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debuff RAW novel - Chapter 177
제175화.
며칠 전.
연오랑은 유건명, 그러니까 카렐과 함께 판타지 서버로 이동했다.
과정은 매우 간단했다.
먼저 본캐인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에 접속해서 무림 서버에 있는 유건명의 좌표를 입력한 뒤 소환 마법진을 발동시키면 그만이었다.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는 밸런스 문제로 인해 다른 서버로 이동할 수 없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격이 낮은 존재들의 경우 충분히 차원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연오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명제국의 황제가 황궁에서 함정을 파고 기다릴 것을 알고 있는데, 아무런 준비 없이 쳐들어갈 리 없었다.
대명제국의 황제만 황제가 아니었다.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도 판타지 서버, 프로아 제국의 황제.
그 군사력 차이는 가히 어마어마했다.
세계관 최강자이자 무적의 경지에 오른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가 직접 육성한 프로아 제국군은 말단 병사들조차 299레벨의 괴물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근위기사단의 경우 전원이 마스터, 즉 화경의 경지에 오른 강자들이기까지 했다.
은퇴 이후 딱히 할 게 없던 태성, 그러니까 황제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가 심심풀이로 근위기사단들을 가르치면서 전원을 마스터의 경지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게다가 근위기사단들이 타고 있는 천마(天馬)들은 모두 페가수스들이었으며, 입고 있는 장비와 들고 있는 무기는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그런 군대가 이곳 대명제국의 황궁에 등장했으니, 결과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대명제국의 10만 정예 병력?
혹은 금지된 술법을 통해 소환한 무간지옥의 팔만사천 귀병들?
프로아 제국군의 정예 병력, 그리고 근위기사단 앞에서는 그저 한 끼 먹잇감에 불과했다.
숫자만 좀 적었다뿐이지, 병력의 질이나 착용하고 있는 장비의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였던 것이다.
“으아아악!”
“크아아아아악!”
대명제국의 정예병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캬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악!”
팔만사천 귀병들 역시 프로아 제국군에게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했다.
대명제국의 황제가 함정을 팠다?
그건 어디까지나 대명제국의 황제가 착각한 것일 뿐!
함정은 연오랑이, 판타지 서버의 황제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가 파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이 어찌!”
대명제국의 황제는 10만 정예병들과 팔만사천 귀병들이 실시간으로 죽어 나가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연오랑의 무력이 강하다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했으나, 이렇듯 대규모 병력이 나타날 줄을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와아!”
“미, 미친!”
“판타지 서버 NPC들을 무림 서버에 워프시켰다고?”
“진짜 미쳤다…….”
지켜보던 게이머들은 입을 떡 벌린 채 너도나도 놀라워했다.
태성이 황궁을 박살내고 황제를 죽이겠다고 공언했을 때도 놀랍긴 했지만, 그걸 진짜로 구현해낼 줄이야…….
은퇴를 선언한 뒤 지난 3년 동안 조용히 지냈던 태성이, 이렇듯 갑작스레 나타나 무림 서버를 평정해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역시 한태성이네…….”
“은퇴하고 뭐하나 했더니 이런 부캐를 키우고 있었다고?”
“전설은 전설이다, 진짜.”
그로써 전직 프로게이머 한태성에 대한 불신은 완전히 사그라졌다.
이젠 퇴물이다?
늙어서 예전 같지 않다?
허세를 너무 부린다?
태성을 아무리 싫어하는 안티라 할지라도, 이제 그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순 없었다.
왜?
증명했으니까.
모두에게 보여 주었으니까.
이번 황궁 습격 사건으로 인해 태성은 게이머로서 자신의 가치를 더욱 확실하게 각인시킨 셈이었다.
이로써 게임 BNW의 3개 서버 가운데 판타지 서버와 무림 서버를 모두 평정한 유일무이한 게이머로 게임 역사에 기록될 테니, 그 누구도 태성의 업적을 부정할 수는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게임 BNW의 모든 서버의 서비스가 종료되는 그날까지 태성의 업적은 깨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이미 확고부동한 BNW의 아이콘이자 전설이었지만, 이번 건으로 인해 그 지위를 더욱 공고히 다지게 된 것이다.
* * *
“아아…… 아아아……!!!”
대명제국의 황제는 절망했다.
갑작스레 나타난 프로아 제국군의 군사력은 이미 인간 세상의 그것이 아니었다.
