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72
69. 미친놈의 계보 (3) >
69.
“어서 오십시오. 공작 전하.”
신중해 보이는 사내가 에메스토에게 군례를 표하며 인사했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상을 지닌 노년의 사내였다.
“노아 함장. 오랜만이오.”
“다시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노아 함장이라면 내 신뢰할 수 있지.”
노아는 엠파이어의 순양함 호라이즌을 이끄는 함장이자 6함대의 함대장이었다.
순양함의 전장은 1500m에 달하고 탑승 인원은 1만 5천에 달한다. 코어 주포가 무려 4기나 장착되어 있고 함선 곳곳에 배치된 레일건과 언제든 발사할 수 있는 대함미사일 등 같은 순양함 급이 아니라면 감히 대항하지도 못할 공격 및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참고로 유니온의 순양함은 헬시온으로 호라이즌과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기본 성능은 동일했다.
어쨌든 순양함은 단독 작전이 가능할 정도로 막강한 병기라 순양함의 함장은 사령관에 준하는, 때에 따라 더 높은 대우를 받는다.
더욱이 엠파이어를 지키는 일곱 함대 중 하나인 6함대의 함대장쯤 되면 어지간한 사령관보다 대우가 높을 것은 자명한 일. 그런 위치에 있는 사내가 바로 노아 함장이었다.
노아는 하이모스 행성이 공격당했다는 소식에 언제든 하이모스로 향할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바로 이동하지는 않았다. 하이모스를 수호하는 5함대의 영역이었기에 명령없이 함부로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노아는 6함대, 7함대의 명령권을 가진 에메스토의 명령이 떨어지자 지체하지 않고 하이모스로 향했고 에메스토는 그런 노아의 순양함에 막 도착한 셈이었다.
이 모든 일은 에메스토의 명령이 떨어지고 5분 안에 일어난 일에 불과했다.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워프를 행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노아는 함교에 에메스토가 도착하자 바로 입을 열었다.
“하이모스의 함대장 레나 하이비른의 통신이 있었습니다. 공작 전하께서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레나 하이비른이라. 죽은 영웅이 죽지 않고 왜 자꾸 살아나는 지 모르겠군.”
에메스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머리가 희끗한 노아에게 말했다. 그러자 노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에메스토에게 반문했다.
“황가의 뜻을 제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에메스토는 말없이 차가운 미소를 지은 뒤 다시 노아에게 말했다.
“연결하시오.”
노아는 즉시 부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홀로그램이 연결되며 5함대장 레나 하이비른의 모습을 그려냈다. 타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이었는데 놀라운 것은 함대장이라고 보기엔 너무 젊은 여인이었다는 점이었다.
“에메스토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에메스토는 눈매를 좁히며 레나 하이비른의 말을 받았다.
“레나 하이비른.”
에메스토는 어떤 인사도 없이 그녀의 이름을 한 번 언급한 뒤 말을 끊었다.
“공작 전하께서는 여전히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내 생각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그 말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레나 하이비른은 미미한 미소를 지었다.
“죽은 영웅은 죽어야 한다?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서 용건은? 무슨 일인가?”
“공작 전하께서도 아시는 일 아니십니까?”
“왜 권한남용이라고 언급할 셈인가? 시크릿 키를 가진 자네라면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하네만 나는 의심이 되는군.”
엔두카의 마스터키는 하나다. 마스터키를 가진 자는 엔두카는 물론 엠파이어의 총사령관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받는다.
단 시크릿키는 그것을 무마할 수 있다. 시크릿키는 황가의 충성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오랜 세월 동안 ‘레나 하이비른’이 그 시크릿키의 주인이었다.
레나는 눈매를 좁히며 에메스토를 바라봤다.
“무엇이 말입니까?”
“하이모스의 엔두카가 정체불명의 적. 아 이제 정체불명은 아니군. 마이노르라는 미치광이에게 습격을 당했다. 하이모스의 대공방어를 책임지고 있던 함대가 5함대 아니었던가? 심지어 적의 위치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군.”
에메스토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서늘한 눈빛으로 레나를 바라봤다.
