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유신과 주소천
현아진의 말에 사군악의 얼굴이 굳어졌다. 단운천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뿐인가? 결코 넘을 수 없는 높은 산이었던 천마교의 교주, 위지현오마저 현아진을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런데 현아진에게 이토록 큰 부상을 입힌 자가 서른도 안 된 애송이 두 명이라고? 사군악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교주님.”
일단은 현아진의 명을 따르는 것이 우선이었다. 허나 차오르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 사군악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지존. 속하가 지존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가 궁금한 것이냐? 아니, 대충 알 것도 같구나.”
현아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비웃는 것 같으면서도 이해한다는 듯한 복잡한 표정이었다.
“…….”
사군악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천마조사 이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위업, 마교의 통합을 이루어낸 현아진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대체 누구와 싸우다 당한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 말을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후후, 되었다. 하찮은 인간들과 본녀를 같은 선상에 놓지 말아라.”
상당히 영악하고 기회주의자의 성향이 강한 사군악이 자신의 위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기회를 이용하지 않은 것이 꽤나 의외였다. 그 모습이 기꺼웠는지 현아진이 피식 웃으며 말해주었다.
“너희들이 중요시하는 명예, 체면 이딴 건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본녀가 진심으로 혐오하는 것은…….”
조금은 부드러웠던 현아진의 표정. 그녀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갑고 예리한 기운을 풍기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뼈가 있는 말을 던졌다.
“본녀의 앞에서 속을 숨기는 것, 그리고 거짓을 고하는 것이다.”
“속하, 명심하겠습니다.”
사군악이 현아진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조아렸다.
“하오면, 주룡과 무룡이라는 두 명의 애송이가 지존께 이토록 심한 상처를 남겼단 말씀이십니까?”
“애송이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애송이라는 말은 자신보다 약한 자를 칭할 때 쓰는 말이다.”
현아진의 말에 사군악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가 누구인가. 중원 무인들의 꿈이자 목표인 초절정 경지의 고수로써, 자타가 공인하는 강호의 절대강자였다.
“설마, 주룡과 무룡이 초절정의 경지를 개척하였단 말씀이십니까?”
“적어도 나의 기준에는 그렇다.”
사군악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그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를 개척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아진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지존. 지금 당장 무룡과 주룡을 찾는 것을 포함하여 천마보도를 회수하기 위해 위지천을 치는 것까지 전면적인 계획의 수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
“주룡과 무룡을 제압한 또 다른 강호의 신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아진의 음성이 낮게 깔렸다. 척 봐도 그녀의 심기가 점점 불편해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사군악이 더욱 자세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상을 입은 주룡과 무룡이 그에게 향했다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가 위지천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놈이 누구냐?”
현아진이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사군악을 향해 물었다.
“괴룡, 사신혁입니다.”
* * *
“허허, 정말 건강한 체질이오 도사님.”
유신의 맥을 짚고 있던 의원이 자신의 염소수염을 매만지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화기가 피부 속까지 파고들었고, 전신에 심한 타박상은 물론이고 내부 장기까지 진탕되었는데 이토록 빨리 회복이 될 줄은 몰랐소. 허허허…….”
“무량수불, 모두 의원님 덕분입니다.”
유신이 합장하며 의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헌데, 저와 같이 이곳에 온 소저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 소저는 마당에 나가 있소이다. 갈비뼈와 대퇴부의 뼈가 부러졌더구려. 그런데도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사람들을 물려달라고 하더이다.”
의원이 고집스러운 주소천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쯧.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뼈가 완전히 바스러진 것은 아니니, 잘 치료하고 후유증이 오지 않게 좋은 약재로 부기를 빼고 요양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소이다.”
“다행이군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유신이 의원에게 다시 한번 사의를 표하고서는 주소천을 찾아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주소천이 여러 장의 부적을 꺼내 하늘로 던지기도 하고 바닥에 기이한 문양의 도형을 그리기도 하더니 급기야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에 대고 한참을 중얼거렸다.
‘무슨 일일까? 꽤 곤란해 보이는데.’
넋을 놓고 있던 주소천이 갑자기 정신을 차렸는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어머, 유신 도사님. 깨어나셨군요.”
“예, 안 그래도 새벽에 어디론가 나가시는 걸 느끼긴 했습니다만……. 새벽부터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후우……. 마교의 새로운 교주라는 자가 제 몸에 금제를 가한 것 같아요.”
주소천이 한숨을 푸욱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금제요?”
“네. 강림술 계통의 술법이 전혀 발휘되지 않아요. 십이지신술이나 제천사신술 같은 차력(借力)계통의 술법은 문제가 없는데 말이에요.”
“그거 큰일이군요.”
“맞아요. 현아진이 다시 한번 찾아오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일 거예요.”
“혹시 빈도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겠습니까?”
유신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주소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하지만……. 도사님은 급한 일이 있으신 것이 아니었나요?”
