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뜻밖의 사고 (14)
고수겸의 협박에 섬서성주 민중기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필 지금……?’
민중기의 입장에서는 천만다행하게도 형관오와 윤신제는 그의 양옆에 앉아있었기에, 그의 표정을 보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다니.’
섬서성은 단 한 번도 세수(稅收)가 모자란 적이 없었다. 흉년이 들거나 홍수가 나도 늘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에 고수겸이 기준이상으로 세금을 거둬도 경제 관념이 별로 없던 민중기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내가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였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언제나 늦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금의위와 찬황부에서 나와 있는 마당에 만약 고수겸의 잘못을 징죄한다면 자신 역시 무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민중기가 지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섬서중앙상단에 파견된 병력들과 세무관리들은 제형안찰사사 고수겸의 말대로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
“…….”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고, 가재는 게 편이었다. 백도화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떨궜다.
“괜찮아요 도화 씨. 수고했어요.”
신혁이 백도화를 위로하며 앞으로 나섰다.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신혁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계속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아직도 할 말이 남았나?”
“당신한테 물은 거 아니니까 신경 끄십쇼.”
신혁이 끼어드는 고수겸을 가볍게 무시하며 민중기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남았는가?”
갑자기 달라진 민중기의 태도에 형관오와 신윤제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형관오 위장님, 아직은 아닙니다.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합니다.’
‘……알겠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혁은 화가 날수록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더욱 차가워지며 여유가 가득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신윤제였다.
“예. 아직 많이 남았지만, 성주님께서 원하신다면 거두절미하고 한 가지만 더 고하고 싶군요.”
“좋다, 이야기해보아라.”
“여기 있는 섬서사흉과 고당박에 관련된 사항입니다.”
“고당박과 관련된 것은 이미 고하였으니, 섬서사흉에 관한 것만 고하도록.”
‘고당박과 고수겸의 지시로 섬서사흉이 벌인 일이 적지 않은데, 그것은 듣지도 않겠다는 건가.’
민중기의 말에 신혁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대흉악노(大凶惡老) 좌철기. 둘째, 사흉검귀(死凶劍鬼) 진갑영. 셋째, 음흉악희(淫凶惡姬) 염교교. 마지막, 흉흉파안(凶兇婆顔) 남가위. 이들은 섬서사흉이라 불리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끼친 범인들입니다. 이들은…….”
신혁이 섬서사흉의 대표적인 죄명을 읊으려는 순간, 고수겸이 시기적절하게 신혁의 말을 자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것이 날조입니다.”
점잖은 모습으로 좌중을 둘러보던 고수겸이 섬서사흉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섬서사흉이라는 별호 자체가 제 수하들을 모함하기 위하여 불순한 무리들이 만들어낸 별호에 불과합니다. 저들은 섬서사흉이 아닌 섬서성의 성문을 지키는 병마도지휘사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주님.”
“저희는 결코 백성들을 괴롭힌 적이 없습니다.”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적들 몇몇을 죽이 것은 사실입니다만 저자가 하는 말은 모두가 거짓입니다.”
섬서사흉이 고수겸의 말에 동참하며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했다.
“증거나 증인이 있는가?”
“차고 넘치죠.”
신혁이 뻔뻔하게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섬서사흉과 고수겸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어떤 증거가 있으며 증인은 누구인가?”
“너무 많아서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저들에게 당한 백성들과 저들을 보필하던 병사들이 증인입니다. 증거로는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섬서사흉의 옷가지 등의 각종 물품들을 제시하겠습니다.”
“성주님.”
이번에도 고수겸이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뻔뻔하게 민중기에게 말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저 역시 저의 결백을 증언해줄 증인과 증거를 수십, 아니 수백 개도 들이밀 수 있습니다.”
“으음…….”
민중기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는 사건을 덮는 게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칫 고수겸과 섬서사흉의 죄를 인정이라도 했다가는 금의위와 찬황부에서 자신의 부족함 역시 꼬집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섬서성 제형안찰사사의 비리와 범죄가 황제의 귀에 들어가는 일은 결단코 막아야만 했다.
“성주님.”
“말씀하시오.”
“백도화와 중원섬서상단의 일은 소관이 파견한 세무관리와 병사들이 조사하고 있으니 차치하더라도, 제 아들을 폭행하고 감히 신성한 재판에서조차 거짓을 고해 제 명예를 더럽힌 자를 처벌하여 주시길 청합니다.”
“그렇습니다 성주님.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맞습니다,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감히 제형안찰사사님을 모함하다니요!”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성주님. 고수겸 대인과 함께 실추된 저희의 명예도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때다 싶었는지 고수겸의 의견에 동조하며 섬서사흉은 자신들도 신혁의 모함 때문에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알겠소.”
고수겸과 섬서사흉의 주장까지 모두 들은 민중기가 무거운 얼굴로 고민에 잠겼다. 1각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민중기가 판관패(判官牌)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판결을 내리겠다.”
신혁과 백도화는 일말의 기대를, 고수겸과 섬서사흉은 미리 예견된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민중기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다.
“제형안찰사사 고수겸 부자와 4명의 병마도지휘사들에 죄명에 대하며 무죄를 선고한다.”
“무죄요?”
