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ny Employee Who Sees Destiny RAW - chapter (138)
군산 시내의 조그마한 건물에 입주해 있던 선거사무소는 한창 원상복구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그 모습을 잠시 살펴보던 영훈은 다시 차를 움직여 군산시청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시장실로 올라가니 이미 말이 돼있었는지 비서가 바로 시장실 문을 열어준다.
“어서 와! 하하하!”
보자마자 화통한 웃음소리가 반겼다.
양팔을 활짝 벌리고 안는데 어찌나 기뻐 보이는지 누가 보면 군대간 자식이 돌아온 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가운데 위치한 응접테이블과 소파형 의자에는 한 명의 남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영훈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목례를 했고 조재민 군산시장은 그 남자의 어깨를 치며 소개했다.
“어, 그리고 인사해. 여기는 강윤기라고 광주에서 영민주택이라는 작은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안녕하십니까. 영민주택 강윤기라고 합니다.”
영훈은 일단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고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HS물산 최영훈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꽉 맞잡아온다.
“그런가요? 험담하신 거 아닌가 걱정되네요.”
“험담이라뇨. 시장님께서 어찌나 칭찬을 하시던지, HS물산에서 한국을 이끌어갈 인재가 나왔다면서 저를 잔뜩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하하, 기대까지 하셨습니까?”
“누구라도 시장님의 그 칭찬을 듣고 있으면 기대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이때 조재민 시장이 끼어들었다.
“자자, 일단 앉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서울에 있으니까 부를 때마다 미안하다니까.”
“시장님이 그냥 놀러오라고 부르시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서 강윤기라는 자가 끼어들었다.
“하하, 최영훈 상무님은 그냥 놀러 오기는 싫으신가 봅니다?”
“그럼요. 엄연히 직장이 있는데 서울에서 군산까지 그냥 놀러 오면 일은 누가 하겠습니까?”
미묘하게 공기가 식어갔다.
괜히 민망해진 조재민 시장이 나섰다.
“그럼, 그럼. 내가 당연히 이해하고 있지.”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미세하게 굳어진 조 시장의 표정을 영훈과 강윤기 모두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영훈은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조재민 시장 역시 영훈이 이런 상황을 조금도 개의치 않아 한다는 걸 느꼈다.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짐을 느낀 조 시장이 말을 이었다.
“해주조선해양 인수는 문제 없지?”
“이미 끝난 상황입니다. 신영은행과 산업은행에서 자금 오가면 끝이죠.”
“경영자를 교체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네. 강 사장과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거든요.”
“소문이 사실이었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영훈은 씨익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그건 나중에 조용한 자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재민 시장은 확실히 알았다.
지금 영훈이 새로 온 남자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걸.
일단 일그러진 얼굴의 강윤기를 내보내고 둘이 이야기하게 되면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 그럴수도 있지. 자네는 잠깐 나가 있게.”
“알겠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시장실을 나가는 강윤기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조재민 시장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의 영훈에게 말했다.
“저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마음에 든다, 또는 들지 않는다는 지금 이 상황과 맞지 않습니다.”
“응?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그는 저와 같이 일하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니까요. 전 오직 시장님만을 상대합니다.”
“자격이 안 된다는 거군.”
“맞습니다.”
“실력이 대단한 친구야. 선거를 준비하면서 그간 꽤 골치를 썩게 한 일이 있었어. 해주조선해양이 내민 군산조선소 신규채용 임금조건과 기존 조선소 노조가 주장하는 임금조건이 달랐거든. 알지?”
“알고 있습니다.”
“기존 노조가 주장하는 조건으로 채용하면 고작 1,300명 밖에 채용할 수가 없어. 하지만 해주조선해양이 제시한 임금조건으로 하면 2천명까지 신규채용이 가능해. 물론 이것도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그건 차차 늘려가기로 했으니 인정해야겠지만 말이야.”
이게 다 일감 부족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실적 부진의 낭떠러지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회사가 인원을 감축하는 것도 아니고 신규 인력을 천명 넘게 고용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비이성적이게 보일 수도 있었다.
