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신임성주
“으음…….”
진근화가 최대한 담담한 얼굴로 청해성의 정예병력들을 마주하였다. 청동현을 비롯한 청해의 다른 현령들을 독촉하여 최대한으로 병력을 긁어모았으나, 양과 질 모두 청해성의 병력에 비해 손색이 있었을 수밖에 없었다.
“물러서라! 감히 찬황지존위군께서 계신 곳에 무장을 하고 들이닥치다니, 이는 역모에 준하는 일이다! 삼족이 멸해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물럿거라!”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진근화와는 다르게 그래도 삼류무관에서 칼밥을 먹었던 미종은 눈을 부라리며 들고 있던 창을 휙휙 휘저었다.
‘기세에서 밀리면 끝장이다. 최대한 찬황지존위군의 위명을 들먹거리면서 시간을 끌어야 해.’
각 현에서 끌어모은 어중이떠중이 병력의 수는 끽해야 천 명이 될까 말까 하다, 대치하고 있는 청해성의 정예병력은 족히 수천은 넘어 보였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그 병력이 충원되고 있었다.
퍼어엉! 퍼어엉!
연회장, 신혁과 청해성주가 있는 곳에서 심상치 않은 폭음이 들려왔고, 청해성주의 친위병력은 더 이상은 망설이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그들의 주군은 청해성주였으니까. 그들이 더는 참지 못하고 흉흉한 기세를 뿜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군진을 펼치며 일부는 진근화와 미종이 이끄는 병력들을 포위하고 나머지는 당장이라도 연회장으로 달려가려는 모양새였다.
콰아아앙!
이번 폭음은 달랐다. 저 멀리 연회장 쪽에서 들려온 게 아닌 그들의 눈앞에서 땅이 폭발하듯이 뒤집히며 퍼진 소음이었다.
“거기까지.”
진근화의 뒤편에서 묵묵히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전조가 언제 뽑아 휘둘렀는지도 모를 검을 다시 검집에 넣으며 앞으로 나섰다. 벽력탄이라도 터진 것 같이 뒤집힌 땅의 위로 아주 선명하고 곧은 검기의 줄이 새겨져 있었다.
“찬황지존위군의 이름으로 이 선을 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목을 치겠다.”
전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가공할 만한 살기는 놀라울 정도로 거대했다.
“…….”
절정의 극에 근접한 한 명의 고수가 뿜어내는 살기가 수천 명의 병사를 압도하는 것만 같았다.
“흠흠, 본관은 청동현의 현령 진근화다.”
고요한 정적을 깨고, 진근화가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섰다.
“그대들에게 상황설명조차 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우리는 결코 청해성주님을 해하려 온 것이 아니다. 하물며 반란은 더더욱 아니다. 이곳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길 바란다. 곧 찬황지존위군께서 상황을 수습하고 나타나실 것이다. 그때, 그대들에게 이 모든 일을 설명해주겠다.”
“그 말을 어찌 믿을 수 있소?”
진근화의 말에 청해성의 장수 중 하나가 의문을 제기했다. 누군가가 나서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진근화의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일이었다. 만에 하나 무력충돌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옆에 있는 살벌한 사신혁의 수하가 칼춤을 출 것 같았고, 그랬다간 정말 난리가 날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건…….”
“믿을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길.”
진근화가 반색하며 해명하려 할 때, 저 높은 하늘에서 더없이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하늘에?”
“저, 저럴 수가?! 신선인가?”
오후의 태양을 후광 삼아 신혁의 모습이 더없이 눈부시게 보였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하늘에서 고정되어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물들었고, 천천히 신혁이 허공에서 내려왔다.
“백문이 불여일견일 테니, 여러분들이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면 됩니다.”
신혁은 모두가 볼 수 있을 만한 적당한 높이에서 신형을 멈춰 세웠다.
“자, 많이 보던 얼굴이죠?”
신혁이 살짝 손을 들어 올리자 저 높은 하늘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하강하여 그의 가슴높이에 멈춰졌다.
“저, 저건?!”
“성, 성주님이다. 성주님이야.”
“주군!”
정신을 잃은 청해성주의 모습을 확인하자 청해성의 병력들이 동요하였다.
신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축 늘어져 있던 청해성주가 정신을 차렸는지 눈을 떴다.
“여, 여기는…….”
“당신이 죄값을 치를 곳입니다. 또한 찬황지존위군의 권한으로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고 당신의 신체를 구속하겠습니다.”
“무슨 소리를……?”
깨어나자 마자 상당한 높이의 허공에서 눈을 뜬것도 황당한데 발밑에 보이는 수많은 병력들은 또 뭐란 말인가?
“오페라.”
[Copy that.]신혁이 청해성주로 분장한 담대풍의 말을 더 들어줄 가치를 못 느꼈는지 오페라를 호명하였고, 신혁의 품에 있던 용신주가 스텔스 상태에서 뾰족한 대침의 형태로 모습을 바꿨다. 살짝 사이오닉에너지가 덧씌워진 용신주가 망설임 없이 담대풍의 아혈과 마혈을 찔렀고, 담대풍의 몸이 그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용맹스러운 청해성의 신민(臣民) 여러분. 지금부터 일어날 일을 똑똑히 여러분의 눈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신혁이 격공섭물의 수법으로 청해성주를 한바퀴 돌리며 병사들에게 담대풍이 화신한 가짜 청해성주의 얼굴을 똑똑히 각인시켜주었다.
