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ny Employee Who Sees Destiny RAW - chapter (307)
서울 강남 그랜드백화점.
한눈에 보기에도 서른 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 앞에 선 명우도사는 열심히 강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명우도사의 생활 풍수 강의] [가정, 사업장, 공부방 등 생활에서 간편하게 가구를 재배치해 좋은 기를 받아들이고 행운을 불러오게 하는 강의입니다.]지나가는 사람들이 입구에 비치된 판넬에 설명된 강의 내용을 한번씩 읽고 유리창 안을 힐끗 쳐다보고는 했다.
그리고 그렇게 쳐다보는 사람 중에 영훈도 끼어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모습과 그 강의를 경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새 강의가 끝나고 교육생(?)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올 거면 온다고 말을 하지 그랬어?”
명우도사는 갑자기 찾아온 아들의 모습에 환하게 미소 지었다.
“1층에 회사 상품 런칭 행사가 있어서 잠깐 들러 봤어요.”
“그래? 식사는?”
“아직요.”
실은 같이 식사라도 할까 하는 마음이었다.
당연히 명우도사는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잘 됐다. 여기 음식점 중에 보리굴비정식이 아주 괜찮더라. 너 모르지? 네 엄마가 굴비를 그렇게 좋아했다.”
“그래요?”
“신을 모시다보면 가끔 축 늘어지고 기운이 빠지는 때가 있어. 그럴 때는 먹는 것도 힘겹고 입맛도 싹 달아나는데 이 보리굴비 한 마리면 네 엄마도 벌떡 일어나곤 했다.”
“좋아요.”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야기지만 그 짧은 사연에 괜히 보리굴비가 더 먹고 싶어진 영훈이었다.
그렇게 식당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자 명우도사가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누가 알아보면 어쩌냐?”
“괜찮아요. 누가 물어볼 일도 없을 테고.”
“이상한 기자가 사진이라도 찍으면?”
“기자라는 사람들을 겪어보니까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은 쉽게 찍어도 재벌들은 쉽게 못 건드리더라구요.”
“아…”
영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영훈은 누가 안다고 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명우도사는 그 모습이 기꺼운지 연신 미소를 지었고 종업원이 먹기 좋게 뜯어준 굴비를 아들의 공기밥 위로 올려놓으며 흐믓해했다.
영훈은 그게 영 어색했지만 그래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때 명우도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그는 잠시 표정이 굳어지더니 몇 번 ‘알았다’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디에요?”
“아니… 그냥 오래된 친구다. 아프다고 해서 병원을 좀 가봐야 할 것 같다.”
“네, 그러셔야죠.”
명우도사는 다시 미소를 짓고는 아들과 행복하게 식사를 마무리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스스로 부담스럽기도 하고 가봐야 할 곳이 있어 아들과 헤어지고 택시를 잡아 탔다.
“성모병원으로 갑시다.”
착잡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시간을 보낸 그는 병원에 도착해 허겁지겁 병실을 찾았다.
발걸음을 놀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말없이 누워 창밖으로 하나씩 떨어지는 낙엽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여인을 찾을 수 있었다.
“뭘 그렇게 봐?”
아무 감정 없는 눈빛으로 떨어지는 낙엽을 지켜보고 있던 여자, 임복희는 명우도사가 들고 온 음료수를 흘깃 보더니 말했다.
“들고 올 거면 좀 좋은 거라고 가지고 오지.”
“좋은 거야 얼마든지 들고 올 수 있지. 다 낫기만 해. 뭘 먹을 수 있어야 가지고 올 거 아니야.”
“됐어요. 이제나저제나 갈 때만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희망을 가져. 의사선생님이 고칠 수 있다고 했다며.”
“흥! 선생님은 무슨… 그렇게 돈을 처받쳐도 내 머리를 이꼴로 만들어놨는데 무슨 선생님이야?”
한때 머리숱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았던 그녀는 머리 한가운데가 휑하니 비어 있었다.
그게 그녀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할지 익히 짐작하고 있는 명우도사는 입이 툭 튀어나온 그녀의 손을 잡았다.
“복희야, 만병의 근원은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병이 낫지.”
복희는 자신의 손을 잡은 명우도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응?”
“내가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알우?”
