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사도일통 (16)
신혁의 음성이 정도맹 무사들의 귓가에 울려퍼졌다.
“이, 이길 수 있을까?”
“일인군단(一人軍團). 괴룡 앞에 숫자는 무용하다는 말이 사실일 줄이야…….”
“사실 사파의 전쟁에 우리가 피를 흘릴 이유가 없지 않소!”
신혁의 항복 권고에 정도맹 무인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괴룡과 맞수를 이룰 수 있는 명검진인의 패배가 결정적이었다. 마교와 사파의 고수들을 모두 꺾은 사신혁을 화산제일검이자 정파가 자랑하는 화경의 고수인 명검진인이 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무너졌다.
“항복……? 항복이라고? 네놈의 눈에는 정도맹이 그토록 우습게 보이는가!”
정파의 무인들이 괴룡의 기세에 눌려있을 때, 누군가의 비통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치욕은 한 번으로 족하다!”
남궁자평이 검집을 집어던지고서는 사신혁을 향해 몸을 날렸고, 남궁세가의 창궁검수들 또한 남궁자평의 뒤를 따랐다.
“그래, 남궁세가. 아직도 반성하지 않았단 말이지.”
파아아아앗!
어느새 신혁에게 돌아온 용신주가 그의 주변을 돌며 푸른빛을 뿜어냈다. 괴룡의 상징. 사신혁의 독문무공으로 강호에 알려진 어주술(馭珠術)의 발현이었다.
“헬라이팅.”
[헬라이팅(Hell lighting) 레디.]태양과 같은 거대한 화염의 불덩어리가 신혁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찬황지존위군의 이름으로 대명제국의 호족 남궁세가를 벌하겠다.”
[Fire.]신혁의 손가락이 용신주에 막혀있는 남궁세가의 무사들을 향했고, 태양이 지상에 떨어진 것과 같은 모습으로 헬라이팅의 불덩어리가 남궁세가를 덮쳤다.
“사신혀어어어억!”
푸화아아아아악!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잿더미조차 없었다. 원독에 찬 남궁자평의 울부짖은 목소리만이 메아리가 되어 장내를 메웠다.
“경고는 여기까지입니다. 남궁세가의 행동은 결코 용기가 아니었습니다.”
신혁이 신형이 천천히 상승하며 공중에 멈췄다.
“계속하시겠습니까?”
신혁의 엄청난 신위에 모두가 말문이 막혔다.
‘명검사제, 저런 괴물을 혼자서 잡아두고 있었단 말인가.’
거의 주화입마에 이를 만큼 기혈이 들끓는 명검진인의 상태를 확인한 명진진인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화산의 장문인으로서 맹주 대행께 청하오.”
정도맹의 모든 무인들이 명진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오. 이쯤에서 괴룡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바라오.”
눈을 질끈 감은 명진진인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선봉에서 함께 싸운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지금, 목숨을 건져 항복을 이야기하는 명진진인의 속이 오죽하겠는가 싶었다.
“이 거지도 화산 장문인의 말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잘못 판단했습니다. 명검진인께서 부족하셨던 게 아닙니다. 괴룡이 너무 강했습니다. 무당의 태극검제나 무림맹주께서 이 자리에 계셨다면 모르겠으나, 지금은 역부족입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괴룡의 무위를 봤을 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도맹의 처참한 패배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한숨과 함께 불호를 외우며 마음을 가다듬은 공오대사가 말을 이었다.
“여러 명숙들의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정도맹은 사도맹의 싸움에 손을 떼고 후퇴하겠습니다.”
* * *
“너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비웃음도 오만함도 없었다. 담담하게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차분한 말투였다.
광풍혈랑대의 주인, 질풍마창(疾風磨槍) 철극진. 그가 창을 크게 휘둘러 창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옆구리가 길게 찢어진 신사도맹의 부맹주 일수번천(一手藩天) 사도진악에게 건넨 말이었다.
“주룡(朱龍) 주소천. 정말 대단해. 그녀라면 십 년 안에 강호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충성을 맹세하고 싶을 정도의 놀라운 무재야.”
