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불청객 (2)
[지금 확인해보겠습니다.]명령어가 입력된 컴퓨터가 그제야 작업을 실행하듯이 답하는 빅토리노의 뻔뻔함에 신혁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지금이라도 확인해봐.”
[네, 사령관님. 대기 중인 전투원 전조는 즉시 함교로 오십시오.]빅토리노의 안내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함교의 문이 열리며 전조가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내가 잘 동안 빅토리노한테 대충 이야기는 들었겠지?”
“예, 주군.”
“가서 좀 물어보고 오세요. 여기까지 왜 왔냐고. 가뜩이나 피곤한데 하루도 사건이 안 터지는 날이 없네. 아, 뒷말은 못 들은 거로 하고 다녀오세요.”
반말과 존대를 섞어가면서 하는 신혁에게 전조가 고개를 숙였다. 그가 저렇게 두 가지 말투를 혼용할 때는 둘 중 하나였다.
‘무척 피곤하거나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존명!”
전조가 신혁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걱정 말고 다녀오십시오. 여차하면 제가 이온 캐논을 동원해서 한 방에 쓸어 버릴 수 있습니다. 전조 전투원의 뒤에는 테레사함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습니다.]사람인 전조와 달리 컴퓨터인 빅토리노는 눈치가 없었다. 아니, 있는데 없는 척하는 거라던가.
“오페라.”
[네, 사령관님.]“빅토리노도 분석 작업에 동원하도록.”
[Copy that.] [아, 아니 사령관님. 잠시만요. 저는 테레사함의 메인컴퓨터로서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데 사이오닉 에너지 분석 작업에 동원된다면…….]“루시아가 참 좋아하겠지.”
[사, 사령관님! 잠깐, 잠시만요! 메모리, 메모리가 부족합니다. 아, 안돼. 오페라 씨, 놔요. 이거 안 놔요? 놔. 놓으란…….]“…….”
전조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가끔 보여주던 홀로그램인지 환영인지 하는 모습으로 빅토리노가 함교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걸 오페라의 환영이 나타나더니 그대로 뒷덜미를 잡아채고서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뭐하십니까? 빨리 다녀오시지 않고?”
“조, 존명!”
전조의 몸이 빛살과도 같이 테레사함을 벗어나서 금미산의 중턱을 향했다.
파아아앙~!
어찌나 빠른 경공이던지 공기가 전조의 몸에 부딪혀 터져나가는 소음이 울려 퍼졌고, 금미산의 중턱에 모여있던 산적들의 고개가 휙 돌아가며 전조와 눈이 마주쳤다.
“본인은 사신혁 대협을 모시는 혈전검귀 진조외다. 주군의 뜻을 받들어 그대들을 찾았소. 그대들은 누구이길래 감히 주군의 허락 없이 금미산에 발을 디뎠소?”
이곳에서 꽤 오랜 수감생활(?)을 하며 진조를 몇 번 마주쳤던 사천 동호채의 부채주 파적도(破敵刀) 청호가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협. 청호입니다. 제가 대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니, 그대는 자격이 없소.”
전조가 턱짓으로 정확히 녹림대왕(綠林大王) 임병철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대가 설명해보시오.”
“감히!”
“어디 한낱 야인이 녹림의 주인께 그따위 망발을……!”
새롭게 합류한 녹림도들이 전조의 광오한 태도에 하나같이 발끈하며 주먹을 쥐었다. 이곳이 금미산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출수(出手)해도 백번을 했을 것 같은 태세였다.
“되었다. 물러나거라.”
“충!”
흥분해서 날뛰는 호걸들을 말 한마디로 물린 녹림대왕 임병철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꽤나 뛰어난 무인이군. 절정의 극에 가까운 무위라니. 웬만한 문파의 장문인 정도는 상대도 되지 않겠어.’
임병철이 티 나지 않게 전조의 무위에 감탄하며 말했다.
“본좌는 녹림칠십이채의 주인, 임병철이오. 부끄러운 모습으로 청하지도 않은 방문을 하여 미안하외다.”
