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89
86. 나를 지키는 일 (2) >
86.
빗발치는 탄환으로 인해 크락투의 피와 살점이 함선 곳곳으로 튀어올랐다.
두두두!
콰직! 콰직!
“점점 더 많이 몰려옵니다!”
“격벽이 부서진 것으로 보입니다.”
언젠가도 언급했지만 초인공지능이라고 해서 만능이 아니다. 적절한 기반이 없다면 주변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함선이 부서진 지역에 대해 파악할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이한이 보기에도 몰려오는 크락투의 숫자가 심상치 않았다. 병사들이 보유한 탄약은 물론 이한과 슈퍼솔져들이 보유한 탄약도 한계가 있었다.
탄약이 떨어지면 백병전을 치러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한 자신과 슈퍼솔져를 제외하면 순식간에 모조리 썰려나갈 것이다. 숫자가 숫자이니 만큼 이한과 슈퍼솔져도 무사하지 못할 터.
현재 모든 전선이 이런 상황일 테니 시간이 더 지체된다면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방어선이 모조리 격파되고 말 것이다.
이한은 작은 목소리로 워에게 말했다.
“워! 기동시간까지 얼마나 남은 거냐?”
『동력원은 확보되었습니다만 추진체에 극심한 손상을 입었기에 임시로 건설하는데 한계가 많습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소리인가?”
『추진체가 폭발이라도 한다면 함선에 극심한 충격을 다시 가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이곳에 탈출하는 건 영원히 불가능해집니다.』
‘제길.’
속으로 작게 욕설을 뱉은 이한은 다시 워에게 말했다.
“주변 상황은?”
『사령관님이 계신 곳과 대동소이합니다. 가장 공세가 거센 곳은 시에라 소령이 위치한 곳이지만 오히려 가장 안정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렇겠지. 그 시에라가 있는데······.’
괜히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때 워의 보고가 다시 이어졌다.
『마린은 물론 기갑병기를 총동원해 크락투를 막아내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우주모함 디카르마타를 다시 기동하기 전에 방어선이 뚫릴 확률이 높습니다.』
“방어선을 후퇴시키고 병력을 결집하는 방법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적을 분산시켜 놓는 것이 오히려 더 방어하기에 좋습니다.』
“하긴.”
무한대로 쏟아져나오는 것 같은 크락투에 사방에 둘러싸인다면 아군이 아무리 똘똘 뭉치더라도 끝장일 것이다.
『사령관님. 함내로 침투하는 크락투의 숫자가 갑자기 늘어난 것으로 볼 때 격벽은 물론 침투로에 존재하는 시설을 거의 모조리 파괴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디카르마타는 승무원들을 보호하는 거대한 성과 같았다. 성안에 갇힌 채로 크락투와 전투를 치르는 셈이다. 만약 성벽이 무너지거나 성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크락투에 비하면 한 줌 같은 병력은 순식간에 한 줌의 핏물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워의 발언은 성벽이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지금도 벅찬 상황인데 더 많은 크락투가 계속해서 함선으로 유입된다는 뜻이니 버틸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심지어 탄환도 떨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니 워의 판단대로 기동할 시간을 벌기도 전에 방어선이 무너질 확률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한도 방법이 없었다. 어디서 갑자기 초특급 능력 드링크가 떨어져 그것을 마시고 함선의 모든 크락투를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지 않는 한 이 상황을 타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워의 부정적인 예측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리라.
뭐 언제는 방법이 있어서 버텼던가? 버티고 버티다 보니 방법이 생겼던 것이지. 살아가다보면 운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법이다.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해버린다면 그것이 마지막이 될 뿐이다. 좌절은 정말로 죽음이 찾아오고 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이한은 마음을 다잡으며 주변의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떻게든 버텨! 버티면 산다! 내가 그렇게 살았듯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한의 외침은 워를 통해 함선의 모든 승무원들에게 전달되었다.
역경과 역경을 뚫고 생존한 장본인이 그렇게 외치자 개소리 같으면서도 그게 그렇게 설득력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 썩은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 이한의 말은 승무원들의 사기를 고양시키기에 충분했다.
“살아남자!”
“살아남는다! 그러니 죽어라!”
두두두두!
최전선에서 싸우던 이들은 죽음의 두려움 앞에 물러서지 않고 생에 대한 의지를 더욱 불태웠다.
그런 가운데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사령관님! 헬시온 1함 즈덴코 함장입니다.』
이한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당장 날려버리시오! 이 트롤 같은 거대한 새끼를! 트롤 거함이라고 부르면 딱이겠네!”
