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뜻밖의 사고 (8)
현아진에 이어 자신의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는지 신혁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신이 나서 괴룡의 업적에 대해 열변을 토하려던 백도화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잠시 말을 끊었다.
“서, 설마?! 당신……?”
“예, 아마 생각하시는 게 맞으실 겁니다.”
“괴룡과 만난 적이 있군요!”
“예. 예?”
백도화의 오해에 신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절대사룡의 일인,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최강의 무인. 황제마저 존경하며 황사로 추대하였으며 홀로 연왕의 10만 대군을 막아낸 불패의 무장. 엄청난 경공술로 신선처럼 하늘을 누비며 절대적인 위력의 어주술이 바로 괴룡의 상징이라는 등의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백도화였다.
“괴룡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죠?”
“어…… 아주 잘 아는 사이라고 할 수 있죠.”
백도화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신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나름의 한 수는 있는 모양이지만 설마하니 괴룡과 아주 잘 아는 사이라고?’
사람이란 무릇 대단한 사람과 조금의 인연이라도 있으면 과장해서 말하는 법이다. 아마 이 남자도 멀리서나마 괴룡을 보고 한참 부풀려 말하는 것이리라.
“흠흠, 백도화 씨?”
“……그럴 리가 없지.”
“백 소저?”
그렇다고 한들 자신 때문에 곧 죽게 될지도 모르게 된 사람에게 사실을 밝혀 면박을 주어봤자 서로 불편해질 뿐이다.
“이제 섬서성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요. 당신이 왜 좌철기에게 쫓겼는지 그리고 섬서성 제형안찰사사와 그의 아들 고당박이라는 자하고 무슨 악연이 있는지 말해주세요.”
“후우~ 좋아요. 고당박에게 치욕을 당하고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진실을 말하고 죽는 게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겠죠.”
더 이상 신혁의 정체에 대해 입씨름해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쫓기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펐는지 백도화가 털썩 주저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섬서중앙상단의 무남독녀였어요. 비록, 여자로 태어났지만 약간의 무재(武材)가 있었기에 아버님은 저를 아미파의 속가제자로 입문시키셨지요. 그렇게 제 나이 10살 때, 무공을 익히기 위해 집을 떠났어요.”
“네, 그랬었군요.”
“제가 집을 떠나있는 동안, 아버님은 평소와 다름없이 상행을 떠나셨고 호북을 지날 때쯤 정체불명의 무리에게 습격을 받으셨어요. 보표들과 표사들도 그들에게 모두 살해당했고, 아버님 역시 죽음을 각오했을 때 그곳을 지나던 절정고수가 아버님의 목숨을 구해주었죠. 아버님은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크게 사례하셨어요.”
백도화가 잠시 한숨을 쉬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어요. 아버님의 목숨을 구해준 절정고수는 고윤겸이라는 사파의 고수였어요. 그것도 꽤나 악명이 자자한 마두였죠. 고윤겸은 아버지에게 돈이나 재물로 사례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과거를 없애달라고 부탁하였어요. 새로운 신분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아버님은 구명지은의 은혜를 갚고자 관부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고수겸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마련해주고 그와 그의 아들 고당박을 상단의 호위 책임자로 받아주셨죠.”
“흐음……. 과거의 악인이었던 자의 죄를 덮어준 게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이는군요.”
“맞아요. 하지만 아버지는 원래 그런 분이셨어요.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셨죠. 그러던 어느 날 고수겸은 자신의 무공을 이용하여 관부로 진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고 반드시 은혜를 갚을 테니 자신을 도와달라고 청했죠.”
백도화의 말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섬서중원상단의 주인이자 백도화의 부친인 백리영의 지원을 등에 업은 고수겸은 불과 10년 만에 섬서성의 무력을 총괄하는 제형안찰사사의 자리까지 올랐다고 하였다.
“물론, 고수겸이 제형안찰사사까지 고속승진하는 동안 불미스러운 일이 없던 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요?”
“그와 함께 승진을 다투던 경쟁자가 급사하거나 돈 많은 부호들이 갑자기 그에게 재산을 바친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구설에 오를만한 일이 있었죠.”
“그런데도 그냥 넘어갔나요?”
“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버님께서 거금을 풀어 덮어주셨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는 일은 고수겸이 직접 손을 썼죠. 아마도…….”
백도화가 말끝을 흐렸지만 신혁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절정고수가 맘먹고 손을 쓰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 하나 쓱싹하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증거조차 남지 않았겠군요.”
“예, 모두가 고수겸을 의심했지만, 증거도 없었고, 섬서성내에서 성주님을 제외하면 가장 큰 권력과 무력을 가진 그에게 감히 따질만한 사람도 없었죠. 그렇게 불안하지만 적당히 상부상조하는 관계를 유지하던 아버님과 고수겸이 크게 돌아서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사건이요?”
“첫째는 고수겸이 지금의 섬서사흉이라 불리는 인면수심의 쓰레기들을 사면하고 그들을 수하로 거둬들인 일이었어요. 그들이 지은 죄는 죽어 마땅하나 그 무력이 아까우니 자신이 잘 계도해서 국가에 충성하는 인재로 키워보겠다라는 식으로 섬서성주님을 설득하였죠.”
“흐음…….”
신혁이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 과정에서 아버님도 더는 고수겸과 함께해서는 안 된다고 느끼셨는지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하셨고, 고수겸도 충분히 아버님을 이용했다고 판단했는지 선선히 아버님의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하였어요. 하지만 여기서 큰 문제가 생겼어요.”
