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77
74. 미남은 괴로워 (2) >
74.
“어딜 틀던지 자네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군. 내가 사람을 잘못 본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이번만큼은 그 생각을 철회해야겠어.”
백발의 노 사령관 루퍼스가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떠다니는 현란한 홀로그램 방송을 모두 손으로 쓸어버렸다. 그런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의 가능성이 높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치고 올라올 줄은 미처 몰랐군. 게다가 그 전투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전공이었네. 자네의 태도나 뒤처리까지도 대단했지. 대중들에겐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이노르를 처리하고 레나 하이비른을 구출한 것도 자네가 아닌가? 놀랍군. 놀라워.”
“과찬이십니다.”
“의회에서 자네에게 어떤 보상을 해야 적절한지 한창 논의 중이라네. 대중들의 시선이 온통 자네에게 쏠려 있으니 자네의 전공을 폄하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지. 이것까지도 예상한 것인가?”
이한은 미소를 지으며 루퍼스에게 말했다.
“운이 뒤따르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난장판에서 겨우 목숨을 건졌는데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사용해야겠지요.”
“허허허. 솔직해서 좋군. 나로서는 자네에게 유니온의 정규함대를 맡기고 싶네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당한 지위가 보장될 걸세.”
이한은 고개를 흔들다가 루퍼스에게 말했다.
“솔직해서 좋다고 하셨으니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저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보상입니다. 권리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 아닙니까?”
“하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트린 루퍼스는 심유한 눈으로 이한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옳은 말이네. 지극히 옳은 말이지. 하지만 권리만 찾을 뿐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작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라네. 권한이 낮을 때는, 신분이 낮을 때는, 지위가 낮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저열한 본성을 억누르고 있다가 내 마음껏 권한을 사용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면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이지. 그 권한은 내 마음대로 휘두르라고 준 것이 아닌 데도 말이야. 어떤가? 자네도 그럴 텐가?”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무시무시한 철퇴를 들고 있는 분에게 얻어맞고 싶지는 않군요.”
“하하하하.”
한차례 다시 크게 웃음을 터트리던 루퍼스 사령관은 눈매를 좁히며 이한을 바라봤다.
“타카스 행성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현장 지휘관의 말을 듣고 싶군.”
“어찌되든 내버려 둘 계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저라면 타카스 행성을 아예 반쪽으로 폭파시켜 버리겠습니다.”
“그 정도란 말인가?”
“어떤 것이 더 얼마나 숨어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초자원이 중요하긴 해도 생명보다 귀하진 않을 것 아닙니까? 크락투도 그렇고 클론 군단도 인류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기에 충분한 놈들입니다.”
“으흠. 내 생각도 동일하네만. 유니온의 결정만으로 그런 일을 수행한다면 상당히 복잡한 문제에 휩싸일 것이네. 아니 유니온 내에서도 그 일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상당할 거란 말일세. 정치적인 이유에서든 경제적인 이유에서든 반대 세력이 넘쳐날 거란 건 명확한 일이지.”
이한은 그 말에 정색하며 루퍼스 사령관에게 말했다.
“거절하겠습니다.”
“어허. 내가 무슨 말을 꺼낼 줄 알고 거절한다는 것인가?”
“함대를 안겨주든 그보다 더한 것을 안겨주더라도 타카스 행성을 해결하라는 임무는 맡을 수 없습니다. 아주 지긋지긋합니다.”
루퍼스 사령관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이한에게 말했다.
“자네 권리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말 알고 있나?”
조금 전 말한 말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불통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자 루퍼스가 말을 이었다.
“의회는 자네에게 전공에 따른 보상을 해주지 않을 수가 없어. 어떤 조직이든 상벌이 명확해야 기강과 질서가 잡히는 법이지. 저들이 아무리 탐욕스럽더라도 그것을 헤아리지 못할 인사들은 아니란 말일세. 문제는 자네가 세운 공이 너무 크다는 점이지. 한 사령관 자네는 유니온뿐만 아니라 전 테라를 구원한 공을 세운 것이나 다름없으니 실질적인 피해는 적게 입혔더라도 그 공이 크게 다뤄질 수밖에 없어. 더욱이 대중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지 않은가?”
