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혼원신교 (3)
“철극진.”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초사헌의 시선이 철극진을 향했다.
“아니, 철극진으로 살아야만 했던 이름 모를 사신문의 무사여.”
탄식과도 같이 입을 땐 초사헌이 십 년은 늙은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후회는 없는가?”
“큭큭큭……. 후회? 없을 리가 있나?”
사신혁에 의해 파괴된 단전으로 내공을 모두 잃은 남자는 철극진의 모습을 위장하고 있을 때와는 다르게 직설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조금 더 치밀하게 할걸, 조금만 더 신중할걸. 공을 세우려는 마음을 조금만 누르고 본문의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게 다인가?”
“왜? 내가 사과라도 하길 바라나? 이화태양궁과 너를 이용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그러기엔 당신이나 나나 너무 강호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나.”
남자는 초사헌의 속을 긁으며 이죽거렸다. 아무리 사신문이 신비한 문파라지만 완벽하게 박살이 난 단전을 복구시키지는 못한다. 철극진을 연기하며 화경에 이른 무공을 잃은 참담함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비정강호. 그 무서운 강호의 생리를 내가 모를 리가 있겠나.”
콰르르르릉!
초사헌의 마음을 대변해주듯이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번개가 치고 굵직한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크크크크, 그래. 하지만 너무 날 원망하지 말라고 궁주. 당신은 조금 빨랐을 뿐이야. 어차피 강호는 사신문의 손에 사라진다.”
“그게 마지막 유언인가?”
“뭐?”
“주소천 맹주가 이렇게 말하더군.”
초사헌이 주소천을 맹주로 칭했다. 그것도 철극진이었던 남자의 앞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와 이화태양궁은 여기서 빠져도 좋다고. 그러나 그 어린 맹주는 사도맹을 지키겠다고 하더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누가 진정 사도맹을 이끄는 게 맞을지 그 한마디로 답을 내릴 수 있었다네.”
“으하하하하하. 천하의 초사헌이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아이의 개가 되겠다는 것이냐?”
남자가 단전이 파괴된 고통도 잊었는지 앙천대소하며 큰 소리로 초사헌을 비웃었다.
“그래, 견마지로를 바쳐서 내 죄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네. 이름 모를 사신문의 무사여, 그대는 철극진이라는 이름으로 죽을 자격이 없네.”
“무슨 소리냐?”
“이만, 가시게. 맹우들의 위기를 더는 좌시할 수 없구만.”
“자, 잠……까…….”
촤아아악!
어느새 초사헌의 오른손에는 옅은 수강이 생성되어있었고, 깔끔하게 남자의 목을 베어냈다.
“이화태양궁의 무사들은 본 궁주의 명을 받들라!”
“충(忠)!”
초사헌의 사자후가 쩌렁쩌렁하게 전장에 울려 퍼졌고, 이화태양궁도들이 복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숨을 아끼지 말고 사도맹을 위해 싸워라. 우리가 해쳤던 형제들의 목숨값을 갚아야 한다.”
“궁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주소천에게 패배하여 잡혀있던 초사헌이 드디어 마음을 정했고, 궁주의 결정만을 기다리던 궁도들의 망설임을 없애 주었다. 한편 광풍혈랑대 역시, 철극진이 가짜였다는 사실에 충격과 혼란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광풍혈랑대여, 이 못난 초사헌의 맹우여. 나와 함께 억울하게 사신문에 이용당하고 죽은 철극진의 복수를 하지 않겠는가! 우리를 기만한 원흉들을 없애지 않겠는가!”
“함께하겠습니다 궁주님.”
전장의 공기가 달라졌다. 혼원신교의 비전을 얻어 급격하게 내공이 늘어난 낭인무사 하나가 거침없이 사혼교의 무사를 몰아치고 있었다. 아무리 낭인무사의 내공이 증폭되었다곤 하나 기본적인 초식의 이해도와 깨달음의 차이 등을 고려할 때, 낭인 무사는 사혼교의 무사보다 격이 떨어졌다. 하지만, 사도맹과의 내전에서 체력과 공력을 극한까지 소모한 사혼교 무사는 낭인무사에게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크크크크, 사혼교의 잡졸들은 무공보다 사술 같은 걸 연마하니 약하지.”
