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80
77. 아름다운 밤이에요 (2) >
77.
홀로그램에 뜬 방송을 한쪽으로 밀어놓은 동양계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는 사이프에게 명령을 내린 사내이자 아이작의 상관이기도 한 기스모토 히데키였다.
“사이프는?”
“사망했습니다. 매드솔져와 사이프의 시체 모두 수거완료했습니다.”
“사망원인은?”
“매드솔져의 경우엔 날카로운 철조각이 머리를 통과하면서 뇌를 비롯한 중추신경이 파괴되어 사망한 것으로 보이고 사이프의 경우엔 초진동검으로 입부터 머리까지 반으로 갈라졌습니다.”
“한 이드라실인가?”
히데키의 물음에 그만큼이나 날카롭게 생긴 백인사내가 대답했다.
“사이프로부터 얻은 자료가 있습니다. 확인해보시겠습니까?”
히데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어두운 라스베이거스를 질주하는 스카이카 여러 대의 모습이 홀로그램에 생성되었다.
이한과 라스베이거스 범죄조직의 추격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경찰 쪽은 크게 신경 쓸 것도 없지만 이미 기름칠을 적당히 해두었으니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임무에 실패한 자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겠지요. 저들 선에서 알아서 정리될 겁니다.”
“역시 떠본 것이었나?”
“예. 영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ESP 능력자가 곁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매드솔져가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머리통에 꿰꿇려 죽었다는 건 날카로운 철조각이 최소 총알만큼 빨랐다는 소리다.
이걸 다시 정리하자면 제법 강력한 ESP 능력자를 대동했다는 뜻이겠지. 그러고 보니 한 사령관 주변에 시에라라는 소령이 강력한 ESP 능력자라는 보고가 있었다.
“번거롭게 되었군.”
앞으로 호신에 더욱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테니 한 이드라실을 암살하는 일은 훨씬 어려워진 셈이다. 다행히 유니온 측에서 알아서 한 이드라실을 살해하기 위한 공작이었다는 이야기 등은 차단해주고 있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경계태세가 한층 높아졌을 것은 자명한 일.
“알렉세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히데키의 말에 백인사내는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대답했다.
“예. 히데키 님.”
“한 이드라실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고 기회를 노려라.”
트라피스트-1으로 향한 세력이 엠파이어의 전신이고 알타이르 항성계로 향한 세력이 뉴트럴의 전신이며 어디로 떠나지 않고 테라에 남은 세력이 유니온의 전신인 셈이다.
그렇다면 온갖 범죄조직의 연합체라 할 수 있는 리퍼의 전신은 누구일까?
굳이 따지자면 과거 삼합회,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 이탈리아 마피아, 등을 비롯한 수많은 거대 마피아 조직들이 그 전신이라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리퍼는 유니온이나 엠파이어처럼 어떤 지역에 존재하는 무리가 아니다. 그런 지역이 없는 건 아니지만 리퍼는 기본적으로 유니온, 엠파이어, 뉴트럴 모든 세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물론 가장 많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이 뉴트럴이기는 하나 이곳 유니온이라고 해서 그 뿌리가 얕으냐? 그럴 리가 없다. 리퍼 역시 이곳 유니온의 어둠 속에서 피를 먹고 자라난 세력이니까.
사람이 사는 곳은 언제나 범죄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 범죄에서 이득을 얻기 위한 세력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런 모든 이들의 뒷배에 바로 초거대 범죄조직 리퍼가 있었다.
유니온, 엠파이어, 뉴트럴 각 세력 모두 리퍼를 껄끄러워하고 없애고자 하지만 이들을 완전히 소탕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각 세력 내에서도 알게 모르게 이들과 결탁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리퍼는 각 세력의 정규함대와도 전투를 벌일 정도로 막강한 세력이었다. 물론 제대로 붙는다면 상대가 되지 않지만 단번에 토벌 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문제는 이들을 제거한다고 범죄조직이 짜잔 하고 사라지지 않기에 선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대개 무시하는 편이었다. 세 세력 중 가장 오지랖이 넓은 유니온이라고 해도 드넓은 우주를 감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유니온의 중심 지역인 태양계를 비롯한 알파센타우리, 시리우스, 프로키온 항성계를 감찰하는 것도 버거운 일이다. 그 외의 지역은 어차피 통제불능이다.
