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9
9.
이한은 벽을 부순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사지가 경직되는 감각에 휩싸였다. 그건 흡사 온몸의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크르르륵!
지금껏 목격한 그 어떤 개체보다도 거대한 크락투가 침을 질질 흘리며 몸을 뒤흔들고 있었다.
콰앙! 콰아앙!
한 가지 다행이라면 거대한 몸집으로 인해 벽을 부수고도 당장 자신에게 짓쳐 들 수 없다는 점이랄까?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이대로 죽을 셈이냐?’
이한은 자신을 맹렬하게 다그쳤다. 이대로 멈춰있으면 놈이 벽에 걸렸든 아니든 죽기는 매한가지다.
우우우웅!
오른손에 들린 초진동검이 쉴 새 없이 떨면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한낱 도구에 무슨 의지가 있다고 전의를 불태울까?
‘공포에 질려서 떨고 있다고 느끼는 것보다는 백배 낫잖아!’
스틸아머가 아니었다면 크락투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초진동검을 손에서 놓쳤을 것이다. 스틸아머가 아니라면 애초에 초진동검을 손에 들지도 못했겠지만.
검자루의 장치가 진동을 제어한다고는 하지만 맨손으로 초진동검을 쥘 수 있을 만큼 안전한 무기가 아니다. 그러니까 강철이나 저 단단한 크락투의 껍질마저 벨수 있는 것이고.
어쨌든 잠시 경직되었던 이한은 급히 몸을 뒤로 빼며 소리쳤다.
“워! 뭐라도 어떻게 해봐! 이놈을 나보고 혼자 상대하라는 개소리를 지껄일 건 아니겠지?”
쾅! 콰아앙!
부서진 벽 사이로 들어오려다가 못 들어온 놈은 화가 난 모양인지 몸통으로 연신 벽을 후려치고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저놈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제가 상황 파악이 가능한 구역에 머무르는 것을 권고드립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쿠우우웅!
놈이 다시 벽을 들이받자 벽이 흔들리며 움푹패이기 시작했다.
『사령관실은 센터 어떤 구역보다 튼튼합니다. 그러니 사령관실에 타격을 가할 정도라면 다른 구역으로 피해 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사령관님! 다른 개체가 부서진 환기구를 통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뭐? 젠장!”
쿵쿵쿵쿵!
워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장 부근에서 놈들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쿵! 콰아앙!
천장 한쪽이 불룩불룩 우그러지더니 이윽고 몸집이 작은 크락투를 뱉어냈다.
이한은 급히 몸을 옆으로 날렸다.
공중에서 떨어진 크락투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몸을 날리는 이한의 가슴팍을 긁었다.
끼이이익!
가슴 부근 아머에 불꽃까지 일면서 날카로운 흔적이 새겨졌다. 놀란 이한은 저도 모르게 들고 있던 초진동검으로 놈의 다리를 베었다.
부우웅!
촤아아악!
“키에에에엑!”
몸집이 작은 개체라 그런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놈의 다리를 베어버릴 수 있었다. 녹색의 피가 허공에 흩뿌려질 때 워의 긴급한 경고가 이어졌다.
『피하십시오! 피에서 산성 물질을 감지했습니다.』
이한은 반문할 새도 없이 급히 몸을 굴려 크락투의 피를 피했다.
치이이이익!
아니나 다를까 땅에 떨어진 놈의 피는 바닥을 사정없이 녹이며 지독한 연기를 피워냈다.
『폐쇄된 환기구를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산성 물질 때문으로 보입니다. 거대한 개체도 그렇고 이 개체 역시 지금껏 발견된 개체와 다른 개체입니다.』
워의 안내가 이어졌지만, 이한은 이미 그전에 알고 있었다.
‘산성액을 뿜어내는 크락투. 이놈이 벌써 출몰한다고?’
의아해하던 이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이스 워의 튜토리얼은 이제 잊어버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았다.
몸을 굴려 피했지만,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기에 피가 묻은 스틸아머의 표면이 흉물스럽게 녹아내렸다. 다행히 이한에게는 영향이 미치지는 않았다.
일어선 이한은 긴장한 표정으로 초진동검을 움켜쥐었다.
‘큰일이군. 라이플이라도 있다면 상대해보겠는데······. 이걸로 어떻게 놈들을.’
자신에게 다리가 잘린 놈을 제외해도 3마리나 되는 놈이 호시탐탐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방어력이 약한 개체인지라 초진동검을 가진 이한을 경계하며 섣불리 달려들지는 않았다.
쿠우웅! 쿠웅!
그러는 와중에도 거대한 몸집을 가진 크락투는 연신 벽을 후려치고 있었다.
『좀 더 뒤쪽으로 유인해 주십시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몸을 뒤로 뺐다. 그 모습을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이라 판단한 모양인지 3마리 산성 크락투가 한꺼번에 이한을 향해 짓쳐 들었다.
훙! 훙! 훙!
그 순간 바닥에서 기둥 세 개가 솟구쳐 허공에 떠 있던 크락투 세 마리를 그대로 천장에 압사시켜버렸다.
콰직! 콰지직!
키에에엑!
키에엑!
‘좋았어!’
그 기둥들은 스틸아머와 같이 특수장비를 착용할 때 사용되는 장치들이었다.