10만 정예병들과 팔만사천 귀병들이 실시간으로 스러지는 것을 보는 기분이란, 황제로 하여금 철저한 무력감을 느끼게끔 했다.
황제의 눈에는 천마를 타고 천계의 군대가 강림한 것처럼 보였다.
또한, 패배는 명확했다.
전투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승산은 아예 없다고 해도 좋았다.
심지어, 천계의 군대는 단 한 명도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조금 큰 부상을 입었다 싶으면 금세 감쪽같이 회복되어 싸우니, 진정한 불사(不死)의 군대가 이런 건가 싶었다.
“하늘이 정녕 짐을 버리려는 것인가……!”
황제가 먹구름 가득 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중원 대륙의 황제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천자(天子), 즉 하늘의 아들이라 여겼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황제로서는 하늘이 자신을 버렸다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무림인들, 그리고 천인들을 천하에서 말살시켜 천하를 안정시킨다는 원대한 계획.
수천 년 중원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황권을 틀어쥔 황제가 되기 위해서 추진했던 그 계획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단순히 계획이 무산된 것을 넘어서, 대명제국 황실의 몰락은 물론 황제 자신의 목숨도 끝장이었다.
무려 무적천존의 제자라는, 현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조차 상대가 안 되는 고수인 연오랑이 천계의 군대를 이끌고 다가오고 있었다.
더는 희망이 없었다.
사실상 황제는 완전히 파멸한 셈이었던 것이다.
“봉신함(封神函), 봉신함을 열라.”
결국, 황제는 자신이 가진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봉신함.
그것은 천하에서 가장 위험한 법보로서, 옛 전설과 신화 속 신(神)들이 이 세상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역할을 하는 일종의 봉인구.
그런 봉신함을 열었다간 천신들을 포함해 온갖 괴력난신들이 이 세상에 개입할 수 있게 되고, 천하가 혼란해질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즉, 중원 천하를 괴력난신들에게 통째로 넘겨주는 꼴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봉신함을 열 것을 명령했다.
왜?
어차피 파멸이었으니까.
이미 황제는 이판사판이었다.
봉신함을 열고, 그 안에 든 여러 괴력난신 중 가장 강력한 존재의 힘을 강신(降神)하여 연오랑에게 맞서는 것.
오직 그것만이 황제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뒷일 따위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이 위기부터 넘기고 보는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 타야 훔…….”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 타야 훔…….”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 타야 훔…….”
황제의 명령에 술법가들이 일제히 봉신함을 둘러싸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쩌억!
번-쩌어어어어어억!!!
이윽고 봉신함이 열리며 그 안에 갇혀 있던 온갖 괴력난신들의 격이 튀어나와 세상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가장 지고한 존재여……!”
황제는 봉신함에 갇혀 있던 괴력난신들 중 가장 강력한, 그 어떤 존재보다 무시무시하고 사악한 존재에게 자신의 바람을 빌었다.
– 내 딸의 원수를 갚아줄 자여…… 내 기꺼이 힘을 빌려줄 것이니…….
마신 파순이 그런 황제의 부름에 답했다.
그는 이 세계의 마신으로서, 온 천하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커다란 권세를 휘두르는 자들 중 하나.
세계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강한 존재였으니, 그의 힘이라면 연오랑을 쳐부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크으…… 크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마신 파순이 강신한 황제의 육체가 기괴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변이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런 황제를 중심으로 가장 순수한 마기(魔氣)가 휘몰아치며 주변에 있던 모든 것을, 봉신함을 열었던 술법가들마저 한 줌 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황제는 마신 파순을 스스로의 육체에 강림시킴으로써,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존재로 거듭났다.
인간의 무공으로는 그 어떤 타격도 입힐 수 없는 천외천의 존재.
무려 900레벨의 마인(魔人)이 된 것이다!
* * *
한편, 정신없이 적들을 쳐부수던 연오랑은 황제가 기어코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황제가 무언가 강력한 것을 소환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연오랑에게 있어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
[알림: 알려드립니다!] [알림: 우주의 법칙에 당신에게 건 제약을 잠시 해제했습니다!] [알림: 지금부터 당신이 가진 진정한 힘, 본체의 힘을 마음껏 끌어다 쓸 수 있습니다!]“아.”
연오랑은 어째서 이러한 알림창이 떠올랐는지를 깨달았다.
황제는 선을 넘었다.
봉신함을 열고, 그 안에 있던 거대한 존재를 강신시킨다는 것을 우주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
아무리 황제일지언정, 감히 우주의 법칙에 정면으로 대항했으니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 대가란,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면서까지 손에 넣은 힘을 깨부술 더욱 강력한 존재의 강림이었다.