리퍼와 공존하길 원하는 세력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뉴트럴의 경우엔 리퍼의 온건파들을 아예 자신들의 세력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이쯤되면 모를 수가 없지만 리퍼는 단일 세력이 아니다. 하나의 세력으로 규합하기 위한 큰틀은 존재하지만 그 안에 속한 수많은 범죄집단이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끝없이 경쟁하고 전쟁하는 아주 혼란스러운 집단이다.
뉴트럴은 이런 리퍼들 가운데 힘이 세면서도 비교적 온전한 자들과 손을 잡았는데 이는 리퍼로 리퍼를 막기 위한 일종의 차도살인과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는 고육지책을 겸한 차선책에 가까웠다.
현실적으로 뉴트럴은 엠파이어나 유니온처럼 치안병력을 유치할 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법. 범죄조직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고 뉴트럴의 경우엔 그 지역 범위가 훨씬 더 넓으니 리퍼에게 이권을 보장해주고 그들과 협약을 맺은 것이다.
대개 뉴트럴과 협약을 맺은 리퍼가 우두머리 집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게 무슨 군대조직처럼 상명하복이 철저한 관계가 아니라 힘의 논리로 어쩔 수 없이 편성된 관계에 불과하다.
히데키는 조직의 상황을 다시 떠올린 뒤 입을 열었다.
“이번 임무도 실패한다면 뉴트럴 내에서 우리 조직의 위치가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성공한다면 더 많은 조직을 아우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겠지. 보스께서는 이 일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계신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직접 나설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임무 실패는 죽음뿐이다.”
단호한 히데키의 말에 알렉세이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
자신을 죽이려던 리퍼 놈을 살해한 이한은 셔틀을 타고 테라네스로 향하고 있었다. 테라네스는 초능력자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곳이니만큼 초거대 범죄조직, 리퍼라고 해도 이곳을 건드릴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저 많은 숫자의 병력은 의미가 없어졌다. 첨단기술과 능력을 확보한 소수정예가 오히려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유니온 등이 괜히 ESP 능력자나 슈퍼솔져에 열을 올리는 게 아니었다.
리퍼가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하나 삼대 세력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군사집단에 가까울 정도로 거대한 집단이긴 하나 범죄조직은 범죄조직이다. 정규 군사조직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소리다.
정규 군사조직 가운데서도 특수병력에 속하는 슈퍼솔져나 ESP 능력자가 나서면 어지간한 리퍼 조직은 그 뿌리까지 뽑혀버린다. 금세 다시 다른 곳에 싹을 틔울 테니 별 의미가 없어서 그러지 않을 뿐.
하지만 리퍼가 각 세력이 정한 선을 넘는다면 날카로운 칼을 뽑아들어 저들의 목을 모조리 쳐내기 시작할 것이다. 충분한 본보기가 될 때까지.
그러니 제정신이 박힌 놈들이라면 테라네스에 테러를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이노르의 똘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마이노르는 엠파이어의 수도인 엔두카에 포격을 가했다. 제아무리 강력한 리퍼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마이노르는 똘끼의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런고로 이한은 안전한 보금자리 중에서 가장 안전한 테라네스로 향했다. 무엇보다 그곳엔 시에라가 있지 않은가? 이번에 다시 한번 느꼈지만, 시에라 곁이 가장 안전하다. 뭔가 좀 없어 보이는 건 맞는데 뒈지면 그 없어 보이는 느낌마저 없어지는 거다.
그러니 전혀. 그러니까 전혀어! 거리낄 것이 없다.
물론 이것만 이유는 아니었고 자신의 훈련을 위해서도 테라네스로 향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자신은 가상현실을 겪으면 강력해지는 기이한 능력이 있지만, 결국 본질은 초자원 활용능력이다. 가상현실을 아무리 겪더라도 초자원을 활용할 수 없는 장소에서 가상현실을 하면 그냥 그건 가상현실일 뿐이라는 뜻이다.
