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93
90. 잘 가라 (3) >
90.
잠시 뒤 이한은 수송선을 샅샅이 확인하고 온 슈퍼솔져들의 보고를 받았다.
“별다른 것은 발견할 수 없었고 건설로봇 한 기를 발견했습니다.”
“건설 로봇?”
짧게 반문한 이한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워 이 새끼. 기특한 놈 같으니라고.”
건설 로봇이 있다면 초인공지능 장치를 만드는 것과 컨트롤 센터도 만들어낼 수 있다. 일단 컨트롤 센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생존에 대한 위협은 크게 줄어든다.
착륙할 행성에 프로젤과 세라메틱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행성의 기초 자원을 통해서도 외부는 얼추 건설할 수 있을 테고 핵심부품은 수송선에 남은 극소량의 초자원을 이용하면 기초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사령관님.”
그때 수송선의 항로맵 등을 이용해 주변 행성에 대해 분석하고 있던 륭샤오핑이 입을 열었다.
이한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륭샤오핑이 보고를 시작했다. 륭샤오핑은 손을 허공으로 던지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했는데 그와 동시에 홀로그램으로 이뤄진 항로맵이 이한 주변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륭샤오핑은 확대된 항로맵에 뜬 여러 물체 가운데 한 행성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이 행성이 그나마 적절해 보입니다.”
그러자 그 행성이 확대되며 기초정보들이 홀로그램에 나열되기 시작했다.
크기는 테라의 1.5배 정도 되는 행성이었는데 온통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이었다.
“중력도 그리 강하지 않고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이니 지각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도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른 행성은 항성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적합하지 않고 나머지는 소행성이 전부입니다. 얼음을 용해하여 분자구조를 재배열하면 산소 등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고 단백질과 같은 유기물을 결합하면 부족하게나마 식량을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판단됩니다. 물론 없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체 반응이나 초자원의 유무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수송선의 탐색능력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현재 시간을 길게 끌 상황이 아니니 이곳 얼음 행성을 착륙지로 삼도록 하지. 수송선에 남은 초자원을 모두 사용해버리면 그땐 무슨 초자원을 보유한 행성이나 거주 가능한 행성을 찾아내지 않는 이상 컨트롤 센터 건설조차도 불가능해질 테니 말이야. 행성과의 거리는 대략 2억km인가?”
“예. 수송선이 얼만큼의 속도를 낼 수 있느냐에 따라 도착시간이 달라지겠지만 수송선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20일 남짓합니다. 이를 고려해서 계산하면 시속 50만km에 준하는 속력은 내야만 제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로렌츠변환을 시간에 적용하면 물체가 광속에 다다를수록 시간이 느려지고 광속에 이르면 물체의 시간은 무한대, 광속을 넘어서면 허수가 되어버리기에 모든 물체의 속도는 광속을 넘어설 수 없다.
따라서 수송선은 물론 그 어떤 가공할만한 함선이라 할지라도 빛의 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다. 바로 수송선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면 광속이 약 초속 30만km이니 11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워프로 인해 거의 모든 연료를 소진했고 남은 연료에 포함된 미량의 초자원은 컨트롤 센터 건설에 사용되어야 하기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광속 이동에 초자원이 사용되는 것이라 그에 미치지 않는 속도를 내는 건 여타 연료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주에서 방향만 잘 조절하면 한번 가속한 물체는 계속 한 방향으로 달려갈 테니 행성에 부딪혀 대폭발을 일으키기 전에 감속시키면 될 일이다.
“계산해보니 다행히 가속과 감속 모두 수송선의 연료로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연료 부족으로 감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초자원은 극소량이라 어떻게든 아껴야 하니 그때부터는 이한과 시에라가 수송선을 제어해서 행성에 착륙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소행성이 워낙 많기에 중간중간에 경로를 바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초인공지능이라면 그것까지도 계산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워라고 해도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을 것이다. 계산이라는 것도 정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건데 수송선의 탐지거리로는 목적지까지 향하는 경로를 모두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다면 정작 감속해야 할 때 필요한 연료가 더욱 부족해지겠지. 간신히 도착한 목표지점과 충돌해 폭사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그건 우리가 맡도록 하지.”
