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ny Employee Who Sees Destiny RAW - chapter (306)
천보윤 의원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건 여당에도 오성그룹에도 그리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승리를 예견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천보윤 의원이 국회의원에서 대통령 당선인으로 신분이 올라서자, 오성그룹 내에서는 인수위원회 구성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나름대로 인수위원회에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제 완쾌해서 일선에 복귀한 강재식 부회장은 둘째 아들인 강대성 사장을 불러다 놓고 말했다.
“알아본 바는?”
“70% 정도 마무리한 것 같아요. 청와대 비서진 인사는 거의 마무리된 것 같고, 이번에 힘을 많이 쓴 선대위 위원장은 차기 당 대표가 확실시되고 있어요.”
“흥! 힘을 쓰긴··· 일곱 살 먹은 아이를 그 자리에 놔둬도 이겼을 것인데···. 최영훈이 쪽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요.”
“없다고?”
“네. 이미 천보윤 대통령 당선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인수위원회에 HS그룹 쪽 사람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없어요.”
“확실해? HS그룹과 친분이 있는 교수진이나 연구진은?”
“찾아본 바로는 전혀 없어요. 오히려 너무 없는 게 신기해서 더 파 보고 선거참모진이나 위원장 쪽 실무진에게도 접촉해 봤는데, 그쪽에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해요.”
“어차피 천보윤이 자기들 손아귀에 있다는 건가?”
“자신감이라고 봐야 할까요?”
강재식 부회장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자신감이겠지.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으니 굳이 인수위원회에 손을 뻗을 필요도 없다고 보는 것일 텐데··· 어리석어. 대통령이 마음만 먹는다고 나랏일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는 거야.”
“맞습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고 원칙이 있으니까요. 인수위원회에서 정해진 원칙을 나중에 대통령이 손대려고 하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죠. 어쩌면 이제 곧 승진한다는 말 때문에 스스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정신이 딴 데로 향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놈은 아니다. 그런 얼빠진 놈이었다면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그 자리에까지 올라갔을 리가 없지.”
“그럼 어떻게 할까요? 선대위 위원장 통해서 우리 쪽 사람을 넣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활동하는 데 제약이 많을 겁니다. 우리 쪽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요.”
“뭘 어떻게 해? 최영훈이하고 한 약속이 있으니 최영훈 통해서 넣어.”
그렇게 정리하려는데 똑똑 문소리가 나며 비서가 들어왔다.
“아가씨가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잠시 후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다은이 들어왔다.
이미 혼인을 마치고 신혼집으로 들어간 그녀와 종종 연락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은 근 석 달 만이었다.
“아빠~”
환하게 웃으며 잠깐 강재식 부회장의 품에 안긴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평소 아빠를 향한 애교가 많지 않았고 또 그렇게 커 왔던 그녀였기에 강재식 부회장은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딸은 결혼하고 신혼집에 들어간 뒤 얼굴이 더 좋아 보였다.
피부가 좋아졌다는 게 아니라 표정이 밝아졌다고 해야 할까?
“여기 웬일이냐?”
다은은 가방을 자신의 옆자리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가 못 올 데 왔어요?”
순간 대성은 그녀가 내려놓은 가방에 눈길을 주다 물었다.
“그건 뭐야?”
“뭐?”
“그 가방. 네 것 아니잖아?”
다은은 옆에 내려놓은 가방을 슬쩍 들어 올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거 내 것 맞아.”
“맞다고? 그거 중저가 브랜드 아니야? 네가 이걸 든다고?”
다은이 들고 온 가방은 20, 30대 사회 초년 여성들이 처음 사는 명품 브랜드였다.
그런데 말이 명품이지 가격은 백만 원이 안 넘고 제품의 질도 떨어지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저렇게 낮은 급의 브랜드는 다은이 철이 없던 십 대 시절에도 들고 다닌 적이 없었다.
“응. 알잖아, 나 이제 공인이야.”
순간 대성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풉! 아이고. 공인이세요?”
비웃는 오빠의 태도에도 다은은 오히려 어깨를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나 대통령 당선인의 며느리야. 그리고 하필 우리 시아버님이 이혼하셔서 영부인 자리가 공석이고. 아, 어제는 여당 원내 의원들이랑 식사까지 했어. 그런데 수억이나 되는 초고가 백을 들고 다니면 우리 시아버님 얼굴에 먹칠하는 게 되잖아. 나도 이제 어른인데 그 정도는 생각해야지.”
대성은 새삼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래?”
“그래서 옷도 나름 보세로 다시 샀어. 가지고 있는 옷들은 못 입고 친구들 나눠 주느라 얼마나 아까웠는지···.”
