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재회
주소천이 굴복한 것처럼 고개를 떨궜다.
“순순히 본녀를 따르거라.”
“…….”
주소천이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양손을 축 늘어뜨리고 초점 없는 눈으로 현아진을 응시했다.
“그래, 현명하구나. 어차피 죽는 거라면 고통 없이 죽는 편이 낫겠지.”
현아진이 주소천에게 다가왔다. 그때까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주소천. 그러나 현아진의 신형이 지척에 다다랐을 때쯤 주소천의 눈동자가 빛났다.
“음?”
촤악!
현아진의 희고 고운 손등의 피부가 갈라지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어느새 주소천의 손에는 붉은 보석이 박힌 미려한 비수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현아진의 단전을 향해 계속해서 휘둘러지는 파천비.
“블링크.”
뜻밖의 공격에 당황할 법도 하였지만, 현아진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가장 안전한 수를 택했다.
‘지금이다!’
주소천의 신형이 공허귀진신법(功虛鬼唇身法)의 묘리에 따라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현아진과 거리를 벌린 주소천이 사천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아아앙!
강렬한 화염의 기를 느낀 현아진이 직선으로 질주하던 신형을 갈지(之)자 모양으로 급하게 움직였고, 그녀가 있던 자리에 무시무시한 위력의 화염구가 작렬했다.
‘아직 한 번의 술법을 사용할 정도의 영력은 남아있다.’
빠른 속도로 현아진을 떨쳐내려던 주소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의 뒤에서 화염구를 날린 현아진이 마치 유령처럼 주소천의 앞 허공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벌레들에게는 아량을 베풀 필요가 없는 것을. 쯧쯧, 본녀가 어리석은 짓을 했구나.”
현아진이 피를 흘리고 있는 손등을 혀로 살짝 핥으며 중얼거렸다.
“힐링(healing).”
백색의 빛무리가 현아진의 손등을 스쳐 지나가자, 순식간에 그녀의 상처가 아물었다.
“사지를 잘라주마.”
아름다운 외모에 가려져 있어 미처 인지 하지 못했던 현아진의 진정한 성품을 보는 듯했다.
“멀티 윈드 커터!”
현아진의 영창과 함께 수백 개의 바람 칼날들이 허공에 생성되었고, 주소천을 향해 우박처럼 쏟아졌다.
“치잇.”
주소천이 다급히 파천비에 내공을 집중시켰다. 비록 아스트랄 에너지가 없어진 파천비였으나, 그 강도와 예기는 여전하였다.
파파파팟!
주소천이 비수를 종횡무진으로 휘두르며 바람의 칼날들을 쳐냈으나, 그녀의 몸에 하나씩 자상이 늘고 있었다.
‘안돼, 주술력도 공력도 얼마 남지 않았어. 여기서 승부를 걸어야 해.’
십이지신술(十二支神術).
토신강림(兎神降臨).
주소천의 몸속으로 토신의 기운이 흡수되며 움직임이 세 배 이상 빨라졌다.
“호오? 아직도 보여줄 것이 있었나?”
토끼가 이리의 이빨을 피하는 것처럼 요리조리 움직이며 수많은 바람의 칼날들을 피하고서는 사천성을 향해 빠르게 몸을 날렸다.
“블링크.”
현아진의 신형이 꺼지듯이 사라지더니 귀신처럼 주소천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퍼부어지는 무지막지한 마법공격.
“헉……. 헉……. 후욱…….”
주소천의 숨이 점점 더 가빠졌다. 저 멀리 그녀의 눈에 사천성의 성문이 들어왔다. 어떻게든 사천성까지만 간다면 사천성에 있는 수많은 정파와 어림군들이 마교주의 등장을 결코 좌시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정말 실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 기사와 마법사의 마나 운용방식뿐만 아니라 정령술사와 비슷한 수법까지 한 명의 인간이 모두 사용할 줄이야.”
“…….”
현아진의 말에 대꾸할 힘조차 아끼며 주소천이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에 보여준 수법은 정령술사들이 바람의 정령을 이용하여 사용하는 일종의 버프와 유사하구나. 아마도 디스펠은 통하지 않겠지. 그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현아진이 미소 지었다.
“이건 통하겠지. 슬로우(Slow)!”
현아진의 손에서 금빛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사슬처럼 똬리를 튼 금빛의 빛줄기가 주소천의 주변을 감쌌고,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럴 수가?!”
토끼처럼 요리조리 날렵하게 움직이며 사천성으로 쪽으로 나아가던 주소천이 현아진의 마법이 닿는 순간 늪에 빠진 사람처럼 이동속도가 대폭 감소 되었다.
“끝이다.”
현아진의 손이 다시 한번 주소천을 향했고, 그녀의 손에서 수십 개의 공격 마법이 발사되었다.
퍼버버펑. 퍼벙.
“아아아악!”
최선을 다해 파천비를 휘두르고 몸을 비틀어 보았지만, 모든 공격을 무마시킬 순 없었다. 현아진의 강대한 마나가 담긴 마법 공격에 적중당한 주소천이 피를 게우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약속대로 사지를 잘라주마. 일단 왼쪽 팔부터 시작해볼까?”
사천성의 형태가 멀리서나마 보였지만 아직도 상당히 먼 거리였다.
‘끝인가…….’
주술력도 공력도, 그리고 체력까지도 바닥이 났다. 그리고 방금의 공격으로 최소한 갈비뼈 한두대는 부러진 것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고 목에서는 쉴 새 없이 죽은 피가 역류했다.
“파이어 소드(Fire sword).”
현아진의 손에 순식간에 불꽃의 검이 만들어졌다.
