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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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나를 지키는 일.
아미드 함장에게 함선에 대한 지휘를 인계한 이한은 헬멧을 쓰면서 함교 밖으로 달려나갔다.
이한은 아미드 함장이 어떻게 만류하지도 못할 정도로 신속하게 움직였고 어차피 만류할 수도 없었다. 한 사령관이 야전 지휘관 출신이라는 건 아미드 함장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한은 밖으로 걸음을 빠르게 움직이며 워에게 말했다.
“상황보고!”
『이미 함내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방면을 막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주요시설이 파괴될 위험도 상당히 높습니다.』
적은 무한대에 가깝고 아군은 한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함내라는 특이점이 있긴 하지만 크락투는 그 함선마저 부서버릴 수 있는 종자들이니 상황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이한은 얼굴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대안이. 대안이 필요하겠군.”
그런 뒤 바로 워에게 다시 말했다.
“수송선은? 승무원이 대피할 정도로 충분한가?”
『거의 모든 격납고 파괴되었고 현재 4, 7 격납고 정도만 무사합니다. 따라서 모든 인원이 대피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계속 이동 중이던 이한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이건 대안일 뿐이니까. 그래도 준비는 해둬야겠지. 워!”
『하명하십시오.』
“수송선과 포트가 발출될 수 있도록 한쪽 길을 열어봐! 그러니까 크락투 놈들의 대공방어를 무력화시켜! 어차피 레일건으로 모함을 두들겨봐야 별 피해도 입지 않겠지.”
그러자 이한의 바이저 한쪽에 함선 외부의 전투광경이 펼쳐졌다. 이리저리 깨진 화면이긴 했지만 어쨌든 레일건이 끝없이 불을 내뿜고 있었고 이에 크락투 모함의 표피가 사정없이 찢어지고 터져나갔다.
그러나 레일건으로 찢어지고 터져나가는 부위보다 자가수복되는 지역이 훨씬 더 광범위했다.
그 광경과 함께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사령관님의 예상대로 레일건조차 적 모함의 표피만 박살 낼 뿐이며 그마저도 무용지물인 상황이니 적의 대공방어를 파괴하는 것에 주력하겠습니다.』
“그렇게해. 아미드 함장에게도 이 사실을 주지시키고.”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바이저에 뜬 외부상황은 얼마간 더 송출되다가 끊어졌다. 레일건에 공격당하는 지역은 말 그대로 국소지역에 지나지 않았다.
디카르마타가 정상이라면 조금 달랐겠지만 지금은 선수와 선미가 아예 사라진 형상이었고 붙어있던 무기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니 이 정도만 해도 선전하는 셈이었다. 아니 그전에 다섯 발의 에너지 포에 먼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역량 이상의 공적을 세운 셈이다.
어쨌든 레일건의 공격을 당하는 국소지역조차 엄청난 속도로 회복 중인데 모함의 다른 지역이야 어떻겠는가? 대단하다 못해 무시무시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디카르마타와 충돌하며 입은 피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복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건 무슨 20km짜리 트롤도 아니고.’
그 광경을 보니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놈의 숨통을 단번에 끊어놓지 않는 한 어떤 극심한 피해를 입히더라도 금세 회복될 테니까.
아니 이 광경을 목격하니 코어 주포 다섯 발이라고 해도 놈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을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 문제였다. 지금은 아군이 제역할을 수행할거라 신뢰하고 당장의 생존을 위해 격렬하게 움직여야 할 때였다.
“시에라, 빌리, 륭샤오핑은?”
시에라와 빌리는 당연히 이한과 함께 임무에 나섰고 기스모토 히데키 제거에 실패한 륭샤오핑 역시 20명의 슈퍼솔져와 함께 이한에게 합류했다.
슈퍼솔져는 마린 백 명도 아무렇지 않게 쓸어버릴 수 있는 자들이니 마린으로 치면 최소 2000명 그 이상 되는 병력이 이한에게 합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들의 능력을 생각하면 사실 마린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었다.
