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사도일통 (6)
명진진인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지금은 정도맹의 모든 힘을 기울여 사파를 소탕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이 시기를 놓친다면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사파는 사라지지 않고, 두고두고 정파의 후환이 될 것입니다.”
“화산 문주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허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이자는 말입니까?”
사파라는 잡초를 뿌리째 뽑아낸다는 건 정파의 입장에서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최대한의 전력을 구사도맹 쪽으로 파견해야 합니다.”
“그렇게까지 과하게 말입니까?”
“괜히 어정쩡하게 제자들을 파견했다가는 자칫 내전이 끝나고 그들이 칼끝을 돌려 우리가 보낸 제자들을 해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그런 협잡은 꿈도 꾸지 못하도록 압도적인 전력을 보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설마…… 명진도우께서는 신사도맹을 없애고 칼끝을 돌려 남은 구사도맹마저 척결하자는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물론 정파인으로서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비난받을지도 모릅니다. 허나, 악을 없애는데 그깟 오명을 뒤집어쓰는 게 뭐가 무섭겠습니까? 만약 여기 계신 명숙들께서 제 뜻에 동의해주신다면.”
명진진인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마치 당장이라도 사파라는 잡초를 불태워버릴 거대한 화마처럼 그의 눈은 열망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화산이 선봉에 설 것입니다. 빈도가 직접 제자들을 이끌고 저 사도의 무리들을 벌할 것입니다.”
“…….”
명진진인의 말에 다들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코 반대의견을 내지 못했다. 화산이 직접 선두에 서겠다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종남도 뒤질 수는 없지요. 화산이 사파와의 전쟁에서 선두에서 선다면 그 옆에는 종남이 함께할 것입니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화산파가 날뛰니 종남도 덩달아 날뛰는 모양새였다.
“화산 장문인의 뜻을 알겠습니다. 앞선 세분과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은 없습니까?”
공정대사가 좌중을 둘러보았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단순하게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정파에서도 각자가 추구하는 의와 협이 다르고 놓인 처지가 달랐으니 말이다.
각자 머릿속으로 열심히 주판을 튕기는 명숙들을 살펴보던 공정대사 불호를 읊으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소승이 비록 정도맹의 맹주라 하여도 소승 혼자서 독단적으로 결정하기에는 사안이 너무도 중차대합니다. 이에 다수결로 여러분들의 뜻을 모을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예, 맹주님.”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공정대사의 말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뜻을 표하였다.
“그럼, 표결에 들어가기 전에 추후 있을 분란을 막기 위해서 소승이 여러분께 미리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공정대사가 회의장에서 명숙들의 시중을 들던 동자승에게 인자한 얼굴로 손을 내밀자, 동자승이 한 장의 서찰을 공정대사에게 건넸다.
“이것이 구사도맹주 초사헌의 전언입니다.”
공정대사가 손짓하니 종이가 서서히 공중에 떠올라 모두가 볼 수 있는 높이에 이르러 멈췄다.
“이, 이건?!”
“이 전언이 사실입니까 맹주?”
지금까지 남의 집 제사상 구경하듯 한걸음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던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자평의 몸이 격정으로 떨렸다.
“정녕 구사도맹의 맹주가 두 개의 십대기보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하나인 단혼소를 넘기는 조건으로 본맹에 협조를 구한 것이 사실이냐 물었습니다.”
“아미타불. 사실입니다 남궁시주.”
“십대기보, 십대기보라. 그렇다면 그 빌어먹을 괴룡 사신혁이라는 놈도 분명히 모습을 드러낼 테지요?”
괴룡 사신혁이 찬황지존위군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된 결정적인 사건. 그것은 황궁의 황위쟁탈전 때문이었고 그 사건으로 인하여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누가 뭐래도 남궁세가였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괴룡이 십대기보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남궁시주의 말씀대로 그가 나타날 가능성도 매우 높겠지요.”
“남궁세가의 가주로서 선언하겠습니다.”
더 이상 들을 필요를 못 느꼈는지 남궁자평이 마치 씹어뱉듯이 말했다.
“본맹이 무슨 결정을 내리든 간에 남궁은 섬서로 갈 것입니다. 설령 구사도맹의 제안을 거절하는 결정이 내려져도 말입니다.”
“맹주님, 빈도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명진진인.”
“십대기보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아니 이미 강호에 퍼졌을 수도 있겠지요. 정과 사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무사들이 섬서로 몰려들 것입니다. 거기에 나타나기만 하면 폭풍을 몰고 다니는 괴룡까지 오겠지요.”
“아미타불…….”
조용히 눈을 감고 불호를 읊는 공정대사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두 개의 세력으로 쪼개져서 전쟁을 벌이는 사파에 정도맹이 끼어들고 그 와중에 괴룡이 나타나 십대기보를 노릴 것이며 거기에 더해 수도 없이 많은 강호의 낭인무사들과 중소방파의 무인들이 나서서 드잡이질하는 상황이 모두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맹주님. 추후에 벌어질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확실히 정해야 할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사파의 내전이 문제가 아니라 강호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본맹은 반드시 섬서로 전력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으음, 그건 화산 장문인의 말씀이 맞는것 같소.”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단혼소도 중요하지만 일단 강호의 혼란은 방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물론이지요. 단혼소는 물론이고 강호의 안녕을 위해서도 본맹이 발 벗고 나서야겠지요.”
여기저기서 명진진인의 의견에 동조하는 뜻을 표명하고 나섰다. 일이 이렇게 되면 다수결은 해보나 마나였다.
