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91
88. 잘 가라 (1) >
88. 잘 가라.
언급한 바 있지만, 코어는 반물질을 에너지원으로 삼으려고 연구하는 가운데 탄생한 중간 결과물에 가까웠다.
원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등의 소립자로 이루어져 있다. 한데 이 소립자와 반대되는 반입자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반입자로 이뤄진 물질이 바로 반물질이다.
반물질은 주변의 물질과 합쳐지면 상호작용을 일으켜서 소멸하는 대신 에너지로 전환되며, 그 에너지는 대개 열과 빛으로 확산된다. 더욱이 반물질은 블랙홀의 생·소멸과도 연관이 있다.
물질계에 반물질이 존재하게 되면 엄청난 반발력에 의해서 물질을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작용이 동시에 발생한다.
그러면서 그 공간은 외부와 시간차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 시간차를 두고 내부에 에너지가 쌓이게되고 중심의 질량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증가하다가 일정 한계치를 넘어서게 되면 공간과 시간도 왜곡시키는 절대중력 블랙홀이 생성된다.
다시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막대한 양의 물질을 초공간 안에 흡수, 블랙홀이 소멸되면 공간왜곡 현상에 의해 엄청난 에너지를 표출하게 된다.
간단히 입자 크기의 반물질이 만들 폭발도 핵분열폭탄의 1/2배의 위력을 발휘한다. 단 1g이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 입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누차 언급했듯이 코어는 반물질을 연구하다가 나온 산물이다. 코어 안정화 장치는 이런 코어가 반물질화 되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에 가깝다. 당연히 이게 불안정해지면 코어가 반물질화 되고 그럼 펑! 모든 게 끝장이다.
다시 말해 자폭 명령은 일부러 코어를 이런 상태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뜻이다. 현존하는 그 어떤 폭발도 코어가 반물질화되면서 일어나는 폭발보다 강력할 수 없다.
20km짜리 거함? 무슨 반물질 보호 기술이라도 있지 않는 이상 200km라고 해도 반물질과 맞닥뜨리면 그냥 끝이다.
너무나 강력하기에 당연히 테라는 무기로 제조하려고 했지만, 문제는 현재 이것을 제어 할 수 있는 방법이나 기술이 없다.
반물질은 물질과 닿는 순간 블랙홀을 생·소멸 시키며 폭발을 일으키는데 이걸 무슨 수로 무기화할 수 있을까? 진공상태로 두고 물질과 닿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이 최선인데 글쎄. 그 위력은 입자 크기라고 해도 엄청난 위력이고 자칫 하다간 함대나 행성을 블랙홀 안에 갈아넣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반물질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었다. 보유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할 테니까.
참고로 코어 주포는 이런 코어를 일정 부분 불안정하게 만들어 그 에너지를 쏘아낼 수 있게 만든 원리라 할 수 있었다. 코어 주포가 무슨 반물질을 쏘아내는 건 아니지만 역시 반물질을 무기화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행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행했다. 이제 남은 건 살아남는 일밖에 없다. 타카스. 아주 지긋지긋하다. 그러니 다시는 보지 말자!’
이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건 하늘에 달린 셈이다. 화살을 쏘기 전까지는 모든 집중과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미 쏜 화살은 잘못 쏘았든 제대로 쏘았든 내 손을 떠난 화살에 불과하다.
크락투들이 미쳐 날뛰며 주동력실 방향으로 달려왔다.
이한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초진동검 여러 자루를 날려 폭풍처럼 크락투를 썰어버렸다. 그 모습에 륭샤오핑 등이 이채 서린 눈으로 이한을 바라봤지만 그뿐이었다.
제시간 안에 도망치지 못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이니 그런 것에 놀라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시에라는 예의 크락투를 초능력으로 쓸어버리며 길을 열었고 륭샤오핑과 슈퍼솔져들 역시 기관총으로 짓쳐 드는 크락투를 쓸어버리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수송선이 있는 위치로 달리고 또 달렸다.
주동력실 방향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졌지만 이미 반물질화 되기 시작한 이상 주동력실을 파괴시켜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 오히려 그 일을 가속시키는 일밖에는.
‘제길!’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한은 더욱 다급한 심정으로 소리쳤다.
“워! 얼마나 남았지?”
『3분? 아니 2분? 정확하지 않습니다.』
“서둘러! 시에라!”