“걱정 마라, 팔을 잘라냄과 동시에 불길로 지져 출혈을 막을 테니. 결코 죽진 않을 것이다.”
“쿨럭. 헉…… 말…… 많네. 남자한테 인기 없겠어. 푸읍. 우웨에엑!”
주소천이 피를 게워내면서도 현아진을 향해 빈정거리며 말했다.
주소천의 도발에 현아진도 조금이나마 감정이 상했는지, 그녀답지 않게 얼굴을 찡그리며 불꽃의 검을 휘둘렀다.
푸쉬이익! 퍼엉!
놀랍게도 주소천의 팔을 잘라내고 불길로 태워버릴 것 같았던 불꽃의 검이 그대로 꺼져버렸다.
“누구냐?”
현아진의 마나 감지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그런 그녀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접근하여 그녀의 일격을 무마시킨 것이었다.
“소천 소저, 괜찮습니까?”
갑작스럽게 등장한 사내가 주소천을 등지고 현아진을 마주 보며 말했다.
“으음……?”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려던 주소천의 눈이 살포시 떠졌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태극의 문양이 수놓아진 푸른색 도복을 입은 사내의 등이었다.
“유신…… 도사님?”
“죄송합니다. 빈도가 많이 늦었습니다.”
사천성에서 시비가 붙은 바람에 지체된 시간이 무척이나 아깝게 느껴지는 유신이었다.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이렇게 주소천이 심한 부상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많이 다치신 것 같습니다.”
암암리에 기파를 뿌려 주소천의 몸을 살펴보던 유신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왼팔과 오른쪽 허벅지 뼈에 금이 가 있었고,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폐를 살짝 찌른 상황이었다. 내상 또한 결코 가볍지 않았다.
“괜…… 찮아요. 유신 도사님, 조심하세요. 평범한 강호인이 아닙니다.”
주소천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가까스로 유신에게 말을 건넸다.
‘유신 도사님, 몸을 피하세요. 그녀는 마교의 교주입니다. 저를 노리고 온 것이고 죽이진 않겠다 하였으니 제 걱정은 마시고…….’
그 말을 끝으로 주소천이 고개를 꺾었다. 막대한 공력과 체력이 소모되고 심각한 부상까지 겹치며 탈진 한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기다려 준 것 같은데, 다 끝났느냐?”
현아진이 기절한 주소천을 확인하고 유신에게 말했다.
“무량수불, 인사가 늦었습니다. 빈도는 무당의 유신이라 합니다.”
“무당? 처음 들어보는구나.”
아마도 일반적인 강호인이었다면 자신의 문파를 무시하는 것에 분노하거나 최소한의 감정이라도 드러냈을 테지만, 유신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빈도의 소속을 말씀드린 것뿐이니 괜찮습니다. 시주께서는 어느 방면의 고인이십니까?”
예의 바른 유신의 말에 현아진이 피식 미소 지었다.
“본녀는 마교의 교주 현아진이다.”
이렇게 젊은 여자가 마교의 교주라니?
“빈도가 알기로, 초대 천마 조사 이후로 마교를 통일한 교주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헌데 귀하께서 마교의 교주를 자칭하십니까?”
“마교란 곳이 그토록 대단한 곳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본녀가 광마라는 녀석을 태워버리고 천마라는 놈을 쓰러뜨리고 나니 모두가 본녀를 교주로 추대하더구나.”
“천마와 광마를?!”
마교 서열 2위의 광마 단운천은 차치하고서라도 천마교의 지존이자 마교 최고수 천마 위지현오는 유신의 스승인 태극검제 정진진인과 함께 정사마를 대표하는 절대고수였다.
“애송아. 본녀와 대적하기에 모자란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텐데, 이리 나서는 이유가 무엇이냐? 목숨이 아깝지 않느냐?”
“지인의 위기를 보고도 외면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재미있구나. 내가 살던 곳에서 기사도를 외치며 목숨을 던지던 멍청이들과 많이 닮았어. 본녀는 그런 멍청이들을 싫어하진 않는다.”
현아진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살려둔 적도 없지.”
섬찟한 미소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유신이었다. 그가 긴장하며 천천히 의천검 쪽으로 손을 옮겼다.
“라이트(Light)!”
파아아아앗!
현아진의 몸을 중심으로 눈부신 빛이 뿜어졌다. 대낮의 태양을 정면으로 올려다보는 것의 몇 배는 될듯한 강렬한 빛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우웃…….”
유신은 강렬한 빛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현아진의 섬뜩한 목소리와 함께 주소천을 격침시켰던 엄청난 수의 마법 공격들이 유신의 전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채앵!
눈을 감은 유신의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와 유려하게 움직였다.
‘느껴라. 자연의 기운을.’
유신이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속삭였다.
양의문검(兩意紋劍) 제3초.
분심양의검(分心兩意劍) 방(防).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화염구를 제거한 유신의 검과 검집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다.
“저 녀석을 지키려고 움직이지 않은 것이냐?”
“무량수불.”
유신이 도호를 읊어, 현아진의 질문에 답을 대신하였다.
“쓸데없는 걱정이구나. 본녀 또한 귀중한 실험체를 해칠 생각은 없었다.”
“시주와 빈도의 뜻이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장소를 옮겼으면 합니다.”
“좋다.”
현아진이 먼저 몸을 날렸고, 유신이 재빨리 주소천의 요혈을 점하며 급한 대로 응급처치를 마치고서는 그녀의 몸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행낭를 풀어 가지고 있던 여분의 도사복을 꺼내 주소천을 몸을 덮어준 유신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소천 소저,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돌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