굉뢰권갑을 사용하는 구사도맹의 맹주, 태양무제(太陽武帝) 초사헌에게 한 자루의 창을 들고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주소천을 일별한 철극진이 말을 이었다.
“병력의 수에서 앞서고, 우두머리의 자질 또한 뒤지지 않는다. 사파를 일통하려던 너희의 계략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다만.”
철극진의 창이 허공을 가르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도진악의 심장을 노리며 찔러졌다.
“크윽!”
사도진악이 가까스로 몸을 틀어 철극진의 창을 피했지만, 그의 창은 또다시 사도진악의 어깨살을 한 움큼 찢어놓고 회수되었다.
“맹주를 보필하는 이인자의 격이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다. 오늘 신사도맹이 무릎을 꿇는다면, 그것은 네놈의 부족함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아직 나는 패하지 않았다.”
사도진악이 숨을 몰아쉬며 다시금 양손을 펼쳐 칠환번천장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래, 그건 네 말이 맞지.”
철극진이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괴룡이 정도맹을 막고 있는 지금 신사도맹이 구사도맹의 수를 압도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될 것 같은가?”
“그건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옆구리의 상처를 어느 정도 지혈시킨 사도진악이 크게 양손을 떨쳤다.
칠환번천장(七換藩天掌) 제5초.
일수풍운(一手風雲).
사도진악의 일수에 공기가 요동치며 구름을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사납게 휘몰아쳤다.
“느려.”
젖 먹던 힘을 다해 펼친 사도진악의 칠환번천장이 철극진의 찌르기 한 번에 거짓말처럼 파훼되었다.
“너와 나의 차이는 화경을 경험한 시간의 차이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익힌 무공의 완성도다.”
사도진악의 칠환번천장(七換藩天掌)은 사파를 대표하는 장법이었다. 특이하게도 환(幻)의 묘리와 강(剛)의 묘리가 공존하는 상승무공이었다.
칠환번천장의 단점 아닌 단점은 속도가 강호의 다른 장법에 비하여 특별히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그 단점은 무공을 시전하는 사도진악이 화경의 경지에 오름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다.
“칠환번천장, 훌륭한 장법이지. 그러나 결코 절세의 무공은 아니다.”
아니, 해결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철극진의 말에 사도진악의 얼굴이 일그러졌었다. 그 역시 확신할 순 없었지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바로 칠환번천장의 한계를 말이다.
“칠환번천장은 화경의 깨달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무공이다.”
사도진악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화경에 이른 고수와 생사결을 벌여본 적이 없기에, 사도진악은 자신의 무공이 증진하면서 칠환번천장의 단점이 보완되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준비하시는 한 수가 사도진악 대협의 최고 절초입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게 전력이라면 맹주님은 저의 적수가 되지 못하십니다.
주소천과의 비무에서 그녀가 했던말이 사도진악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그런 뜻이었구나. 주소천 맹주가 내게 한 말은 그런 뜻이었어.”
주소천의 근본은 주술이다. 그렇기에 사신혁과 유신같은 강자들을 보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과 사도진악이 사용하는 무공의 차이점을 알 수는 있었지만 정확하게 어떤 차이가 있는지 꼭 짚어서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주룡이 묶여있는 지금, 나를 막을 수 있는 네가 죽는 순간 신사도맹의 수뇌부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내 손에 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오호풍마창법(悟豪風魔槍法).
풍뢰강격(風雷剛激).
철극진의 독문절기가 펼쳐졌고, 빠르고 강하게 휘몰아치는 우레의 폭풍처럼 그의 창이 사도진악의 장막(掌幕)을 찢어버리고 두 팔에 긴 상흔을 남겼다.
“크으으윽!”
사도진악의 얼굴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더 이상 팔을 들어 올릴 수조차 없었다.
“끝이다.”
철극진이 잔인한 얼굴로 창을 들어 사도진악의 심장을 겨눴다.
천혼강림(天魂降臨)의 금주술(禁呪術).