이 시점에서 기대할 사람은 시에라뿐이었다. 다행히 시에라는 이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앞길을 가로막는 크락투를 모조리 날려버렸다. 다만 그런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극도로 지쳐 보였다.
콰과과광!
그 힘이 어찌나 강렬한지 주변의 통로까지 이리저리 우그러질 정도였다.
그나마 빌리가 이 주변을 정리해뒀기에 탈출하기 용이하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내달린 이한은 륭샤오핑 등에게 소리쳤다.
“먼저! 먼저 가서 수송선을 출발시킬 준비를 해! 아니 디카르마타를 나서자마자 바로 워프할 준비를 하도록!”
디카르마타 코어의 영역권인데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니냐? 등의 말은 일절 하지도 않았다. 불필요한 말이었으니까.
륭샤오핑 등은 고개를 끄덕인 뒤 시에라가 열어준 통로를 통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시에라와 이한 역시 최대한 빠른 속도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쿠르르르릉! 쿠르르으응!
콰아앙!
콰아아아앙!
『추진체가 폭발했습니다. 크락투 놈들의 짓입니다.』
이한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정신도 없었거니와 이미 이 상황 자체가 자신의 손을 떠난 지 오래였으니까. 트롤 거함도 어떻게든 발악해보려는 의도로 크락투로 함선의 이곳저곳을 무작정 때려 부수고 있는 것이리라.
크락투가 미친 듯이 주변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륭샤오핑이었다.
다행히 이한과 시에라도 늦지 않게 수송선이 있는 지역에 탑승할 수 있었다.
이한과 시에라가 몸을 던져 탑승하기 무섭게 수송선의 문이 닫히고 안전장치를 착용하기도 전에 급발진했다.
쿠우우우웅!
쿠당탕탕!
이한과 시에라 모두 가속력으로 인해 이리저리 처박힐 뻔했지만, 시에라의 초능력으로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안전장치까지 착용할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조종을 맡은 륭샤오핑이 소리쳤다.
“워프를 시행!”
우우우우웅!
파지직!
허공이 아닌 공간에 워프하면 어쩌면 빛의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어딘가에 처박히는 셈이다. 그 끝이야 너무나 뻔하니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지체할 여유 따위는 없다. 워프하지 않는다면 코어 폭발에 휘말려 죽을 판국이었으니까. 못 먹어도 고다.
우우우웅!
파아앙!
수송선은 선체를 파르르 떨더니 디카르마타에서 나오기 무섭게 워프했다.
*
디카르마타에서 나온 수송선이 워프하는 그 순간, 우주 공간이 제멋대로 일그러지더니 이윽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냈다.
크에에엑!
트롤 거함은 끔찍한 괴성을 지르며 끌려가지 않으려고 용을 썼지만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했을 뿐, 트롤 거함은 순식간에 분해되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트롤 거함뿐만 아니라 주변에 존재하는 물질이란 물질은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문제는 그 물질 가운데 타카스 행성도 있었다는 점이었다. 타카스 행성 또한 섬광을 일으키는 모습을 잠시 보이더니 이윽고 갈가리 분해되어 블랙홀로 보이는 공간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헤아릴 수도 없는 거대한 빛과 열이 터져 나왔다.
쿠구구구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앙!
이윽고 엄청난 폭발이 그 주변 일대로 완전히 휩쓸어버렸고 타카스 행성이 존재하던 항성계 전체가 우주 모함 디카르마타의 자폭으로 그야말로 모든 것이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이것도 작은 폭발에 불과했다. 테라의 모든 세력이 왜 반물질 무기화에 힘을 쏟는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었고 왜 대다수 사람들이 반물질 무기화에 극심한 우려를 표하는지 알게 만드는 사례이기도 했다.
이것이 정말로 무기화되면 테라포밍까지 가능한 시대라고 해도 종말을 면치 못할 테니 말이다.
*
우우웅!
피슛!
이윽고 작은 수송선이 어느 우주 공간 한편에 모습을 드러냈다. 워프로 인한 충격으로 모든 이들이 정신을 잃은 상황이었으나 이번에도 역시 기이하게 이한만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몇 번을 경험하더라도 익숙해지지 않을 감각이다. 영원 속에 파묻혔다가 덕지덕지 뭔가를 묻혀서 나오는 느낌이라니. 어떻게 형언하기도 어려운 불쾌한 감각이다.
모두가 정신을 잃은 가운데 이한은 안전장치를 풀고 비틀거리며 상황판 쪽으로 향했다.
