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74
71.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2) >
71.
풍요를 떠올리게 만드는 황금빛 머리칼을 따라 뇌쇄적인 가슴 골짝을 지나 적당히 풍만하면서도 날렵한 둔부에서 이어지는 탄탄한 허벅지와 각선미를 바라보자 다시 욕망이 불끈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한은 이불 위로 반쯤 드러난 시에라의 나신을 바라보다가 설핏 잠든 그녀의 어깨를 슬며시 감싸 안아준 뒤 침상에서 일어났다.
스페이스 워에서 주인공을 대신해 죽은 여인. 자신을 구하기 위해 또다시 목숨을 건 여인. 만약 길이 엇갈렸다면 그녀는 홀로 우주 공간에서 쓸쓸히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너무 대책 없는 행동 아니냐고 버럭 화를 내긴 했지만, 자신을 생각하는 그녀의 마음을 어찌 나무랄 수 있을까?
아니 그녀의 숨결, 그녀의 음성, 그녀의 육체, 그녀의 마음과 행동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테라네스에 그녀를 던져두고 온 진짜 이유? 타카스 행성은 극도로 위험한 곳이니까. 설혹 그녀의 조력이 더해진다고 해도 그 위험을 조금도 덜어낼 수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그녀가 죽는 모습은 결코 보고 싶지 않았다.
타카스 행성은 예상했던 그 이상으로 지랄 맞은 행성이었고 그 지랄 맞음을 상기할 때마다 그녀를 테라네스에 두고 온 자신의 선택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자신을 찾아온 시에라를 보는 순간 이한은 그게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대책 없는 행동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를 때 시에라는 이한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얼마나 세게 후려친 건지 지금도 뺨이 얼얼할 지경이다.
이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다.’
너를 대신해 죽겠다느니 그런 다짐은 하고 싶지 않다. 다짐을 하는 순간조차 왜 누가 꼭 죽어야 하나? 그 상황 자체가 비극 아닌가? 그러니 모두 함께 사는 방향으로 다짐하련다.
시계를 바라보니 40분이 지났다. 한 시간 뒤쯤 워프 할 수 있다고 했으니 슬슬 준비해야겠지. 난장판 속으로 뛰어들 준비 말이다.
“으음. 한.”
시에라가 몸을 뒤척이며 눈을 떴다.
하아. 그 모습까지도 예술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그녀에게 쏟아부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지랄 맞은 세계에 떨어진 이유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라고 해도 수긍할 수 있겠다. 그래 콩깍지라도 씐 모양이겠지.
아무렴 어떠랴? 내가 바라보는 것이 실제인지 허상인지 내가 바라던 것이 실제인지 허상인지도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인데.
이한은 상체를 일으킨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준비해. 곧 워프가 시작될 것 같다.”
탐스럽게 드러난 그녀의 가슴을 바라보자 다 팽개치고 그녀와 침상에서 계속 뒹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다.
거대한 기관차가 달려오고 있는데 그 사실을 망각하고 철도 위에서 연인과 알콩달콩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다를 바가 뭐랴? 나는 희극을 원하지 비극을 원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내가 이 난장판에 능동적으로 몸을 던지려는 이유였다.
“알겠···. 읍.”
시에라는 이불로 몸을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한은 그런 그녀의 허리를 잡아채 키스했다.
잠시 뒤 입을 뗀 이한이 툴툴거리듯 말을 뱉었다.
“후우. 좀 화가 풀리는군.”
시에라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이한을 바라보며 반문했다.
“화가 풀리다니요?”
이한은 씩 웃으면서 시에라에게 말했다.
“그런 게 있어. 그런 게.”
*
이한은 시에라, 빌리, 클레디 등과 함께 함교 위에 있었다. 클레디야 원래 엠파이어 군인이니까 그렇다 쳐도 이한과 빌리는 물론 시에라까지 엠파이어의 나노슈트를 걸치고 있었다.
“워 백신은?”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다만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어. 엠파이어 시설에 너를 장착시킬 예정이니까. 성분만 분석할 수 있다면 백신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겠지.”
『엔두카의 클론 공장은 초자원은 물론 필요한 거의 모든 물질이 제공되기에 성분 분석만 완료되면 문제없습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 작전에 대해 생각했다.