이한은 잠시 말을 멈춘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이곳 행성의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빨리 컨트롤 센터를 건설하는 게 중요해. 그러니 극소량의 초자원을 활용해 지금 즉시 초인공지능 장치를 생산하도록 건설 로봇에게 명령해놓도록.”
이번 계획은 뒤가 없다. 이 계획이 실패하면 다른 작전은 없고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만약을 대비해 여유 자원 같은 것을 쌓아놓을 여력 따위는 없다. 수송선이 잘못된 경로로 접어들거나 제대로 감속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초자원을 남겨둘 수 없다는 소리. 현 상황에서 초자원은 오롯이 컨트롤 센터를 건설하는 데만 사용되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이곳이 미확인 지역이 맞다는 증거는 이미 충분히 확보된 상황이라 마냥 8함대의 구조를 기다리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생존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시점. 따라서 이한은 주변의 슈퍼솔져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체할 것 없이 즉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두르르르.
수송선이 잠시 미약한 흔들림과 함께 방향을 조정하더니 이윽고 얼음 행성을 향해 가속하기 시작했다.
탁탁탁!
수송선을 조종하고 있던 륭샤오핑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계기판을 바라보다가 즉시 모든 시동을 꺼버렸다.
“현재 수송선의 속도는 시속 55만km. 변수가 없는 한 예상 도착 시간은 대략 15일 정도로 예상됩니다. 연료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초 생명 장치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분에 대해 작동을 중지했습니다.”
이한은 홀로그램에 떠 있는 얼음 행성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엔 대체 어떤 것들이 도사리고 있을까? 그건 둘째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부정적인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이한은 그 모든 감정을 털어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나중 일에 대한 두려움은 나중으로 내버려 두면 될 일. 지금은 당면한 일에만 신경 쓰겠다.’
*
“사령관님! 소행성입니다!”
초진동검을 여러 자루를 다루는 일과 수송선을 제어하는 것은 급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움직이는 수송선의 방향을 트는 정도는 이한이 제어할 수 있었다. 매우 힘든 일이긴 하지만 지금은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할 일이다. 시에라는 시에라만의 임무가 남아 있으니까.
이한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정신을 집중해 수송선 외부로 기운을 돌렸다.
그리곤 방향을 뒤틀었다.
구르르르릉!
“더 틀어야 합니다!”
냉정한 륭샤오핑의 발언에 이한은 표정을 더욱 일그러뜨리면서도 아무 말 없이 수송선의 방향을 틀었다.
쿠구구구구.
소행성은 빠른 속도로 이한이 탄 수송선을 지나쳐갔다.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원래 경로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륭샤오핑의 보고에 이한은 심력이 고갈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모든 여력을 다해 수송선을 홀로그램에 뜬 경로로 이동시켰다.
홀로그램의 뜬 수송선이 서서히 원래 이동경로로 원만하게 꺾어져 돌아오는 것이 이한의 눈에도 들어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이한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건네는 륭샤오핑을 바라봤다.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다. 소행성은 전후좌우 할 것이 없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그러니 쉴 틈이 없었다.
작은 바위 수준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추진체에 손상이라도 입히면 속도를 줄여야 할 때 줄이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행성이 이리도 무서운 놈들인 줄은 이참에 확실히 알겠다. 이게 며칠 째지?”
이한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초췌한 표정의 륭샤오핑이 입을 열었다.
“14일 정도 지났습니다. 이제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그렇군. 좀 쉴 테니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깨워.”
“알겠습.”
이한은 륭샤오핑의 대답을 미처 듣기도 전에 골아떨어졌다.
그런 이한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륭샤오핑은 시에라가 들어선 방을 힐끗 바라봤다. 대다수 위험은 통과한 셈이다. 이제 남은 건 시에라 소령이 수송선을 착륙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눈 좀 붙이시죠.”
그런 그에게 말을 건네는 슈퍼솔져가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도록.”
“착륙에 성공했을 때를 대비해서 말입니까?”
“그래. 얼음 행성이라 무슨 생명체가 존재할 것 같진 않지만 무슨 일이 발생할 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륭샤오핑의 발언에 주변에 편안한 자세로 널브러져 있던 슈퍼솔져들은 지쳐 골아떨어진 이한을 바라봤다.