“이쯤에서 묻고 싶군. 습격을 당한건가? 일부러 당해준 건가? 파악하지 못한 건가? 파악하지 않는 건가? 뭐 어떤 상황이든 간에 나로선 5함대를 믿을 수 없긴 매한가지 아닌가? 하여 한시적으로 6함대와 7함대를 이용해 하이모스 주변을 완전히 봉쇄할 생각이네. 적어도 이 사태가 모두 종결될 때까지.”
“공작 전하. 상황은 곧 종료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게. 기회를 주지. 6함대와 7함대는 5함대 외곽으로 포위할 것이다. 그러니 하이모스 행성이 습격당한 불명예와 나의 불신을 풀고 싶다면 직접 그 마이노르라는 작자를 처리하도록! 알겠나?”
레나 하이비른은 미간을 좁히며 에메스토를 바라보다가 짧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공작 전하.”
그런 뒤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나 일이 마무리된 후 그 후폭풍은 전하께서도 감수하셔야 할 겁니다.”
“그걸 왜 자네가 걱정하나? 자네는 자네 일이나 처리하게.”
“···. 알겠습니다. 공작 전하. 그럼 그때 뵙지요.”
홀로그램이 사라지자 에메스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노아에게 말했다.
“과거의 망령이 계속해서 살아나 활보하는 모습은 영 지켜보기 어렵군.”
“하지만 저희 엠파이어의 과거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유니온에서도 실질적으로 제약할 수 없는 일을 저희가 어찌 제약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클론들로 인해 유니온과의 전투에서 우세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레나 하이비른.
그녀는 과거 대전쟁 시절 엠파이어가 생산한 클론 중 하나였다. 당시 그녀는 혁혁한 공을 세웠고 엠파이어에게 엄청난 승리를 가져다줬다. 그 전쟁으로 그녀는 죽었지만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기억과 그녀의 육체는 계속해서 클론으로 만들어져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하이비른 황가는 레나에게 하이비른 황가의 성을 주고 그녀를 계속해서 중용해왔다. 레나 하이비른이 오랜 세월 동안 시크릿키의 주인인 이유 또한 그녀가 황가에 충성하는 클론이기 때문이다.
엠파이어는 그 어느 곳보다 클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이유는 별 게 아니라 인구증가 때문이었다.
현재야 굳이 클론을 생산하지 않아도 인구수를 걱정할 이유가 없지만 초창기만 해도 엠파이어는 존립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그 인구수가 적은 편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아무리 성공을 부르짖는다고 해도 안정된 생활까지 버리며 테라포밍이 완전히 정착되지도 않은 머나먼 행성까지 이동할 이유가 없었고 설혹 있다해도 그 수는 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엠파이어는 당시까지만 해도 완전히 불법이었던 클론을 합법화시켜 대대적으로 생산한다.
초자원을 활용하면 클론 생산 속도를 극단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걸 알아낸 엠파이어는 정말 엄청난 숫자의 클론을 생산했고 이들의 후손은 훗날 엠파이어 주류를 이루는 평민 계급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던 이들의 후손은 귀족 계급이 되었고 말이다.
뉴트럴이야 합리적이기만 하다면 엠파이어의 뒤를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유니온 역시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클론을 활용하게 된다.
노아는 에메스토가 클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메스토도 알다시피 엠파이어의 시작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이제 와 클론 생산을 불법화한다느니 막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하께서도 그 사실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클론 생산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야. 그러나 거짓 기억으로 점철된 자는, 그림자처럼 스쳐가는 환상으로 점철된 자는 현실을 바라볼 줄 모른다. 그런 자는 지휘관이 되어선 안 돼! 최소한 쓰레기 같은 현실 속에 놓여 끝까지 치열하게 생존해보고 그 속에서 빚어지는 미묘함을 아는 자가 아니라면 신뢰할 수 없다. 어려움이 닥치면 환상 속으로 도망쳐 버릴 자를 대체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클론이었지만 자신만의 삶을 살아낸 진짜 레나 하이비른이라면 모를까.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 흉내만 내는 삶으론 결코 진짜가 되지 못해. 그걸 함장도 잘 안 텐데?”
“흘흘흘.”
노아는 웃음을 흘리며 에메스토에게 대답했다.