정치적인 문제와 결합되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조재민 시장도 무작정 밀어붙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요?”
“저 친구가 무슨 수를 썼는지 단박에 해결했어. 기존 노조가 해주조선해양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방금 연락이 왔어. 기본임금은 줄어들더라도 나중에 일감이 늘어나서 연장근무가 많아지면 근로자도 살고 회사도 산다는 말이 먹힌 거지. 이걸 설득하기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받아들여졌으니 이제 한숨 돌렸어.”
“축하드립니다.”
“자네는 좋아하지 않는 것 같군.”
“좋습니다. 많은 노동자가 군산조선소에서 근무한다면 시의 경제가 더 좋아질 테니까요.”
“그런데 왜 그 표정인가?”
“저 사람 어떻게 만났습니까?”
“응? 어떻게 만났냐니?”
“자연스럽게 알게됐습니까?”
조 시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대답했다.
“누가 보면 점쟁이라고 해도 믿겠어. 어떻게 알았나?”
영훈은 살짝 뜨끔함을 느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면 의원님께서 지금까지 꽁꽁 숨겨두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그럼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됐다는건데 당선이 확정된 국회의원 옆에 나타난 기업인. 뻔한 거 아닙니까?”
“듣고 보니 뻔하군. 맞아 누가 소개해줬어.”
“누가 소개해줬습니까?”
“그게 중요한가?”
“다른 사람이라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텐데 이번에는 조금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어째서?”
“이번에 우리가 건설회사를 인수하면서 건설쪽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특히 봉선동 아파트 시공 사업권 때문에 지방 아파트 건설업체를 많이 살펴봤죠. 경쟁업체들이니까. 그중에 영민주택도 있었습니다.”
“그랬던가?”
“시장님은 외부에서 그저 우리 회사가 되기를 밀어주셨을 테니까 그 외의 경쟁업체들에 관해서는 모르셨을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그래서?”
“전라도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해가는 건설회사더라구요. 아파트쪽은 경험이 많지 않지만 소형주택을 중심으로 상당히 많은 사업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대형 단지 사업권을 따려고 노력하던 회사란 말이죠. 그러니까 제가 왜 궁금해하느냐…”
영훈은 잠시 말을 끊고 조 시장의 눈을 마주보다가 말을 이었다.
“HS건설과 의원님과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거나 알아도 상관없는 사람이겠죠. 얼마나 우리 회사를 무시하면 경쟁사 사람을 시장님 옆에 붙이겠습니까?”
조재민 시장은 날카롭게 날이 선 영훈의 기세에 당황했다.
“오해하는 거네. 자네가 그랬지 않나? 내가 큰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장자방같은 자네도 필요하지만 소하처럼 묵묵히 뒤를 밀어줄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냐는…”
영훈은 조 시장의 말을 잘랐다.
“착각하고 계시네요, 시장님.”
“착각이라고?”
“네. 저는 시장님의 장자방이 아닙니다. 말씀드렸죠? 시장님과 저와는 서로 줄 걸 주고 받을 걸 받는 파트너입니다. 저는 시장님께 군산조선소를 가동시켜드렸고 시장님은 우리에게 봉선동 아파트 시공권을 비롯해서 여러 공사를 맡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건설회사를 끼워 넣는다? 제가 어떻게 이해
하길 바라셨습니까?”
“그건…”
“정치하시는 분들은 가끔 정치 외에 있는 분들을 자신보다 낮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시장님이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우리의 관계를 정립시켜 드리겠습니다. 우린 시장님이 큰 정치인이 되기 위해 하
나의 도움을 줄 수 있고 시장님은 그때 하나의 답례를 하는 겁니다. 뭐, 한국인의 정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중간중간에 조언 정도는 해드릴 수 있는데, 큰 틀이 이렇다라는 겁니다.”
“자네 외의 조력자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군.”
영훈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미소를 짓다가 말했다.
“제가 어렸을 때 말입니다. 어른들 말씀을 참 잘 들었습니다. 제법 착한 아이였거든요. 마당을 청소해라. 과일을 가져와라. 눈이 많이 왔으니 연탄재를 뿌려라. 이런 것들 말이죠. 그때마다 심부름을 하고 칭찬을 받으러 가면 맛있는 과자나 과일을 받고는 했습니다.”