“왜? 그냥 뒀다가 나중에 입지?”
“시아버님 내려오실 때면 5년 뒤야. 그 정도면 옷도 썩어. 그냥 나눠 주고 말지.”
남매가 대화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던 강재식 부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만하면 됐다. 집으로 안 가고 이리로 왔으면 할 이야기가 있을 것인데 용건을 꺼내 봐.”
“아빠, 건강은 어때요?”
“건강 괜찮다. 그렇게 아빠 걱정했으면 왜 퇴원할 때 안 왔어?”
“에이··· 아빠 퇴원할 때 나 신혼여행 가 있었잖아요.”
그래도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아빠를 보며 다은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건강하시다는 거죠?”
“그건 왜 자꾸 묻냐?”
“제가 용건을 말하면 우리 아빠 놀라실까 봐서요.”
대성의 얼굴이 굳어지고 강재식 부회장의 관자놀이가 꿈틀거렸다.
“네가 어려서부터 얌전히 자라 와서 내가 너 때문에 크게 놀란 일은 기억에 없는데, 커서 아비를 놀라게 하는구나.”
“그건 아빠가 잘 몰라서 그래요. 엄마는 나 때문에 몇 번 기함하셨거든요. 근데 이제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지금이 중요한 거잖아요.”
“그렇지.”
“큰오빠는 계열사를 분리해서 나갔고 작은오빠는 오성전자를 경영하기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지분을 물려받았어요. 그런데 전 아직 아무것도 없네요.”
강재식 부회장은 턱을 괴면서 대답했다.
“사람들 이목 때문에 그 허접한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당장 오성유통을 내놓으라는 말이냐?”
“오래전에 아빠가 한 말이 떠올라요. 돈을 빌리면 절대 갚지 말고, 빌려줬을 때는 지옥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돌려받아야 한다고 하셨죠. 만약 오성유통을 5년간 아버지가 운영하시면 그게 제 것이 될까요? 아니면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는 술 한잔에 나눈 농담처럼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될까요?”
“그럼 지금 당장 돌려받겠다? 세상 이목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나 아빠 딸이에요. 아빠 딸로서 아빠 상속 재산 중 일부를 가질 권리가 있고 결혼한 딸에게 미리 재산 나누어 주었다고 말하면 크게 말이 나올까 싶어요.”
“그건 네 생각이지. 자칫 잘못하다가 이제 당선된 대통령, 청와대에 입성하기도 전에 레임덕이 오기라도 한다면 네가 감당할 수가 있을 것 같으냐?”
다은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날카롭게 노려보는 아빠와 눈을 마주했다.
예전에는 감히 아빠에게 대거리를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대통령의 며느리가 돼서인지 아버지의 저 눈빛도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왜 저희 시아버님이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강재식 부회장은 삐딱했던 자세를 곧추세우곤 검지로 톡톡 팔걸이를 두들겼다.
“천보윤 당선인이 허락한 사안이다?”
“솔직히 말하면 대놓고 허락하지는 않으셨어요.”
“그럼?”
“그냥 물어보더라고요.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던데 어떻게 되고 있냐?’ 하고요.”
“그래서 넌 어떻게 대답했냐?”
“예민한 시기라서 움직이지 않고 그냥 기다리고 있다고 했죠. 그랬더니 아버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예민한 시기이니 조심하는 게 맞다. 그런데 사돈은 쉽게 믿을 수 없으니 잘 생각해서 처신하라고요.”
강재식 부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돈한테 못 하는 말이 없군.”
“없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잖아요.”
“그래도 며느리 앞에서 사돈 욕을 하는 건 어느 나라 예의냐?”
다은은 어깨를 으쓱였다.
강재식 부회장은 천연덕스러운 그녀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다가 말했다.
“상속세는?”
“공평하게 아빠가 반, 내가 반 낼게요.”
“네가 돈이 어딨어?”
“제가 받아야 할 지분에서 제할게요. 조금 떠들썩하게 내 주셔도 돼요. 정당하게 받은 재산이니까요.”
“약아 빠진 것···.”
강재식 부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 이긴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딸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고 한들, ‘다은이가 이렇게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아이였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은의 제안은 결국 오성유통을 물려받음과 동시에 천보윤 당선인의 지지율까지 올리는 일거양득의 방법이었다.
대한민국 제일의 기업이자 어떻게 보면 악의 축이나 다름없는 오성그룹으로부터 받아 낼 수 있는 상속세를 전부 토해 내게 하니, 여론만 잘 움직이면 오히려 천보윤 당선인에게 호재로 작용할 수 있었다.