기본적으로 정도맹이나 사도맹에 속한 명문은 강호 전체의 무사들 중 1푼도 안 되는 극소수의 천재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그 무리에 적을 두지 못한 수많은 무림인들은 그들을 부러워하고 존경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시기심과 질투심 또한 가지고 있었다.
“이익……!”
낭인무사의 모욕에 사혼교 무사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러나 혼원신교의 비전으로 강해진 이제 막 전투를 시작한 낭인무사를 악전고투를 거쳐 모든 힘을 소모한 사혼교 무사가 당해낼 수 없었다.
“잘 가시오 사혼교도 나으리.”
사혼교 무사가 억울함에 두 눈을 부릅뜨고 낭인무사를 똑똑히 바라보았다. 비록 여기서 죽지만 결코 너 따위에게 겁먹은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 내가 겨우 이따위 녀석한테…….’
섬뜩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낭인무사의 거칠기 그지없는 박도가 지치고 지친 사혼교도의 목을 향해 내리쳐졌다.
“끄아아악!”
막 사혼교 무사의 목을 잘라내려던 낭인무사의 몸에 양강의 기운을 가득 담은 권기가 적중되었고 뜨거운 열기와 충격에 낭인무사가 비명을 질렀다.
“애송아, 너 따위가 넘볼 수 있는 사도맹이 아니다.”
낭인무사의 목이 떨어지고 차가운 표정의 핏빛 늑대 같은 무사가 환도에 묻은 피를 떨쳐내었다. 바로 광풍혈랑대의 무사들이었다.
“늦어서 미안하오 사도의 형제들이여. 우리가 지은 죄는 목숨을 던져 갚겠소.”
전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숫자와 체력에서 밀리던 사도맹과 낭인무사들의 싸움에 이화태양궁의 무사들과 광풍혈랑대의 무사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몸을 아끼지 않는 그들의 투혼에 사신문의 고수들마저 순간적으로 당황할 정도였다.
“격의 차이를 보여주어라. 감히 낭인 주제에 사도맹에게 이빨을 보이다니. 모조리 쓸어버렷!”
“광풍혈랑대에 뒤지지 마라. 초사헌 궁주님의 명을 기억해라!”
과연 사도맹의 사도팔문 중에서도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이화태양궁과 광풍혈랑대는 무서웠다. 죽기 전에 가장 밝게 빛나는 유성처럼 이화태양궁의 열양공이 낭인무사들을 몰아붙였고, 피를 몰고 다니는 사막의 폭풍처럼 광풍혈랑대의 무사들이 종횡무진 전장을 누비며 빠르게 적의 연결 부분만을 부수고 다녔다.
“조금만, 조금만 버터라! 하오문은 암기로 아군을 엄호하고 부상 당한 형제들을 후송하라!”
전황을 살피던 하오문주 사공자청이 최전선으로 몸을 날리면서,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명령을 내렸다.
“당주급 이상의 무인들은 혼원신교의 고수들을 막아야 합니다.”
“알겠소.”
“좋소이다!”
사도팔문의 수뇌부들이 최전선에 나서자 사도맹의 무인들이 더욱더 용기백배하여 칼을 휘둘렀고, 압도적으로 밀리던 전장의 균형이 일시적으로 맞춰졌다.
“끄으아아악!”
지금까지 그 어떤 공격을 당해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한 명이라도 더 길동무로 삼으려 했던 혼원신교 절정고수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불에 탄 채로 숨을 거두었다. 이 끔찍한 광경을 연출한 자는 바로 초사헌이었다.
“한 놈도 남김없이 잿더미로 만들어주겠다.”
혼원신교 무사의 목을 잡고 산채로 불태워 죽인 초사헌이 섬뜩한 안광으로 적들을 노려보았다. 한계까지 소모된 내공은 3할도 회복되지 않았고, 무적의 힘을 보여주었던 굉뢰권갑마저 없었지만 초사헌은 강했다. 마치 지친 호랑이가 이리떼들 사이에서 날뛰는 것 같았다.
“하아아아앗!”
초사헌의 태양무극권이 본격적으로 펼쳐지자, 그 뜨거운 열기에 적의 전의는 불에 탄 초처럼 녹아들었고, 아군의 사기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초사헌의 등장으로 적의 사기가 눈에 띄게 꺾였고, 한 명의 절대고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겁먹지 마라, 초사헌은 지쳤다. 혼원신교의 무사들은 초사헌의 손을 묶어라.”