즉, 우주의 법칙이 황제를 응징하기 위해 연오랑으로 하여금 본체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도록 잠시 제약을 풀어준 것이다.
씨익-
연오랑의 입이 찢어질 듯 귀에 걸렸다.
본체의 힘을 끌어다 쓴다?
황제가 그 어떤 존재의 힘을 빌린다고 한들, 그건 연오랑에게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본체.
본캐인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의 힘을 휘두를 수 있게 된 마당에, 두려울 게 뭐란 말인가?
스윽.
연오랑이 전방을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자 천지개벽이 일어나 앞을 가로막았던 모든 것들이 파괴되며, 길이 열렸다.
그야말로 전능한 힘!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의 힘이란, 단순한 손짓만으로도 모든 적들을 소멸시켜 버리고 길을 여는 기적을 행하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 * *
쿵! 쿠웅!
황제는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연오랑을 찾아 나섰다.
황제에 깃든 마신 파순 역시 눈이 시뻘게져 있었다.
연오랑은 황제에게도 원수였으나, 마신 파순에게도 원수였다.
일전에 연오랑에게 잡아먹힌 대흑불모가 파순의 딸이었으니, 그 원한이 깊은 것은 당연했다.
그렇기에 황제와 파순은 오직 연오랑을 죽여 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끝끝내 황제, 그리고 그에게 깃든 파순은 연오랑과 대치하게 되었다.
“네 이노오옴…… 네놈이 짐의 행사를 방해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은가?”
– 네놈이 감히 내 딸을 잡아먹은 놈이로구나! 이제 내가 네놈을 잡아먹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마기가 휘몰아치며 마신의 위용과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연오랑을 압박했다.
와지끈!
와르르르르!
오죽했으면 그 호통에 주변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을 지경이었다.
황제와 파순은 몰랐다.
그들이 무엇을 일깨웠는지, 눈앞에 서 있는 연오랑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그저 지금 발휘할 수 있는 힘에 취해서 연오랑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생각뿐이었다.
그런 황제와 파순 앞에 선 연오랑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그 어떤 동요도 없었다.
스윽.
연오랑이 하늘 높이 손을 들어 올렸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먹구름 낀 하늘이 무섭도록 소용돌이쳤다.
파직, 파지지직!
시공간이 일그러지며 저 높은 하늘 위에서 무언가 뚝! 하고 떨어져 내려 연오랑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마상창 형태의 창이었으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파괴의 권능이 담겨 있었다.
파멸의 손아귀.
무려 세계 등급의 아이템으로서, 한 세계를 완전히 파멸시킬 수 있는 절대의 병기.
오직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에게만 허락된 무기로서, 그 자체로 자아를 가진 에고 스피어였다.
파지지지지지직!
연오랑의 손에 들린 파멸의 손아귀가 오래간만에 주인을 만나 기쁘다는 듯 스파크를 뿜어내었다.
– 저, 저건……!
파순은 경악했다.
파멸의 손아귀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그 안에 담긴 그 힘을 알아본 것이다.
– 아, 안 돼!
파순이 황급히 황제의 육체에서 빠져나오려던 순간.
우웅!
어느새 파순과 황제는 디버프 마스터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빨려들어온 상태였다.
그곳은 절대의 절망으로 이루어진 공허 그 자체.
한 번 빨려 들어간 이상 디버프 마스터에게 죽는 것 외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
– ……!
황제가 마신은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래, 두 방은 멋이 없어서 안 되지.”
연오랑이 씩 웃으며 그 말을 되뇌었다.
우웅!
절대의 의지, 디버프 마스터 의지가 절망의 세계에 작용했다.
“크으으으윽!”
– 크아아아아아아악!
황제와 파순이 비명을 질러대었다.
디버프.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이 그들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약해져 갔고, 그 어떤 저항이나 회피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연오랑의 손에 들린 파멸의 손아귀.
그 창끝 주변 시공간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일단…… 무적(無敵).”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연오랑이 파멸의 손아귀를 앞으로 쭉 내질렀다.
단 한 방.
디버프 마스터의 궁극기가 황제, 그리고 황제에게 깃든 파순을 향해 쏘아졌다.
“……!”
“……!”
파멸의 손아귀가 황제와 파순의 가슴 정중앙을 관통하던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태초의 우주가 탄생하던 순간에나 있었을 법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