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사도일통 (4)
“좋아, 자네의 말을 따르도록 하지. 단, 한가지만 대답해다오.”
“무엇을 말이오?”
“어떻게 십대기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나? 강호의 누구도 찾지 못하던 것을 말이야.”
초사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십대기보는 혼원신교에서 만든 것. 그들의 기술과 혼이 집약된 기물을 만들어 특수한 상자에 봉인해놓았다는 전설이 있소.”
“강호에 몸담은 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옛날이야기 같은 거지.”
“광풍혈사대의 주 사업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계실 거요.”
“그야…….”
대초원과 사막을 지배하는 광풍혈사대는 중원과 서역의 무역로를 관리하며 통행세라는 명목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직접 대원들을 움직여 서역과 중원의 값비싼 물품들을 교역하며 짭짤한 이익을 취하기도 하였고.
“서역과의 무역을 위해 내몽고 지역을 가로지를 때, 우연히 혼원신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소.”
“혼원신교의 흔적을?”
“그렇소. 그 흔적을 뒤쫓다 보니 그들의 거점을 발견할 수 있었소.”
십대기보의 창조자이며 수많은 절세기병을 만들어냈다는 강호의 신비세력. 혼원신교를 찾았다니, 만약 그 말을 지껄이는 자가 철극진이 아니었다면 초사헌은 결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서야 재밌어지는군.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마적의 본분이 뭐겠소. 약탈이지. 그리고 보물의 가치가 크다면 자신보다 강한 맹수도 물어뜯는 것이 굶주린 늑대의 본능이오.”
“혼원신교의 세력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그렇소. 빈집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숨어있던 혼원신교의 고수들이 나타났고,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지만 십대기보 2개를 탈취할 수 있었소.”
“그렇다면 혼원신교도들은 어찌 되었나? 모두 참하였나?”
철극진이 고개를 저었다.
“십대기보를 탈취하여 도주하는 것도 하늘이 도움이 있었소이다.”
“무슨 소린가?”
화경의 경지에 이른 철극진의 눈에 순간적으로 공포가 어렸다.
“혼원신교의 교주. 그는 악마였소.”
* * *
소림사.
일개 사찰치고는 지나치게 거대하고 부유한 절이다. 중원에서 가장 발전된 지역 중 하나인 하남의 숭산에 위치하였으며 천년소림, 무림의 태산북두, 정파의 거목 등 여러 가지 수식어로 지칭되는 자타가 공인하는 정파 최고 최강의 세력이었다.
“아미타불, 이쪽으로 드시지요 시주.”
평소에도 수많은 객들로 붐비는 소림사에 오늘따라 유난히 많은 이들이 드나들었다. 여러 명의 승려가 분주히 움직이며 방문객들을 맞이하였고, 그중에서도 어느 정도 직위가 있어 보이는 승려가 눈앞의 손님들을 안내하였다.
“방장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선명하게 이마에 찍힌 6개의 점. 소림의 상징이라는 백팔나한승의 일인인 소림일대제자 현조스님께서 친히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정파무림의 유명한 명숙들이었다.
“방장 사숙. 무당의 장문인 청현진인께서 오셨습니다.”
“드시라 하여라.”
“예.”
드르륵.
접객청을 담당하는 현조스님이 문을 열고 청수한 도인을 안내하였다.
“무량수불,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사.”
“아미타불, 이렇게 빈승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허, 방장께서 빈도를 청하셨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형식적인 인사가 끝나고 방장이 자리를 권하자 청현진인이 포권하며 자리에 앉았다.
“먼 길을 오시느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어서 앉으시지요.”
소림의 동자승이 맑은 향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따라 청현진인의 자리에 놓고서 공손하게 시립하였다. 청현진인이 사미승에게 살짝 눈인사로 고마움을 표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석에는 소림의 방장이자 정도무림맹의 당대 맹주인 공정대사가 자리하였고, 청현진인의 자리는 방장의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오른쪽 자리였다.
“장문인, 오랜만에 뵙습니다.”
“무량수불. 명진도장, 그간 격조했습니다.”
무당의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던 날카로운 눈매의 도사. 그가 바로 영원한 무당의 호적수이자 악우인 화산파의 장문인이었다.