“여러분에 눈에는 지금 제 손에 있는 이 사람이 청해성주님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신혁이 손을 젓자 용신주가 그대로 청해성주의 단전을 후려쳤고, 단전이 깨지는 끔찍한 고통에 청해성주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중요한 건, 단전이 깨지면서 겪게 되는 극통이 아니라 내공이 사라지며 청해성주로 위장한 담대풍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었다.
“저, 저럴 수가?!”
“성주님이 아니야? 저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동요하는 병사들의 한 가운데로 신혁이 내려서며 청해성주였던 담대풍의 신형을 던져버렸다.
철푸덕.
“자세한 것은 청동현의 형방 미종에게 들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눈앞에 있는 이 자는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인 사신문이라는 곳의 악도입니다. 이 자와 뜻을 함께하던 자들은 이미 유명을 달리하였고, 여러분들의 눈앞에 있는 이 자가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그럼, 형방님. 뒷일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진근화 현령님은 잠깐 저를 좀 보시지요.”
“예? 아, 예.”
아주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하며 뒷일을 미종에게 떠넘겨 버린 신혁이 진근화와 함께 청해성의 집무실로 모습을 감췄다.
* * *
“……그러니까 지금 제게 청해성주의 자리에 앉으라 말씀하신 겁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성주 대행이죠. 참고로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아, 그런 표정으로 보실 것 없습니다. 처음부터 계획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현령님께 청해성주의 직위를 인수인계받을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해달라 부탁한 것이었고, 청해성주가 해야 하는 직무 또한 파악해 놓으라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 그…….”
진근화가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예, 알아서 잘 처리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이만. 마중 나오실 필요 없습니다. 밖에 있는 병사들을 비롯하여 할 일이 아주 많으실 테니까요. 잘 처리하시고 일이 마무리되거든 금미산으로 저를 찾아오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청해성주의 신분패를 진근화에게 건네준 신혁이 그대로 하늘을 날아 사라져 버렸다. 신혁이 사라진 방향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며 한참을 망부석처럼 서 있던 진근화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는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까…….”
뭐 그래도 생각지도 못하게 청해성주가 되었으니 좋은 일이지 않을까? 그 옛날 신혁이 처음 등장했을 때 청동현의 십장(十將)에서 순식간에 형방으로 승진한 미종의 기분을 느끼며 진근화의 입가에 어느덧 자그마한 미소가 걸렸다.
‘과연 괴룡(怪龍)이라 불릴 만하십니다, 황사 어르신.’
* * *
콰아아앙!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목책이 부서져 나가며 산만 한 덩치에 어울리는 대도(大刀)를 든 두 명의 거한이 다급하게 들이닥쳤다.
“총채주님, 피하셔야 합니다.”
“중과부적이옵니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어서, 어서 가시옵소서.”
섬서의 녹림산(綠林山), 녹림칠십이채의 총채주가 머무는 사파의 성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이익, 녹림의 주인이 어찌 녹림을 떠날 수가 있겠느냐! 차라리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떠날 수 없다. 내 그 요망한 년의 팔 하나라도 저승길에 가지고 가야 속이 풀릴 것 같구나.”
녹림대왕(綠林大王) 임병철이 왼손에는 도끼를 오른손에는 거대한 도를 쥐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십이호걸은 뭐 하는가? 어서 총채주님을 모셔라!”
“아니 된다, 아우야. 나 혼자 살자고 너를 버리란 말이냐!”
“총채주님, 아니 형님! 가셔야 합니다. 부디 지금은 이 못난 동생의 뜻을 따라주십시오. 당장 총채주님을 모시거라, 지금 상황에서는 사도맹조차 믿을 수 없다. 정사마의 세력이 손을 델 수 없는 곳. 금미산, 금미산의 괴룡에게 가라!”
그 말을 남기고 총채주의 의동생이자 녹림의 지낭인 부채주 유기환이 문을 박차고 녹림을 습격한 자들을 향해 수하들을 이끌고 달려 나갔다.
“총채주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부채주의 피 끓는 명령을 받은 십이호걸이 눈물을 머금고 가지 않겠다고 발악하는 총채주를 잡아끌다시피 하여 불타오르는 녹림채를 탈출하였다.
“놓아라, 가겠다. 내 발로 갈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내 동생 기환이의 복수를 할 것이다.”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
“주룡 주소천이 이끄는 모산파와 사혼판관 연무정의 사혼교가 연합하여 녹림을 기습한 것이 확실한 것이냐?”
모산파라는 소리만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칼을 뽑는 사혼교가 주룡과 연합을 하였다?
“믿기 어렵지만 그렇습니다. 속하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사옵니다. 게다가 주소천이라는 여아가 보여준 공포스러울 정도의 무위, 그건 누군가가 위장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주룡 주소천이 확실합니다.”
“그래, 그럼 되었다. 이 원한을 몇 배로 갚아줄 연놈들이 누구인지 안 것으로 충분하다.”
총채주의 눈에 분노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해소할 수 없는 의문 또한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런데 왜, 대체 왜 저들이 같은 사도맹에 소속되어있는 우리를 기습한 것인가?”
“…….”
십이호걸 중 누구도 총채주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