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대마봉
‘좋아, 이제 시작이다.’
신혁의 눈빛이 빛을 발했다. 유신혁, 마안 111호. 직책은 분석 요원. 그리고 첩보, 공작, 암살의 암호명을 부여받은 마안 93호, 95호, 97호를 통솔하는 마안천이대 제17조의 조장. 그것이 현재 사신혁의 포지션이었다.
“마안 111호.”
공작요원 마안 95호가 나직하게 신혁을 불렀다.
“뭔가?”
111호 신혁의 숫자에서 알 수 있듯이, 마안 95호는 신혁의 선배 대원이었다. 그러나 마안천이대의 특성상 연공 서열보다는 당연히 임무 상의 직책이 우선 적용되었고, 신혁은 조장으로 나머지 대원들보다 서열이 위였다. 최소한 현재 훈련 시점에서는 말이다.
“작전 지시를.”
“아직이다. 조금 더 이동한다.”
신혁이 마안 95호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이동명령을 내렸다.
“존명.”
훈련은 실전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실전에서 지휘관의 명령에 의문을 품거나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그 지휘관이 자신보다 후배거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말이다.
“정지 그리고 대기.”
신혁의 명령에 이동하던 17조 요원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저곳을 갑지(甲地)라 명명한다.”
신혁이 손가락을 들어 지금의 위치에서 30장 정도 떨어진 울창한 풀숲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안 93호는 갑지를 수색 후 보고하도록.”
스스슥.
신혁의 명령에 첩보요원인 93호가 무리에서 이탈하여 신혁이 가리키는 지점으로 향했다.
1각쯤 지났을까, 마안 93호가 신혁의 곁에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보고. 수색 결과 이상 없음.”
“좋아. 97호는 갑지에 은신한다. 최대한 깊게 땅을 파고 귀식대법으로 호흡조차 죽여라. 24시진 동안은 움직일 필요 없다. 24 시진 이후 내가 남긴 표식대로 이동한다. 표식이 끝나는 지점에서 관찰 후 작전목표지점을 돌파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부상을 각오하고 강행하라. 만약 가능성이 없다 판단된다면 자연스럽게 적의 이목을 집중시켜라. 그리고 본단의 외성 쪽으로 도주하며 적의 병력을 유인하도록.”
“존명.”
“95호는 97호의 흔적을 없앤 뒤에 대마봉의 정상으로 오도록.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다. 완벽하게 흔적을 지우도록.”
“존명.”
마안 95호와 97호가 이탈하였다. 95호와 97호가 신혁의 명령을 이행할 동안 신혁은 93호와 함께 대마봉의 정상으로 향했다.
“111호 조장.”
“뭔가?”
“언제 작전을 구상한 겁니까? 또 왜 우리에게 정확한 작전을 설명해 주지 않는 겁니까?”
93호의 질문은 타당했다. 목표지점을 돌파할 것인지, 아니면 24시진 동안 숨죽인 채 숨어서 버틸 것인지 최소한 작전의 뼈대는 말해주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서다.”
“만약?”
“실전이라 생각해라. 만약에 그대들이 적에게 추포된다면 동료의 위치를 발설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그건…….”
당연히 웬만한 고문에는 입을 열지 않겠지만, 각종 사술이나 물약, 혹은 인질을 이용한 협박 등의 방법에도 끝까지 함구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번 작전의 목적상 조원 모두가 서로의 위치를 알고 있을 필요도, 서로의 이동 경로를 알 필요도 없다. 조원조차 모르는 것을 적들 또한 정확히 알 리가 없지.”
“과연.”
마안 93호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111호 유신혁. 분명히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무공 또한 일류무사 정도로 보였고, 딱히 뛰어나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이런 비범함은 뭘까. 대체 이런 놈이 어디서 나타났을까 싶은 93호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할 것이고, 한 가지 미끼를 던질 생각이다.”
“미끼?”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고 판단하도록.”
“존명.”
신혁과 마안 93호가 대마봉에 접어들었다. 대마봉은 외길이었다. 상당한 높이의 봉우리였으나 봉우리의 폭 자체는 굉장히 짧았다. 또한 탈출 목표지점에서 상당히 가까운 지점이었다. 만약 봉우리에서 뛰어내린다면 그대로 탈출목표지점에 도착할 만한 거리였으니 말이다.