“그렇긴 합니다만, 조금의 여유는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고요.”
말이야 바른말이었다. 힘을 잃고 목숨을 위협받는 주소천의 상황이, 단순히 괴룡에게 붙잡혀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곤륜파의 도사들보다는 급했으니까 말이다.
“도사님께서는 원래 어디로 향하던 길이셨나요?”
“저는 괴룡을 만나러 청해의 금미산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괴룡을요?”
“예.”
유신의 대답에 주소천의 표정이 밝아졌다. 안 그래도 자신의 힘에 대해 알고 있는 신혁을 만나 지금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조언을 얻어야만 했는데, 유신과 함께라면 청해까지의 여행이 한결 수월해질 것 같았다.
“저기, 유신 도사님.”
“예.”
“괜찮으시다면 동행을 청해도 될까요?”
“동행을요?”
유신의 물음에 주소천이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냥꾼에게 쫓기는 어린 사슴처럼 불쌍해 보였다.
“네. 저도 괴룡을 만나 뵈어야 할 것 같아요.”
* * *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머물다간 들판에 어둠이 살포시 얼굴을 내보이는 초저녁이었다.
“드디어 도착이군요.”
“수고 많으셨어요 도사님.”
금미산의 초입이자 금미촌의 끝자락에 도착한 유신과 주소천. 쉬지 않고 말을 달렸는지, 그들의 옷에는 덕지덕지 먼지가 묻어 있었다.
“주 소저. 긴 여행에 많이 피곤하실 겁니다. 밤도 늦었고, 금미촌의 객잔에서 밤을 보내는 게 어떠십니까? 그리고 내일 아침에 산을 오르는 것으로 하지요.”
“네. 그렇게 해요.”
금미촌의 객잔은 하나뿐이었다. 마을이 관광지도 아니고, 딱히 볼 것도 없는 곳이기에 객잔의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나마 객잔의 자랑이 하나 있다면 금미산 초입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금미산의 전경을 감상하며 차라도 한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이십니까요?”
“그렇습니다.”
“마침 경관이 좋은 2층에 자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무량수불. 감사합니다.”
무당산과 모산에 기거하던 유신과 주소천이 보기에도 꽤나 절경인 금미산의 풍경을 감상하며 찻잔을 들었다.
“조그마한 산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산이 높고 정기가 가득하군요.”
“그러고 보니 주 소저는 금미산에 처음 방문하셨겠군요.”
“네, 맞아요. 사실 모산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지요.”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가볍게 차를 마시고 저녁을 해결한 둘에게 점소이가 다가와 물었다.
“저, 도사님. 혹시 숙박도 하려고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점소이가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유신과 주소천을 번갈아 보았다.
“그게, 방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봐도 도사님처럼 보이시는데…….”
점소이의 태도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에 빠진 유신과 말끝을 흐리며 그의 결정을 기다리는 점소이의 사이로 주소천이 끼어들었다.
“일단 그거라도 주세요. 없는 것보단 낫겠지요.”
“알겠습니다. 3층 5호 객실입니다. 그리고 숙박비는 동화 10냥이고 선불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 그야말로 순진무구의 결정체 같은 주소천을 보며 점소이가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어요.”
주소전이 품에서 은화 한 냥을 꺼내어 점소이에게 건넸다.
“그럼, 편안한 밤 되십시오.”
꾸벅 인사를 마친 점소이가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고, 졸지에 주소천과 한방을 쓰게 생긴 유신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후우~ 밤도 늦었고, 이만 잘까요?”
“무량수불…….”
눈을 질끈 감은 유신이 도호를 읊었다.
“도사님, 어디 지옥에라도 가시나요? 왜 그러세요?”
“흠흠, 아닙니다. 무량수불.”
“또 도호를 읊으시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순진한 아이가 던진 돌에 연못 속의 개구리가 아무 이유 없이 머리가 깨지는 일이 왕왕 있는데, 지금의 유신이 그 개구리와 같았다. 남녀가 유별한데, 마지막 세속행에서 처녀와 한방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죄송합니다. 불현듯 머릿속에서 풀리지 않던 무공에 대한 실마리가 떠올라, 주 소저의 말씀을 경청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나, 축하드려요 도사님. 무공과 도력이 더욱 깊어 지시겠어요! 너무너무 좋은 일이네요.”
“예, 감사합니다 주 소저. 저는 깨달음의 실마리가 사라지기 전에 밖에서 초식을 펼쳐봐야겠습니다.”
“이 밤중에요?”
“깨달음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것이니까요. 아무래도 밤을 꼬박 새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든 같은 방에서 밤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유신의 결연한 의지를 무공에 대한 열정과 정열로 오해한 주소천이 존경심을 가득 담은 눈을 빛내며 유신에게 말했다.
“과연, 초절정고수는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어서 가보세요 도사님!”
유신의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