겸손하지만 비굴하진 않은 임병철이었다.
“지금 녹림대왕이라 하셨소?”
사도팔왕. 사파에는 정파의 구파일방에 비견되는 8개의 명문인 사도팔문이 있었고, 그 명문들의 수장들을 모아 강호에서는 사도팔왕이라 칭했다. 그중에서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인도 몇 있었다. 중요한 건 사도팔문의 주인들은 정파의 구파일방의 문주들에 준하는 고귀한 신분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소. 본인이 녹림대왕 임병철이외다.”
“녹림의 주인께서 이 먼 금미산까지 어쩐 일로 오신 게요?”
전조가 임병철의 주변 인물을 훑어보며 물었다. 척 봐도 강대한 기세를 풍기는 9명의 건장한 무사들은 녹림총채주의 호법이자 집법사자들인 녹림의 십이호걸들 같았다. 한때 강호에 몸담았던 만큼 전조도 녹림 십이호걸에 대한 이야기는 귀가 따갑게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풍모 또한 소문을 통해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었다.
‘십이호걸중에 9명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3명은 부상이 꽤 심각해 보이는데…….’
녹림대왕 임병철이 자존심 따위는 깔끔하게 내려놓은 표정으로 포권하며 말했다.
“위기를 모면하고자 몸을 피하다 보니 부득이 금미산까지 오게 되었소. 사해가 동도라는 말을 내 입에서 꺼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부디 아량을 베풀어 주시길 바라오.”
개방과 하오문처럼 엄청난 인원을 자랑하는 녹림이었고, 역시나 앞의 두 문파와 같이 고수의 수는 다른 명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문파가 녹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녹림의 십이호걸은 소림과 무담의 장로들에 비견될만한 무위를 자랑하는 초고수들이었다.
‘녹림총채주와 녹림 십이호걸이 모여있었는데도 저런 부상을 당하고 도주했다니. 대체 누가 녹림을?’
전조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그렇습니까. 어떤 아량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설마 제 주군께 그대들을 습격한 흉수들과 싸워달라는 것 같은 무리한 부탁을 하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이오. 내 어찌 감히 찬황지존위군께 그런 무례한 부탁을 할 수 있겠소.”
찬황지존위군이라는 단어에 전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괴룡이 아닌 찬황지존위군이라고?’
강호에서 활동할 때 사신혁은 결코 찬황지존위군이니 황사니 하는 황제가 내린 직위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림인들 또한 사신혁을 괴룡이라 불렀지, 다른 호칭으로 부르진 않았다.
“지금 찬황지존위군이라 말씀하셨소?”
“그렇소. 본좌는 무림인 괴룡 사신혁을 청하는 것이 아니오. 대명제국의 태조께 개국의 공을 인정받아 사략면장을 하사받은 녹림의 수장으로써 찬황지존위군을 뵙고자 하는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그대의 주군께 이 사실을 고하도록 하시오.”
“…….”
강호인의 신분으로 나온다면 붙어서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막아섰을 전조였지만, 대명제국의 신분을 들고나오니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전조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금미산에 신혁에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만하면 충분하다. 귀환해라 진조.]갑작스럽게 온 산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신혁의 목소리에 녹림대왕과 십이호걸들이 애써 침착을 유지하며 사위를 살폈다. 사자후의 수법 같기는 한데, 그것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그리고 대체 어디서 신혁의 음성이 시작되었는지 방향조차 잡기 어려웠다.
[금미산을 방문해 주신 분들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지금 가겠습니다.]“그대들은 운이 좋구려. 주군의 허락을 얻었으니 말이오. 그럼 이만.”
전조가 정중하게 녹림대왕에게 포권하고서는 금미산의 정상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전조가 사라지고 나서 숨을 열 번 정도 쉴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어느새 신혁의 육성이 들려왔다.
‘응? 벌써?’
녹림대왕 임병철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금미산 정상에서 벌써 이곳에 나타난 것도 놀라운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깁니다.”