“이거 하도 만나 뵙기가 힘들어 이 거지는 청현진인께서 등선하신 줄 알았습니다. 으하하하하.”
도사보고 등선이라니. 불교식으로 좋게 표현하자면 성불이고, 속가식으로 나쁘게 표현하자면 뒤진 줄 알았는데 살아있다는 뜻이었다. 참으로 무례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한 자가 예의와 체면 따위는 정말로 개나 줘버린 개방의 방주였기에 청현진인의 얼굴에서도 쓴웃음만이 보였을 뿐, 분노는 없었다.
“빈도가 등선할 정도로 도를 쌓았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항룡신개 방주.”
“크하~! 뭐 청현진인이라면 언젠가는 도를 이루시지 않겠소. 이 거지가 배운 게 없어서 반가운 마음을 그리 표현하였으니 진인께서는 본개(本丐)를 탓하지 마시오.”
무림맹주의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술병을 입에 물고 시원하게 술을 마시는 항룡신개의 여전한 모습에 청현진인이 가볍게 응수하였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오히려 방주께서 정색하고 맞아주셨으면 빈도가 서운할 뻔했습니다.”
무당의 장문인에 어울리는 여유와 품격을 보여주며, 청현진인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정도맹의 동도들에게 빈도가 인사드립니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무량수불.”
개방장문인을 끝으로 더 이상 사적으로 청현진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기에 청현진인이 좌우를 살피며 정중하게 포권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직까지 청현진인의 눈에 빈자리가 보이는 걸로 봐서는 맹주의 무림첩을 받은 전원이 도착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방장 사숙, 곤륜과 대장로님과 점창의 장문인께서 오셨습니다.”
“모시거라.”
문이 열리고 곤륜의 대장로 유성도장과 점창의 장문인 사일신검(射日劍法) 노준의가 명숙들에게 포권하였다.
“무량수불, 빈도가 많이 늦은 듯합니다.”
“조금 더 서둘렀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청현진인의 무당파는 호북에 위치해 있었다. 무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정파는 소림이 있는 하남의 숭산과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청해의 곤륜파와 사천 끝자락에 있는 점창파는 호북에서 상당히 먼 거리였기에 그들이 늦게 당도한 것을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청현진인의 시선이 반대편 중앙에 있는 빈자리에 머물렀다.
“항상 일찍 오던 사람이 오늘따라 왜 이리 늦는 건가. 평소에는 그리 진중한 척 예의를 따지던 사람이 쯧쯧쯧.”
혀를 차며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자리의 주인을 힐난하는 자는 종남파의 장문인 태산중검(太山重劍) 호연각이었다. 별호와 다르게 그의 성정은 중(重)보다는 경(輕)에 가까운 것이 좀 색달랐지만 말이다.
“좀 기다려라. 다른 장문인들께서도 잠자코 있는데 꼭 그렇게 나대야지만 직성이 풀리겠는가?”
“뭐라? 지금 비꼰 게냐?”
“정확히 알아들었군. 알았으면 좀 자중하게.”
견원지간인 화산파의 장문인 명진도장의 도발에 호연각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이 자식이…….”
부들거리는 그의 손은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힘줄이 돋아있었다. 그러나 그가 차마 출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눈앞에서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무림맹주이자 소림의 방장인 공정대사 때문이었다.
“후우~”
심호흡하며 화를 진정시킨 호연각이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명진도장을 향해 말했다.
“삼초지적도 안되는 환검쟁이와 다퉈서 뭐 하겠는가. 무공도 형편없는 놈이 장문인이 되니 화산이 발전이 없는 게지. 클클클클.”
“뭐라?”
이번에는 호연각이 명진도장의 역린을 건드렸다. 명진도장은 화산파의 대사형으로서 순리대로 화산의 장문에 오른 도인이었다. 도인으로서도 장문인으로서도 그리고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하필이면 같은 항렬의 막내 사제인 매화일검 명검도장이 화경을 깨달아 버리며 순식간에 무공이 약한 장문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비운의 장문이기도 했다.
“아아, 화내지 말게. 사실인걸 어떡하겠나. 적어도 화산의 매화일검 장로가 장문이 되었다면 무당에 비벼 볼 법도 했을 텐데 말이야.”