“남은 시간은 1시진이다. 진마강위대가 움직이면 계책을 쓸 수 없다. 서두르도록.”
“존명.”
신혁과 마안 93호가 전력으로 경공으로 발휘하여 대마봉의 정상에 올랐다. 조그마한 공터가 있었고 공터의 끝은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그리고 절벽 밑으로 탈출지점이 보였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마안 93호의 머리가 의문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일말의 관심도 없는 신혁이 품에서 밧줄을 꺼내며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스르르릉.
살벌한 예기를 드러내며 신혁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안천이대원 모두가 알고 있는 신혁의 명검이었다. 청석을 힘 안 들이고 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명검.
“무, 무슨 짓입니까.”
한 손에는 밧줄을, 다른 한 손에는 살벌하리만치 날카로운 명검을 손에 든 신혁의 모습에 93호가 말을 더듬었다.
“미안하다. 내가 좀 겁이 많아서 말이야.”
마안 93호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이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혁은 망설이지 않고 성큼성큼 마안 93호에게 다가왔다.
“이런 미친!”
흔들림 없는 신혁의 눈동자를 보며 마안 93호가 욕설과 함께 품속에서 단검을 꺼냈다.
“대체 무슨 속셈이냐!”
“마안 93호. 네가 희생양이다.”
신혁이 마안 93호에 지척까지 다가와 말했다.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차가운 말투였다.
* * *
“허억, 허억.”
마안 95호는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로 경공을 펼쳤다. 조장인 마안 111호의 명령대로 마안 97호가 은신한 갑지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고 대마봉의 정상으로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정상에 도착한 마안 95호의 눈이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마안 111호의 허리띠에는 마안 93호의 단검이 꽂혀있었다.
“111호 조장,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마안 111호가 마안 93호의 허리를 튼튼한 동아줄로 꽁꽁 묶고서 그에게 소문의 명검을 겨누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마안 95호가 경악하여 달려들며 무기를 뽑았다.
“응? 이제 왔나?”
놀랍게도 동아줄에 묶인 마안 93호가 고개를 돌리며 왜 소리를 지르냐는 듯한 눈빛으로 마안 95호를 바라보며 신혁의 손에 들린 장검을 받았다.
“뭐, 뭐야……?”
“소리 지를 시간 있으면 빨리 와서 돕도록.”
어안이 벙벙한 마안 95호를 향해 신혁이 살짝 짜증을 내며 말했다.
“조, 존명.”
신혁이 마안 95호와 93호를 절벽 앞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들고 있던 동아줄을 마안 95호에게 넘기며 말했다.
“꽉 붙잡고 있도록. 멍청하게 땅에 흔적을 남기거나 하지 말고.”
“조, 존명.”
“시작하도록.”
신혁의 명령과 함께 마안 93호가 조심스럽게 공터의 끝에서 절벽으로 내려갔다.
“대체 무슨……?”
“마안 95호. 줄이나 꽉 잡고 있도록. 바람이 생각보다 거세서 위험하니까 말이야.”
“조, 존명!”
마안95호가 신혁의 명령에 밧줄에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좋아. 거기, 거기를 도려내. 도려낸 돌덩이는 절대 땅으로 떨어뜨리면 안 돼, 내게 던지도록.”
“존명.”
그제야 신혁의 의도가 이해되는 마안 95호였다. 마안 93호는 동아줄에 의지하여 절벽으로 내려갔고, 신혁의 명검을 빌려 절벽의 돌을 도려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됐어, 끝났군. 95호.”
“예.”
“당겨.”
“존명!”
약 2각 정도 만에 작업을 마친 마안 93호가 절벽에서 올라와 신혁의 옆에 섰다.
“밧줄.”
“옙.”
마안 93호가 재빨리 밧줄을 풀어 신혁에게 건넸다.
“검.”
“옙! 잘 썼습니다 조장님.”
마안 93호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무림의 십대기보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날카로움을 보여주던 검을 신혁에게 돌려주었다.
“93호, 95호.”
“충!”
“여기 쌓여있는 돌덩이 가루로 만들어서 흔적을 없애도록.”
“존명!”
