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뜻밖의 사고 (15)
쥐 죽은 듯이 고요해진 장내에 백도화의 혼잣말이 울려 퍼졌다. 특히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섬서성의 성주이자 재판의 판관으로서 재판을 주관하던 민중기의 충격이 컸다.
‘내,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1각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한 민중기의 평정심이 무너졌고, 그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형관오를 불렀다.
“형관오 금의위장 나으리.”
“할 말이 있나?”
명백하게 선을 긋는 형관오의 차가운 대답에 민중기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저, 정말 저분이 찬황지존위군 사신혁 황사님이 맞습니까?”
제발 악몽이라면 이제 그만 꿈에서 깨고 싶다는 희망을 품은 민중기였지만 이어지는 형관오의 대답의 그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감히, 누가 찬황지존위군을 사칭할 수 있단 말인가.”
“아…….”
젊어도 너무 젊은 사신혁의 모습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현실은 냉정하였고 엄습하는 절망감에 민중기의 고개가 떨궈졌다.
‘끄, 끝장이야. 나는 끝났어.’
고수겸이 바치는 풍족한 재물로 섬서성주라는 지위를 훨씬 뛰어넘는 부귀영화를 누렸다. 조금 전에도 억울한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기는커녕 고수겸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사건을 덮으려 하였고, 그 죗값을 치르는 민중기였다.
민중기가 무릎걸음으로 사신혁에게 기어가서는 엎드려 절하며 애원하였다.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모든 것은 고수겸 저놈이 한 일입니다. 이번 재판도 원래는 찬황지존위군의 편을 들어드리려 하였습니다만, 저 나쁜 놈이 신(臣)을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입니다. 부디 자비를…….”
민중기가 신혁의 발치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비를 구걸하였다.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대인.”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너는 선택하였고 이제 책임을 지면 될 뿐이다.”
“하, 하지만…….”
민중기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애처롭게 신혁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최소 무능.”
“예?”
“지금은 더 없이 비열한 탐관오리.”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인!”
신혁이 고개를 저으며 손을 젓자, 민중기의 몸이 둥실 떠올라 신혁에게 다가왔고, 그의 멱줄을 움켜잡은 신혁이 차가운 말투로 민중기를 꾸짖었다.
“처음에는 그냥 무능한 관리인 줄 알았다.”
“커억, 커어어어억.”
신혁에게 목을 잡힌 민중기가 고당박처럼 몸을 틀며 괴로워하였으나, 신혁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만약 힘없는 백성이었다면, 무공은 갖췄으되, 권력이 없는 무림인이었다면.”
신혁의 차가운 눈동자가 민중기를 직시하였다.
“그때도 너는 나에게 자비를 구하며 용서를 빌었을까?”
“그, 그건…….”
“찬황부주.”
“예, 주군.”
윤제가 신혁에게 다가와 공손히 시립하였다.
“찬황부의 설립이유가 무엇인가?”
“관부와 무림의 세력이 결탁하여 황권을 농락하고 국정을 어지럽히는 것을 방지하고 단죄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섬서사흉과 고수겸 부자. 그리고 섬서성주 민중기의 결탁은 찬황부의 소관이지 않은가?”
“주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섬서성주 민중기의 직위를 해제하고 황궁으로 압송하라.”
“존명!”
윤제의 복명에 민중기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안된다, 그래서는 아니 된다! 이렇게 끝날 수는 없다.’
억울했다. 비록 조금의 잘못이 있기는 하였지만, 이 모든 게 제형안찰사사 고수겸으로 인하여 벌어진 일이 아닌가.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고수겸에게 전가하며 스스로 당위성을 만들어낸 민중기의 머리가 열이 날 정도로 빠르게 돌아갔다.
‘아직이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순 없다.’
민중기에게 남은 희망, 그것은 바로 자신의 가문이었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곤경에 처했을 때, 언제나 그를 구원해준 것은 대명제국의 명가(名家)인 민씨 문중이었다.
“자, 잠깐. 마지막으로 찬황지존위군께 드릴 말씀이 있소.”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는가?”
“그, 그렇습니다.”
“좋아, 최후 변론을 허락하겠다.”
신혁의 허락이 떨어지자 언제 애걸복걸했냐는 듯이 자세를 바로 하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은 민중기가 당당하게 신혁에게 물었다.
“사신혁 위군께서는 송나라 시절부터 대대로 한림학사와 황사를 배출한 명문 민씨 문중에 대하여 알고 계십니까?”
“모른다. 그리고 관심 없다.”
은근슬쩍 가문의 위세를 들먹이며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던 민중기의 술책이 전혀 통하지 않는 신혁이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당황한 민중기가 자신을 끌고 가려 다가오는 찬황부의 고수들에게서 한걸음 물러서며 말을 이었다.
“나, 나를. 아니 본관을 이리도 핍박한다면 본관의 가문에서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좌시하지 않아?”
“그, 그렇습니다!”
“그래?”
신혁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이런 멍청한……. 쯧쯧,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구나 민중기.’
민중기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폭력이나 권력 등을 앞세워 남을 협박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신혁의 성품을 잘 알고 있는 신윤제는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있는 민중기를 보며 혀를 찼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연왕이나 금의제존위군의 권세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분께, 어디 감히 민씨 문중 따위를…….’
형관오 역시 윤제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민씨 문중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대단한 곳인가?”
“분명 위군께서 보시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본관이 황궁에 압송된다면 분명 본관의 본가에서 폐하께 상소문을 올릴 것이고, 이에 많은 학자들과 유생들 또한 동참할 것입니다.”
