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제안
쓰러져있는 모산문도들을 수습하고 장내를 정리한 주소천이 모산문주 태을진인과 마주하였다.
“……이리된 연유입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꽤 어려운 결단을 하였구나. 무량수불.”
태을진인이 도호를 읊으며 측은한 눈으로 주소천을 보았다.
“아니에요 문주님. 제 뜻을 헤아려 주셔서 감사해요. 다만 정사지간의 모산파가 사도맹에, 그것도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려 하는 신(新)사도맹에 적을 두어도 괜찮을까요?”
“괜찮다. 네 말대로 강호에 거센 풍랑이 불어올 텐데 모산파 단일의 세력으로 무사하기는 힘들 것 같구나.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나룻배처럼 부서질 수는 없지 않겠느냐.”
“문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소녀의 선택에 확신이 들었어요.”
태을진인의 허락을 얻고 한결 마음이 편해진 주소천이 연무정에게 돌아가 모산파의 뜻을 밝혔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어요.”
태을진인과 함께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기에 주소천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주소천 여협의 현명한 선택에 감사드립니다.”
“다른 길이 있을까요. 부교주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이미 사신문이라는 정체불명의 세력이 움직였고, 그들이 정사마의 세력을 가리지 않고 침투하였다고 하셨잖아요.”
“안타깝게도 사실입니다.”
연무정이 침중한 얼굴로 말했고, 주소천이 한숨을 푸욱 쉬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저뿐만이 아니라 정사중립의 문파인 모산파마저 사혼교와의 충돌에 이용당했어요. 그렇다면 앞으로 강호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테고 모산파 역시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볼 수밖에 없겠죠. 그렇다면 차라리…….”
주소천의 표정이 단호하게 변했다.
“제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상황을 수습하고 모산파의 안녕을 도모하겠어요.”
“정말 훌륭한 판단입니다. 맹주님.”
주소천에 대한 호칭이 벌써부터 여협에서 맹주님으로 격상되었다. 강호 역사상 정사마의 삼대세력을 총괄하는 수장 중에서 20대의 여인이 등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파격적인 장면의 중심에 선 주소천이 어색한 미소로 연무정에게 말했다.
“각오는 했지만, 맹주라는 말은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요.”
“아닙니다. 충분한 자격이 있으십니다.”
연무정이 나름 따뜻한 미소를 지으려 노력하며 주소천에게 말했다.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부족하지만 저와 사혼교가 최선을 다해 모산파를 보필하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모산과 사혼교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사신문의 임계 때문이었지 않습니까. 과거의 아픔과 원한을 덮고 힘을 모아 강호의 안녕을 도모할 때입니다.”
연무정과 주소천의 사이에서 파천비 사건 때의 앙금이 많이 가시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원수가 따로 없었던 모산파와 사혼교의 관계에서 연무정이 대의를 위하여 모산파에게 손을 먼저 내밀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주소천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새롭게 결성될 신(新)사도맹의 향후 계획에 대하여 말씀드릴까 하는데 잠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아요. 그렇게 하겠어요.”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주소천의 승낙을 얻은 연무정이 사혼교도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사혼교도들은 전장을 수습하고 모산파와 본교의 부상자들을 수습하여 본교로 귀환토록 하라.”
“존명!”
모산파의 사후처리까지 든든하게 돌봐준 연무정의 명령은 주소천을 안심시켰다. 모산파에 대한 걱정을 접어둔 주소천이 연무정을 따라 도착한 곳은 바로 매산곡이었다.
“이곳입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궁금한 것이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뭐든 말씀하십시오.”
“사혼교에서 모산파와의 연합에 반대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을 것 같은데, 그분들의 반발은 괜찮을까요?”
주소천의 걱정은 당연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산파는 정사지간에 있는 문파였으니 말이다.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맹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사혼교의 새로운 교주가 되어주셨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생각지도 못한 연무정의 말에 주소천이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번 사신문의 사건으로 인해 교주님과 소교주님이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비참하게도 사혼교는 대대로 이어지던 초대 교주님의 적통이 끊겼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에요.”
“혹시 맹주님께서는 사혼교의 15대 교주 수라마후 님의 성함을 기억하십니까?”
“주약란……. 그 이름을 어찌 잊겠습니까.”
수라마후 주약란의 사악한 영혼으로 인하여 자신의 손으로 스승의 가슴을 꿰뚫었던 소름 끼치던 감각이 떠오르며 주소천이 몸서리쳤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주소천 맹주님과 주적심 교주님, 그리고 수라마후 주약란 교주님의 성씨가 같습니다.”
“예?”
“붉을 주(朱)자를 쓰시지요.”
“하지만 저는 사혼교의 교주님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저는 소을진인 사부님께서 거두어 주셨고, 제 출생의 비밀에 관해서 잘 알고 있어요. 죄송하지만 연무정 부교주님께서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주소천의 말에 연무정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맹주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같은 주 씨라 하여도 여러 갈래의 파가 있으니까요. 다만 확실한 건, 주약란님의 영혼이 맹주님의 몸속에 머물렀었고, 그때 맹주님의 몸에 사혼교의 무공과 주술이 남았을 거란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다만 주약란 전대교주님의 혼은 완벽히 소멸하였으니, 결코 맹주님의 몸을 노리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연무정의 말에 주소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무정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신혁의 도움 아래 영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지금의 주소천에겐 이제 수라마후와 같은 존재는 감히 범접할 수 없음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맹주님.”
연무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의 앞에 거침없이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기세를 풍기는 중년인이 나타났다.
“다행히 본좌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 같소, 연무정 부교주.”
“대협의 도움으로 겁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소저는 누구시오?’
