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83
80. 사람 사는 곳 (2) >
80.
이한의 굳은 표정을 본 라이언은 옆에 놓인 컵에 물을 따른 뒤 목을 축였다.
“슈퍼솔져가 되는 일은 참으로 지난한 일입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목숨을 건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따라서 슈퍼솔져를 지원하는 이들은 나날이 줄어드는 추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슈퍼솔져는 나날이 더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 세력이 어떻게 행동할 거라고 보십니까?”
이한이 미간을 좁히며 라이언을 바라보자 라이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열었다.
“예. 바로 륭샤오핑이 겪은 일입니다. 각 세력의 야욕 아래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지요.”
슈퍼솔져가 되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는 이한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한은 미간을 좁히며 라이언에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라이언은 눈을 빛내며 다시 말을 이었다.
“특수임무에 가장 최적화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슈퍼솔져입니다. 각 세력은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슈퍼솔져를 어떻게든 양성하려고 하는 상황이고 말입니다. 간단히 모든 세력이 주도권을 잡고자 물밑에서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저희 아메리카 섹터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지요. 제가 이렇게 한 사령관님을 찾아온 것도 그 일의 일환입니다.”
“음. 그러니까 작은 불씨만 있어도 산산이 터져버릴 화약고 같은 상황이다?”
이한이 미간을 좁히며 반문하자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만 타카스 행성을 위시로 모습을 드러낸 크락투, 클론 군단 등은 작은 불씨 수준이 아니지요. 그뿐입니까? 지금은 과거와 또 다른 시대입니다. 유니온의 역량이 예전보다 커진만큼 각 세력의 힘도 그만큼 강해졌습니다. 저희 아메리카 섹터만 하더라도 특별한 외압이 없다면 유니온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립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한이 침묵을 지키고 있자 라이언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마다의 야욕을 뒤로 하고 유니온을 하나로 묶어주던 엠파이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엠파이어의 내전은 거의 반드시 일어납니다. 기득권 세력과 비기득권 세력의 갈등이 극단에 치달은 상황에서 에메스토 공작이 칼을 빼든 이상 칼란두를 황제와 에메스토 공작의 전쟁은 기정사실과 같습니다.”
“흐음.”
“유니온, 엠파이어, 뉴트럴로 나눠져 있기는 하지만 세 세력이 완전히 단절된 형태로 세력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건 한 사령관께서도 잘 아실겁니다. 엠파이어가 특별하다면 특별했는데 내전이 발발하면 누가 승리하든 예전의 엠파이어가 아닐 겁니다. 뉴트럴이야 원래부터 이득을 쫓아 움직이던 세력이었으니 이제 엠파이어와 유니온이 갈라지면 인류의 모든 세력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새로운 세력권을 형성하려 들겁니다. 바로 대혼란의 시대가 다시금 펼쳐질 겁니다.”
이한은 냉철한 눈빛으로 라이언을 바라봤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기존의 구도나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건 당신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 같은데?”
“예. 맞습니다. 상임이사회에서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이 상황을 이끌고자 하지만 글쎄요. 불가능한 일이지요.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건 그 어떤 세력도 불가능합니다. 유니온으로 뭉쳐있던 지금도 어려운 일을 뿔뿔이 나눠진 세력이 무슨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음.”
이한은 라이언의 어조에서 느껴지는 묘한 늬앙스를 알아차리고 침음을 뱉었다. 자신을 습격한 주동자들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힌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루퍼스 사령관.”
라이언은 한 사람의 이름을 짧게 뱉으며 이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런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루퍼스 사령관이 넵튠 8함대의 지휘권을 인계할 거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보아하니 한 사령관께서는 이미 그 의도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
“저희 아메리카 섹터는 루퍼스 사령관의 독주를 원하지 않습니다. 타카스 행성의 초자원은 현시점에서 그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입니다. 저희 아메리카 섹터는 그걸 원하지 않습니다.”
라이언이 말하는 바를 얼추 눈치 챈 이한은 차가운 어조로 그에게 대답했다.
“당신들도 나를 암살하려는 계획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것 같은데?”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저희 아메리카 내에서도 여러 파벌이 존재하니 말입니다. 방향이 다를 뿐 궁극적인 목적은 같습니다만 어쨌든 저들은 실패했고 저는 현재 당신과 협상중에 있지요.”
“그러니까 어찌되었든 나보고 나를 암살하려한 자들과 협상하라? 게다가 현재 협상중이라···. 그건 나와 협상이 틀어지면 저들과 뜻을 함께하겠다는 말로 들으면 되겠습니까?”
라이언은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한에게 말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묵인입니다.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지만 저희가 주도한 일은 아니지요. 그리고 이번 협상이 틀어질 것 같진 않군요. 그러니 틀어진 일에 대한 가정은 접어 두겠습니다.”
이한은 눈매를 좁히며 라이언에게 말했다.
“···. 어디 그토록 자신만만할 수 있는 이유부터 좀 들어봅시다.”
“넵튠 8함대. 뛰어난 함대지요. 하지만 그뿐입니다. 8함대만으로 어떤 강제력을 행사하기엔 부족한 감이 많지요.”
‘8함대만으로? 음. 이거 설마?’
이한이 굳은 표정을 지을 때 라이언이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8함대를 내어주고 8함대에 시선이 묶인 사이 6,7함대로 타카스 행성 점령전을 수행하겠다. 아주 좋은 전략입니다. 성공한다면 루퍼스 사령관의 입지가 지금보다도 거대해질 것은 자명한 일. 다만 저희 아메리카 섹터는 물론 어떤 세력도 원치 않는 결과이지요.”
이한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라이언에게 대답했다.
“그게 그토록 껄끄럽다면 타카스 행성을 아예 파괴시키면 될 일 아닙니까?”