포기할 줄 모르는 사내고 능력 역시 탁월한 사내다. 지금처럼 소행성이 스쳐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무수히 많은 암석들이 이동경로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한 사령관은 별 피해 없이 수송선을 지켜냈다.
그때 수송선의 움직임은 마치 요격기가 움직이는 것처럼 격렬했다. 실로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수송선의 기능이 정상이라고 해도 그때 그 암석들을 피해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초인공지능 마스터가 이능까지 지니고 있다니 여러모로 불가사의한 인물이었다.
“어쨌든 빚을 졌군.”
거칠게 생긴 한 슈퍼솔져가 입을 열자 누구 하나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수긍하는 눈빛으로 이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
“한 사령관님.”
륭샤오핑의 음성이 들린 것 같았다. 잠깐! 륭샤오핑? 이한은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번쩍 뜨며 급히 대답했다.
“음. 으음? 또 소행성인가?”
“아닙니다. 원래 경로를 여러 번 이탈하며 지체되기는 했지만 곧 도착합니다. 얼음 행성에 말입니다.”
이한은 그 말에 시에라가 들어선 방을 바라봤다.
“며칠이나 지났지?”
“저희가 이 주변으로 워프한지 대략 16일 정도 지났습니다.”
무슨 명상을 16일이 넘도록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만큼 무리했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이제는 시에라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에라를..”
이한이 슈퍼솔져에게 시에라를 불러달라는 명령을 내리려 할 때 시에라가 문을 열고 나왔다.
시에라와 눈을 마주친 이한은 그녀가 이미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때 륭샤오핑의 보고가 떨어졌다.
“전 병력 안전장치 착용! 역분사로 통해 감속하며 행성에 진입하겠습니다.”
이한과 시에라를 비롯한 모든 슈퍼솔져가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로 안전장치를 착용했다. 수송선 내에는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착륙에 실패한다면 죽음밖에는 없을 테고 착륙에 성공해도 안심할 상황은 아닐 테니까.
“실시!”
쿠우우우웅!
수송선이 떨리며 속도를 감속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행성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쿠우웅!
그 충격으로 다시 수송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한은 수송선이 미친 듯이 떨리는 와중에도 얼음 행성에 대기권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정도 속도라면 위험합니다.”
륭샤오핑의 보고가 이어지기 무섭게 시에라에게서 엄청난 기세가 폭사되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올올이 곤두섰고 부릅뜬 그녀의 눈에는 시퍼런 광망이 일렁거렸다.
쿠구그그그그그.
그녀의 기세를 접한 슈퍼솔져들은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할 정도로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건 륭샤오핑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천적을 앞에 둔 먹잇감이 된 기분이랄까? 실로 압도적인 기세였다.
륭샤오핑은 그런 가운데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재차 보고했다.
“곧 지면과 충돌합니다. 충격에!”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이윽고 수송선은 엄청난 굉음을 일으키며 미친 듯이 요동쳤다. 시에라의 기세는 그 요동과 동조라도 하듯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
콰아아앙!
콰르르르르르.
“크흑!”
“크흐흐흑!”
슈퍼솔져들조차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었다. 이윽고 수송선의 진동이 덜해졌고 곧 멈춰섰다.
이한은 정신을 잃은 시에라를 급히 살펴보며 륭샤오핑에게 소리쳤다.
“보고!”
“착륙에 성공했습니다.”
무미건조한 륭샤오핑의 눈빛에서도 시에라를 향한 감탄을 읽을 수 있었다. 놀랍긴 이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료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소모되었고 수송선의 속도를 완벽하게 줄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시에라는 수송선을 행성에 무사히 착륙시킨 것이다.
이한은 시에라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은 뒤 안전장치를 풀고 슈퍼솔져들에게 소리쳤다.
“컨트롤 센터를 건설하기에 가장 적절한 지역을 찾는다.”
“알겠습니다.”
이미 모든 준비가 완료된 이들은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야 한다. 최소한 컨트롤 센터를 지을 때까지는 조금도 안심할 수 없었다.
이윽고 수송선의 문이 열리고 슈퍼솔져들은 3명씩 일곱 조를 이루어 신속하게 밖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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