다량의 초자원을 상시 배치해두고 활용하는 곳은 테라에서도 결코 많지 않고 그런 곳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곳은 더더욱 많지 않다. 현시점에서 이한은 테라네스 외에 그런 곳을 떠올릴 수 없었다.
시에라가 훈련을 위해 굳이 테라네스로 향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ESP 능력자 역시 초자원의 기운을 활용하며 강력해지는 일종의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휘휘 빠른 속도로 지나쳐가는 수많은 사물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한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정리했다.
노는 건 물 건너갔으니 생존방법이나 물색해봐야지 뭐 어쩌겠는가?
‘스페이스 워’에서는 일단 자투족이 쳐 들어왔다.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서 일이 어떤 식으로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대비 정도는 하고 있는 것이 현명했다.
타카스 행성의 크락투와 클론 군단이 남아있긴 하지만 유니온도 바보가 아니고 무엇보다 루퍼스 사령관이 그 일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거기에 대한 생각은 일절 접었다.
‘넵튠 제8함대의 지휘권이 주어질 거라니 골이 아프군······.’
고속승진도 이런 고속승진이 없다. 이 나이에 테라의 가장 강력한 여덟 함대의 지휘권을 얻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 말이 8함대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니다. 강력한 함대답게 8함대는 8함대만의 임무가 상시 주어져 있다. 그 임무를 무시한 명령은 아마 8함대에 속한 함장들부터 거부할 것이다.
적법한 명령을 내리더라도 저들이 제대로 따를 거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니 루퍼스 사령관에게서 지휘권을 제대로 인계하고자 한다면 각 함장들을 만나서 관계부터 정립하는 수순을 밟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그런 신뢰관계는 단번에 구축되지 않는다. 어느날 갑자기 유니온에서 이제부터 한 이드라실에게 지휘권이 있으니 따르시오. 이런다고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다.
권리는 없고 책임만 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바로 넵튠 8함대의 지휘권이라는 소리였다. 게다가 어디 상대해야 할 자들이 함장들 뿐이랴?
이한은 한숨이 푹푹 흘러나왔다.
루퍼스 사령관에게 지휘권이 있을 땐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으니 함부로 그것을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지휘권이 넘어온다면 그때도 저들이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생각할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어떻게든 자신을 거꾸러뜨려서 지휘권에 대한 자격을 박탈하고 그 지휘권을 자신들의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넘기려고 할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지휘권을 박탈당하면 그 지휘권이 다시 루퍼스 사령관에게 인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루퍼스 사령관이 자신에게 지휘권 인계를 제시했으니 그 일에 대해 일종의 연대책임을 물어 어떻게든 빼앗고 말 것이다.
노련한 루퍼스 사령관이 저들의 계략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니면 저들이라고 루퍼스 사령관이 저들의 계획을 모를 거라고 생각할까? 그럴 리가? 정말로 넵튠 8함대 지휘권이 정말로 주어진다면 이러한 쌍방의 묵인 아래 승인된다는 것이 다름없다.
먼저 루퍼스 사령관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8함대의 지휘권을 넘겨줌으로 저들의 견졔를 완화시킬 수 있고 내가 성공한다면 성공하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거기에 따른 이익을 창출하려고 들 것이다.
단순히 호의로만 이뤄지는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고 그건 루퍼스 사령관이라고 다르지 않다. 나라는 존재가 루퍼스 본인에게 이득을 안겨주는 존재이기에 호의를 품고 대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된다면 그 호의가 계속 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관계뿐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루퍼스와 나의 관계는 어떤 개인적인 관계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명사령관으로 이름이 높은 루퍼스 사령관이 공과사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일 리가 없지 않은가?
일단 내가 8함대 지휘권을 안팎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한다면 루퍼스 사령관이 얻을 이익이야 상당하니 넘어가고 내가 실패할 경우 그가 얻을 이익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확히는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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