사도진악의 말에 연무정이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분은 모산파의 주룡, 주소천 여협이십니다. 그리고 새롭게 결성될 신 사도맹의 맹주님이시죠.”
사도진악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어려 보이는 여아의 자질이 범상치 않아 보였건만, 설마 주룡이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주룡의 뛰어난 명성을 익히 들었소. 장강수로연맹주 일수번천(一手藩天) 사도진악이오.”
“모산파의 주소천이예요.”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오. 당근 강호의 가장 뛰어난 초신성이자, 사룡 중의 일인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구려.”
“저 역시 연맹주님의 명성을 익히 들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주소천이 예의와 격식에 맞춰서 사도진악의 인사를 받았다.
“연무정 부교주의 뜻대로 사혼교와 모산파가 힘을 합쳐 새로운 사도맹을 결성한 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소. 본좌의 장강수로연맹 또한 신 사도맹에 힘을 보탤 것이오.”
“감사합니다 사도 대협.”
“본좌가 세운 계획은 이렇소. 아마 연무정 부교주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오. 모산과 사혼교 그리고 장강수로연맹이 힘을 모아 기존의 사도맹에 속한 사도팔문을 흡수해야 하오”
“예? 내전을 벌이자는 말씀이신가요?”
주소천이 사도진악의 말에 깜짝 놀라서 말했다. 모산파의 안녕을 위해 신 사도맹에 가입하는 것까지 감수하였는데 벌써부터 전쟁을 벌이자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소. 여기 있는 연무정 부교주도 그렇고, 본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미 사신문의 세력이 침투해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대화로 해결하려 들었다가는 역으로 그들에게 결집할 시간을 줄 수도 있소.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손을 써야 하오.”
사도진악이 주소천에게 뜻을 밝혔고, 주소천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선 말했다.
“각개격파를 하자는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렇소.”
사도진악이 단번에 자신의 의도를 파악한 주소천의 총명함에 감탄하며 다음 계획을 설명하였다.
“말씀하신 대로 사혼교와 모산파, 그리고 장강수로연맹의 최정예들만을 추려서 기존 사도맹의 문파를 기습할 것이오. 연무정 부교주가 수하들을 지휘하여 각 세력의 주력 고수들을 묶어야 하오.”
“알겠습니다.”
“그다음은 화경에 경지에 이른 나와 주룡이 최단시간에 사신문의 간자를 색출하여 참한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을 신 사도맹의 대열에 합류시킬 수 있을 것이오.”
“현재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저도 사도 대협의 책략에 동의합니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사신문에서 장강수로연맹과 사혼교의 실패를 알고 대책을 수립하고 있을 테니까요.”
연무정과 주소천이 사도진악의 책략에 동의하였다.
“사도팔문 중에서 장강수로연맹과 사혼교를 제외한 6개의 문파가 있습니다. 어디부터 공략할 생각이십니까?”
“1차 목표는 서안의 동쪽에 위치한 섬서의 녹림칠십이채요. 최대한 빨리 녹림총채주를 제압하고, 그 뒤 기세를 모아 다시 우리의 본진이 될 서안을 가로질러 청해의 철혼문을 쳐야 하오. 이 두 세력만 제압하여도 사도팔문 중 절반이 와해될 것이오.”
현재 사혼교와 모산파가 있는 서안을 기점으로 서쪽의 철혼문과 동쪽의 녹림을 먼저 점령하는 수였다.
“그 후에 내몽고의 광풍혈사대를 흡수하시오. 본좌는 제압한 녹림과 철혼문의 세력을 이끌고 광동의 하오문과 광주의 흑룡문을 제압할 것이오. 그렇게만 된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복건성의 이화태양궁은 고립될 테고, 자연스럽게 우리 쪽에 합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오.”
“훌륭한 계책입니다.”
연무정의 말에 사도진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본좌는 지금 당장 장강수로맹으로 돌아가 정예병력을 이끌고 모산파로 합류하겠소. 허나 그 전에 할 일이 하나 있소.”
사도진악의 표정이 변했다. 일견 기대에 찬 것 같으면서도 더없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이다.
“본좌는 주룡의 실력을 보고 싶소.”
갑작스러운 사도진악의 말에 주소천이 당황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로 주룡의 무공을 보고 싶소. 연무정 부교주는 그대를 신 사도맹의 맹주로 추대하였지만 본좌의 생각은 다르오.”
주룡의 무공을 눈으로 직접 본 연무정은 당연히 그녀를 맹주로 추대하였지만, 같은 화경에 이른 사도진악은 주소천을 맹주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사파의 무인들은 약육강식의 비정한 강호의 도리를 철칙으로 삼아온 자들이오. 때문에 거친 사파무사들을 다스릴 수 있는 압도적인 무력은 필수불가결한 사항이오.”
“제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차분한 주소천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도진악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총명함과 침착한 결단력은 이미 합격점. 남은 것은 주소천의 무공이 어느 정도이냐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것은 신뢰하지 않는 성품이었으니 말이다.
“주룡 주소천. 그대에게 비무를 청하오. 만약 그대가 승리한다면 본좌는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대에게 충성을 맹세하겠소.”
“만약 대협께서 승리하신 다면요?”
“주룡은 새로운 사도맹의 부맹주가 되시오. 그리고 모든 상황이 수습된 뒤에 본좌의 뒤를 이어 새로운 사도맹을 이어받기를 바라오.”
주소천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다행히 사도진악은 마교의 현아진처럼 막무가내의 무뢰한은 아니었지만 유신이나 신혁처럼 예의 바르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사파 무사의 표본과도 같은 남자. 그것이 사도진악이었다.
“좋아요.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좋소!”
바야흐로 구시대를 대표하는 노강호와 새로운 신진고수를 대표하는 최강의 후기지수와의 대결이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