다만 이들 모두 이한과 함교에 있을 이유가 없기에 적절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서 제각각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빌리 대위는 스펙터 93명과 함께 시에라 소령에게 합류했습니다. 현재 주동력실을 함선의 전투 병력과 함께 막아내고 있습니다.』
“시에라와 빌리가 주동력실을? 그나마 한시름 덜었군!”
워의 보고에 이한은 다소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에라는 어지간한 엘더조차 씹어먹을 정도로 강력한 ESP 능력자였고 빌리 역시 이번에 슈퍼솔져로 변화하는 데 성공했다. 목숨을 건 도박 아닌 도박에 성공한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살아남은 93명의 마린들도 스펙터 교육을 이수해 모두 자신을 따라 이번 임무에 동참했다는 점이었다.
이한이 그 죽을 고생을 하고도 뭐 한다고 나를 따라오려느냐고 마음에도 없는 핀잔을 늘어놓자 그들은 한 사령관님이 아니라 시에라 소령님을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시에라, 빌리에게 연결해!”
『연결했습니다.』
“상황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주동력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뚫리면 안 된다.”
그러자 전투를 치르는 소리와 크락투 비명과 함께 거친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빌리였다. 정신이 나갔거나 뇌가 크락투처럼 변한 게 아니냐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자신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란 걸 알기에 피식 웃음을 터트릴 때 시에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시에라 너도.”
사랑하는 이를 전장에 보내놓은 이의 마음은 보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절절함이 있다. 이한은 애써 그 마음을 억눌렀다.
어디 유폐라도 시켜서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 오지 못하게 하고 싶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에라는 가장 강력한 전투자원이었고 그녀가 없다면 자신 역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거란 사실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만 떼어놓는 건 이기적인 일이었고 시에라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마음에 무거움을 느끼듯 그녀 역시 그러할 테니까.
그러니 짤막한 인사를 나눌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더 많은 말을 한다면 애써 억누른 마음이 터져나올 테니까.
시에라, 빌리와 짧게 통신을 나눈 뒤 이한은 워에게 다시 말했다.
“륭샤오핑과 슈퍼솔져들은?”
『곧 사령관님과 합류합니다.』
워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크락투 비명이 울려 퍼졌다.
키에에에엑!
콰직!
크락투의 목을 손으로 으깬 스틸아머를 걸친 륭샤오핑이 이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슈퍼솔져가 나노슈트를 착용하는 건 불가능하고 쓸데없는 일이지만 스틸아머는 착용할 수 있었다. 방호력 자체는 스틸아머가 뛰어난 부분이 있었기에 치열한 전장에 설때는 일반 마린은 착용할 수 없는 고성능의 스틸아머로 개조해 착용해서 사용하곤 했다.
기존의 스틸아머가 일반인의 한계에 맞춰진 것이라면 슈퍼솔져가 착용하는 스틸아머는 슈퍼솔져에 특화된 아머였다. 이를 달리 슈퍼아머라고도 부른다.
고로 스틸아머처럼 보이지만 륭샤오핑 등이 걸친 아머는 바로 슈퍼아머였다. 완전무장을 갖춘 슈퍼솔져는 그 자체로 일인군단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건 저 강력한 크락투가 무슨 가녀린 사슴마냥 목이 부러져 죽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이들이 륭샤오핑까지 21명이니 함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일은 없다봐도 무방했다. 아미드 함장이 이한이 함교를 떠나는 것을 막지 않은 이유에는 륭샤오핑 등의 존재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변에 나타난 크락투를 순식간에 쓸어버린 륭샤오핑과 슈퍼솔져가 이한의 주위를 경계했다.
그 가운데 이한은 륭샤오핑에게 말했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이미 정보를 받았을 것이다. 일곱 분대로 나뉘어서 각 지점을 사수한다. 함선 어느 곳이든 뚫리면 안 되긴 마찬가지지만 너희들에게 전송한 지점은 절대로 뚫리면 안 된다. 이미 마린들이 교전 중일 테니 서둘러 그들과 합류해라! 이상.”