견원지간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두 사람의 모습에 모두가 속으로 혀를 찼다. 정말 이러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의 작태는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어가고 있었다.
“한 마디만 더 나불댄다면…….”
“나불대면 뭐? 어쩔 텐가? 아, 아닐세 내 사과하겠네. 내가 말을 잘못했구만.”
일촉즉발의 분위기에서 당장이라도 서로 손을 쓸 것 같은 상황에서 공정대사를 의식했는지, 종남의 장문인이 한발짝 물러서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매화일검 장로가 화산의 장문인이 되었어도 감히 무당에서 천하제일검문의 칭호를 가져올 수는 없었겠지. 매화일검 장로의 무공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봐야 무당의 태극검제 태상장로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 아닌가? 하하하하하. 마치 자네와 나처럼 말이지.”
“이이익……!”
거의 원수에 가까운 화산과 종남에 각각 입문한 두 사람은 삼대제자들의 대사형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누르고 올라서야만 하는 지옥 같은 관계였다.
“허허, 무량수불. 두 분의 사담은 이 자리에서 나누기에는 조금 정도가 지나친 듯합니다. 맹주님께서도 자리하고 계시니 이쯤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곤륜의 유양도장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방장 사숙, 남궁세가의 가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유양도장이 일단 화산과 종남을 갈라놓았으나 안심할 수 없던 찰나에 적절하게 화제를 돌려줄 인물이 등장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중원의 영웅들을 한자리에서 뵙게 되니 남궁자평의 영광이오.”
안휘성의 패자. 천중제일세가. 창천남궁세가의 가주.
정중하게 포권하는 남궁자평의 모습은 능히 영웅의 기상이 엿보였다. 한가지 꺼림칙한 면이 있다면 가장 늦게 온 주제에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뻔뻔함이 있었지만, 맹주인 공정대사도 가만히 있는 마당에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정도무림맹 속의 한 식구라고 해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아미타불. 모두가 모이신 것 같구려. 소승이 여러분을 뵙자고 한 것은 사도맹의 일 때문입니다.”
정파들의 연합체인 정도맹이 있다면 사파에는 사도맹이 있었다. 정파와 마교에 이어 강호를 삼분하는 강대한 세력인 사도맹이 회의의 안건으로 떠오르자 모두의 시선이 공정대사에게 집중되었다.
“사도맹의 맹주인, 초사헌 궁주로부터 소승에게 한 장의 서찰이 왔습니다. 그것은 정도무림맹에게 공식적으로 협력을 요청하는 전언이었습니다.”
“협력? 협력이라니요, 사파의 버러지들과 무슨 협력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맹주님. 대관절 정도맹이 사도맹과 힘을 합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공정대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파의 사자만 들어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정도맹의 명숙들께서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를 시작했다. 아직 무슨 내용인지 듣지도 않았건만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는 정파의 명숙들을 보면서 공정대사가 속으로 깊게 한숨을 쉬었다.
‘예상은 했지만, 훨씬 심각하구나.’
그때, 다른 명숙들과 마찬가지로 길길이 날뛰며 반대를 외칠 것 같던 개방의 장로가 의의 모습을 보였다. 차분한 신색으로 공정대사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항룡신개가 좌중을 진정시키며 시선을 모았다.
“잠시 진정들 좀 하쇼. 이 거지가 여러분께 최근 강호에서 벌어진 심상치 않은 사건에 대하여 설명할 것이 있소이다.”
예의도 없고, 격식도 없었지만, 개방의 방주에게는 중원 최고의 정보력은 있었다.
“흠흠, 고맙소이다. 지금 사도맹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여기 모인 명숙들께서도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장강이남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기에 정파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일이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사도맹은 현재 내전 중입니다. 이화태양궁과 흑룡문 마지막으로 광풍혈랑대까지 기존 사도맹의 3강의 문파를 중심으로 한 구사도맹과 나머지 5개의 문파와 주룡 주소천이 새로운 맹주로 있는 신사도맹의 내전이란 말이지요. 크으~!”
항룡신개의 말이 공정대사가 침착하게 서찰의 내용을 밝혔다.
“구사도맹주 초사헌 궁주가 제안하였소. 정도맹과 힘을 합쳐 주룡 주소천의 신사도맹을 사냥하지 않겠느냐고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