“존명!”
혼원신교에서 10명의 절정고수가 초사헌 한 명을 노리고 쇄도하였다. 그들의 의도는 명백했다. 현재 사도맹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초사헌을 소수로 묶어두고 압도적인 물량으로 다시 한번 전장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
“차앗!”
“멈춰라, 초사헌!”
만약 혼원신교의 절정고수가 혼자였으면 감히 초사헌과 눈도 마주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초사헌은 지쳐있었고, 평소 실력의 3할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쪽은 10명의 절정고수들이 협공을 하는 상황. 이 정도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꺼져라.”
칠환번천장(七換藩天掌) 제5초.
일수풍운(一手風雲).
철극진과의 대결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한 사도진악이 임시방편으로 몸에 붕대를 감고 전장에 등장하여 초사헌을 노리고 달려들던 10명의 절정고수를 일수에 날려버렸다.
“크윽!”
사도진악 역시 초사헌 못지않게 체력과 내공이 소모된 상태였기에 상대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한 듯했다. 초사헌과 사도진악의 자존심이 상했다. 화경에 경지에 이른 뒤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좌절감과 답답함이 그들을 옥죄어갔다.
“초사헌 궁주님, 사도진악 부맹주님.”
그때, 하오문주가 나타나 둘을 불렀다.
“공력을 아끼셔야 합니다.”
“무슨 말이오? 내가 여기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몸을 아끼지 않을 것이오.”
초사헌의 눈썹이 올라갔다.
“국지전에서 승리한들 대국에서 패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공자청이 다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으며 자신의 전략을 담담히 설명하였다.
“불리한 전황이 두 분이 가세하여 팽팽한 백중세가 되었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어쩌면 큰 피해를 보더라도 우리가 이길 수도 있을 겁니다.”
“피해가 두려워 몸을 사리란 말이오?”
“아닙니다. 저 두 곳을 보십시오.”
사공자청의 말에 초사헌과 사도진악의 시선이 사신혁과 주소천에게 향했다.
“괴룡과 맹주님이 적의 최고수 두 명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공이 일천하여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화경에 이른 초사헌과 사도진악이 보았을 때, 괴룡과 혼원신교 교주의 대결은 백중세였다. 사신혁은 홀로 정도맹을 막아내며 많은 힘을 썼는지 그의 상징과도 같은 어주술을 사용하지 않고 검술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편 주소천과 적의령주의 대결은 그야말로 용호상박에 점입가경이었다. 그들이 봉과 검을 한 번씩 부딪힐 때마다 발생하는 충격파만으로도 주변이 초토화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 전장에서 승리한다 한들, 저 둘이 패배한다면 적의 최고수를 막을 힘이 없습니다. 또한 혼원신교는 소수이고 대다수는 낭인무사들입니다. 정작 적의 본체는 치지도 못하고, 꼭두각시들과 싸우며 피를 흘릴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사공자청의 말에 초사헌과 사도진악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공자청의 말은 이치에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분은 조금이나마 체력을 비축해 주십시오. 그리고 주소천 맹주님이 열세에 처하거든 바로 도움을 주셔야 합니다.”
“허면, 괴룡 쪽은 어쩌란 말이오?”
사도진악의 말에 사공자청이 슬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괴룡은 강호에 나타나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오. 사신혁은 화산제일검을 꺾고, 남궁세가 전체를 몰살시켰소. 그건 화경에 이른 고수라 할지라도 결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외다. 필경 가지고 있는 모든 암기와 상당량의 공력을 소진하였을 것이오.”
“사도진악 부맹주의 말이 맞소. 게다가 혼원신교의 교주는 지금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헌데, 사신혁이 무너진다면 그 역시 위험한 일이 아니오? 차라리 나와 초사헌 궁주님이 괴룡과 주룡을 각각 지원하는 편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주소천 맹주님입니다. 괴룡은 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괴룡이 패배한다면…….”
사공자청, 정보를 관장하는 하오문주. 그의 성품이 여실히 드러나는 말이 초사헌과 사도진악의 귀에 박혔다.
“사신혁 대협에게는 큰 죄를 짓는 것이지만, 주소천 맹주님을 모시고 사도맹은 철수하여 훗날을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