“공작 전하. 가짜든 진짜든 도움이 된다면 이롭게 사용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일이 어찌 완벽할 수 있겠습니까?”
에메스토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노아에게 대답했다.
“그것도 그렇지. 하나 마음에 들지는 않아.”
“그건 전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유니온은 하나처럼 보이나 파고들면 수없이 많이 분리된 연합체에 가깝지. 반면 엠파이어는 똘똘 뭉친 하나다. 문제도 혼란도 유니온에 비하면 월등히 적지. 얼핏 보면 유니온보다 엠파이어가 막강해 보이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실상은 너무 복잡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답도 없는 상황이지.”
이야기가 위험한 쪽으로 흐르자 노아는 침음을 흘리고 입을 다물었다.
“으흠.”
“정치적인 이야기는 이쯤하지. 일단은 하이모스에 일어난 난장판부터 처리한 후.”
콰아아앙!
콰아앙!
그때 에메스토가 탑승한 함선에 극심한 충격이 가해졌다. 함교를 지지대를 움켜쥔 노아가 소리치자 장교가 바로 대답했다.
“무슨 일인가?”
“방어장에 10% 손실되었습니다. 5함대에서 날아온 대함미사일입니다.”
이에 에메스토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5함대에서?”
칼란두를 황제. 정녕 미친 건가? 이 상황에서 나와 전투를 치르겠다는 뜻인가?
하지만 어째서? 자신에게 전권을 위임한 황제가 자신을 공격할 이유가 있을까?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에메스토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노아에게 급히 소리쳤다.
“노아 함장! 전투 준비를 마치고 교전에 돌입하시오!”
“공작 전하?”
내전이다. 반격하면 정말 내전이 일어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에 노아는 상기된 표정으로 되물었다.
“다시! 다시 또 공격해 옵니다.”
“노아 함장!”
에메스토의 서슬 퍼런 외침에 노아는 눈빛을 달리하며 소리쳤다.
“5함대와 교전을 허가한다. 다시 명령한다. 교전을 허가한다.”
*
『사령관님. 엠파이어의 하이모스 5함대와 벨투 6함대가 교전에 돌입했습니다. 현 시점에는 이미 치열한 전투 중일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한은 마이노르의 미친 짓에 혀를 내두르다가 이어진 워의 보고에 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라고?”
하지만 이한보다 더 크게 반응한 이는 바로 정찰함 트라키의 함장 클레디였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5함대와 6함대가 전투 중이라니?”
벨투 6함대와 엘란도 7함대는 에메스토 공작의 지휘를 받을 테고 나머지 함대는 칼란두를 황제의 지휘 아래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5함대와 6함대가 전투를 치른다는 건 곧 내전이 발발했다는 소리와 다를 게 없었다.
이한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엠파이어의 상황에 대해 대충 알고 있었기에 내전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혼돈의 도가니탕 같은 상황이지? 내전이라도 발발했다는 소리냐?”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5함대와 6함대가 교전에 돌입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게 무슨? 대체?”
클레디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했다. 갑자기 내전이라니?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젠장. 젠장!’
속으로 욕설을 뱉던 이한은 워에게 급히 말했다.
“유니온의 움직임은? 그러니까 유니온 함대의 움직임은?”
『사령관님께서도 알다시피 현재 파악하는 정보는 시간이 많이 지난 정보라 실제 상황과는 격차가 있습니다. 다만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현재까지 유니온 함대는 큰 변동이 없습니다.』
“유니온의 함대? 한 사령관 설마?”
“유니온의 방어 함대가 갑자기 저들끼리 전투해. 그럼 엠파이어는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겁니까?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인데? 아 그곳엔 성인군자들만 득실거리는 곳이었군. 미처 몰라뵈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음.”
“일단 유니온이 움직이지 않는다니 침착하고 상황부터 정리해 봅시다. 후우. 난장판에 난장판인데 심지어 이건 시작일 뿐이라니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는군.”
아직. 그래 다행히 외계세력은 아직 출몰하지 않았다. 그걸 위안 삼아야겠지.
이한은 한숨을 내쉰 뒤 워에게 말했다.
“이 모든 사태는 아무래도 마이노르 그 새끼 때문에 벌어진 것 같은데. 그놈은 어떻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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