엠파이어의 내전은 자신이 알 바 아니다. 유니온의 사령관이 멈추라고 해서 멈출 일도 아니고 이러한 다툼은 어떻게 막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뒤얽혀서 발생하는 경우가 태반이니까.
자신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마이노르의 수작을 무마하고 전에 결심했던 마이노르의 목을 따버리는 일이다.
하이모스 행성, 엔두카의 클론 공장은 중앙제어장치로 일원화 되어 있기에 마이노르는 그곳을 공략할 확률이 매우 높다.
클론 공장의 전반적인 생산을 담당하는 중앙제어장치를 통제하는 건 당연히 인공지능이다. 초인공지능은 막강하지만 여러모로 그 제약이 많다. 정말 중요한 곳은 초인공지능이 관할하지만 복잡하긴 해도 단순 업무에 가까운 대다수 업무는 인공지능이 관할하고 있었다.
“아직 성공하지 못했겠지?”
『언급했지만 초인공지능이라고 해도 다른 초인공지능에게 예속된 인공지능을 원격으로 해킹하는 건 불가능하고 물리적으로 접속한다고 해도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인공지능 등을 통해 해킹하려고 한다면 정말 고도의 기술과 준비가 아니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엔두카 습격 이후 중앙제어장치까지 도착할 시간과 해킹에 필요한 시간까지 고려하면 아직까진 해킹에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빌리가 이한에게 말했다.
“키아텍 스테이션처럼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가스를 살포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이한은 가볍게 좌우로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한계가 명확하니 그 또한 중앙제어장치를 확보한 후에 차근히 이뤄질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중앙제어장치와 관련된 사람들은 이미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겠지.”
이한은 클레디를 바라봤다.
“거래를 믿어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말대로 그런 일이 엔두카에 발생하고 있다면 그것을 막아낸다면 퇴로는 내가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확보할 것입니다. 이는 엠파이어의 함장으로서 아니라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약속드리겠습니다.”
이한은 한차례 고개를 끄덕인 뒤 주변을 둘러보며 워에게 말했다.
“워. 함내 방송 연결해.”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한 사령관이다. 이번 임무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엠파이어나 유니온 측에 알리고 기다리면 좋겠지만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이 일은 우리가 처리해야만 한다. 마이노르 그 미치광이가 자신만의 군대를 소유하게 되는 것도 끔찍한 일이거니와 그 군대가 나중에 클론 군단화될 수 있다는 점은 아주 지랄 맞은 일이다. 엠파이어, 유니온 가릴 것 없이 지금은 우리가 한 팀이다. 기억해라. 이 임무가 인류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뜬구름 잡는 개소리가 아니라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러니 임무를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누구라도 사살해도 좋다.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 이상.”
이한은 함내 방송을 끝낸 후 바로 워에게 말했다.
“워프를 실시해. 목표는 하이모스다.”
『워프를 실시합니다. 5. 4. 3. 2. 1.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우우우웅!
정찰함 트라키의 선체가 미친 듯이 요동치더니 이윽고 환한 섬광과 공간의 일그러짐을 남기고 타카스 행성 주변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
화아아악! 후우웅!
다시 공간이 일그러지며 이한이 탄 정찰함은 치열한 전투가 일어나는 하이모스 행성 주변에 당도했다. 하이모스 5함대와 벨투 6함대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요격기 편대가 전초전을 치르고 있었다.
요격기 전에서 승리하는 쪽이 폭격기를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을 테니 별것 아니라 무시할 수 없었다. 각 진영의 요격기를 어느 정도 소모하면 그때부터는 진짜 함대전이 벌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우욱.”
한 승무원이 구토감을 참을 수 없었던지 헛구역질을 했다. 연달아 이어진 여러 차례의 워프로 모든 이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함선은 물론 몸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주기에 연속적인 워프는 어지간해서 지양하는 게 현명했지만, 현재는 특수한 상황이라 별수 없었다.
“타카스 행성으로 향한 트라키의 함장 클레디다. 선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기에 더 이상의 임무 수행은 불가하다. 엔두카에 하선하는 것을 허가해주길 바란다.”
클레디는 하이모스에 도착하자마자 하이모스 5함대와 벨투 6함대 모두에게 통신을 보냈다.