“호오~ 그래요?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신혁의 말이 살짝 공대로 바뀌었다. 신혁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투가 반존대로 변한 것에 불안을 느끼며 더욱 경계하며 조심하겠지만, 아쉽게도 민중기는 신혁을 잘 알지 못하였다.
‘역시 네놈도 본가를 무시할 수 없구나. 대명제국의 명문가인 민씨 문중을 말이다.’
착각을 해도 아주 단단히 착각한 민중기가 어느새 허리를 꼿꼿하게 펴며 신혁과 눈을 맞췄다.
“이대로 본관을 압송하여 옥에 가둔다면 수십, 수백 명의 유생들이 붓을 멈추지 않고 상소를 올릴 것이고 결국 폐하께서도 유생들의 뜻을 무시할 순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본관은 약간의 근신 처분 정도로 풀려날 것인데, 굳이 서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성주님의 말씀은 조금 시간이 걸릴 뿐이고 어차피 풀려날 거 괜히 서로 헛수고하지 말자. 이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귀공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민씨 문중과 유생들이 힘을 모은다면 종3품에 해당하는 섬서성주 정도 되는 관직에 자신의 사람을 심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으음……. 최종적으로는 당연히 황상의 윤허가 있어야겠지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단적인 예로 본관이 섬서성주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것도 가문의 도움이 컸으니 말이오.”
“과연, 잘 알겠습니다. 이 정도만 들어도 민씨 문중과 유생들의 유착관계를 알 수 있겠군요. 그리고 당신의 가문에 협력하는 부역자들도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위군?”
신혁이 더는 상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살짝 손을 저었고, 기다리고 있던 찬황부의 고수들이 달려와 순식간에 섬서성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손과 발을 꽁꽁 묶어 버렸다.
“형관오 위장.”
“예, 금의위장 형관오. 찬황지존위군의 명에 답합니다.”
“관리들의 내사는 어느 부처의 소관이오?”
“황궁 내의 관료는 동창이며, 군부와 각 성의 성주들과 고위 관료들은 금의위의 감찰대상입니다.”
“금의위나 동창에서는 이런 문벌귀족들의 병폐를 잘 알고 있었겠지요. 그들을 쳐내지 못한 건지 아니면 쳐내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신혁이 형관오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내가 사실을 모르면 몰랐으되, 알고서도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예, 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찬황부주와 함께 민중기를 황궁으로 압송한 뒤에 민씨 문중을 포함한 수사도 진행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대명제국의 앞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예, 대인.”
“황제께도 찬황지존위군 사신혁이 주청 드린다 전해주십시오. 상처를 도려내는 아픔이 두려워 방치했다가는 그 상처가 곪게 되어 환자가 죽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아시겠지요?”
신혁의 말대로 금의위와 동창과 같은 황제 직속의 감찰기관에도 민씨 문중이나 유생 가문의 사람 혹은 그들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제 살을 깎아내는 심정으로 내부를 정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형관오는 신혁의 의견을 반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신혁의 말대로 행한다면 그가 충성을 바치는 황제 주윤문의 권력이 더욱 강화되는 결과가 나타날 테니 말이다.
“물론입니다 대인.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그대로 명을 이행하겠습니다.”
“읍읍……!”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가문을 몰락의 길로 인도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민중기는 뒤늦게 발버둥 쳐봤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민중기의 일을 마무리 지은 신혁이 이번에는 쓰러져있는 고당박과 고수겸에게 걸음을 옮겼다.
“이제 당신들만 남았군요.”
어느덧 지척까지 다가온 신혁을 본 고수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적성 사이오닉 에너지 반응 체크.]오페라의 경고가 울렸다.
‘뭔가 있을 것 같긴 했는데, 신기한걸? 분명히 사이오닉 집중기관을 부쉈는데?’
신혁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고수겸을 관찰하였다.
삐삐삐비.
신혁의 CEC에 고수겸을 스캔한 영상이 실시간으로 출력되었고, 어떻게 고수겸이 공력을 상실하지 않았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몸속에 신기한 걸 박아넣었는데? 아니 삼켰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알았나?”
괴룡의 신위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정면대결은 필패. 신혁의 기습으로 단전이 부서졌으니 내공을 잃은 척하며 후일을 도모하려 하였으나 신혁은 고수겸이 내공을 상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듯이 말했다.
“글쎄, 원래부터 사이오닉 에너지, 자연의 기(氣)에 민감한 체질이라서.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몰랐다고 해도, 나를 도와주는 녀석이 찾아냈을 테지만 말이야.”
“그래, 과연 괴룡이라 불릴만하다.”
“나를 안다면 무의미한 저항은 멈추는 걸 권고하지.”
고수겸은 신혁의 말에 호조를 착용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였다.
“반항은 무의미할 텐데?”
“사신혁, 그대도 나도 강자다. 강자로서 약자를 밟고 올라서는 것은 자연의 섭리와도 같다.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어째서 나를 방해하는 것인가?”
“강자?”
신혁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현아진이나 주소천과 같은 진정한 강자들과 싸워오다 보니 이제는 화경에 이르지 못한 자들에게서는 별다른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을 강자로 칭하다니?
“강자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가 내가 사는 곳과 이곳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사신혁, 길고 짧은 것은…….”
고수겸이 고개를 숙이며 몸을 웅크렸다.
“대봐야 아는 것이다!”
고수겸의 팔이 십(十)자 모양으로 교차되면서 웅크렸던 몸을 튕기듯이 피면서 신혁에게 달려들었고, 그의 손이 기괴망측한 각도를 그리며 신혁의 목숨을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