“알지.”
“알아?”
“그럼. 굶는 게 가장 무섭다고 했잖니.”
“기억하고 있네. 맞아요. 난 굶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오라버니 옛날 생각나요? 삼척에서 오라버니 처음 만난 날.”
“기억나지.”
“왜 하필 그날이었을까. 배를 세 척이나 가지고 있는 알부잣집에서 청소하고 밥해주고 거기서 받은 돈으로 동생들 고기까지 먹일 수 있어서 좋았는데, 하필 그 날 언니가 신명나게 춤을 추는 걸 보게 됐으니… 언니가 춤 한번 추고 천만 원을 받았다는 말에 오라버니한테 매달렸잖우.”
“그랬지. 무당이 되려면 어찌 해야 하느냐고 했었지. 세상에 무당 되겠다고 바짓가랑이를 잡힌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내가 눈에 뵈는 게 없었다우.”
“누구라도 그때 너를 봤으면 눈에 뵈는 게 없다고 생각했을 거다.”
임복희는 피식 웃었다.
“내가 그땐 좀 미쳤었지. 언니가 쓰던 작두 위를 타보라고 했을 때 진짜로 해낼지 나도 몰랐으니까.”
“대단했다. 그때 너의 눈엔 광기까지 엿보였거든. 비록 잠깐 올라갔다 내려오긴 했지만 난 네가 대단한 무당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지.”
“그때 만약 내가 작두를 타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 거 같아요?”
“나야 모르지.”
“거짓부렁. 점쟁이가 남의 운명을 못 본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이에요?”
“…”
“언니는 알고 있었죠?”
“…”
“난 언니가 미웠어요. 내가 왜 미워한지 알아요?”
“안다.”
“알긴 뭘 알아요?”
“언니가 내림굿을 해주지 않아서 미워한 게 아니냐?”
“그것도 맞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럼?”
“내가… 오라버니를 좋아하고 있었거든요.”
깜짝 놀란 명우도사가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임복희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를 보고 퉁명스레 말했다.
“눈치 없는 거야 옛부터 알고 있었으니 몰랐다고 할 필요 없어요. 오라버니를 따라다니기 시작하면서 제법 돈도 모았는데 난 계속 굶주림을 느끼고 있었나봐요. 내 팔자가 그런 건가요?”
“네 팔자를 왜 나에게 물어?”
“후회가 돼서 그래요. 차라리 그때 언니의 춤을 보지 못했다면 내가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요?”
“무당이 된 게 이제와 후회스럽냐?”
“모르겠어요. 무당이 된 건 후회하지 않지만, 무당으로 살다가 좋은 남자 한번 못 만나고 평생 ‘돈돈’ 거리다 이렇게 죽는 게 허망해서 그래요. 내가 결혼했다면 내 아이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지, 내 남편은 어떻게 생겼을지도 궁금한데 시간은 되돌릴 수 없잖아요. 한탄스러워요. 원래 내
팔자가 이랬을까요?”
명우도사는 입술을 달싹이면서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그 모습에 임복희가 쏘아붙였다.
“눈치도 없고 우유부단하기까지 한 오라버니를 내가 왜 좋아했을까요?”
“그러게 말이다.”
잠시 멈칫하던 명우도사는 이내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널 처음 봤을 때 영훈이 엄마가 그랬지. 네 신기가 영험하니 만약 신을 받게 된다면 구름에 숨어 있던 달이 드러나는 형상이라 그 영험함이 사방을 비출 것이라고.”
“그리고요?”
“다만 그 영기를 담기에는 그릇이 작아 스스로를 갉아 먹을 것이니 결국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신력이 네 생기를 빼앗은 게 아닌가 싶다.”
명우도사의 말에 그녀는 생기를 잃은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죽기 싫어요.”
“안 죽을 거다.”
“아니요. 죽을 거예요. 이제는 알아요. 난 나을 수 없다는 걸요. 그것도 모르면 무당도 아니지. 이제 신기가 몸을 떠나가고 있음을 느껴요. 내 몸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이겠죠. 쓸 만큼 썼으니 다른 사람을 찾겠다는 뜻이겠죠.”