여기가 어딘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다만 소행성이나 행성에 처박히지 않은 게 분명한 이상 여기가 어디든 별문제는 없었다. 수송선으로 워프 한 이상 5광년 이상은 워프하지 못했을 테니 안전지역으로 먼저 워프한 8함대가 자신들을 찾아낼 테니 말이다.
어지러움에 잠시 눈을 감은 이한은 웃음을 흘렸다.
망할 타카스 행성을 아예 우주의 먼지로 만들어버렸다. 아주 절묘하다. 크락투, 클론 군단, 타카스 행성을 이용하려는 머저리들에게도 완벽하게 빅엿을 날려준 셈이다.
“큭큭.”
웃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그 웃음은 누가 봐도 통쾌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씁쓸해 보였다. 정확한 숫자는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이 일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의 숫자만 최소 만 명은 넘을 것이다.
물론 20km에 달하는 전무후무한 모함을 맞닥뜨리고도 그 정도 피해만으로 승전을 거뒀다면 대승도 그런 대승이 없었다.
8함대가 잃은 함선은 디카르마타 1척 외에는 전무했으니까. 이건 놀랍다 못해 기적적인 승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한은 마음이 무거웠다.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니라 했다. 크락투 함선이 출몰했으니 타카스 행성을 파괴해야 한다고? 클론 군단이 강성해질 수 있으니 타카스 행성을 파괴하자고? 자신의 처절한 노력으로 인한 것이든 어쨌든 인류가 얻은 피해는 디카르마타 1척에 불과하다.
어떻게든 토벌하고 타카스 행성의 자원을 이용하려고 할 확률이 월등하게 높았다. 이 머저리들은 수백만 그 이상이 죽은 그 이후에야,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된 이후에야 타카스 행성을 파괴해야 한다느니 마느니 그딴 소리를 내뱉겠지.
그때는 이미 타카스 행성을 파괴해도 별 의미가 없는 시점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모조리 날려버렸다. 어차피 이 방법 외에는 트롤 거함을 처리할 방법도 없었기에 깔끔하게 모조리 날려버렸다.
아주 속이 후련하다. 후련하기만 해야 하는데 그게 또 그렇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의 명령을 받던 사람들이 몰살당한 셈이니까. 그것과 이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뭐 지나간 일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이한은 상념을 가볍게 털어낸 뒤 상황판을 살폈다. 그렇게 상황판을 살피던 이한은 극심한 의문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워프 거리를 측정할 수 없다고? 갑자기 이한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워프 거리를 측정할 수 없다고? 측정기가 망가진 건가? 그도 아니면?
안 그래도 어지러운데 머릿속이 복잡해지니 더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낀 이한은 일단 비어있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냉정하게 생각했다.
테라의 기술로는 20광년 그 이상의 거리를 워프하기 어렵다. 수송선의 동력으로는 5광년이 최대다. 그 이상은 어떻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그 사실을 상기한 이한은 측정기가 망가진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 하긴 극심한 폭발에 휘말릴 뻔했으니 어디 행성에 처박혔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 아닌가? 측정기가 망가진 정도야 애교 수준에 불과했다.
“통신장비가 망가졌으면 이건 좀 곤란한데.”
자리에 앉아 있던 이한은 통신장비를 작동시켰다. 동력이 바닥이니 정보를 어디론가 전송하기도 어렵지만 8함대가 자신들을 찾기엔 충분할 것이다.
다행히 통신장비는 정상 작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정도가 이한 등이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전부에 가까웠다.
“후우. 이제 기다리면 되겠군.”
타카스 행성을 부순 일에 대한 추궁? 할 테면 하라지. 지들이 전투기록을 보고도 그딴 소리를 지껄일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보라지. 정신 나간 놈들에게 줄 것은 빅엿밖에 없다.
삐딱한 자세로 사람들이 깨어나길 가만히 기다리던 이한은 갑자기 어떤 생각에 항로를 확인해보려고 항로맵을 열었다.
‘미확인 지역? 하긴 모든 지역을 확인할 수는 없을···. 잠깐 미확인 지역이라고?’
타카스 행성에서 다량의 초자원이 발견되었다. 그 주변으로 왜 정찰함을 보내 조사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10광년 안쪽으로 상세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항로맵은 구성되어야 있어야 정상인 상황인데 미확인 지역이라고?
‘씨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니 느낌이 매우 좋지 않았다.
“여긴 대체 어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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