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사도일통 (11)
“나를 불렀소?”
굉뢰권갑(宏雷拳甲)을 착용한 주먹을 슬쩍 들어 올리며 초사헌이 신혁에게 걸음을 옮겼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에 담긴 것은 신혁의 오만함에 분노한 초사헌의 패기였다.
“예.”
일반인은 감히 마주하지도 못할 정도의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는 초사헌을 앞에 두고도 신혁의 모습은 태연자약 그 자체였다.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이오?”
공오대사와 달리 초사헌의 말투는 공손하지 않았다. 기습적으로 정파와 연합하여 신사도맹의 숨통을 끊어놓기 직전에 난입하여 전장을 소강상태로 만들어버린 신혁에 대한 반감도 컸지만, 무엇보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무소불위의 권세와 드높은 명예를 가지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고, 적성 사이오닉 에너지 반응 체크.]오페라의 경고음과 함께 적대적인 사이오닉 에너지를 풍기는 초사헌이 CEC에 록 온 되었다.
“생각보다 호전적이십니다.”
“무슨 말이오?”
“이거 참, 저도 긴장되잖아요. 그렇게 암암리에 공력을 모으시면요.”
신혁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초사헌의 귓가에 속삭였다.
“신사적으로 대화부터 좀 나누려고 하는데, 별로 마음에 안 드십니까?”
절정고수만 넘어서도 3장 이내의 거리는 그야말로 지척으로 여겨질 정도의 짧은 거리다. 하물며 몸과 몸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상대가 다가왔다면 그건 이미 목을 내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화경의 고수라면 말이다.
‘내 목이 붙어있나 의심이 될 정도군.’
초사헌은 눈앞의 사신혁에게서 아무런 기세도 읽어내지 못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였다. 상대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거나, 기척도 읽어낼 수 없는 높은 차원의 초고수이거나. 신혁의 경우에는 두 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았으나, 그 사실을 알 수 없는 초사헌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괴룡은 현경에 도달한 무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니, 현경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 내공을 은밀하게 갈무리할 수 있는 특수한 무공을 익힌 거겠지.’
초사헌 역시 자존심 높은 중원의 무림인이었기에, 중원인이 아닌 신혁이 현경이라는 지고한 경지를 개척했을 거라는 가정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아니오. 한창 전투 중에 몸이 달아올라 나도 모르게 공력을 운기했던 것 같소. 실례했소이다.”
적잖이 당황한 초사헌이었지만 겉으로는 침착한 신색을 유지하며 신혁에게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무공이 고강한 분이시니 제가 공오스님이라는 분과 나눈 이야기는 모두 들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소.”
“어떻게 하실 겁니까?”
“무엇을 말이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막으실 건지 물었습니다.”
“그건…….”
초사헌의 성질 같아서는 당장에 주먹부터 휘두르고 싶었다. 신혁이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십대기보의 회수도 포함되는 것인데 그 말은 지금 손에 차고 있는 굉뢰권갑을 풀어서 바치라는 말이지 않은가.
‘머리를 쓰는 것은 나보다 철극진이 한 수 위다. 여기서는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옳다.’
시시각각 변하는 머릿속의 생각처럼 꿈틀거리는 초사헌의 얼굴을 빤히 보던 신혁이 피식하고 웃으며 초사헌에게 말했다.
“조금 전의 스님처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신 거 같군요.”
“그렇소.”
“잠시 후에 다시 이야기하시죠. 어차피 신사도맹 측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니까요.”
“알겠소.”
공오대사와 초사헌이 신혁과 대화 후에 물러서는 것을 확인한 주소천이 신혁에게 가려 할 때, 하오문주 사공자청이 주소천을 불렀다.
“맹주님.”
“네?”
“사신혁 대협의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놓으신 게 있으십니까?”
“예, 다른 문주님들의 생각도 들어봐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답을 정했어요.”
신사도맹은 구사도맹처럼 맹주에게 막강한 권한이 집중되어 있지는 않았다. 새로 신설된 조직이기도 했고,주소천의 성정이 군림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 큰 이유였다. 그렇기에 주소천의 생각만으로 신사도맹 전체를 움직일 순 없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사신혁 대협의 말에 따라야죠. 가장 우선 되어야 하는 건 십대기보도 명예도 아니에요. 중요한 건 신사도맹의 생존이에요.”
구사도맹과 정도맹의 연합을 상대해야 하는 마당에 사신혁마저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아니, 여기서 사신혁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면 어쩌면 신사도맹은 이 자리에서 끝장이 날 수도 있었다.
“훌륭한 판단입니다 맹주님. 제 생각도 맹주님과 같습니다. 또한 다른 문주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행이네요.”
“예, 당당하게 신사도맹의 뜻을 전하고 오십시오.”
“네!”
주소천이 발걸음도 가볍게 신혁에게 향했고, 사공자청이 신뢰가 가득한 눈빛으로 주소천을 배웅하였다.
“또 뵙네요 대협.”
“그렇군요. 잘 지내셨습니까?”
