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호사다마 (2)
무진현(武陳縣).
무당산을 내려가면 바로 보이는 호북에서 가장 발달한 현 중의 하나인 이곳은 무당파를 찾는 무인들은 물론이고 향화객들과 상인들로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었다.
“자네, 그 소식 들었나?”
“무슨 소식 말인가?”
“지금 잠잠했던 강호에 풍운이 일기 시작했다는데 아무것도 모른단 말인가?”
“풍운? 아직 황궁에서 번왕들과 황상이 그 난리를 친 것도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았건만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황궁의 일이야 괴룡이 나서서 마무리되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심상치 않은 일이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남자와 창을 어깨에 걸친 두 명의 사내가 두런두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자네도 마교의 교주가 교체되고 사도맹의 내전이 끝난 것까지는 알고 있을걸세.”
“물론이네. 주룡 주소천이라는 어린 여아가 새로운 사도맹의 맹주가 되었다지 않나. 허허허, 참으로 기가 찰 일이지.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여자애를 맹주로 삼다니, 사도맹도 참 인물이 없나 보네그려.”
“그게 문제가 아닐세. 다시금 마교가 발호한 것 같네.”
“마교가?”
“그렇다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교의 교주가 직접 움직여서 세외의 명문인 포달랍궁과 해남문을 멸문시켰다고 하네.”
“쯧쯧, 마교에서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일을 벌였겠나. 자네는 소식만 빠르지 전혀 생각을 하지 않는구만.”
“그럼, 자네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단 말인가?”
“뻔한 거 아닌가, 마교가 본격적으로 중원에 진출하기 위해 배후를 든든히 한 것이지. 그래서 포달랍궁을 먼저 없앤 것이고.”
“그럼 해남파는?”
“수로(水路)! 이제는 매번 곤륜이 지키는 청해를 시작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동시에 바다를 통해 정파를 기습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 아니고 뭐겠나. 그러기 위해서 해남파를 없앨 필요가 있었던 거지!”
“과연…….”
친우의 말이 꽤나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지 검을 찬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정파인이면서 마교와 황궁에만 관심이 있고, 정작 정파에서 무슨 난리가 났는지는 전혀 모르는구먼.”
“난리?”
창을 찬 사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왜 무진현에 사람이 이리도 붐비는지 이상하지 않은가?”
“그야, 무진현은 무당파가 있는 곳이니 당연히…….”
검을 찬 사내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며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평소의 무진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유독 사람이 더 붐비는 것도 같았지만 특이하게도 무림인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졌으며, 특히나 흉흉한 살기가 공기 중에 섞여 있는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무당파 최대의 속가문파인 태천문의 소문주 주장우가 서문세가의 소가주인 서문진우 공자를 살해한 일이 벌어졌네. 그 때문에 서문세가의 가주가 직접 서문세가의 무인들과 함께 이곳 무진현에 도착했고, 태천문 또한 그에 맞서기 위해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무사들을 끌어모았다네.”
“그런 일이……? 헌데, 태천문은 무당의 속가인데 무당에서는 가만히 있는가?”
“그렇게 따지면 살해당한 서문진우 역시 소림의 속가제자나 마찬가지인데, 소림 또한 가만히 있을 리가 있나?”
“소림은 서문진우의 스승인 공오대사가 직접 서문세가주와 함께 왔다고 하네.”
과연 남자의 말이 끝날 때 즈음, 북적이던 인파가 좌우로 갈라지고 강호의 명숙인 소림의 공오대사와 서문세가의 가주가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을 보필하는 무인들과 함께 커다란 객잔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정, 정말이구만. 이제 어찌 되는 건가? 무당에서는 가만히 두고 볼 건가?”
“글쎄……. 시시비비는 가려야겠지만 소림과 서문세가가 함께라면 아무래도 태천문에서도 무당에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건 자네 말이 옳네. 강호에서는 인맥도 실력이라는 게 널리 알려진 격언이 아닌가.”
두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진진하게 공오대사와 서문세가의 일행들이 객잔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볼 때, 그들의 뒤에서 소름 돋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호의 격언이라. 좋은 말이지요.”
“허억?!”
“누, 누구?!”
그들의 뒤편에는 피처럼 붉은색의 무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부리부리한 눈매를 한 잘생긴 청년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들과 함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태천문의 안위를 걱정하기 전에, 두 분의 입을 먼저 걱정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무리 본문의 아량이 넓다지만 태천문의 문주를 앞에 두고도 함부로 입을 여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정도로 관대하지는 않으니까요.”
“태, 태극천류각(太極天流脚) 주장우?!”
“태천문의 소문주…….”
너무 놀란 나머지 두 남자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고, 주장우가 두 남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왕 이리된 거 두고 보시지요, 태천문이 망하는지 서문세가가 망하는지 말입니다.”
* * *
“대사, 이렇게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오대사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하는 중년의 문사와 같은 남자는 당대 서문세가의 문주 서문영호였다. 정파를 대표하는 오대세가의 가주들에 비해 지난바 무공이 부족하지만, 서문세가의 세력과 가주인 그의 지모는 오대세가 중 최고라는 모용세가를 제외하고서는 비견될 곳이 없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아미타불,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가주님. 비록 불문에 귀의하지는 않았지만, 진우는 저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빈승이 어찌 손을 놓고 나 몰라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반장을 하며 서문영호의 포권을 받은 공오대사가 침중한 얼굴로 서문진우에게 물었다.
“가주님, 진우가 무당의 속가인 태천문의 소문주와 다툼이 있었고, 서로 손을 섞던 중 불의의 사고로 인하며 유명을 달리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일진검(一進劍) 서문진우.