금미산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녹림도들은 신혁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녹림대왕과 십이호걸들은 태어나서 처음보는 완벽한 능공천상제의 신법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허어.”
“괴룡의 신법이 천하일절이라더니…….”
“강호의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느꼈거늘, 오히려 소문이 축소된 것 같구나.”
터억.
신혁의 발이 땅에 닿았다.
“자, 그래서 저를 찾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 황사 어르신.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녹림의 총채주 임병철이라 합니다. 위대한 경지에 이른 무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신혁입니다.”
임병철과 신혁이 정중하게 포권하며 인사를 나눴다.
“저는 허례허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용건만 간단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예, 황사 어르신. 선대 황제께서 약조하신 사략면장에 따라서 황사 어르신께 몸을 의탁하려 합니다.”
“사략면장이요? 그리고 의탁이라뇨?”
“예. 사략면장은 아마 저놈들이 대인께 무례를 범하였을 때, 들으셨을 겁니다.”
신혁이 슬쩍 고개를 돌려 동호채의 청호와 동호채 소속의 산적들을 훑어보았다.
“태조께서 마교의 창천명교와 녹림 그리고 장강수로연맹같은 무림 세력의 도움으로 원의 세력을 몰아낸 것에 대한 답례로 산적질, 수적질을 어느 정도 용인해준 그 빌어먹을 계약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예.”
표현이 상당히 직설적이고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편한 말에도 녹림대왕은 분노를 꾸욱 누르고 고개를 숙였다. 상대는 다름 아닌 괴룡 사신혁, 그리고 이곳은 그의 앞마당과도 같은 곳이었다. 발작해봤자 자신만 손해였고, 무엇보다 그는 사신혁의 도움을 얻어야만 하는 처지였기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거랑 의탁이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예, 대인. 사략면장에 따르면 관과 무림은 불가침의 관계이나 제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략면장을 받은 세력은 반드시 제국의 편에서기로 약조하였습니다.”
“그래서요?”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대명제국의 태조께서는 사략면장을 받은 세력이 존패의 위기에 처했을 때, 1회에 한하여 구명지은의 은혜를 베풀 것을 약조하셨습니다.”
“그런데요?”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신혁의 시큰둥한 태도에도 아랑곳없이 녹림대왕이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녹림대왕이 무릎을 꿇자 그 자리에 있던 녹림도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신혁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이런 말씀을 드려서 좀 미안하긴 합니다만…….”
신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도움을 드리고 싶지 않군요.”
“어, 어째서? 선대 황제의 유지를 저버리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대명제국의 찬황지존위군이자 황사인 대인께서 말입니까?”
임병철의 눈매가 흔들렸다. 협의에 매달리는 건 명분이 없으니 사략면장과 선대 황제의 약속을 올가미로 신혁을 묶으려 하였는데,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오라버니, 정리 끝났어요. CEC에 출력해드릴게요.]신혁의 CEC에 루시아가 요약한 사략면장의 내용이 표시되었고, 사략면장의 맹점이 굵은 글씨로 확대되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사략면장에 따르면, 대명제국이 도움을 주는 거지 제가 직접 도움을 줄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그, 그건……!”
임병철의 말문이 턱 막혔다. 이게 사략면장을 문언적으로 해석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명제국이 도움을 준다는 거지 사신혁이 도움을 준다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하오나 황사 어르신께서도 대명제국의 신민이 아니십니까!”
“아닌데요?”
아, 아니구나. 임병철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허탈하게 신혁에게 물었다.
“하, 하지만 제가 알기로 찬황지존위군께서는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직위를 받으시고 폐하의 명을 거절하지 않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냥 계약을 이행한 것뿐이죠. 부탁을 들어준 거고. 이거 여러분들이 큰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착각이라니요?”
“저는 대명제국의 신민이 아닙니다. 또한 황제에게 충성하는 관리는 더더욱 아니고요.”
“예?!”
“저를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저의 생각과 의지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