생긋 웃는 주소천을 신혁이 반갑게 맞이하였다. 황궁의 황위쟁탈전과 마교를 탈출할 때 큰 도움을 주소천이었기에 신혁이 그녀를 맞이하는 태도는 정도맹과 구사도맹의 인물들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네, 덕분에요.”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난 사신혁으로 인하여 주소천의 신사도맹은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주소천은 신혁이 미처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신사도맹의 맹주로서 사신혁 대협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주소천의 말에 구사도맹과 정도맹이 술렁였다. 사신혁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는 예상은 하였지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수락할 줄은 몰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그녀의 대답으로 인하여 시간이 매우 촉박해졌다.
“신사도맹이 구사도맹을 통합한다면 굉뢰권갑은 물론이고 다른 십대기보 역시 신혁 대협께 넘기겠어요.”
“감사합니다.”
“역적을 잡으러 오셨다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신사도맹의 인원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하셔도 좋고, 취조를 하셔도 좋아요.”
신혁에게 배운 방법으로 신사도맹의 주요인물 중에는 사신문의 흔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주소천이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정도맹과 구사도맹이 보기에는 그것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사신혁을 끌어들이기 위한 주소천의 술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알겠습니다. 이제 결론이 났군요.”
주소천과도 간략하게 대화를 마친 신혁이 정도맹과 구사도맹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맹주님.”
철극진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초사헌에게 말했다.
“사신혁의 제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흑룡문주 조양언까지 철극진의 의견에 동의하며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초사헌 역시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였지만, 맘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본좌도 그렇게 생각하오. 다만, 여기서 사신혁의 제안을 거절한다는 것은…….”
초사헌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황궁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오.”
아무리 관과 무림이 불가침 관계라고 하지만 작정하고 관에서 무림에 손을 대자고 맘을 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사소하게는 구사도맹이 운영하는 사업체부터 하나하나 트집을 잡고 늘어진다거나, 원의 잔당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무사들을 차출할 수도 있었다.
“맹주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 일입니다. 지금 정도맹과 손을 잡고 신사도맹을 멸하지 못한다면 결국에 죽는 것은 우리입니다. 이번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사신혁을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흑룡문주 조양언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황궁의 견제는 나중 일이었고, 추후에 정도맹의 협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흑룡문주의 말이 옳습니다. 정도맹의 손을 빌릴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유일합니다. 만약 우리가 여기서 물러선다면 결국 신사도맹에 죽거나 항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저도 철극진 부맹주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모든 것을 잃을 마당에 나중 일을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좋소, 두 사람의 말이 옳소이다. 황궁의 일은 나중 일이라 생각하겠소. 그러나 만약에 말이오.”
초사헌이 고개를 돌려 갑론을박 중인 정도맹의 수뇌부들을 눈짓하였다.
“정도맹이 사신혁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어찌 될 것 같소? 우리는 그나마 후퇴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게 될 텐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맹주님.”
철극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고, 초사헌에게 확언하였다.
“정도맹은 결코 사신혁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요.”
* * *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결정을 내려야 됩니다.”
소림의 방장이자 정도맹의 맹주인 공정대사를 대신하여 이곳에 도착할 때만 해도 공오대사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정도맹을 이끌고 사파의 세력을 꺾어 소림의 명성을 더욱 드높일 자신이 있었다.
“아미타불…….”
허나 대의명분을 가진 괴룡이 나타나 의견을 묻자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지금은 자중해야 한다. 모든 책임은 소림이 질 테니, 섣불리 나설 필요가 없지.’
정도맹의 수뇌부들이 공정대사를 향한 무언의 압박이 점점 더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다.
‘방장 사형. 사형이 무림맹에 한 번씩 다녀올 때마다 10년은 늙어 보이던 이유가 있었구려.’
“소승은…….”
눈을 감고 염주만 굴리던 공오대사의 말문이 어렵게 트였다.
“사신혁 시주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대사! 그것은 아니 될 말이외다.”
“맞습니다. 사도맹을 반토막 낼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이런 기회를 저버리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주십시오.”
지금까지 입을 꾹 다물고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자들이 공오대사가 어렵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자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공오대사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다.
“허나 사신혁, 그 천하의 괴룡이 신 사도맹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괴룡의 행보를 떠올려 보십시오. 이건 정사대전이 아닙니다. 사도맹의 내전일 뿐입니다. 왜 우리가 저들의 내전에 끼어들어 피를 흘려야 합니까.”
공오대사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조금 전, 정확히는 사신혁이 출현하기 전만 하더라도 사마를 척결하기 위해서 약간의 희생은 웃으며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명분을 업고 나타난 괴룡을 실제로 마주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매산곡에서 벌어진 주룡과의 전투는 마치 자연재해를 보는 듯했다더라.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연왕 주체의 수만 병사들이 사신혁 한 명에게 막혔다더라.
괴룡 사신혁. 그의 행적을 소문으로 들었을 때는 그냥 웃어 넘길만한 말들이었다. 또 강호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많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가 나타날 때 허공에서 뿌린 단 3발의 암기. 그 무시무시한 파괴력. 땅이 뒤집히는 폭발력을 눈앞에서 생생히 보고 나니, 결코 소문이 과장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아무도 공오대사의 의견에 반대하지 못할 때, 누군가가 나서며 공오대사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닙니다. 어찌 희생이 두려워 사마의 척결을 미룰 수 있습니까.”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자는 화산의 장문인 명진진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