촉망받는 정도의 후기지수로서 동년배의 사파의 무사들을 단 일검으로 제압하여 일진검이라는 별호마저 생길 정도의 뛰어난 검사이며 나이 서른에 절정의 경지를 돌파한 천재 무사였다.
태극천류각(太極天流脚) 주장우.
태극천류각 주장우 또한 40의 나이에 절정의 경지에 이른 나쁘지 않은 재능을 보여준 무당의 속가제자였지만 서문진우의 진정한 무위는 절정중급에 달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공오대사였기에 지금의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부끄럽습니다, 아비로서 아들의 시체만 전달받았을 뿐 정확히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릅니다. 해서 이렇게 태천문과 무당을 찾아온 것입니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증인이나 증거가 없습니까?”
“증거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아들을 죽였다고 주장한 주장우가 표국을 통해 진우의 시체를 관에 넣어 본가로 보내왔고, 스스로가 아들을 살해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서문진우가 잠시 주변을 살피고서는 낮은 목소리로 공오대사에게 말했다.
“진우뿐만이 아니라 진우와 함께 있던 서문세가의 두 명의 장로 또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예, 그렇지만 그들이 왜 주장우와 다툼이 있었고,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본가에서 태천문에 사람을 보내 아들과 두 명의 장로들의 죽음에 대해 해명하라 하였지만, 돌아온 답신은 직접 태천문을 찾아오라는 서신 한 장뿐이었습니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서문영호가 두 주먹을 꾸욱 쥘 정도로 분노하며 살짝 몸을 떨었다. 그런 서문영호를 보며 공오대사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천문의 행사는 강호의 도의와 많이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천문이 뒷배인 무당을 믿고 이토록 오만방자하단 말인가. 아미타불…….”
마치 의도적으로 서문세가를 무당파의 앞마당과 다름없는 무진현으로 유인한 것 같지 않은가.
“비록 태천문이 무당의 속가라 할지언정, 진우 역시 빈승이 가장 아끼는 속가제자였습니다. 또한 소림은 결코 서문세가의 공덕을 잊지 않습니다.”
“대사…….”
공오대사의 말에 감명받은 서문영호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가주, 지금 객잔에 들어선 적의무복을 입은 사내가 주장우 시주가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대사.”
“아미타불…….”
공오대사가 심상치 않은 주장우의 기세를 읽었는지, 품속에서 염주를 꺼내어 불호와 함께 천천히 염주 알을 굴렸다.
‘무당의 정순한 내공을 수련했을 텐데, 어찌 이런 혼돈에 가까운 기세를 갈무리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직까지 화경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맹주이자 사형인 공정대사를 제외한다면 자타가 공인하는 소림최고의 무승인 공오대사였다. 절정의 극에 이른 그의 무위는 강호 최고수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였고, 지금 나타난 주장우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중이었다.
“태천문의 15대 문주 주장우가 무림의 선배님들께 인사 올립니다.”
어느새 공오대사와 서문영호의 지척에 이른 주장우가 정중하게 포권하며 인사를 올렸다.
“일단 앉으시게.”
서문영호가 옆자리에 앉은 공오대사를 곁눈질하며 주장우에게 자리를 권했다. 속으로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이고 싶은 자식의 원수였지만 명문세가이자 정파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죽은 아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빈승은 소림의 공오라 하외다.”
“대사의 높으신 명성 익히 들었습니다.”
“허명일 뿐이지요. 헌데, 주장우 시주.”
공오대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장우에게 물었다.
“지금, 태천문의 소문주가 아닌 문주라 하였소?”
“그렇습니다.”
서문영호는 아들의 원수를 눈앞에 두고 평정심을 잃어 놓친 부분이었지만 공오대사는 그것을 간과하지 않았었다.
“선친께 변고가 있었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때가 된 것일 뿐이지요.”
주장우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공오대사의 말을 받았고, 듣고 있던 서문영호가 주장우에게 말했다.
“내 그대를 이리로 부른 것은 그대의 제안에 응했기 때문이 아니오. 나는 이 자리에서 그대의 죄를 물…….”
“예의가 없으시군요 서문 선배님.”
주장우가 서문영호의 말을 잘랐다.
“저는 태천문의 소문주가 아닌 문주입니다. 비록 태천문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 속하지는 못하지만 호북에서의 명성은 작지 않습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오?”
서문영호가 낮은 목소리를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
“별거 아닙니다. 오대세가에 속하지 못하는 서문세가나 구파일방에 들지 못하는 태천문이나 그닥 다르지 않은 입장이니 서문세가의 가주께서는 태천문의 문주에게 합당한 예를 갖춰달라는 것뿐입니다.”
“예의? 이 방약무인한 자가 지금 뭐라 한 것이냐?”
평소 냉철하기 그지없는 서문영호였지만 아들의 원수인 자가 눈앞에 나타나 내뱉은 도전적인 말에 화를 참을 수 없었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실을 말씀드린 것뿐이지요.”
“이자가 그래도!”
당장이라도 출수할 것 같은 서문영호의 손을 잡으며 공오대사가 주장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 시주.”
“예, 대사.”
“시주의 눈에는 빈승이, 소림이 보이지 않소이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사께서 계시기에 제가 자중하고 있는 것이지요.”
주장우의 안하무인 격인 말에 결국 서문영호의 인내심이 폭발하였고,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주장우, 더는 두고 볼 수가 없구나. 문답무용, 아들과 장로들의 원수를 갚겠다. 따라 나와라.”