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대치
신혁의 황당한 말에 산적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세상에 뭐 이런 대책 없는 놈이 있는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 양민들을 수탈하는 산적들을 돕고 싶지는 않군요. 그나마 이곳의 법도를 존중하여 당신들을 무림인이라는 범주에 두고 용인하는 걸 다행이라 생각하십시오.”
“대인, 비록 저희가 산적의 탈을 쓰고 있다고는 하나 무고한 양민을 해치는 것은 녹림의 법도로써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물론 말을 안 들어먹는 놈들이 간혹 나오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양민을 수탈하지는 않습니다. 양민에게 통행세를 받는 경우는 그 대가로 양민들이 맹수들의 위험에서 무사히 산을 넘을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해줄 때뿐입니다.”
“그건 좀 의외군요. 그러나 여러분이 산적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가 없는 일에는 나서지 않습니다. 다짜고짜 사략면장을 들이밀면 제가 당연히 도와드리겠다고 하실 줄 아신 겁니까?”
“…….”
임병철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이 신혁을 향해 강렬하게 쏘아졌다.
‘괴룡 사신혁. 지금까지 그의 행보를 되짚어보면 비록 괴팍할지언정 분명 대협의 풍모를 보였었다. 청해에 가까운 서안의 모산파와 사혼교가 연합하여 사천의 녹림을 무너뜨렸으니, 그다음 목표는 청해의 철혼문이 될 것이라 설명하고 이곳이 곧 전쟁터가 될 수도 있음을 알린다면 나서지 않을 수 없겠지.’
머릿속으로 재빨리 계산을 마친 임병철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청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임병철이 마치 협의지사와 같은 얼굴로 본격적으로 말을 하려는 찰나에 누군가가 신혁과 임병철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제가 상황을 설명해 드릴게요. 아무래도 그쪽보다는 제 말이 조금 더 신뢰성이 있을 것 같으니까요. 적어도 신혁 대협께는 말이죠.”
상큼하게 미소 지으며 나타난 자는 바로 주소천이었다.
“너, 너는?!”
채채채챙!
순식간에 녹림도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꺼내며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냈다.
[적성 사이오닉 에너지 반응 체크.]파아아앗!
수백 명이 내뿜는 살기에 신혁의 용신주가 자동으로 반응하며 푸른색으로 불타올랐다. 신혁과 주소천 그리고 녹림도들 사이에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흘렀다.
“거기까지.”
신혁이 주소천의 어깨를 잡았다.
“일단 소천 양은 제 뒤로.”
“예, 대협.”
주소천이 신혁의 말에 일말의 거부감도 없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섰다.
“녹림도 분들도 살기를 거둬주시기를 바랍니다.”
“…….”
신혁의 경고에도 녹림도들은 쉽사리 칼을 거두지 못했다.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주소천과 사신혁이 어느 정도 친분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맹주님을 뵙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그 와중에 주소천의 뒤를 쫓아온 신(新) 사도맹 고수들이 나타나며 주소천의 뒤에 섰다.
“맹주님을 지켜라!”
주소천의 뒤편에 도착한 신 사도맹의 고수들이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녹림도들을 노려보며 일시에 무기를 뽑았다. 묘한 대치 상태가 지속되자 신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도착하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기를 거두십시오.”
“…….”
“…….”
신혁의 말에 녹림도들은 물론 신사도맹의 무인들도 쉽게 무기를 거두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를 못 믿었기 때문이었다. 적대하는 세력 간에 체면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무기를 거두는 순간 적이 기습이라도 가한다면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서 접전이 펼쳐질 텐데 말이다.
“사신혁 대협의 말씀대로 하세요. 무기를 거두세요.”
주소천이 신사도맹의 무인들에게 명령하였다.
“하, 하지만 맹주님. 아직 녹림도들이 건재합니다.”
“그렇습니다 맹주님. 최소한 저들이 먼저 무기를 거두어야…….”
신사도맹의 무인들이 주소천의 명령에도 쉽사리 무기를 거두지 못하고 망설였고, 그 모습에 녹림도들이 분노하여 소리쳤다.
“닥쳐라! 이 가증스러운 놈들. 서로 원수였던 놈들이 손을 잡고 같은 사도맹 소속이었던 녹림의 뒤통수를 친 것도 모자라서, 후안무치하게 우리보고 먼저 무기를 거두라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덤벼, 덤벼 이 새끼들아!”
“총채주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형제들의 핏값을 받아내야 합니다.”
그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주소천이 한숨과 함께 다시 한번 신사도맹의 무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려 할 때, 신혁이 주소천에게 살짝 눈짓하면서 앞으로 나섰다.
“무림인이라는 분들은 역시 말로 해서는 들어먹지를 않죠.”
신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을 살짝 들었다. 별거 아닌 행동이었지만, 화약고와 같았던 무인들의 시선이 신혁에게 집중되었다.
‘빅토리노.’
[네, 사령관님. 준비되었습니다.]따악!
신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양측의 무사들이 그 사소한 행동에도 놀라서 몸을 움찔하였지만, 다행히 적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뛰쳐나가는 놈은 없었다.
쿠르르르르.
“응? 뭐, 뭐야 하늘이?”
“저, 저럴 수가?”
신사도맹의 무인들과 이제 막 금미산에 들어선 녹림대왕 일행들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이미 한번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던 동호채의 녹림도들만이 잔뜩 굳은 얼굴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신혁의 뜻에 반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말이다.
[이온 캐논 포격 개시.]슈아아아아!
하늘이 갈라지며 녹색의 빛무리들이 나타났다. 빛의 덩어리가 폭발하듯이 환하게 빛을 발했고, 그 순간 수십여 발의 빛살이 녹림도들과 신사도맹의 무인들을 감싸듯이 쏟아졌다.