“신력만 흐려질 뿐이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희망 주지 말아요. 한 많은 인생, 여기서 끝나는 것이 순리인 것을 난 알아요.”
“거 죽는다는 소리 좀 그만 해라.”
“그러니 이제 그만 오라는 말이었어요.”
뜻밖의 말이었을까?
명우도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뭘 그만 와?”
“이제 그만치 하면 됐어요. 아파서 괴로워하고 볼썽사납게 죽는 모습까지 보여주면 나 죽을 때 눈 못 감아요.”
“…”
“언니는 좋겠어요. 무당으로 살다가 애도 낳고 그 애가 저렇게 훌륭하게 자라서 재벌가 사위로 들어가고… 언니가 비록 명이 짧았지만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을 거예요.”
“그렇게 속상하면 다 불어버리지 그랬어? 영훈이 부모가 무당이라고 소문나면 꽤 곤란했을 게 아니야?”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 리 없다.
“무서움 반, 걱정 반이었어요.”
“무섭다니? 네가 무서운 것도 있었냐?”
“오라버니는 아버지니까 모르겠지만 오라버니 아들의 눈빛은 사람이 쉽게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에요.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내 미간을 가리키면서 위협할 때는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았다구요.”
“그럼 걱정은 뭐고?”
“언니 아들인데다가 오라버니 아들인데 만약 그렇게 하면 오라버니가 날 얼마나 원망하겠어요?”
명우도사가 머리를 긁적이자 그녀가 퉁명스레 말을 덧붙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라도 할 걸 그랬어요. 이렇게 죽을 때가 돼서야 손이라도 잡을 줄 알았으면 그때 그냥 다 불어버릴 걸.”
“그런데도 내가 장가간다는데 말리지도 않았어?”
“내 인생이 어디 여염집 여자들처럼 팔자 편하게 피부 가꾸면서 살았우? 죽을 때까지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진짜로 죽을 때가 되니까 마음이 변하네요.”
“후련해?”
“네, 후련해요. 머리가 다 빠지고 씻지도 못해 몸에서 냄새가 나는데도 죽기 전에 이렇게 털어놓으니 가슴 한쪽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요.”
그때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명우도사는 그녀가 자신의 손을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꽉 틀어쥐는 걸 느끼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간호사! 간호사!”
“괜찮아요. 가끔 이렇게 아파요.”
“조금만 참아라. 간호사가 오면 진통제를 놔줄 거다.”
그녀는 시선을 허공에 두며 말했다.
“천도제를 치러주세요.”
“이것아! 아직 죽지 않았다!”
“약속해주세요. 오라버니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요. 다 털었다고 하지만 죽은 나를 위해 판 한번 벌려주실 수 있잖아요.”
명우도사는 목이 메었다.
자신도 모르게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무엇을 빌어주면 되겠어?”
그녀는 고통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픈 걸 티 내기 싫었는지 가쁜 숨을 겨우 가다듬고 말했다.
“다음에 태어날 때는 좋은… 좋은 집에서 배고픔 모르고… 부모님 사랑 듬뿍 받고 자라게 해달라고…”
“그러마… 내 마지막으로 무복 갖춰 입고 제수도 내가 직접 장만해서 제대로 판 벌려 굿을 해주마. 중년에 재복은 한번 누려봤으니 부모복, 형제복, 남편복, 자식복 가지고 태어나게 해달라고 빌어주마.”
“고마워요.”
그녀가 힘겨워하는 와중에도 가까스로 대답을 마치자 간호사가 급히 들어와 살폈다.
임복히는 그제야 손을 놓으며 어서 가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이제 그만 가요.”
“…”
“나 죽었다는 소리 들리기 전까지 오지 말아요.”
오지 말라는 말을 할 때 그녀는 마지막으로 명우도사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 결연한 눈빛에 명우도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맞아요. 그러니 이제 좀 쉬어야겠어요.”
아직 고통이 끝나지 않았을 것임에도 그녀는 할 말을 다했다는 듯 눈을 감았다.
답답한 가슴을 안고 병실을 나온 명우도사는 걸음을 멈춰 병원을 한번 둘러보고는 소리쳤다.
“한 많은 인생, 다 털고 가거라. 훠이~”
그는 서글픈 눈으로 한동안 그렇게 병원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