“흐음..”
“그러니 아마 넵튠 8함대의 지휘권이 자네에게 돌아갈 수 있네.”
이한은 놀란 눈빛으로 루퍼스를 바라봤다. 넵튠 함대라면 유니온의 가장 강력한 여덟 함대 중 하나가 아닌가?
“예? 그게 무슨? 잠깐만! 루퍼스 사령관님!”
유니온 6, 7, 8함대의 지휘권은 바로 눈앞의 루퍼스에게 있었다. 고로 이건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유니온의 여덟 함대 중 가장 약소한 편이기는 하나 어쨌든 넵튠 함대의 지휘권을 인정해준다면 이번에 세운 공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되고도 남지. 아울러 나의 세력을 약화할 수 있다면 의회에서는 흔쾌히 이 일을 받아들일 테고 말이야.”
유니온의 정규 함대의 지휘권을 인계받는 것이 일견하기엔 좋은 일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게다가 지금까지 일어난 난장판들이 어린아이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이한으로서는 더더욱 말이다.
권리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어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소리다. 그 책임에는 수많은 생명도 포함된다. 마음이 자연히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쯤했으면 된 것 아닌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사령관님. 저는 신임사령관에 불과합니다.”
루퍼스는 빙그레 웃으며 이한을 바라봤다.
“나 또한 신임사령관으로 시작했네. 무엇보다 자네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사용해야 하지 않겠냐고. 나 역시 마찬가지라네. 자네처럼 뛰어난 인재가 있다면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지. 더욱이 전운이 감도는 이때에 말이야. 그러니 도망칠 생각은 말게나. 허허허.”
잠시 웃음을 터트리던 루퍼스는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한 이드라실 사령관. 이게 자네에게도 최선일세.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든 아니든 의회는 자네를 내게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그런 상황에서 작든 크든 저들의 것을 건드린다면 글쎄. 차라리 넵튠 함대의 지휘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군.”
워 이 새끼! 괜한 짓거리를 해서! 물론 당시에는 필요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클레디에게 생명을 위협받았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자연스레 원망의 마음이 솟아났다. 자신만만하게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건 사용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던 자신의 입을 봉해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이한은 자연스레 이마를 감싸 쥐었다.
“고민하지 말게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네. 당장 지휘권이 주어지진 않을 테니 그저 남은 시간을 만끽하게나.”
루퍼스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의 어깨를 한번 짚어주고 밖으로 나갔다. 이한은 멍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넵튠 함대의 지휘권을?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지만 마냥 좋게만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아.”
이한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퍼스의 말이 맞다. 더 깊게 생각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 봐야 내 시간만 아까울 뿐이다.
*
시에라는 더 실력을 가다듬겠다고 자진해서 테라네스로 떠났고 93명의 마린들 역시 스펙터 교육을 받겠다고 훈련시설에 들어갔다. 심지어 빌리는 슈퍼솔져가 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니 이한이라고 살아남았다고 룰루랄라 놀러 다니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저들보다 더욱 혹독한 훈련을 해도 시원찮을 판국이니 지금은 휴식이나 취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강력한 시에라조차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이 상황에 자신이 뭐라고 놀고 있는단 말인가?
루퍼스 사령관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서자 여인들이 자신을 힐끔거리며 발그스름하게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렛츠 파티타임~! 광란의 파티를 즐겨보자. 이랬다가 시에라에게 걸리면. 하아.
이한은 애써 무시했다.
단말기를 확인하니 한 이드라실이 어쩌고저쩌고, 한 이드라실이 이랬고 저랬고라는 내용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이 유명세가 얼마나 갈까? 1년? 아니 당장 자투족이라도 쳐들어오면 먼지처럼 사라질 것들에 불과하다. 그러니 사라지기 전에 이 유명세를 즐겨야 한다. 반드시!
잘생긴 얼굴과 뛰어난 몸매를 여인들에게 자랑하며 광란의 밤이라도 보내야 한단 말이다는 개뿔. 압착기에 압축되듯이 짜부라진 괴물의 시체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내일은 해가 뜬다더니···. 해가 뜨긴 떴는데 그 해가 나를 태워죽일 기세로구나.”