물론 야당에서 발목 잡고 늘어진다면 며느리를 통해 한몫 챙긴다는 욕을 피할 수 없겠지만, 사실 결혼이 이루어진 시점부터 명분이 부족한 게 맞았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딸에게 몇 개 주는 거야 문제 될 게 없으니까.
게다가 얼마 전에는 암까지 걸렸던 몸이었고, 다른 자식들에게는 다들 한 뭉텅이씩 떼어 줬는데 딸에게만 아무것도 안 주는 것도 이상하고.
감히 대통령 당선인을 상대로 여론을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외통수에 걸려드는 게 확실했다.
“주실 거죠?”
“주마. 대신 상속세는 낼 수 없다.”
“아빠!”
“네 작은오빠한테 지분을 줄 때도 상속세는 고작 2천억이 되지 않았어. 그런데 오성유통을 너에게 달라고? 못해도 5천억이 넘을 거다. 너랑 절반을 나눈다고 한들 난 받아들일 수 없어. 정 가지고 싶다면 네가 다 내라. 그럼 주마.”
다은은 심통이 났는지 볼을 부풀리다가 가방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대성이 그걸 보고 물었다.
“이게 뭐야?”
“HS물산 최영훈 상무가 보낸 거야.”
“사장으로 승진한다더니 일할 생각은 안 하고 너나 만나고 다녔나?”
“남 걱정 마시지요. 그리고 내가 일반인이야? 나 대통령 당선인 며느리이자 영부인 대행이 될 사람이야.”
대성은 코웃음을 치며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곱게 접힌 종이가 들어 있었는데, 대성이 펴 보자 다섯 명의 이름과 소속이 적혀 있었다.
대성이 동생에게 물었다.
“이 사람들 뭔데?”
“누구겠어?”
그제야 감이 잡힌 대성이 급히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강재식 부회장에게 말했다.
“인수위원회에 들어갈 명단이에요.”
강재식 부회장은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말했다.
“이걸 왜 네가 가지고 오냐?”
“최영훈 상무가 아빠한테 전해 달래요.”
“뭘?”
“좋은 일 한번 하시라는데요?”
“허···.”
이 모든 게 결국 최영훈이가 짜놓은 판이었다.
“아빠··· 좋은 건 오빠들한테 다 주고 딱 하나 달라는데 그렇게 아까우세요?”
“오성유통 하나만이 아니라 세금까지 왕창 내라는데, 좋을 거라고 기대하는 게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최영훈 상무 말대로 좋은 일 한번 한다고 생각하시면 되죠. 아빠가 지금 건강하신 거 물론 좋은 의료진 덕분이지만 운이 좋은 거기도 했어요. 암 덩어리가 나쁜 위치에 생겼으면 그렇게 쉽게 고쳤겠냐고요.”
“됐고, 최영훈이가 이걸 주면서 뭐라고 더 말하더냐?”
“신영금융 이형준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인데, 믿을 만하고 능력도 출중해서 다들 인정받고 있대요. 문제 될 일 없을 거니까 믿으셔도 된다고 했어요.”
“나는 이미 가격을 다 치렀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실 거라고 했어요. 그때 이렇게 대답하래요. 이건 아빠를 살려 준 대가라고 생각하시라고. 근데 최영훈 상무가 아빠를 살려 줬어요?”
강재식 부회장은 그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참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말했다.
“알았다고 전해라.”
“고마워요.”
다은은 일어나서 강재식 부회장을 꼭 안아 주고는 부회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총총거리며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로 뛰어갔다.
“어떻게 됐어?”
보조석에 앉아 아내를 기다리고 있던 승모가 물었다.
“잘 됐지. 오빠! 우리 이제 부자야!”
다은은 승모를 와락 안고는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너 원래 부자였잖아?”
“그건 내 돈이 아니었지. 이제는 다 내 돈이지롱~ 아, 이참에 오빠 경영대학원 다녀 봐.”
“내가?”
“응, 난 회사 경영하는 거 관심 없어. 거기에서 나오는 돈에 더 관심 있지. 특히 유통 회사는 좀···.”
“확실히 넌 약간 연예인 같은 기질이 있는 것 같아, 경영인보다는.”
“그치? 역시 오빠가 날 잘 알아. 난 아무래도 얼굴마담 쪽이 재능인 거 같아. 시아버님 당선 때 카메라가 날 비춰 주니까 막 짜릿했던 거 있지? 일단 가서 오빠 경영대학원 먼저 등록하자.”
그렇게 둘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오성전자 사옥을 벗어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