클레디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이한은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상황 정리는 대충 된 것 같고. 이게 무슨 난장판인지부터 일단 알아봅시다. 아직 함선이 제대로 수리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니 진정하고 상황부터 알아보고 협상하자는 말입니다. 괜한 유혈사태는 나도 싫고 댁도 싫을 거 아닙니까?”
자신을 바라보던 클레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한은 워에게 바로 질문했다.
“워 새로 확인된 정보가 있나?”
『정보가 우후죽순이라 파악하기 어렵지만, 종합한 정보로는 엔두카를 습격한 함선은 단 한 척에 불과하고 고도의 스텔스 기능을 지닌 함선이랍니다. 엔두카가 습격당할 때까지 적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틀린 가정은 아니라 판단됩니다.』
고도의 스텔스 기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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