백도화가 어이가 없었는지 되물었고, 형관오와 윤신제마저도 무죄까지는 생각을 못 했는지 황당한 얼굴로 민중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렇다, 제형안찰사사의 말대로 저자가 제시한 증거와 증인은 얼마든지 날조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심증만으로 섬서성의 요직에 있는 관리를 처벌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하하하하, 좋습니다. 아주 명판결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무슨 죄입니까?”
신혁이 시원한 웃음과 함께 물었지만, 결과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고수겸과 섬서사흉이 무죄라는 것은 그들과 반대편에 서 있는 신혁은 유죄라는 방증이었으니 말이다.
“그대는 무고(誣告)죄를 범하였다. 섬서성의 충직한 관리인 제형안찰사사 고수겸과 4명의 병마도지휘사들을 모함하였다. 이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큰 죄이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어떤 처벌을 받는 겁니까?”
신혁의 질문에 민중기가 잠시 고민하더니 근엄한 태도로 판관패를 던지며 말했다.
“3년간 옥에 갇힐 것이며 50대의 태형을 명한다.”
“좋군요. 아주 명판결입니다.”
신혁이 마치 제 일이 아닌 양 손뼉을 치며 민중기의 판결에 찬사를 보냈다.
“크큭, 미친것이냐?”
고수겸이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손가락을 우두둑 꺾었다. 아무리 봐도 신혁의 태형을 직접 집행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섬서사흉과 제형안찰사사 고수겸, 그의 아들 고당박. 마지막으로 섬서성주 민중기. 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신혁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섬서성주에게 보여주었던 약간의 존경과 예의도 씻은 듯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너희들의 방식대로 해주겠다. 굳이 재판을 하고 증거를 찾고 증인을 세울 필요도 없겠지.”
“큭큭큭큭, 저놈, 공포로 머리가 돌아버리기라도 한 것이냐?”
“호호호호 철기 오라버니. 미쳤어도 반반한걸요, 약속대로 소녀에게 저놈을 주셔야 해요. 제형안찰사사께서도 부디 소녀에게 시간을 주시길 바라요.”
아직까지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섬서사흉을 보면서 신윤제와 형관오가 속으로 혀를 찼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도 못 잡고 있구나.’
‘제 무덤을 파는구나. 여기서 더 주군을 자극하다니.’
신혁이 섬서성주 일행에게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너희를 모두 모욕죄로 처벌하겠다.”
“더는 네 허무맹랑한 말을 들어줄 필요가 없어 보이는구나.”
고수겸이 다시 품속에서 호조를 꺼내 끼면서 천천히 신혁에게 다가갔다.
‘절정의 극, 최소 절정상급의 고수라고 들었다.’
사건은 일단락지었다. 이제 깔끔하게 후환을 없애기 위해 저놈을 찢어 죽이고 백도화와 섬서중앙상단의 일만 마무리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신혁에게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던 백도화는 분노와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너 따위에게 굳이 힘을 쓰고 싶지 않다.”
“무슨 소리냐.”
“항상 약자에게만 폭력을 쓰던 놈들은 먹이에 정신이 팔려 덫을 읽지 못하는 법이지.”
“무슨……?”
신혁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며 방심하지 않고 전신 공력을 끌어올리던 고수겸의 동작이 일순간 멈췄다. 어느새 그에게 다가왔는지 윤신제가 그림자처럼 고수겸의 등 뒤에서 나타나 그의 심장에 칼을 겨눴고, 형관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수겸에게 다가와 그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이, 이게 지금 무슨 짓이오?”
고수겸이 당황하며 움직이려는 순간 윤신제의 검이 고수겸의 등을 살짝 파고들었고 형관오의 검도 신윤제에게 동조하듯이 움직이며 그의 목젖 위에 멈췄다. 명백한 살의가 느껴지는 두개의 검은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그 자리에서 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윤신제, 형관오.”
“예. 주군.”
“예, 위군.”
갑작스러운 신혁의 변화에 모두가 넋을 잃고 신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퍼어어억!
윤신제와 형관오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고수겸의 단전에 신혁의 굉뢰권갑이 깊숙하게 박혔다.
“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단전이 박살 난 고수겸이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섬서사흉, 저 쓰레기들을 무릎 꿇려라.”
“존명!”
절정의 극에 달한 신윤제가 신혁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용수철처럼 몸을 날렸고, 그 뒤를 형관오와 찬황부의 100명의 고수들이 섬서사흉을 덮쳤다. 그 엄청난 위세에 섬서사흉이 대경하며 무기를 뽑고 도주하려 하였지만 이미 찬황부의 포위망이 그들을 감싼 뒤였다.
“너 이리 와봐.”
신혁이 손가락을 까닥이자 아직까지도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았는지 눈만 끔뻑거리던 민중기가 그대로 날아와 신혁의 손에 목이 잡혔다.
“커, 커컥.”
“뭐? 무고? 날조?”
신혁이 민중기를 잡아서 바닥에 던졌다.
“으악!”
거칠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민중기가 비명을 질렀고, 그의 옆에 피투성이가 된 무언가가 하나씩 떨어져 내렸다.
“헉?!”
그들은 제압당한 섬서사흉이었고, 그들을 제압한 윤제와 형관오가 신혁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대명제국의 황사, 찬황지존위군 사신혁 대인을 뵙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윤체와 형관오의 외침에 100명의 찬황부의 고수들이 목놓아 소리쳤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던 백도화의 눈빛에 놀라움이 서렸다.
“정말 찬황지존위군. 괴룡 사신혁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