현신(現神) 투전승불(鬪戰勝佛) 손행자(孫行者).
꽈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전장에 있던 모두가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출 정도의 굉음이었다. 철극진의 눈이 놀라움으로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초사헌 궁주가……?”
팽팽한 대결을 벌이고 있던 주소천의 눈이 금빛으로 변하는 순간 그녀가 휘두르던 창이 여의봉으로 변하며 초사헌을 강타했고, 굉뢰권갑을 들어 두텁게 방어를 굳힌 초사헌의 신형이 굉음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죽어라!”
주소천의 무지막지한 신위에 놀란 것은 사실이었지만, 과연 화경의 고수답게 빠르게 감정을 추스른 철극진이 그대로 사도진악의 심장을 향해 힘차게 창을 뻗었다.
까아아앙!
“큭!”
사도진악을 향해 나아가던 철극진의 강철의 창이 무언가에 강타당하며 땅에 꽂혔다.
“주소천?!”
어느새 철극진의 앞에 여의봉을 어깨에 걸친 주소천이 악동 같은 얼굴로 이죽거렸다.
“겨우, 그따위 실력으로 잘난 듯이 지껄인 것이냐 애송아?”
“마, 말도 안 돼. 50장이 넘는 거리를 한순간에 뛰어넘었다고?”
축지에 가까운 주소천의 경공술에 철극진이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당황하였다.
“쯧, 현세에 강림해도 사신혁이라는 놈만큼 재밌는 녀석을 찾을 수는 없구나.”
주소천이 파리를 쫓듯이 여의봉을 가볍게 휘둘렀다.
까앙!
“으윽!”
주소천의 느리고 가벼운 공격을 창을들어 방어한 철극진의 손아귀가 찢어지며 피가 튀었다. 불가사의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정말 저게 주소천이 맞단 말인가? 이게 인간의 힘이 맞는가 싶은 근본적인 의문이 들 정도였다.
“죽어라!”
다시 한번 느릿하게 휘둘러지는 주소천의 여의봉을 피한 철극진이 전 공력을 끌어올려 폭이 넉 자에 이르는 창강으로 주소천의 심장을 찔렀다.
“이, 이럴 수가?!”
말 그대로 흠집도 나지 않았다. 주소천의 옷가지는 찢어졌으나, 살짝 드러난 그녀의 피부에 닿은 철극진의 창이 작은 생채기조차 내지 못하고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창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아, 안돼!”
주소천이 손을 뻗어 철극진의 창을 잡았고, 섬찟한 미소와 함께 여의봉을 들어 올렸다.
“잘 가라 애송아. 염라를 만나거든 안부도 좀 전해주고.”
퍼어어엉!
주소천이 막 철극진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려는 순간, 강렬한 빛이 주소천을 강타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허억, 허억.”
그리고 폭발로 인한 먼지구름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초사헌이 철극진의 옆에 섰다.
“아무리 주룡이라도 본좌의 전력을 다한 태양무극권(太陽武極拳)을 무방비로 맞았으니 결코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권공의 파괴력만으로 따지면 능히 강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초사헌 궁주의 성명절기인 태양무극권이었다. 그 강력한 무공이 굉뢰권갑의 힘을 빌어 더욱더 증폭되었으니 그 위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주소천이 들고 있던 철극진의 창이 먼지구름을 뚫고 초사헌의 발치에 꽂혔다.
“그래. 두 놈이 덤비면 좀 재미있을 것 같구나.”
“태양무극권에 직격당하고도 멀쩡하다고?!”
어느새 주소천의 옷차림이 달라져 있었다. 하늘하늘한 무복에서 천계를 호령하던 제천대성 손오공의 용포를 걸친 주소천이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낄낄낄, 현아진이라는 괴물의 화염구에도 멀쩡했는데, 겨우 그 정도로 이 몸에 흠집 하나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초사헌과 철극진의 눈에 절망이 어렸다. 한편, 이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으니.
“적의령주님.”
“말씀하시오 백의…… 아니, 혼원신교주.”
“제가 사신혁을 맡겠습니다. 주소천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