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호사다마 (1)
‘놀랍구나, 정말 놀라워.’
무당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였다. 장삼봉 진인이 깨달음을 얻어 선계에 들 때, 태극의 서기가 형성되며 대자연과 한 몸이 되는 진정한 무위자연을 이루었다는 전설.
‘후인들은 그 이야기를 장삼봉조사께서 생사경의 경지에 도달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내 눈앞의 유신이가 그 경지에…….’
이것이 후인을 키우는 스승의 감동일까. 나이 150이 넘어 처음 받은 제자 유신. 제자이며 손자 같기도 한 그가 스승의 경지에 도달하였고, 무당의 염원이라 불리던 전설을 재현하는 것을 보니 스스로가 생사경의 경지에 접어든다고 하여도 이만큼 기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후우우우~”
태극의 서기는 유신의 몸에서 단 한 올의 공력도 남기지 않고서 모조리 빨아들이고는 더욱 거대한 자연의 기를 응집하여 유신의 전신으로 퍼지며 흡수되었다.
“드디어 끝난 게냐.”
“스승님,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오, 그래 말해보아라.”
재빨리 유신을 살피며 기감을 확장시킨 정진진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신체적으로는 너무도 건강하다. 그런데 유신의 기(氣)가 이상했다. 유신은 무당의 제자,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진진인과 같은 도가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는데 유신의 기의 종류가 변해있었던 것이다.
‘마치 대자연을 보는 것 같은데…….’
이 놀라운 괴사에 정진진인마저 당황하며 유신의 말을 기다렸지만, 당사자인 유신도 이 황망한 사태에 경황이 없는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였다.
“몸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정신 또한 이렇게 맑을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헌데…….”
“헌데?”
“제 몸속에서 단전이 사라졌습니다.”
“지, 지금 뭐라 하였느냐?”
너무도 엄청난 상황에 천하의 정진진인과 유신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그럼 내공을 잃은 것이냐?”
“그게, 잃은 것 같기도 하면서도 자연의 기가 몸에 충만한듯하니 굳이 단전이 필요가 없어졌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아직까지 무공을 펼쳐보진 않았습니다만 아마 공력을 잃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공의 상식으로 따졌을 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건만 눈앞에서 직접 본 사실인지라 정진진인은 유신의 말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설마, 이게 현경의 경지입니까? 저는 현경이라는 게 심검의 경지에 들어 완벽한 어기상인(馭氣傷人)의 경지에 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현경의 경지가 이토록 지고한 경지인 줄은 몰랐습니다.”
“허, 허허허, 허허허허허!”
정진진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후련하게 광소 아닌 광소를 터뜨린 정진진인이 유신에게 다가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게 현경의 경지일 리가 있겠느냐?”
“그렇습니까? 역시, 현경의 경지는 멀고도 높은 것 같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스승님.”
유신이 정진진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침울하게 말했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고 지금까지와는 궤를 달리하는 경지를 개척한 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화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지는 유신이었다.
콩!
정진진인이 살짝 유신의 이마에 꿀밤을 때렸다.
“인석아, 그게 현경의 경지일 리가 있겠느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거라.”
정진진인이 슬쩍 손을 젓자, 그의 곁에 있던 바윗덩어리 중 하나가 둥실 떠오르더니 이윽고 힘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
“내가 모든 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더라도 격공섭물로 옮길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인 것 같구나.”
정진진인이 움직였던 바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유신을 향해 정진진인이 말했다.
“조금 전에 내가 한 것을 그대로 해보거라.”
“예, 알겠습니다 스승님.”
살짝 주위를 둘러본 유신이 또 다른 커다란 바위를 향해 정진진인이 했던 것처럼 손을 휘저었다.
쿠구구궁!
유신의 손을 움직이자 그들이 머물던 태극봉 전체가 흔들리며 정진진인이 들어 올렸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바윗덩어리가 허공에 떠올랐다.
“생사경에 들면서 내공이 공령(空靈)의 영역에 도달했으니, 더 이상 단전이 필요치 않았던 게로구나. 그리된 것이었어.”
흔히 강호인들이 사신혁의 사이오닉 에너지에 대해 오해하던 진정한 공령의 경지에 들어선 유신이었다.
“허허허, 무량수불.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이 이토록 기분 좋게 와닿을 줄은 몰랐구나.”
“과찬이십니다 스승님.”
“아니다, 내 소원이 꿈에서라도 생사경의 고수와 겨뤄보는 것이었거늘 이렇게 생사경의 고수를 마주하니 굳이 손을 섞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겠구나. 당대의 무당제일검의 칭호는 이제 너의 것이다.”
“아닙니다 스승님. 아직 검도(劍道)에 있어서 스승님께 배울 것이 많습니다.”
“허허허허, 아니다. 이제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완벽한 태극혜검을, 아니 과거 장삼봉 조사께서 펼치셨듯이 무당의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태극의 검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나의 미숙한 검로(劍路)가 너의 검에 방해가 될 뿐이다. 이제 스스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말 그대로 청출어람을 보여준 제자에 대한 자부심에 가슴이 복받쳐오는 정진진인이었다.
“사숙!”
태극봉이 흔들리며 난장판이 된 무당산의 정상으로 바람처럼 달려오는 일단의 무리들이 보였다. 바로 무당의 장문진인 청현진인과 도현도장을 비롯한 장로들이었다.
“허허, 장문사질이 아니시오.”
태극봉에 있는 것은 당대의 무당제일검이자 천하제일검인 태극검제 정진진인과 차기 무당제일검이자 천하제일검의 칭호를 이어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자랑스러운 사제인 유신이었다. 무당 장문인의 집무실인 태극전에서 평소와 같이 바쁜 하루를 보내던 청현진인은 태극봉이 흔들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들고 있던 서류뭉치들을 집어던지고선 태극봉을 향해 달려온 것이었다.