“허면,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누가 단혼소를 보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는군요.”
명진진인이 조심스럽게 속내를 드러내며 좌중의 분위기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무량수불,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도의 악적들을 가장 많이 처단한 곳, 혹은 신사도맹의 수괴인 주룡의 목을 벤 문파에서 단혼소를 소유하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초절정고수급 혹은 그 이상으로 평가받는 주룡의 목을 벤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정도맹의 총 전력이 투입되는 전장이라면 모두가 충분히 기회를 노려볼 만하였다.
“좋습니다. 화산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곤륜도 동의합니다.”
한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는 와중에 싸워봐야 답도 나오지 않는 의견대립을 하느니 어느 정도 공평한 화산장문인의 뜻에 모두가 동의를 표했고,
“종남 역시 동의합니다.”
화산파의 악우이자 호적수인 종남 장문인 호연각마저 동의하며 단혼소의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럼 남은 것은 괴룡 사신혁 시주에 관한 일입니다.”
공정대사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게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문제였다. 괴룡 사신혁. 그의 행적을 돌아보자면 능히 대협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문제는 평소에 대협의 풍모를 보이며 약자를 돕던 사신혁이 단 한 가지 타협이 불가능한 것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십대기보였다는 것이다.
“음……. 사신혁. 어렵지요. 이 거지는 솔직히 모르겠소이다. 정도맹이 과연 그를 적대할 이유와 여력이 있는지 모르겠소. 정말 모르겠소.”
“그건 신개의 말씀이 맞군요. 그러나 본맹에서 그에게 십대기보를 양보할 이유 또한 없겠지요.”
공동파의 장문인 벽력신검(霹靂神劍) 순우일이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항룡신개의 뜻을 반박하며 나섰다.
“후후후후.”
남궁자평이 자조 섞인 웃음과 함께 좌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참으로 우습군요.”
“무슨 말이오 남궁가주?”
“언제부터 한낱 이민족 따위가 본맹의 보물을 노릴 수 있었단 말입니까?”
남궁자평이 서늘한 눈으로 항룡신개를 노려보며 말했다.
“남궁이 비록 구파일방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오대세가의 수좌로서 강호를 위해 희생해왔습니다. 헌데 같은 정도맹의 협객들께서 본가에 큰 피해를 준 이방인의 눈치를 보며 보물까지 내놓을 생각을 하십니까?”
“남궁가주. 말이 조금 심한 것 같소. 맹주님의 앞이오.”
청성의 장문인이 좋은 말로 남궁자평을 타일렀으나 오히려 그것이 남궁자평을 더욱 자극하였다.
“심하다? 제 말이 어디가 잘못되었습니까? 대체 언제부터 본맹이…….”
“그만.”
남궁자평이 막 불만을 쏟아내려는 찰나, 그를 막은 것은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무당의 장문인 청현진인이었다. 소림과 쌍벽을 이루는 무당 장문인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남궁자평조차 말을 멈췄다.
“남궁시주. 그대의 말은 틀리지 않았소. 정도맹은 의로써 협을 행하기 위해 모인 정파의 연합이지요. 하니 무당에서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무슨……?”
“무당은, 구사도맹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또한 십대기보 역시 포기하겠습니다.”
청현진인의 전혀 예상치 못한 선언에 모두가 말문이 막혔다.
“허, 허면 무당은 정도맹의 행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화산의 명진진인이 믿기 어려운 얼굴로 물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정도맹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도문의 장문인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려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무당은 강호의 안전을 우선하겠습니다. 도문의 가르침대로 앞으로 벌어질 큰 싸움에서 양민들을 보호하고 십대기보에 눈이 먼 무인들이 정도맹과 사도맹의 싸움에 휩쓸리지 않도록 통제하겠습니다.”
이는 십대기보와 문파의 명예는 깔끔하게 포기한다는 의미였고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리고 정도맹에 속한 문파 중 몇몇 문파가 반드시 해줘야 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무량수불, 곤륜은 무당 장문인과 함께 하겠습니다.”
“아미타불, 아미 또한 무당 장문인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청성 역시 무당을 돕겠습니다.”
놀랍게도 무려 3개의 문파가 이번 전쟁에서 명예와 공적을 포기하겠다 선언하였다. 이번 일이 잘만 마무리된다면 각 문파에서 세운 공적대로 그 이득을 배분하고 추후 강호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 명약관화한데도 그 영광을 포기하는 문파가 무려 4개나 나온 것이었다.
“여러분들의 뜻을 알겠습니다. 정도맹의 맹주로서 그 협의를 존중하겠습니다. 아미타불.”
“으음……. 그렇다면 화산 역시 모범을 보여야겠지요.”
정파무림의 삼대 세력이라 불리는 소림, 무당, 화산이었으나 세인들의 평가는 소림과 무당에 비해서 화산이 반수 정도는 뒤진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기에 화산은 실적과 명성에 연연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무당이 이런 좋은 기회를 포기하겠다고?
“빈도는 화산의 문도들과 함께 선봉에 서겠다고 하였습니다. 허나, 단순히 공적만을 논하여 선봉에 서겠다 한 것이 아닙니다. 빈도는 이번 사도맹의 전쟁에 막내 사제인 화산제일검, 매화일검(梅花一劍) 명검도장을 선봉에 세우겠습니다.”
“저희도 화산을 돕겠습니다.”
무당, 곤륜, 아미, 청성을 제외한 나머지 문파들은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무량수불. 과연 유신 사제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구나.’
청현진인의 입가에는 시원스러운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