그래도 이건 아니다. 그래 남자가 가오가 있지.
이한은 눈을 부릅뜨고 의지를 불태웠다. 너희는 훈련해라. 나는 놀 것이다! 이 세계의 유흥업계를 섭렵하고 말리라.
*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화려한 불빛이 눈을 어지럽혔다. 무작정 번화가로 찾아온 이한은 머리에 후드를 쓴 채로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무작정 셔틀에 몸을 싣고 도착한 곳은 아메리카 섹터의 라스베이거스. 살면서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곳을 머나먼 미래라 할 수 있는 이 세계를 통해 오게 될 줄은 당연히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쌔끈한 몸매를 가진 여인들과 도박시설로 보이는 화려한 건물들 야한 홀로그램과 온갖 영상은 물론이거니와 기상천외한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눈이 풀려 걸어 다니는 남자와 여자들, 술에 취해 구토하는 자들, 어디선가 사내들의 고함과 싸우는 소리도 울려 퍼졌다. 여전했다. 기술만 발전했을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걸음을 옮기던 이한에게 두 명의 여인이 달라붙었다.
“잘생긴 오빠. 오늘 밤 나랑 어때?”
“아니야 나랑 같이하자. 어때?”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예전이라면 짐승처럼 달려들어서 그녀들의 몸을 탐하려 들었겠지만, 웬일인지 별로 감흥이 없었다. 이한은 그 사실이 조금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어? 나 이 오빠 아는데? 한 이드라실? 오빠 한 이드라실이에요? 너무 닮았는데?”
이한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이젠 함부로 쏘다닐 수도 없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것도 잠시 이한은 갑자기 섬뜩함을 느끼고 그녀들을 내팽개쳤다.
섬뜩함의 정체는 작은 단도 형태의 초진동검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배때지가 갈라져 더러운 길거리 위에 창자를 줄줄 쏟아낼 뻔했다.
“정정. 이제 노는 것도 물 건너간 모양이다.”
이한에게 팔이 잡혀 이리저리 바닥에 내팽개쳐진 여인들은 언제 교태 섞인 웃음을 지었냐는 듯 냉정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한을 바라봤다.
“너희는 뭐냐? 엠파이어냐? 아니면 유니온 소속이냐?”
“······.”
그녀들은 입을 다문 채 이한을 노려보기만 했다.
“하긴 말해줄 리가 없지.”
이한이 가볍게 어깨를 돌리며 그녀들을 바라보자 그녀들은 서로를 마주 보더니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다. 추격한다. 추격하지 않는다. 숨겨진 선택지는 초능력을 이용해 여인들을 멈추게 만든다가 있지만 이건 유니온 측에 자신이 초능력도 활용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선택지이니 고려하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
사령관이 ESP 능력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복잡한 사건을 일으킬 테니 말이다.
추격한다는 선택지에는 함정일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라스베이거스행을 계획한 것도 아니고 무작정 움직였는데 자신을 습격했다면 아주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이한은 추격하지 않았다.
“후우우.”
한숨을 내쉰 이한은 빌리가 슈퍼솔져를 준비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시작한 일을 떠올렸다. 육체를 전방위적으로 개조하는 작업이기에 높은 확률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물론 슈퍼솔져가 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얻은 능력을 갈고 닦을 필요는 있다. 앞으로 나타날 자투족이나 시구르스족은 슈퍼솔져라고 해도 버거운 존재들이니까. 적어도 얼마 전 시에라가 보여준 정도로 강력해질 필요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령관으로서 여러모로 대응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보아하니 유명해진 만큼 수많은 적을 만든 모양인데 좀 놀아보겠다고 나섰다가 차디찬 길거리 위에 창자를 늘어놓고 뒈질 뻔했다.
착잡한 심정이다.
“쯔. 돌아가자.”
이미 흥이 다 떨어졌다. 칼을 맞을 뻔했는데 놀 생각이 들면 그건 그것대로 미쳤다는 뜻일 테니까.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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