사아아악! 사악!
빛살이 직격한 땅에는 일체의 폭음도 폭발도 없었다. 다만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구멍이 뚫려있었을 뿐이었다.
‘세, 세상에, 저게 인간의 무공이라고?’
‘괴룡의 무공이 하늘과도 통한다더니……. 저게 정말 인간이 맞나?’
‘용(龍). 정말 용이 아닐까? 어찌 사람이 이런 무공을 쓸 수 있다는 말이냐? 아니, 이런 걸 무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신혁의 무공을 처음 보는 모든 이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가 무기를 거두었다.
“이제 좀 대화를 할 준비가 된 것 같군요.”
‘무슨일이 있어도 괴룡을 설득해야 한다.’
녹림의 지낭이라 불리는 유기환이 왜 금미산으로 도망치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괴룡의 무위를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황사 어르신.”
녹림대왕의 태도가 매우 공손해졌다.
“제가 먼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후우.”
신혁이 한숨을 쉬었다. 이 일에 주소천도 관련이 있는 것 같고, 얼마 전에 청해성의 영지까지 하사받은 마당에 금미산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무장 병력들이 충돌하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예, 말씀하시죠.”
“감사합니다.”
녹림대왕 임병철이 불시에 기습을 당한 녹림의 억울함과 피해 상황을 신혁에게 고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도주하는 와중에 저의 형제와도 같던 녹림호걸 중 3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이에, 대명제국의 태조께서 하사하신 사략면장이 떠올라 혹시라도 찬황지존위군의 은혜를 입을 수 있을까 하여 금미산으로 몸을 피하였습니다.”
“허허허허…….”
신혁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상황은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세상에 산적이 관군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강도가 다른 강도에게 맞았다고 그놈 좀 잡아가라고 포도청에 와서 떼를 쓰는 거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후우~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지만, 일단 양측의 의견은 다 들어봐야겠죠. 주소천 양.”
“예. 대협.”
“지금 이분이 하신 말씀 중에 사실과 다른 게 있나요?”
“아니요. 대부분 일치합니다.”
녹림대왕의 주장에 대해서 별다른 이의 없이 주소천이 수긍하자 오히려 놀란 것은 녹림도들이었다. 왜 주소천이 순순히 인정한 것일까?
“다만, 이 사건의 본질적인 원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녹림을 습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건 제가 녹림을 왜 습격했냐는 것이겠죠.”
“음? 왜죠?”
이건 신혁뿐만 아니라 녹림도들도 미치도록 궁금한 부분이었다. 대체 왜 주소천이 녹림을 습격했는지 말이다.
“사신문.”
주소천의 입에서 나온 말에 신혁의 안색이 굳어졌다.
“사신문이요?”
“먼저 본의 아니게 녹림에 피해를 입혀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요.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지금 뭐라고……?”
녹림대왕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다짜고짜 녹림의 본산에 쳐들어와서 쑥대밭을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사과? 지금 괴룡 앞이라고 연기를 하는 건가?
“진심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구요.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사신문에 관련된 일입니다.”
“사신문? 나는 그딴 걸 들어본 적도 없소.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오! 그대로 인하여 희생된 본림의 호걸들이 대체 몇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판국에!”
꽈아아앙!
분노한 녹림대왕이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신혁이 임병철과 주소천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일단 주소천 양의 말을 다 들어본 후에 여러분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겠습니다. 그게 싫으시다면 지금 당장 떠나셔도 좋습니다.”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분노로 인해 속이 부글부글 끓는 임병철이었지만, 도움을 구하러 온 신혁의 앞에서 평소처럼 성질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들어보죠.”
신혁이 살짝 팔짱을 끼며 눈을 감았고, 주소천이 사혼교와 모산파 사이에서 벌어졌던 사신문의 모략과 장강수로연맹에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토리야.’
[네 사령관님.]‘오페라와 함께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사이오닉 에너지 패턴이 느껴지는 자가 있는지 체크해봐.’
[알겠습니다.]‘용신주의 통제권을 오페라에게 이양한다.’
[Copy that.]스텔스 모드 상태의 용신주가 신혁의 몸을 떠나서 현재 금미산에 찾아온 무리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사신문이 그들의 틈에 숨어있다면 무리 없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주소천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빅토리노가 보고했다.
‘호오? 설마 했는데, 있었어?’
[예, 한 명이 발견되었습니다. 직접 보시겠습니까?]‘CEC에 띄워봐.’
[네.]신혁의 CEC에 출력된 이는 녹림대왕 임병철을 호위해온 녹림호걸 중의 한 명이었다.
‘저놈이군.’
신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요? 아니, 설령 그렇다 한들…….”
“네,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녹림의 내부에도 사신문의 마수가 뻗쳐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우시겠죠.”
주소천이 충분히 녹림대왕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그 말이 사실이라 하여도 누가 사신문의 간자인지 알 수 없소. 맹주의 말대로 그들이 그토록 변장에 능하다면 누구도 사신문도가 아니지만, 누구나 사신문도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아니외까.”
“맞아요. 본 맹의 경우, 아니 사혼교와 장강수로연맹의 경우를 비추어 봤을 때 그들이 먼저 정체를 드러내며 접근하지 않았다면 결코 찾아낼 수 없었을 거예요.”
“만약 맹주의 말이 맞다면 맹주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오. 허나 맹주의 말이 틀렸다면…….”
수하들 중에 사신문도가 숨어있어 첩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주소천의 말을 믿고 신사도맹에 적을 두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녹림대왕을보며 신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했으니 직접 보시죠.”
“예? 그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