슈퍼솔져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신속하게 자신들이 맡은 구역으로 이동했다. 3명씩 일곱 조. 륭샤오핑이 이끄는 조는 당연히 이한에게 합류했다.
참고로 저들이 뚫고 온 지역 역시 크락투가 침입해서는 안 되는 통로였다.
함선의 외부가 산산이 박살난 상황이기에 통로로만 크락투가 움직인다는 보장이 없지만 일단 워가 그런 지점은 모두 격벽을 내려서 격리조치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벽을 뚫고 그 틈으로 이동할 수 있는 놈들이니까.
다만 호위함 이상급의 함선에서 주요구역으로의 이동은 정해진 통로만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보안설계되었기에 지금으로선 그것을 믿을 뿐이다.
명령을 내린 이한 역시 지정된 위치를 향해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투투투투!
투투투!
이동하는 중에도 크락투가 끊임없이 출몰했지만 중화기를 들고 달리는 슈퍼솔져들의 사격 아래 미처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갈가리 찢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륭샤오핑을 예하로 모든 슈퍼솔져가 아예 기관총을 들고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속도는 일반 스펙터보다도 빨랐으니 이한은 괜히 슈퍼솔져가 백병전의 꽃이자 특수병력의 총화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걸 두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어찌나 호쾌하게 찢어죽이는지 크락투가 갈가리 찢겨 죽을 때마다 이한은 크락투가 저렇게 죽을 놈들이 아닌데. 보아하니 저놈은 껍질이 제법 단단해보였는데 같은 잡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두두두두!
“막아! 이곳이 뚫리면 우린 모두 이곳을 무덤으로 삼아야 한다.”
“반드시 막아!”
“젠장! 젠장! 총알을 얻어맞고도 죽지 않아!”
“뇌나 척추와 같은 급소를 노려! 중추신경이 파괴되면 놈들도 움직일 수 없다!”
“이런 씨발! 그걸 어떻게 일일이 노리고 사격해?”
“그럼 그냥 갈겨! 이 새끼야!”
“죽어라!!”
“크허허헉!”
이내 곧 저편에서 목숨을 걸고 위치를 사수하는 마린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들을 도와 사격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마린들과 합류한 후에나 가능하다. 그게 아니라면 오인사격으로 아군을 죽일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한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라이플을 갈겼다.
투투투투!
이에 륭샤오핑과 2명의 슈퍼솔져가 이한을 바라봤다. 슈퍼솔져인 자신들도 아군과 크락투가 뒤섞인 상황에서 크락투만 사격하기 어려웠기에 사격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두 발도 아니고 거의 난사를 하듯 갈겨버리니 이한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이드라실이 초인공지능의 마스터인 것도 알고 스펙터였다는 것도 알지만 슈퍼솔져는 아니지 않은가? 스펙터와 슈퍼솔져의 차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 일단 바라보는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키에에에엑!
키에엑!
이한이 난사를 하듯 갈긴 총알이 모두 크락투의 급소에 틀어박히자 륭샤오핑 등은 왜 사령관이면서 최전선 지역에 합류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스펙터이건 아니건 그는 보호할 대상이 아니라 등을 맞대고 함께 싸울 든든한 전우였다.
따라서 륭샤오핑 등은 더 이상 이한 주위에 있지 않고 더욱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까지는 한 사령관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이동속도에 맞췄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사격실력만큼은 슈퍼솔져를 넘어설 정도로 뛰어나 보였다. 아군과 크락투가 뒤섞인 상황에서 크락투만 그것도 모조리 급소만 맞히는 일은 자신들이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물론 기관총이 라이플보다 정확도가 떨어지기에 주의한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모든 것을 고려해도 어린아이처럼 보호할 필요가 없는 건 확실했다.
엄청난 속도로 크락투를 향해 내달리는 슈퍼솔져를 바라보며 이한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슈퍼솔져에 대해 재고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전력을 서슴없이 넘겨준 아메리카 섹터에 대한 의도에 대해 말이다.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이한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상념을 모조리 지워내고 다시 크락투의 머리통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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