다행히 양 함대 모두에서 하이모스로 향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 타카스 행성으로 임무를 떠났던 함선이라면 적어도 지금 벌어지는 전쟁과는 연관이 없었고 각 지휘관들 역시 전쟁을 이 이상 확대할 생각이 없었기에 내려진 판단으로 보였다.
이유야 어쨌든 하이모스에 하선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예측된 일이었기에 이한 등은 별 반응 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정신 바짝 차려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한의 발언에 한 마린이 입을 열었다.
“한 사령관님. 이번까지만 보고 다음부터는 보지 맙시다. 아주 전투가 끊이지 않습니다. 대단합니다.”
“그래. 나도 사내놈 새끼 얼굴은 더 보고 싶지 않다.”
“흐흐흐.”
모두가 웃음을 터트릴 때 이한이 다시 말했다.
“살아남자. 그리고 살아남게 하자. 그게 우리의 임무다.”
“알겠습니다.”
이한의 발언에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마린들이 대답했다. 이한은 마린들을 바라봤다.
살아남은 93명의 마린들과 엠파이어의 마린 70명에 스펙터 30명 정도로 200명 남짓한 병력이 전부였다.
“최대한 교전을 피하되 교전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신속하게 작전대로 수행한다.”
“알겠습니다.”
이한의 말이 떨어지자 분대장으로 보이는 자들이 분대원들에게 저마다 고함쳤다.
“모두 통신장비 체크하고!”
“라이플 점검해!”
철컥! 철컥!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한이 명령했다.
“작전명 미친개 사냥. 시작한다! 실시!”
“실시!”
“수송선에 탑승해!”
“어서 움직여!”
“정신차리고! 임무만 생각한다.”
이에 이한, 시에라, 빌리를 비롯한 200명의 전투 병력이 모두 수송선에 탑승했다.
클레디와 비전투 인원은 다른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인류를 위한다는 명목이 있더라도 엠파이어는 한 이드라실 사령관을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이 임무가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그를 죽이려고 들 확률이 높다. 그때를 대비해 퇴로를 확보할 예정이었다. 징계를 받더라도 상관없다.
“아이러니군. 죽이려던 사내를 위해 내 경력과 어쩌면 목숨까지 버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런 식으로 죽게 내버려 둘수는 없다. 스스로를 영웅이라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만 어쨌든 그의 말따라 저들의 소꿉장난 따위에 인류의 영웅이 죽게 내버려 둘수는 없다.
클레디는 굳은 표정으로 격납고를 빠져나가는 수송선을 바라봤다. 한 사령관이 미친개를 사냥하지 못하면 그 미친개가 온 사방에 풀려난다. 그러니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정말 대단한 사내다. 사방에 정신 나간 미친개만 득실거리는 상황임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차근히 해나가고 있었다.
“한 사령관. 부탁하겠습니다.”
클레디는 작게 중얼거린 뒤 남은 수하들에게 말했다.
“엔두카의 조선소에 들어서는 즉시 함선을 수리하고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서둘러라!”
정찰함 트라키는 150m로 작은 편에 속했기에 엔두카의 조선소에 도크할 수 있었다. 일단 그곳에서 모든 수리를 마칠 예정이었다.
먼저 출발한 수송선은 공중 도시 엔두카가 아니라 지상의 엔두카로 향했다. 클론 공장은 지상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
후우우우웅!
후우웅!
수송선 여러 대가 거센 바람과 함께 착륙장에 도착했다.
취이이익! 퉁! 퉁!
육중한 문이 열리고 이윽고 전투태세를 완비한 이한 등이 착륙장에 내러섰다.
하지만 착륙장에는 아무도 경계를 서고 있지 않았다. 핏자국이 널려 있는 것을 봐선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이한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
“소구경탄은 사람을 상대로 할 때는 유효하지만 우리가 싸울 적에게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거다. 그러니 무기고를 확보하면 즉시 무기를 보강한다. 또한 상황을 볼 때 이미 적이 침투한 상황이다. 그러니 조용히 잠입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 작전대로 최대한 빨리 이동한다. 모두 건투를 빈다.”
이한의 말에 3분대로 나눠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한 등과 93명의 마린과 나머지 스펙터와 마린이 뒤섞인 엠파이어 2부대로 말이다. 당연히 주력부대는 이한이 이끄는 부대로 엠파이어는 지원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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