기둥 끄트머리에서 으깨진 살점과 녹색 피가 흘러내리자 역시나 매캐한 연기와 함께 기둥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워의 절묘한 대처에 안도하는 이한의 등 뒤를 습격하는 크락투가 있었다.
이한은 몸을 빙글 돌려 초진동검으로 놈을 양단함과 동시에 급히 몸을 뒤로 뺐다.
촤아아악!
스틸아머의 기능과 더불어 워의 경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훅! 훅!”
거칠게 숨을 내쉬던 이한은 여전히 벽을 두드리는 크락투를 바라봤다.
“어디 한 번 네놈 동족 맛 좀 봐라!”
기억하기로 게임에서도 크락투의 산성은 적아를 가리지 않았다. 통하지 않는다면 모든 크락투가 산성 계열의 피를 가졌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이한은 반으로 갈라진 산성 크락투의 시체를 냅다 발로 걷어찼다.
퍼어억!
몸집이 작다고 해도 상당한 무게와 강도를 지녔기에 사람이 발로 찬다고 움직일 리가 없지만 스틸아머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강화시키기에 크락투의 시체는 거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날아갔다.
산성 크락투의 시체는 벽을 부수는 데 여념이 없는 거대 크락투의 육체에 철푸덕 붙어버렸다. 산성 크락투의 잘린 단면과 접촉한 거대 크락투의 피부가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엑! 키에엑!”
놈이 지랄 발광을 하면서 요동치는 모습을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한은 번뜩이는 생각에 워에게 소리쳤다.
“이거 성분 분석 가능해?”
『크락투의 시체는 이미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방금 발견한 산성 물질의 성분 역시 파악하고 센터 내 가용한 물자로 크락투에게 치명적인 물질을 조합 중에 있습니다.』
“얼마나 걸려?”
『3분. 3분이면 됩니다.』
3분 만에 그 모든 일을 수행한다니 괜히 초인공지능이 아니었다.
하지만 링 위에서 쉴 새 없이 싸워본 이들은 잘 안다. 3분이 아니라 1분도 무슨 1시간처럼 길다는 것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한에게 있어 3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거대 크락투도 크락투지만 그 3분 동안 또 무슨 일이 발생할지 어찌 알겠는가?
“3분을 무슨 수로 버텨? 더 빨리!”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놔. 무슨 3분 카레도 아니고. 젠장.
“씨발! 3분이면 저 새끼 카레밥이 되고도 남을 거다! 네가 보기엔 외벽이 3분이나 더 버틸 수 있을 걸로 보이냐?”
『1분 안팎입니다.』
“그런데 3분을 나보고 버티라고?”
크르르르!
그때 발광하던 크락투가 벽의 구멍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사나운 눈빛으로 이한을 주시했다. 그 눈빛에는 지독한 원한이 서려 있었다. 누가 자신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는지 똑똑히 파악하려는 모양이었다.
“뭐? 뭐 이새끼야!”
엄습하는 공포에 이한은 오히려 분노를 터트리며 산성으로 삭아가는 기둥을 초진동검으로 벴다.
후웅! 끼이익!
밑기둥이 잘리자 기둥은 힘없이 쓰러졌고 이한은 그대로 그것을 양팔로 들었다. 산성 크락투의 피와 살점이 묻은 부위를 앞으로 두고 말이다.
“죽어어어어!!”
그리곤 구멍난 벽을 향해 냅다 달렸다.
쿵쿵쿵!
『위험합니다!』
워의 경고성이 이어졌지만, 귓등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닥쳐! 해결책은 X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하지 말라는 건 존나게 많아요!”
이한은 기둥을 그대로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거대 크락투는 가소롭다는 듯이 아가리를 벌려 기둥 앞부분을 베어 물었으나 멍청한 짓거리였다.
그 앞부분에는 산성 크락투의 산성 피가 잔뜩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키에에엑! 키에엑!
입안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고통에 놈은 더욱 발광했고 지금껏 버티던 벽에 금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키에엑!
놈은 고통에 힘겨워하면서도 두 눈은 이한을 향하고 있었다. 이한은 어떻게든 죽이겠다는 표정으로 벽을 치고 또 쳤다. 그리곤 기어코 벽을 부수고야 말았다.
콰아아앙!
놈의 발이 벽을 뚫고 나오는 순간, 이한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놈이 치명상을 입기는 했지만, 아직 뒈지지는 않았다. 이대로 놈이 좁은 공간에 들어선다면? 놈이 뒈지는 것보다 자신이 뒈지는 것이 훨씬 더 빠를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
“아우 씨발! 진짜.”
이한은 욕설을 내뱉으며 벽을 뚫고 나온 발을 향해 쇄도했다.
쿠웅!
이한은 그대로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곤 양손으로 초진동검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이한은 그대로 놈의 발등을 검으로 찍어버렸다.
콰직!
“키에에엑!”
놈은 발이 찢어지는 고통에 처절하게 울부짖으면서도 더욱 가열차게 벽을 부쉈다. 크락투는 어깨로 벽을 완전히 부숴버렸고 드디어 자신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한 먹잇감과 마주했다.
크락투는 날카로운 이빨로 이한을 물어뜯었다.
와그작!
10. 3분 카레와 쌩지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