“허억, 허억. 사숙 괜찮으십니까? 유신이는……?”
“여기 있지 않소, 장문인.”
완벽하게 공령의 경지에 접어든 유신은 반박귀진을 넘어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들어섰던 지라, 절정의 극에 도달한 청현진인조차 유신의 기색을 잡아내지 못하고 정진진인의 대답에 그제야 유신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응? 사제,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겐가?”
청현진인뿐만 아니라 뒤이어 도착한 도현도장을 비롯한 무당의 장로들과 제자들마저 정진진인을 보면서도 그의 옆에 서 있는 유신을 단번에 알아채지 못했다.
“하하, 사형께서 너무 경황이 없으셨나 봅니다. 이 막내 사제를 못 알아보시다니요.”
“무량수불…….”
청현진인은 정진진인과 유신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차분하게 도호를 읊고서는 평소의 차분한 모습을 찾았다.
“허허, 미안하네 사제. 내 사제 말대로 너무 흥분하여 앞뒤를 살피지 못 하였구만. 그런데 갑자기 왜 태극봉이 흔들린 겐가?”
“사형, 그게…….”
유신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하려는 찰나에 정진진인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청현진인에게 말했다.
“잠시 유신이와 손을 섞다가 빈도가 흥이 나서 손을 좀 과하게 썼다네. 다행히 빈도도 유신이도 다치지 않았으니 이 또한 원시천존의 보살핌이겠지. 무량수불.”
“그러셨습니까 사숙?”
청현진인이 태극진인의 말을 받으면서도 그의 말에 담긴 뜻을 오해하고서는 희색이 만연하여 달뜬 목소리로 물었다.
“사숙의 말씀대로라면 유신이가 사숙과 검을 섞을 정도로 무공이 늘었단 말입니까? 화경에 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완숙한 화경의 경지에 들어선 것입니까?”
헛다리를 짚어도 단단히 짚은 청현진인이었지만, 화경의 고수는 무당파와 같은 대문파에도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한 존귀한 고수였기에 누구도 유신과 정진진인이 겪은 일을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유신이 정진진인과 어느 정도 손을 섞을 수 있을 정도로 한 걸음 더 성장하였구나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하며 기뻐할 따름이었다.
“허허, 왜 아니겠소. 장문인의 말씀이 맞다오. 허니, 아무 걱정말고 장문사질과 장로들은 이만 돌아들 가시게나.”
유신이 태극검제를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일대제자들에게까지 알리기에는 시기상조였기에 정진진인이 적당한 말로 제자들을 물리려 하였다.
“예, 사숙. 알겠습니다.”
청현진인이 정진진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막 몸을 돌렸을 때, 산 아래에서부터 맹렬한 속도로 경공을 발휘하여 다가온 무당의 일대제자가 다급하게 청현진인을 찾았다.
“큰일났습니다, 장문인 급보입니다.”
“급보?”
“예, 본문의 속가문파인 태천문(太天門)의 소가주 태극천류각(太極天劉脚) 주장우가 서문세가의 소문주 서문진우를 살해했다고 합니다!”
“지금 뭐라 하였느냐?!”
웬만해서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청현진인이 놀라서 되물을 만큼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서문세가는 비록 무력으로는 중원의 오대세가에 들지 못했지만, 그 지략을 인정받아 제갈세가와 함께 무림맹의 군사를 번갈아 가며 배출할 정도의 명문세가였다.
‘서문진우, 서문진우…….’
서문진우는 유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강호의 후기지수로서, 서문세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동량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서문진우는 3년간 소림에서 무공의 기초를 닦았고, 하필 그에게 무공을 사사한 스승이 바로 공오대사였다는 사실이다.
“무량수불……. 서문진우 시주라면 비록 적전은 아니지만 공오대사의 제자이지 않은가?”
“예, 사형. 불행하게도 사실입니다.”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도현도장이 침중한 얼굴로 청현진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고, 가뜩이나 이번 사도맹의 내전에서 체면을 구긴 소림과 공오대사는 물론이고 아들을 잃고 분노를 삭이고 있을 서문세가 결코 가만 있을 리가 없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태천문의 주장우는 총명한 아이였다. 태천문의 소문주만 아니었어도 무당의 도적에 이름을 올려도 부끄럽지 않을 옳고 곧은 심성을 가진 아이가 어찌하여 서문세가의 소문주를 살해했다는 말인가.”
공오대사가 서문진우를 직접 사사했다면 태극천류각 주장우는 오래전에 청현진인이 직접 사사한 속가제자였다.
‘장우야, 장우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강호제일검문, 무당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 무당에서 검이 아닌 태극권을 장기로 하는 청현진인은 자신과 같이 검보다는 권각술에 재능을 보이는 태천문의 소문주 주장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그를 직접 사사했기에 여타의 속가제자들보다 더욱 정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장문 사형.”
시름에 잠긴 청현진인을 보다 못한 유신이 앞으로 나섰다.
“사도맹의 내전으로 인하여 장로직을 맡고 있는 사형들과 장문 사형께서는 자리를 비우기 쉽지 않으실 겁니다. 허니, 제가 직접 태천문을 찾아 주장우 소문주를 만나보고 자초지종을 파악하겠습니다.”
“그리해 주겠느냐?”
무당의 속가 중에서 가장 큰 성세를 자랑하는 태천문에 최소한 장로급의 인물은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유신의 제의에 청현진인이 반색하였다. 무엇보다 올곧은 유신이라면 공과 사를 구분하고 시시비비를 가려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 아무 걱정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