“그게 뭐죠?”
“고수겸이 관직에 나가 있는 동안에도 그의 아들 고당박은 저의 본가(本家)에 식객(食客)으로 머물고 있었지요. 그러던 그가 아미파에서 수행을 마치고 돌아온 저와 마주친 거예요.”
백도화의 고운 얼굴에 징그러운 벌레를 봤을 때처럼 혐오스러운 감정이 어렸다.
“고당박은 다짜고짜 제게 청혼하였고, 저는 일언지하에 그의 청을 거절했죠.”
“그럼, 아무 문제가 없는 거 아닙니까?”
“아니요.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어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백도화는 꽤나 미인이었다. 하얀 피부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왜소한 성인 남성과 비슷한 정도의 키는 그녀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 뒤로도 고당박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가진 거라곤 아비의 권세밖에 없는 망나니 녀석이 집념과 욕심은 세상 누구보다 강했죠. 결국 그는 서서히 선을 넘기 시작했어요.”
“선을 넘었다?”
“정말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지만…….”
백도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처음에는 그저 집요하게 청혼하는 줄만 알았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아무리 간절하게 구애를 해도 제가 거들떠도 보지 않자, 결국 제 시비 두 명을 매수하여 제가 먹을 차에 음약(淫藥)까지 몰래 타게 했어요.”
“그런데 음약을 탄 건 어떻게 아신 거죠?”
“시비 두 명은 오래전부터 저를 보살펴주던 아이들이에요. 그 아이들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을 한 것이었고, 아이들은 가족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제게 사실을 말해주었어요.”
백도화가 분노를 다스리려는지 잠시 심호흡을 하고서는 말을 이었다.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아시고 대노하시어 섬서성주님을 찾아갔으나 이미 제형안찰사사 고수겸은 섬서성을 장악한 지 오래였고, 섬서성주님을 뵐 수조차 없었죠. 결국…….”
“흠, 그래서 관(官)의 힘으로는 그들을 응징하기 어려우니 무림맹의 힘을 빌리려 화산지부로 가던 길이셨군요.”
“네 맞아요.”
“백 소저. 확인차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네, 말씀하세요.”
“고수겸과 고당박 부자는 당연히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나쁜 놈들이겠죠?”
신혁의 말에 백도화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어느 정도 힘과 재력이 있는 섬서중앙상단을 상대로도 배은망덕한 짓을 서슴지 않은 놈들이에요. 하물며 힘없는 백성들을 상대로는 오죽했겠어요?”
“예상대로군요.”
모르면 몰랐으되,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는 신혁이었다. 귀찮은 것을 싫어해서 잘 움직이진 않았지만 한 번 마음 먹은 일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끝내는 것이 신조인 신혁은 이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고당박 부자를 처리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음? 아, 그 나쁜 놈들을 어떻게 혼내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요?”
“나쁜 놈들을 상대로 정의를 구현하는 건데 누가 하면 어떻습니까, 하하.”
적당히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신혁을 백도화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흠, 정말로 이 자가 괴룡과 조금이라도 아는 사이라면 가능할지도……?’
[오라버니, 1분 뒤 목적지에 도착해요. 그런데 섬서성의 내성이 아닌 외성안의 장원 같은 곳이에요.]‘흠 그래?’
[예, 스파이 버그를 통해 수집한 음성정보와 영상정보를 분석해보자면 아마도 제형안찰사사 고수겸과 고당박이 머무는 장원 같아요.]‘잘 됐군.’
백도화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혁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기지개를 피며 몸을 풀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슬슬 내릴 준비를 해야죠.”
천천히 마차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느낀 백도화도 목적지에 거의 다 와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자는 왜 갑자기 몸을 푼단 말인가?
“내리자마자 도망이라도 치려구요?”
“음? 지은 죄도 없는데 제가 왜 도망을 칩니까. 혹시나 힘쓸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미리미리 관절을 풀어두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아니, 무슨 힘을 쓴다고…….”
백도화가 막 따지려는 순간 마차의 문이 열리며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내려라.”
좌철기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신혁과 백도화에게 명령하였다.
“그러지.”
“뭐?”
당당하게 반말로 좌철기의 말을 받으며 신혁이 마차에서 내렸고, 좌철기가 멍한 얼굴로 그와 백도화를 노려보았다.
“안내해라.”
“허, 허허, 허허허허.”
좌철기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실히 아니었다. 건방지게 두 번이나 반말을 하다니, 이놈이 미친 게 확실하구나 싶었다.
“네놈이 두려움에 정신줄을 놓았구나.”
좌철기가 분노하여 차고 있던 검으로 손을 옮겼다.
[적성 사이오닉 에너지 반응 체크. 파괴하겠습니다.]‘죽이진 말아라.’
[Copy that.]그동안 좌철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초고수들을 상대로 전투 경험을 쌓아온 오페라의 시스템은 처음 유신과 격돌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상태였다. 비록 사이오닉 에너지가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좌철기와 4명의 일류고수를 제압하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후우~ 그래. 본좌가 저런 애송이에게까지 손을 쓸 수는 없지.”
좌철기가 고개를 돌려 슬쩍 눈짓하자 대기하고 있던 그의 4명의 수하중 한 명이 그대로 검을 뽑으며 천천히 신혁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