신혁이 마안 93호가 던져준 돌덩이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곳을 가리켰고, 마안 95호와 93호가 신혁의 명령대로 순식간에 돌덩이를 가루로 만들어 이곳저곳에 흩뿌리며 자연스럽게 흔적을 없앴다.
“좋아, 93호.”
“예.”
“작전대로 93호가 희생한다.”
“존명!”
93호가 힘차게 복창하며 대마봉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잎이 무성한 나무를 타고 올라가 가지 사이로 몸을 숨겼다. 멀리서는 당연히 보이지 않을 위치였지만, 누군가가 접근한다면 어렵지 않게 발각될 만한 위치였다. 대신 장점이 있다면 훈련장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관찰할 수 있는 목 좋은 자리였다.
“95호.”
“충!”
“이리 와서 나를 좀 묶도록.”
“충!”
이제 어느 정도 신혁의 작전을 짐작한 마안 95호가 번개처럼 달려와 신혁의 허리에 동아줄을 묶었다.
“꽉 잡고 있어.”
“충!”
망설임 없이 절벽으로 몸을 던진 신혁이 마안 95호가 절벽의 중앙을 도려낸 공간에 도착했고, 그 안으로 몸을 숨겼다.
‘밧줄 던져.’
신혁의 전음이 마안 95호의 귓가에 들렸고, 마안 95호가 홀린 듯이 밧줄을 던졌다. 95호는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공터의 끝으로 달려가 엎드려서 고개를 내밀고 절벽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신혁이 절벽에서 밧줄을 늘어뜨렸다 당겼다가 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바닥까지의 거리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안 95호가 보기에도 밧줄을 최대한 길게 늘어뜨려서 절벽 밑으로 내려간다면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는 높이였다.
“그만 감탄하고 이걸 받도록.”
“예?! 무슨?”
마안 95호 에게 품속에서 꺼낸 작은 보따리 하나를 던졌다.
“이게 뭡니까?”
“풀어서 확인하게.”
신혁의 말대로 보따리를 풀어보니 그 안에서 두 장의 쪽지가 발견되었다.
“이제 시간이 없으니 지시대로 실행하도록. 두 장의 쪽지를 붙이면 조그마한 지도가 된다. 95호는 그 쪽지에 적혀진 을지(乙地)에 가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97호가 움직이기 2각 전에 대마봉으로 전력을 다해 질주하면 된다.”
점점 더 아리송해지는 신혁의 말이었다. 대체 무슨 작전이고 무슨 계책이란 말인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무작정 대마봉으로 질주하여 진마강위대의 이목만 집중시키면 된다. 잡혀도 좋고, 만약 들키지 않을 것 같으면 탈출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하도록.”
“존명!”
95호의 생각에 신혁의 작전은 간단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먼저 대마봉에 높은 나무에 은신하고 있는 93호가 진마강위대의 천라지망이 펼쳐지는 것을 관찰한 후 적들의 위치를 확인하여 신혁에게 보고하고 바로 을지(乙地)나 갑지(甲地) 중 적들의 이목이 쏠리지 않는 곳으로 가서 마찬가지로 적들의 포진을 알려준다.
‘그 뒤 희생양이 된 93호는 갑지와 을지 그리고 대마봉에서 최대한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여 은신하는 것이지. 운이 좋아 숨으면 좋고, 숨지 않아도 93호 한 명의 희생으로 111호 조장을 포함한 나와 97호가 안전하게 숨는 것과 동시에 탈출 경로를 노릴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한다. 게다가…….’
기회가 된다면 야간이나 새벽을 틈타서 신혁은 언제든지 밧줄을 타고 절벽에서 내려와 탈출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게 여의치 않다면 그냥 3일간 절벽에서 은신한 채로 버티면 되는 것이었다. 95호와 97호의 도주는 추적자의 입장인 진마강위대의 주의를 돌릴 수 있는 훌륭한 미끼였다.
‘아무래도 97호나 내가 탈출목표를 향해 다가선다면 우리를 포획하기 위해 탈출지점을 지키고 있던 진마강위대의 인원들이 추포하러 나설 것이고 그 틈을 노려 111호가 탈출할 수도 있을 테지. 실로 훌륭하다.’
유신혁의 뛰어난 심계에 감탄하는 마안 95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