이한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아미르 함장의 함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
“준비되었습니다. 한 사령관께서 명령하신 대로 주포 사격을 실시하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즈덴코 함장은 굳은 표정으로 헬시온 승무원에게 말했다.
“포격을 가하라!”
“하지만 함장님!”
“우리의 임무는 저 거대한 함선, 그래 트롤 거함을 날려버리는 것에 있다. 아군이 목숨 바쳐 일궈낸 기회를 날려버리란 셈인가? 긴말 말고 당장 포격을 가하라!”
즈덴코 함장과 눈이 마주친 승무원은 그의 눈빛에 담긴 단호함과 씁쓸함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100% 충전 완료되었습니다. 포격을 실시합니다.”
우우우우웅!
헬시온의 선체 전체가 미친 듯이 덜덜 떨리더니 이윽고 함선의 모든 것을 토해내기라도 하듯 강력한 섬광을 토해냈다.
사실 디카르마타에도 코어 주포가 있긴 하다. 디카르마타 뿐만 아니라 코어를 장착한 함선이라면 어지간하면 코어 주포가 장착되어 있다.
그러나 코어 주포라고 성능과 파괴력이 모두 동일한 것이 아니고 함선의 크기나 안정성이나 효율성에 따라 모두 제각각이다. 더욱이 순양함 헬시온의 코어 주포는 적을 파괴하는 것에 모든 효율이 맞춰진 코어 주포라 헬시온의 코어 주포보다 강력한 것은 없다.
이건 효율성의 문제다. 디카르마타는 우주모함이고 수많은 요격기와 폭격기 등을 수송하고 함선을 지원하는 임무가 주 임무다. 호위함 수준의 무기체계를 갖추긴 했지만, 이 또한 방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공격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 디카르마타에 코어 주포가 존재해도 이미 모든 동력을 배리어에 동원한 상황이었기에 코어 주포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충전 중인 동력을 코어 주포 포격으로 날려버린다면 모든 기동력을 잃어버리게 될 테고 그리 효과적이지도 않았다.
이 트롤 거함은 헬시온의 코어 주포로도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니 말이다.
즈덴코 함장이 지휘하는 헬시온 1함에서 발사된 섬광은 순식간에 트롤 거함에 다다랐다. 섬광이 날아가는 위치는 디카르마타가 처박힌 부분보다 위를 향하고 있었다. 이 날카롭고 매서운 빛의 창은 저 흉물스러운 괴물을 당장에라도 꿰뚫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거침없이 우주 공간을 격하고 날아가던 섬광은 허공에서 어떤 투명한 막에 막혀서 힘 씨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했음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잠시 거칠게 서로의 힘을 겨루던 섬광과 투명한 보호막은 결국 모두 상쇄되어 사라졌다.
“포격···. 완료했습니다. 다만 적의 배리어로 보이는 것에 의해 상쇄되어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했습니다.”
즈덴코 함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상황판을 바라봤다. 1함의 포격은 실패했더라도 아직 4발의 포격이 더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
짓쳐 드는 크락투들과 전투를 치르던 이한은 물론 디카르마타에 승선한 모든 병력은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끔찍한 괴성을 들었다.
키에에에에엑!
쿠구구구궁!
그와 동시에 함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엄밀히는 함선이 처박힌 크락투 모함, 곧 트롤 거함이 요동침에 따라 함께 어쩔 수 없이 흔들린 셈이었다.
이한은 즈덴코 함장의 헬시온에서 포격이 가해졌음을 직감했지만 생각보다 그 충격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즉시 워에게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1함의 포격이 방어막에 막혀 상쇄되었습니다.』
“방어막?”
『방금 괴성을 지른 크락투의 능력으로 보입니다.』
워의 보고를 들을 때 이한은 크락투들끼리 전투를 치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확인한 이한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놈은 몰라도 이놈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나머지 헬시온은 어떻게 됐지?”
이한의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브리안 2함, 크리스토퍼 3함, 이그리드 4함, 에릭 5함 모두에서 코어 주포가 발사되었습니다. 2차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크웨에에에엑!
그러자 다시 엄청난 괴성이 울려 퍼졌다. 함선을 침입하려던 크락투들은 언제 함내로 침투하려고 했냐는 듯 저들끼리 대환장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콰직! 콰드드득!
이한은 심각한 표정으로 아미드 함장에게 외쳤다.
“워! 아미드 함장과 연결해!”
『연결되었습니다.』
*
“코어 주포 발사합니다!”
“발사합니다!”