“이용할 수 없다면 그게 차선책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여겨지지는 않는군요. 한 사령관께서 타카스 행성 토벌을 맡아주신다면 저희 아메리카는 전폭적으로 한 사령관을 지지하겠습니다. 테라 3함대는 어려워도 머큐리 1함대의 지원도 불사하지요. 저희 섹터에게 그만한 힘은 있습니다.”
또 타카스다. 이한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다가 라이언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를 루퍼스 사령관의 대항마로 쓰겠다? 이유야 어쨌든 내게 호의를 보낸 사람을 배반이라도 하라는 뜻인가?”
“배반이요? 글쎄요. 한 사령관이 언제 루퍼스 사령관의 사람이기는 했습니까? 또한 루퍼스 사령관 또한 한 사령관을 자신의 사람으로 생각하긴 합니까? 그 일례로 루퍼스 사령관이 한 사령관의 암살 계획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어리숙한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뭐 루퍼스 사령관이 한 사령관께 호의를 보이는 건 사실로 보입니다만. 루퍼스 사령관은 말할 것도 없고 한 사령관님께서도 그렇게 순진한 분으로 보이진 않는데 말입니다.”
“음.”
“일부러 저를 떠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의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여기 륭샤오핑을 위시로 20명의 슈퍼솔져가 사령관의 명령을 따를 겁니다. 기스모토 히데키? 장담드리지요. 한 사령관께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륭샤오핑은 그에게 개인적인 원한도 지니고 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는 한시적인 지휘권이 아님을 밝혀드립니다. 어차피 이들은 아메리카는 물론 어디 소속도 아닌 이들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내용을 기억하시다면 유추하실 수 있겠지요.”
이한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라이언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저들의 도구만 제거하고 암살 사건을 덮어라?”
“이 일을 깊게 파고들어봐야 손해보는 건 한 사령관님이 될 거란 사실 역시 짐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편이 저희로서도 좋습니다만 그 선택이야 사령관께서 하시면 되겠지요. 다만 저희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그럴 이유조차 사라질 겁니다.”
이한은 륭샤오핑에게 눈길을 한 번 준 뒤 다시 라이언을 바라봤다.
“뭘 어찌할 생각인지 들어보고 싶군요.”
“한 사령관님이 8함대를 인계받는다면 크게 임무는 두 가지입니다. 타카스 토벌이냐? 엠파이어 견제냐? 문제는 둘 다 8함대만으로는 버거운 임무입니다. 다각도에서 사령관님에 대한 검증이 들어갈 터인데 높은 확률로 사령관께서는 버리는 패가 되겠지요. 심지어 8함대가 사령관님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음.”
“엠파이어가 내전에 휩싸인 지금 유니온이 타카스 행성을 선점해야 한다는 건 명확하니 별수 없이 루퍼스 사령관이 일선에서 그 임무를 맡게 될 여지가 큽니다. 원치 않는 결과지요.”
“채찍과 당근이라······.”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들은 8함대를 서둘러 점령하기 위해 전처럼 암살을 비롯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그래야만 루퍼스의 대항마로 자신 대신 누군가를 세워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예. 한 가지만 더 부연하자면 루퍼스 사령관은 그저 방관할 뿐입니다.”
라이언이 말한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다른 이유도 숨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제안을 거부한다면 이곳 테라네스에서도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는 점이었다. 다 쓸어버리면 간단하겠지만 자신의 세력은 저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먼지처럼 작을 뿐이다.
‘타카스 행성. 하. 결국엔 돌고 돌아 타카스냐?’
아무래도 이곳의 일을 종지부 찍어야만 할 것 같다. 달리 생각하면 상관없기도 했다. 크락투와 클론 군단이냐? 아니면 자투족을 비롯한 외계 종족을 상대하느냐의 차이니까.
차라리 타카스를 점령하고 초자원을 이용해 막강한 병력을 갖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머큐리 1함대와 넵튠 8함대라면 승산은 충분하다. 전처럼 방심하고 있지도 않을 테고 무엇보다 저들을 지휘하는 사람이 자신일 테니까.
이한이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자 라이언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상이 얼추 타결된 것 같군요. 좋은 협상이었습니다. 한 사령관님.”
이한은 미간을 좁히며 라이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라이언은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떠나갔다.
그때 이한에게 말을 꺼내는 사내가 있었다.
“원하신다면 지금부터 임무에 착수하고 싶습니다.”
륭샤오핑이었다. 기스모토 히데키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다고 했던가?
“그렇게 해. 나도 나를 죽이려는 놈을 살려두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륭샤오핑은 이한의 말이 떨어지자 고개를 슬쩍 끄덕인 뒤 역시 이한을 떠나갔다.
륭샤오핑 등을 신뢰하는 문제는 숙고해봐야 할 부분이지만 저들이 슈퍼솔져라면 대안책으로 삼기에 적절하고도 남았다. 이 일이 해결된 후에 저들을 내칠 것인지 받아들일 건지 결정하면 될 일이다.
쪼르륵.
이한은 물병의 물을 잔에 따라 단번에 들이켠 뒤 탁자에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려한 장식과 빛이 아름답게 레스토랑 안을 꾸미고 있었지만 조금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별건 없었지만, 편안히 게임이나 즐기던 방 한구석이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초자원이니 나발이니 그냥 사이좋게 나눠 쓰면 얼마나 좋겠는가? 애초에 아니 원론적으로다가 그게 되지 않으니까 이 지랄인 거겠지. 온전히 신뢰할 사람 한 명 찾기도 어려운 세상이라니. 참으로 슬프지 않은가? 문득 시에라가 그리워지는 밤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어떤 시대든 결국 다 비슷한 모양이다.’
이한은 한숨을 길게 내신 뒤 차가운 눈빛으로 레스토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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