“어릴 때는 그 낙으로 심부름을 하는 거지.”
“맞습니다. 그런데 꼭 그때마다 친구 녀석 하나가 제가 일할 때는 옆에서 빈둥거리다가 같이 껴서 과자나 과일, 사탕 따위를 받았습니다. 일은 내가 다 했는데 말이죠. 그게… 사람 기분을 참 안 좋게 하더란 말입니다.”
“…”
“이제는 아이에서 어른이 됐기 때문에 심부름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일도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 있어졌죠. 어른이 되니 좋은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영훈의 미소에 조재민 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실수했군.”
“생각해보고 결과는 나중에 통보해주실 겁니까?”
“아닐세. 그럴 수야 있나. 아무리 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이라고 해도 군산조선소를 내 품에 안겨줄 능력이 있는 사람과는 그릇이 다를 게 아닌가? 고민할 이유가 없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내가 잘 이야기할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게. 여기까지 왔으니 내가 저녁이라도 사야 할 거 아닌가?”
영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대답 안 하셨습니다. 누굽니까? 저 사람 소개시켜준 사람이.”
“임복희라는 점쟁이네.”
“점쟁이요?”
“만신이라고 하더군. 만신이 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던데…”
“알고 있습니다.”
“이 바닥에서 꽤 유명한 점쟁이야.”
“정치권에서요?”
“그래, 심지어 나도 몇 번이나 들었을 정도였어.”
영훈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만났습니까?”
“총선 하루 전날에 날 찾아왔네. 그리고는 내가 못 믿을까 봐 강금원 원내대표와 전화통화까지 하면서 안심시켰네.”
“원내대표까지 잡고 있는 점쟁이군요.”
“그래. 그러면서 좋은 사람을 소캐시켜줄 테니까 복채로 천만 원을 달라고 하더군.”
조 시장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주셨군요?”
“그랬으니까 저 친구를 만났지.”
“아까우시겠습니다.”
“까짓 천만 원 공부했다 치겠네.”
“쉽게 안 물러날 겁니다.”
“저 친구가?”
“네.”
“어떻게 아는가?”
“그냥 느낌이 그렇습니다. 욕심이 많아 보여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보내더라도 적당히 손에 쥐어주세요. 심부름 시켜놓고 머리만 쓰다듬어주는 건 부모나 가능한 겁니다. 남이면 하다못해 사탕 하나라도 쥐어 보내야 뒤탈이 없습니다.”
“흐음… 알겠네.”
영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이곤 시장실을 나갔다.
저 멀리 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는 강윤기는 영훈과 눈이 마주치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영훈은 그를 보며 재빨리 핸드폰으로 강윤기 영민주택 사장을 검색했다.
다른 건 볼 필요가 없었다.
그저 생년월일만 알면 충분했다.
“시장님의 장자방이 이렇게 젊은 분이셨을지는 몰랐습니다.”
“잘못 알고 계시네요. 전 시장님의 장자방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쪽도 시장님의 소하는 아닐 것 같습니다.”
“뭐라구요?”
“소하가 되기에는 욕심이 과해 보이거든요.”
사주를 제외하고서라도 관상만 보아도 그의 성향을 알 수 있었다.
광대가 얕고 턱에 각이 져 있으며 코가 계단식으로 패여 있다.
이런 사람은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경주마처럼 직진만 하는 스타일이다.
인내심도 부족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면서 욕심이 과하니 조금이라도 대가가 부족하다 여기면 서슴없이 남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 사업이 잘 되는 건 타고난 머리와 사업운이 잘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운은 대단히 좋았다.
“흥, 왜요? 내가 조재민 시장과 가까워지려니까 쫄리나 봅니다?”
영훈은 윤기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조재민 시장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존재군요. 하지만 난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난 조재민 시장을 선택했어요. 그 차이를 아십니까?”
영훈은 입술을 깨무는 윤기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고는 그를 지나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