“트롤 거함을 향해 코어 주포 포격합니다.”
“포격합니다!”
남은 4척의 함선에서 동일한 내용의 보고와 함께 일제히 포격이 이뤄졌다.
섬광이 번쩍이며 트롤 거함을 향해 매섭게 질주했다.
그러나 그 순간 트롤 거함 주변으로 엄청난 충격파가 형성되더니 무려 네 줄기의 섬광을 막아냈다.
콰과과과!
하지만 네 줄기의 섬광은 두꺼운 땅을 뚫어버리는 드릴처럼 그 모든 충격파를 꿰뚫고 결국 트롤 거함의 몸통을 찢어버렸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앙!
그 순간 실로 엄청난 폭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성공!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그리드 함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상황판을 바라봤다.
생명 반응이 여전히 강력했다. 이번 공격으로 놈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힌 건 사실이었지만 놈을 제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100% 완충된 코어 주포를 두 번이나 날렸으니 제아무리 헬시온이라고 해도 당분간은 사용할 수 없다. 이 이상 코어 주포를 사용한다면 코어가 불안정해져서 폭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롤 거함이 여전히 건재합니다.”
“함···. 함장님. 트롤 거함이 기동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상황에서 기동준비라면 후퇴밖에 없지 않은가? 그녀는 함교의 지지대를 손으로 치면서 분노를 터트렸다.
“젠장!”
한 사령관의 판단이 정확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어떻게든 여기서 처리해야 한다.
어찌 된 영문인지 놈은 저토록 거대하면서도 아군의 탐지기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다. 도망치게 내버려 둔다면 끔찍한 재앙이 되어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군은 더 이상 놈을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놈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고 주변의 모든 함선이 재차 공격을 준비중이었지만 코어 주포를 얻어맞고도 살아남은 놈의 생명력을 고려하면 헬시온의 코어 주포가 아니라면 그저 놈의 표피만 잠시 박살 낼 뿐이다.
8함대의 모든 함장이 막막한 심정에 휩싸여 있을 때 이한의 통신이 울려 퍼졌다.
*
코어 포격의 거센 충격이 디카르마타 역시 휩쓸고 간 뒤 아미드 함장의 당황한 음성이 이한에게 울려 퍼졌다.
포격이 이뤄지기 전에 이한이 명령한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한은 느껴지는 충격 등을 고려할 때 이번에 이뤄진 포격은 성공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크락투 모함, 이 트롤 거함을 죽이는 것에는 실패했음을 직감했다. 그렇다면 미친 짓을 다시 한번 하는 수밖에.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폭탄을 놈에게 안겨주는 수밖에.
이한은 아미드 함장에게 바로 대답하지 않고 워에게 말했다.
“4, 7 격납고는?”
『무사합니다.』
“그건 다행이군. 트롤 거함은?”
『상당한 피해를 입히긴 했지만, 여전히 건재합니다. 현재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후퇴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놈이 이대로 도망친다면···. 나는 살 수 있다. 우리는 살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해도 그럴까? 계획대로 밀고 가는 수밖에 없다. 사용하고 싶지 않은 대안이었지만 이젠 별수 없다.
“아미드 함장! 말 그대로요. 모든 병력을 후퇴시키시오. 지금 즉시!”
“바로 보셨습니다. 디카르마타를 자폭시킬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주동력실의 보안을 풀 필요가 있으니 내가 주동력실로 향했다가 대피하겠습니다.”
시에라 등이 있긴 하지만 코어를 폭주시킬 자폭 허가를 내릴 권한은 아미드 함장과 이한 자신밖에 없었다.
“내 부하들이 그곳에 있으며 위치상 내가 더 가까운 데다가 돌발상황에도 함장보다는 내가 더 잘 대처할 것으로 보이는군요. 그러니 내가 명한 대로 하십시오. 트롤 거함이 크락투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니 지금이 기회입니다. 모든 포트와 수송선을 이용해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도록 하십시오!”
아미드 함장이 뭐라 더 말하려고 했지만, 이한은 통신을 끊고 즉시 주동력실로 향했다.
그곳엔 시에라가 있다. 설혹 같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 혼자 살 길을 찾지는 않는다. 멍청한 짓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게 나를 지키는 일이니까.
“전 함대에 연결해!”
『연결합니다.』
“한 사령관이다. 모든 함선 모든 병력은 즉시 모든 공격을 철회하고 후퇴할 준비를 하도록! 이상!”
이한의 명령을 들은 마린들이 빠르게 후퇴하는 와중 륭샤오핑 등은 별도의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이한의 뒤를 따라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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